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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른둘 갑작스런 '갑상샘암' 선고와 투병생활로 망가진 몸. 그로 인해 바뀌어버린 삶의 가치와 행복의 조건. "갑상샘암은 암도 아니잖아"라며, 가족조차도 공감하지 못하는 우리들의 이야기. 죽음의 문턱에서 깨달았다. '오늘은 어제 죽은 이가 그토록 갈망하던 내일'이란 것을. 꿈이 있다면 당장 시작하라! '내일'이면 늦어버릴지도 모른다. - 기자 말

산업안전보건법 제43조 1항에는 "사업주는 근로자의 건강을 보호, 유지하기 위해 고용노동부장관이 지정하는 기관 또는 국민건강보험법에 따른 건강검진을 하는 기관에서 근로자에 대한 건강진단을 하여야 한다"고 명시되어 있다. 직장인들의 건강검진은 선택이 아닌 '필수'다.

건강검진이 필수라고는 하지만 건강검진의 범위와 항목까지는 정해져 있지 않다. 나는 2000년 8월부터 2015년 02월까지 약 15년간 직장생활을 했는데 그만큼 건강검진도 많이 했다. 하지만 직장에 따라 검진항목이 달랐다. 회사의 규모에 따라 복리후생 예산이 다르게 편성되므로 중소기업은 적은예산으로 가장 기본적인 검사만 하는 곳이 많다. 반면 대기업은 비교적 세부적인 검사까지도 회사에서 지원해주는 게 보통이다. 2000년부터 약 7년간을 중소기업에 근무를 하다가 대기업에 취직했다. 대기업 입사 후 처음 건강검진을 하던 날. 지금까지 내가 받았던 건강검진과는 차원이 다른 검사항목에 놀랐던 기억이 난다.

매년 가을이 되면 건강검진 시기가 돌아왔다. 우리 회사는 'K'건강검진센터와 계약이 되어 있었고, 전국에 있는 사업장 근무자들이 가까운 K센터에서 검진을 받았다. 부산과 경남 근무자들은 부산에 있는 K센터에서 검진을 받았다. 당시 창원에 근무를 하던 나는 검진을 받으러 가면 점심 먹고 오후가 되어서야 사무실에 복귀를 할 수 있었다. 그래서 검진하는 날은 학교 다닐 때 '소풍'가는 기분이었다.

건강검진을 하러 가면 '문진표'를 먼저 작성한다. 평소 앓고 있는 질환이나 생활습관에 대한 사전 설문이다. '술, 담배는 얼마나 하는지?' '운동은 얼마나 하는지?' 등에 대해 묻는데 대부분의 직장인들은 이 설문에서 '좋은 점수'를 받기 힘들 것이다. 나 역시도 고등학교 때부터 피워온 담배를 15년 넘게 피우고 있었고, 일주일에 3번 이상은 술자리를 가졌으며, 사무실에서는 커피를 입에 달고 살고, 운동은 일주일 내내 한 번도 하지 않았다.

몸이 망가지고 있다는 걸 뻔히 알고 있으면서도, '아직은 젊다'는 생각과 '남의 돈 벌어 먹는게 쉽나'하는 생각을 핑계 삼아 나를 더 혹사시키면서 살아 왔다.

갑상샘암 증가, 전 사원 갑상샘 초음파 검사 시행

2013년 건강검진 결과서에 나와 있는 나의 생활습관
▲ 생활습관 2013년 건강검진 결과서에 나와 있는 나의 생활습관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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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으로 한 감상샘 초음파검사에서 3cm 크기의 갑상샘 결절을 발견했다.
▲ 건강검진 소견 난생처음으로 한 감상샘 초음파검사에서 3cm 크기의 갑상샘 결절을 발견했다.
ⓒ 강상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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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최근 갑상샘암 환자가 증가하고 있고, 사내에서도 갑상샘암에 걸린 사우들이 생기고 있다고 한다. 그래서 올해 건강검진에서는 '갑상샘 초음파 검사'가 선택이 아닌 '필수' 검사가 되었다. 그렇지 않아도 한 번도 검사 받아본 적 없었기에 '올해 선택검진은 갑상샘으로 해볼까' 하던 차였다. 그런데 필수라니, 어쨌든 그해, 나는 갑상샘 검사를 무조건 받을 운명이었나 보다.

나는 지금까지 '갑상샘'이라는 장기가 우리 몸 어디에 붙어 있는지도 모르고 살았다. 가끔 주변 노인분들 중에 '갑상샘암'으로 치료를 받고 있다는 이야기를 들은 게 다다. 대충 목 부근이라는 것만 알 뿐이었다. 그렇게 아무것도 모른 채 초음파 검사실로 들어가서 침대에 누웠다.

침대에 누워 목을 뒤로 젖힌 채 검사를 기다렸다. 그런데 검사원분께서 내게 '평소에 목에 뭔가 걸리는 느낌이나 쉰 목소리가 나지 않냐'고 물었다. 평소에 그런 증상은 전혀 없었는데 이런 질문을 받았다는 것 자체가 이상했다. 아니나 다를까. 초음파 검사기기는 내 오른쪽 목 아래만 계속 맴돌며 사진을 찍고 있었다.

검사실을 나오는데, 검사원께서 검사실 밖까지 따라 나왔다. 그리고는 꼭 영상자료CD 받아서 병원에서 추가 검사를 받아보라고 했다. 나는 내심 '그래도 크게 걱정 할 건 아니다'라는 말을 듣고 싶었는데, 끝내 그런 말은 들을 수 없었다.

건강검진이 끝나고 K센터 입구에 있는 재떨이 앞에 같이 간 동료들이 다 모여 있었다. 동료들은 언제나처럼 함께 담배를 피면서 수다를 떨고 있었다. 내 손에 들려 있는 영상물CD와 굳은 내 표정을 보면서 동료들은 "괜찮을 거야"라며 위로했다. 자기도 갑상샘 결절이 있어서 매년 추적검사를 받고 있다며, 갑상샘 결절의 90%는 양성결절이라서 괜찮다고 말한다. 하지만 내 귀에는 아무 말도 들리지 않았다.

추석 연휴를 약 2주 앞둔 2013년 9월 12일. 내 갑상샘암 투병기는 그렇게 시작되었다.


태그:#건강검진, #초음파, #갑상샘, #영상물C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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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드콘텐츠 대표 문화기획과 콘텐츠 제작을 주로 하고 있는 롯데자이언츠의 팬이자 히어로 영화 매니아, 자유로운 여행자입니다. <언제나 너일께> <보태준거 있어?> '힙합' 싱글앨범 발매 <오늘 창업했습니다> <나는 고졸사원이다> <갑상선암 투병일기> 저서 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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