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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에서 유학을 하던 시절이었다. 처음 미국땅에 도착한 날, 자취집 주인 아주머니는 나를 데리고 비영리단체의 중고제품 매장(Second-hand Shop, 세컨핸드 숍)에 데리고 가셨다. 아주머니 입장에서는 유학생에게 물건을 싸게 살 수 있는 곳을 야심 차게 소개시켜 주시는 눈치였지만 처음으로 그런 곳을 경험한 나는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다.

'정말 이 물건들을 돈을 주고 사는 거야?'

비싸지는 않아도 항상 새 물건을 고집하던 내가 남이 쓰다가 버린 듯한 물건을 산다는 것은 상상할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애써 데리고 와 주신 아주머니에게 미안해 고르고 고른 물건이 나무 바구니로 된 쓰레기통 하나였다. 내 아무리 가난할지라도 이곳에는 다시 올 일이 없을 것이라 호언장담을 한 지 일년이 채 지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우연한 기회에 그 중고 제품 가게를 다시 찾았었는데 또 한 번 나는 내 자신에게 놀라고 있었다. 일년 전과는 달리 왜 그렇게 사고 싶은 물건들이 많던지! 정말 내가 일년 전에 와서 소스라치게 놀랐던 그 곳이 맞나? 라는 생각이 들 정도로 저렴한 가격에 쓸 만한 물건들이 많았다.

환경이 사람을 변화시킨다는 말처럼 유학 생활을 하면서 나는 조금씩 변하고 있었다. 굳이 새 물건이 아니더라도 싸고 나에게 필요한 물건이면 중고 제품만큼 괜찮은 물건들도 없었다. 그렇게 중고 제품에 대한 나의 사랑은 지속되었고 결혼 후 아이를 기른 이후부터는 더욱 중고 제품들을 애용하게 되었다.

아일랜드에서도 계속되는 중고 제품 사랑

처음 아일랜드에 왔을 때 가장 아쉬웠던 것 중 하나가 중고 제품 매장을 찾기가 힘들다는 것이었다. '새 물건을 살 수 있는 기쁨'보다는 물건을 '제 값을 주고 사야 하는 슬픔'이 나에게는 더 크게 다가 왔다. 하지만 아일랜드에 살면서 느끼는 것은 아이리시들 역시 중고제품을 좋아하고 (엄밀히 말해서는 싼 물건을 좋아한다) 특히 더블린에는 다양한 성격의 중고 제품 가게들이 많다는 것이다.

더블린의 중고 제품 가게는 성격상 세 가지로 분류할 수 있는데 첫 번째는 개인이 소장하고 있는 물건들을 특정한 거리나 건물에서 판매하는 벼룩 시장, 두 번째는 비영리단체 성격을 띠는 재활용 센터와도 같은 곳, 세 번째는 영리추구를 목적으로 중고 제품을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매장이다.

셋 다 다른 성격을 띠는 중고 제품 매장이지만 공통점이 하나 있다면 무엇을 사든 시중보다 훨씬 저렴한 가격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잘만 고르면 새 제품보다 훨씬 멋스러운 제품들을 만날 수 있다.

더블린 벼룩시장의 모습
 더블린 벼룩시장의 모습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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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 세컨핸드 매장에서 가장 눈길을 끌었던 벼룩시장은 매달 마지막 일요일에 열리는 더블린 벼룩시장(Dublin Flea Market)이었다. 2008년 11월부터 열린 더블린 벼룩시장은 누구나 자신의 물건을 팔 수 있고, 필요한 물건을 살 수 있는 곳이다. 빈티지 옷부터 시작해 가구, 책, 주방용품 등 모든 물건들을 만나볼 수 있는 곳이다.

나의 아버지, 할아버지 이전 세대부터 있었을 것 같은 오래된 지도들과 책들, 우리의 어머니들이 집을 꾸미기 위해 하나 둘씩 모았을 것 같은 아기자기한 그릇들, 이제는 성인이 되어 필요가 없어진 장난감을 파는 사람들, 오래 전부터 하나, 둘씩 모아 놓은 LP판들…. 상업적으로 변해버린 벼룩시장이 아닌, 매달 파는 사람이 바뀌고 물건이 바뀌는 시장이라 더 흥미롭고 신선하다.

더블린 벼룩 시장에서 물건을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
 더블린 벼룩 시장에서 물건을 보고 계시는 할아버지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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벼룩 시장안에는 물건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내려주는 구수한 원두 커피를 비롯 간단히 주전부리를 할 수 있는 가게들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벼룩 시장안에는 물건 뿐만 아니라 그 자리에서 바로 내려주는 구수한 원두 커피를 비롯 간단히 주전부리를 할 수 있는 가게들도 곳곳에 자리잡고 있다.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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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유사한 중고 제품 매장은 머천스 마켓(The Merchant's Market)이다. 더블린에서 가장 큰 벼룩시장으로 물건을 팔 수도 살 수도 있는 곳이다. 이 곳은 매일 문을 열지만 평일에는 약간의 상업성을 가진 중고 제품을 파는 사람들이 주를 이룬다. 때문에 순수한 목적으로 좋은 물건을 파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다면 토요일과 일요일에 가 보는 것이 좋다.

좋은 취지를 가진 착한 가게들

비영리단체 성격을 띠는 중고제품 매장
 비영리단체 성격을 띠는 중고제품 매장
ⓒ 김현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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더블린의 또 다른 중고 제품 가게들은 공공의 목적으로 설립된 비영리 단체의 재활용 센터를 들 수 있다. 다양한 비영리 단체에서 주관하여 물건을 판매하고 있는데 우리나라의 기준으로 본다면 '아름다운 가게'의 개념과 비슷하다.

일반 매장처럼 깔끔하게 해 놓지는 않아 거부감이 들 수도 있고 아주 큰 규모로 운영되고 있지 않아 언뜻 보기에는 살 물건들이 없어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잘 뒤져보면 필요한 물건들을 아주 저렴한 가격에 구입할 수 있다.

일반적인 재활용 센터는 중고 제품들만 판매하는 것이 대부분이지만 어떤 곳에서는 재활용 센터에서 음악 연주를 하거나 쿠키 등을 만들어서 판매하는 식의 작은 이벤트를 하기도 한다. 나는 재활용 센터에 갈 때마다 주로 아이의 책을 많이 사곤 했다.

아일랜드는 책 값이 비싼 편이라 새 책을 사는 것이 쉽지 않다. 우연히 재활용 센터에 들어가서 아이의 책을 몇 권 골랐었는데 한 권에 50센트를 하기도 했고 1유로에 팔기도 했다. 이럴 때는 엄마이자 주부의 입장에서 더할 나위 없이 흐뭇한 순간이다!

마지막으로 영리 추구를 목적으로 중고 제품을 파는 매장들이 있다. 이곳은 영리 추구를 하기 때문에 일반 중고 제품 매장보다는 물건의 상태가 좋고 가격도 비싸다. 물건들은 매장의 성격에 따라 저렴한 중고 제품을 파는 곳에서부터 샤넬, 구찌, 루이비통과 같은 명품을 파는 곳들도 있다. 이런 매장들은 주로 독특한 빈티지 제품을 선호하는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곳이라 중고 제품과 새 제품을 함께 팔기도 한다. 

여행지에서 관광을 하는 것 이상으로 그 나라의 특색 있는 아이템을 쇼핑하는 것을 즐기는 사람들이라면 더블린의 다양한 중고 제품 가게에서 그때만 구할 수 있는 독특한 아이템을 건지는 것도 여행의 또 다른 즐거움이 될 것이다.

덧붙이는 글 | 더블린 벼룩시장(Flea Market) 정보: http://dublinflea.ie/index.html
더블린 상인시장(Merchant's Market) 정보: http://www.merchantsmarket.ie/index



태그:#아일랜드, #더블린, #벼룩시장, #중고제품매장, #플리마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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