#1곡우날(4월 20일) 아침, 비가 내렸습니다. 어제 시작한 가랑비가 계속된 것입니다.
곡우에 비가 오면 그 해는 풍년이라고 믿는 지방도 있고, 시절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 지방도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속설 중 어느 것을 취하느냐는 각 개인의 몫일 터입니다.
막 순을 낸, 정원의 연두색 새싹들은 소리 없이 내리는 보슬비에도 작은 귀를 쫑긋 세웁니다. 기다리던 손님처럼 반가운 모양입니다.
오전의 단비가 오후에는 햇살로 바뀌었습니다. 귀를 세운 작은 나뭇잎들이 햇살과 역광으로 어울리니 꽃잎이 되었습니다.
이 고요한 함성에 귀 기울이기위해 서재의 음악을 껐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창조물의 원천은 자연입니다. 나는 서재 밖 햇살 속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원천에 귀를 쫑그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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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책의 원전도 자연입니다. 밖으로 나가 그 원전에 귀를 세웠습니다. |
ⓒ 이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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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쿠~ 쿠~' 멧비둘기 구애하는 소리
'삐익~ 삐~' 직박구리 동료 부르는 소리
'푸드덕' 꿩이 홰치는 소리
'바스락' 까치의 마른 잎 밟는 소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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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자연속에는 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외에도 수많은 소리들이 교향악을 연주합니다. |
ⓒ 이안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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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찰칵 찰칵' 누군가의 사진 찍는 소리.
#2얼마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분은 넥타이를 맨 40대의 남자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몰입을 방해할까봐 금방 시선을 거두었습니다.
"이곳이 모티프원 맞지요?" 어느새 제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집 이름까지 정확하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과객은 아닌 듯싶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밴드 동료의 여행기를 읽고…."
출판단지에 직장이 있고 집도 일산이라 헤이리에는 자주 오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익숙한 곳을 초행인 듯 이렇게 열심히 사진에 담는 이유가 있으신가요?""봄 다르고, 여름 다르더라고요.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고... 매번 새로워요.""맞아요. 어느 순간도 같은 순간은 없지요. 하지만 선생님처럼 이렇게 그런 열정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지요.""오늘, 헤이리 인근에서 볼 일이 있었습니다. 잠시 짬을 내어 평소 궁금하던 곳에 들렀습니다."
서재에서 과일 한 조각을 입에 넣은 그 분은 몇 장의 사진을 더 찍고 바삐 되돌아갔습니다.
직장에 몸이 묶인 처지이지만, 잠시라도 자신의 영혼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청했던 그분의 뒷모습. 그 모습에 저의 과거가 비치어 보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