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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뷰 내용을 전부 다 활자화할 수 없는 상황이었습니다. 독자들의 양해를 먼저 구하며, 2편을 시작하려고 합니다.(관련 기사 : 연극으로 시를 쓰는 남자, 그를 만나다)

2편에서는 주로 <만주전선>의 일본진출과 후속작 그리고 배우들에 대한 지도 방법에 대한 얘기를 싣습니다. 연극에 대한 입문 계기와 앞으로의 활동계획에 대한 질문을 많이 던져 보았습니다.

지역적 경계를 넘은 <만주전선>의 힘

<만주전선>을 공연하는 극장 입구 앞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 박근형 극단 '골목길' 대표 <만주전선>을 공연하는 극장 입구 앞에서 인터뷰를 마친 후
ⓒ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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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 작품을 일본에서 전국투어할 계획은 있으신가요?
"아니 그런 거 없고요. 거기 계신 어떤 연출 선생님이 이 작품을 자기 극단에서 했으면 어떻겠냐고 하셨고, 또 다른 제안은 일본 배우들이랑 작품을 하면 어떻겠냐는 거였습니다. 대본만 수출하는 게 첫 번째고, 두 번째는 제가 직접 연출로 가서 일본 배우들과 작업을 하면 어떻겠냐는 거였습니다. 일본 관객들이 의외로 이 작품을 되게 잘 보시더라고요. 남의 나라 연극으로 보지 않고 당신들의 이야기, 당신들의 연극으로 봐서 좀 놀랐습니다."

- 제가 <만주전선>을 보면서 느꼈던 감동 중의 하나는 지역적인 경계를 넘을 수 있다는 것이었습니다. 충분히 일본 관객과도 소통이 가능한 경쟁력 높은 작품이라고 생각합니다.
"네 저도 공감합니다. 그런 의도는 아니었는데 일본 관객들이 의외로 상당히 적극적으로 보고, 자기 얘기처럼 느껴서 의외였습니다."

- 일본에서의 작업을 제안해주신 분과 소통은 적극적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까?
"아마 좀 시간이 흐른 후에 연락이 오지 않을까 합니다. 우리보다 일본에서 연극 제작하고 기획하는 건 숨이 좀 길더라고요. 아마 소식이 있지 않을까 합니다."

- 선생님이 보시는 일본과 우리나라의 연극의 차이가 무엇인지 말씀해 주세요.
"우리나라 배우들이 에너지가 훨씬 더 많죠. 감성이 풍부해요. 단지 우열을 비교하자는 게 아니라 그런 차이가 있습니다. 한국 배우들은 자기 체화를 통해 무대에서 선보이는 스타일입니다. 일본 배우들은 대체로 수동적입니다. 연출이 지시하는 대로 표현하려고 합니다. 글 쓰는 극작가 층은 일본이 훨씬 더 두텁죠. 일단 작가들이 더 많고, 작품의 소재 자체가 한국에 비해서는 훨씬 다양하죠. 좋은 텍스트들이 일본에 많아요.

전체적인 연극을 보면 일본은 우리나라처럼 상업극이 지나치게 넘치지 않는 것 같아요. 우리나라 대학로의 많은 연극이 연애나 달콤한 이야기들을 하는데 반해, 일본은 상업극이라도 이쪽으로 치우치지는 않습니다. 아무래도 국가에서 예술가들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고, 문화적 지원이 체계적이고 견고해서 그런 것 같습니다."

- 일반화할 수는 없지만, 그런 일종의 쏠림 현상이 민족적인 성향하고도 연관이 있다고 보시는 거죠? 그리고 문화의 다양성 측면에서 우리가 부족하다는 뜻이겠죠?
"아마도 그런 것 같습니다. 우리는 좀 불이 불면 확하고 일어났다가 금세 사그라지고 하는데, 그런 건 일본이 덜한 것 같습니다."

- 극단 '골목길'과 작업하는 배우들을 보면 역량이 뛰어나다는 느낌을 받습니다. 배우들의 역량을 강화하기 위해 선생님 나름대로 어떤 특별한 트레이닝을 하시는 게 있나요.
"아니요. 제가 배우를 따로 훈련시키는 건 없습니다. 오히려 배우들한테 그런 걸 하지 않으려고 하는 편입니다."

- 일부러요?
"네. 그러니까 훈련은 개인 스스로 자기에게 맞는 걸 하는 겁니다. 하고 싶으면 각자하라고 하지 같이 하지 않는 편입니다. 저랑 작업하는 배우들이 안팎에서 좋은 평가를 받는데, 그들을 내버려두는 제 작업 스타일에서 더 (역량이) 강해지지 않았나 싶습니다. 어떤 분들은 저보고 '방목 스타일'이라고 하는데 비슷한 것 같아요. 웬만하면 연습할 때 뭐 해라 뭐 하지 마라 거의 안 합니다.

다른 데서 작업하다 저를 만나는 배우는 처음에 당황해 하는 편이죠. 몇 번 작업을 해보니, 대체로 어느 정도 큰 윤곽만 그리면 배우들 스스로 다 헤쳐 나가요. 제가 훈련을 하는 게 아니라 좋은 배우들을 많이 만난 편이죠."

- 제가 볼 때는 선생님이 인복이 많으신 것 같습니다. 그게 참 쉽지가 않은 일인데요. 역량 있는 분들이 선생님께 알아서 찾아오는 것 아닙니까?
"놀기 좋아하니까요. (웃음)"

- 이번에 일본에서 <만주전선> 공연하시면서 일본 관객의 반응을 피부로 느끼신 것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같이 갔던 배우들하고 함께 기뻐했어요. 제가 그동안 일본에서 다섯 작품 정도를 한 것 같은데 가령 <청춘예찬>이나 <경숙이, 경숙이 아버지> 같은 경우는 공연 끝나면 관객들이 조용하더라고요. 그래서 '아, 이 사람들이 내 이야기에 별로 관심이 없구나'하고 물어보면 원래 반응이 그렇다고 답하더고요. 일본 분들은 공연을 보면서 반응을 별로 안 한다고 말이죠. (웃음) 그런데 나중에 보면 울기도 하고, 웃기도 하고 그러는데 이번 작품은 정말 의외였어요. 중간에 가끔씩도 웃기도 하고."

- 폭소가 터지더라고요.
"원래 안 그러는 분들인데 놀랐습니다. 저랑 같이하는 배우 중에 따로 일본에서 작업 하는 배우들이 보고 되게 좋아하더라고요. 인정받고 하니까, 그래서 굉장히 기뻤습니다."

- 이전에 하셨던 작품과 달리 관객들의 반응이 즉각적이라 기억에 남으시는 거죠?
"네. 이런 반응을 보인 적은 없었거든요. 제가 일본말은 모르지만, 일본연극을 봐도 관객들이 대체로 차분하고 조용히 킥킥대던가 하지 대놓고 웃거나 하는 건 참 놀라운 일이었어요."

"4·19 혁명 있던 1960년 이야기도 담고 싶다"

- 선생님이 연극에 입문하시게 된 계기가 있나요?
"저는 연극이 뭔지도 몰랐습니다. 제가 누나들만 있고 그래서 형들의 세계가 부러웠어요. 그래서 연극을 하면 이렇게 막 떠돌아다니고….  제가 그런 떠돌이 기질을 흠모했나 봐요. 연극배우가 되거나 글을 쓴다거나 하는 것에 아무 생각이 없었어요. 그냥 연극이 좋았어요. 제가 아주 사소한 역할, 포스터를 붙이던 전단을 돌리던 그런 것도 참 좋았어요."

- 작법에 대한 독특한 노하우를 좀 말씀해 주세요.
"작법이라는 것은 딱히 없습니다. 문학수업을 받은 것도 아니고... 다만, 제가 생각하는 연극을 해야겠는데 제 생각을 써 줄 사람이 없었습니다. 희곡을 쓴다기보다는, 하고 싶은 연극을 하기 위해서 최소한의 시놉시스 정도만 갖고 전 작품을 만듭니다."

- 연극 입문은 공식적으로 몇 년이나 되었나요?
"올해로 33년 정도 됐네요. 19살? 20살에 들어왔으니까요."

- 극단 '골목길'만의 궁극적인 담론은 무엇인가요? 앞으로 줄기차게 추구해서 도달하고자 하는 세계에 대해서 말씀해 주세요.
"배우들한테 이런 말을 합니다. '연극을 위한 연극을 하지 말자', '연기를 위한 연기를 하지 말자'고 말입니다. '우리가 말하고 싶은 얘기, 하고 싶은 표현을 타성에 젖어서 하지 말자'고 합니다.

아주 중요한 것은 관객이 한국 사람이라는 점입니다. 다시 말해서 나와 같이 숨 쉬는, 이 시대의 사람들이기 때문에 엄한 얘기나 옛날 얘기하지 말자는 거죠. 제가 말하는 옛날 얘기란 스토리가 아닙니다. 이 연극을 보는 사람들이 지금 우리와 같은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 바로 지금 이 순간, 동시성이 중요하다는 겁니다"

- 70년 전의 이야기를 다룬 작품임에도 불구하고 지금과 큰 차이가 없다는 점에서 <만주전선>의 연작 가능성이 높아 보입니다. 혹시 구상하고 계신가요?
"연작 정도까지는 아니고 그 비슷한 걸 구상하고 있습니다. 1960년을 이야기하는 겁니다. 정확히 말하면 4·19가 일어나던 그 해의 부정선거를 다루는 거죠. 가칭 제목은 <삼일오>입니다."

- 3월 15일이요?
"숫자로 쓰지 않고 (한글로) 2015년 압구정동에서 벌어지는 삼일오, 2015년 강남 사람들이 느끼는 삼일오 얘기를 해보고 싶어요. 그날이 부정선거일이잖아요?"

- 재미있겠는데요. 그럼 그 작품, 내년에 볼 수 있을까요?
"모르겠어요. (웃음) 곧 나오겠죠."

- 어느덧 연극계 중진이신데, 후배 연극인들을 위해서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후배들이 굉장히 열심히 합니다. 그런 사람 참 많아요. 그런데 환경이 더 열악해졌어요. 물질적인 것은 더 어렵죠. 그런데도 열심히 하는 후배들이 많은데, 돕지 못해서 죄송할 뿐이죠. 힘들지만 이 꽉 깨물고 눈 부릅뜨고 견뎌내기를 바랍니다."

- 관객의 한 사람으로서 참 가슴 아픈 부분입니다만, 모든 것이 열악해지는 상황에서 역설적으로 걸작이 탄생할 가능성은 높아지는 걸까요?
"그렇겠죠. 연극이란 분야가 숨 막히는 환경에서, 숨이 막히니까 '으악'하고 쌓인 함성을 내지르는 것이니까요."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후아이엠>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본인이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만주전선, #박근형, #골목길, #인터뷰, #이형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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