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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1

곡우날(4월 20일) 아침, 비가 내렸습니다. 어제 시작한 가랑비가 계속된 것입니다.  

곡우에 비가 오면 그 해는 풍년이라고 믿는 지방도 있고, 시절이 좋지 않다고 여기는 지방도 있습니다. 서로 상반된 속설 중 어느 것을 취하느냐는 각 개인의 몫일 터입니다.

막 땅 밖으로 순을 낸 단풍
 막 땅 밖으로 순을 낸 단풍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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막 순을 낸, 정원의 연두색 새싹들은 소리 없이 내리는 보슬비에도 작은 귀를 쫑긋 세웁니다. 기다리던 손님처럼 반가운 모양입니다. 

오전의 단비가 오후에는 햇살로 바뀌었습니다. 귀를 세운 작은 나뭇잎들이 햇살과 역광으로 어울리니 꽃잎이 되었습니다.

역광에 꽃잎처럼 화사한 좀작살나무의 연한 잎
 역광에 꽃잎처럼 화사한 좀작살나무의 연한 잎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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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고요한 함성에 귀 기울이기위해 서재의 음악을 껐습니다. 인간이 만든 모든 창조물의 원천은 자연입니다. 나는 서재 밖 햇살 속으로 나갔습니다. 그리고 그 원천에 귀를 쫑그렸습니다.

책의 원전도 자연입니다. 밖으로 나가 그 원전에 귀를 세웠습니다.
 책의 원전도 자연입니다. 밖으로 나가 그 원전에 귀를 세웠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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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 쿠~ 쿠~' 멧비둘기 구애하는 소리
'삐익~ 삐~' 직박구리 동료 부르는 소리
'푸드덕' 꿩이 홰치는 소리
'바스락' 까치의 마른 잎 밟는 소리

자연속에는 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외에도 수많은 소리들이 교향악을 연주합니다.
 자연속에는 가지를 스치는 바람소리외에도 수많은 소리들이 교향악을 연주합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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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어서 '찰칵 찰칵' 누군가의 사진 찍는 소리.

멀리서 들리는 카메라 셔터소리
 멀리서 들리는 카메라 셔터소리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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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얼마간 멀찍이 떨어진 곳에서 사진을 찍고 있는 분은 넥타이를 맨 40대의 남자분이었습니다. 그분의 몰입을 방해할까봐 금방 시선을 거두었습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가져갔습니다.
 시선을 다른 곳으로 가져갔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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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이 모티프원 맞지요?" 

어느새 제 옆으로 다가와서 물었습니다. 집 이름까지 정확하게 말하는 것으로 보아 과객은 아닌 듯싶었습니다. 

"제가 활동하는 밴드 동료의 여행기를 읽고…."

그 분은 작은 꽃에도 애정어린 눈길을 주었습니다.
 그 분은 작은 꽃에도 애정어린 눈길을 주었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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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단지에 직장이 있고 집도 일산이라 헤이리에는 자주 오는 편이라고 했습니다. 

"그렇게 익숙한 곳을 초행인 듯 이렇게 열심히 사진에 담는 이유가 있으신가요?"
"봄 다르고, 여름 다르더라고요. 아침 다르고 저녁 다르고... 매번 새로워요."
"맞아요. 어느 순간도 같은 순간은 없지요. 하지만 선생님처럼 이렇게 그런 열정을 지속하기는 쉽지 않지요."
"오늘, 헤이리 인근에서 볼 일이 있었습니다. 잠시 짬을 내어 평소 궁금하던 곳에 들렀습니다."

흐드러진 조팝나무꽃이 그분의 발길을 헛되지않게했으면...
 흐드러진 조팝나무꽃이 그분의 발길을 헛되지않게했으면...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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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재에서 과일 한 조각을 입에 넣은 그 분은 몇 장의 사진을 더 찍고 바삐 되돌아갔습니다. 

직장에 몸이 묶인 처지이지만, 잠시라도 자신의 영혼이 이끄는 곳으로 발걸음을 청했던 그분의 뒷모습. 그 모습에 저의 과거가 비치어 보입니다.
​​
저는 그분의 뒷모습에 투영된 제 과거를 보았습니다.
 저는 그분의 뒷모습에 투영된 제 과거를 보았습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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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곡우, #헤이리, #여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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