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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처음 아이를 낳고 키우기 시작했을 때 나를 가장 놀라게 만들었던 건 생전 처음 보는 육아용품들이었다. 미혼일 때는 전혀 듣도 보도 못한 제품들. 세상에는 수많은 육아용품들이 있었고, 적지 않은 사람들이 그 시장에서 생기는 수익으로 먹고 살고 있었다.

아기가 건들기만 해도 소리가 나는 기린 모양의 치발기부터 시작해서 온갖 소리를 내며 돌아가는 모빌, 부모 대신 아기를 품고 앞으로 뒤로 좌로 우로 움직이는 스윙, 기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넋을 잃고 가지고 노는 러닝홈, 일어서기 시작하는 아이들이 열광적으로 뛰는 점퍼루, 코가 꽉 막힌 아이들의 코를 뚫어주는 흡입기 등등.  

조작하기 참 쉽죠~잉?
▲ 세 아이를 키운 스윙 조작하기 참 쉽죠~잉?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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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들이 봐주는 까꿍이
▲ 세상에는 수많은 육아용품들이 있다 산들이 봐주는 까꿍이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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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그 모든 용품을 모두 사용할 수는 없는 법. 결국 부모들은 취향과 필요에 따라 육아용품들을 취사 선택할 수밖에 없는데 이번 글에서는 아이 셋을 키우는 아빠의 입장으로 가장 도움이 되었던 육아용품들을 한 번 이야기 하고자 한다. 과연 나의 육아용품 넘버3는 무엇일까? 개인적인 선택 기준은 사용 빈도와 시간 그리고 지속 가능성이다.

"엄마, 빔 봐도 되요?"

내가 꼽은 육아용품 3위는 미니 빔프로젝트. 아내가 미니 빔프로젝트를 산 것은 둘째를 낳고 첫째가 두 돌 될 무렵이었다. 아내는 당시 혼자 자지 못하고 칭얼대는 첫째 까꿍이 때문에 밤마다 고생하고 있었는데, 인터넷에서 좋은 정보를 얻었다며 중고사이트에서 바로 미니 빔프로젝트를 구매했다.

미니 빔프로젝트는 말 그대로 동영상이나 사진을 볼 수 있는 기기로서, 아이들을 위해 특화되어 있는 제품이었다. 사용법이 매우 쉬워 아이들이 조작하기 용이했고, 동화 파일들이 많이 들어있었다.

미니 빔프로젝트가 시작된다
▲ 이제 시작이다 미니 빔프로젝트가 시작된다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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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째 까꿍이는 이내 미니 빔프로젝트에 현혹되었다. 잠자리에 들기 전 항상 엄마, 아빠에게 '옛날이야기를 해 달라', '책을 읽어 달라', '같이 좀 놀아 달라'하던 칭얼거림이 어느새 '엄마 빔 봐도 돼요?'라는 말로 바뀌었다. 처음에는 빔프로젝트를 틀 줄 몰라 우리에게 부탁했지만, 그것도 잠시, 어느새 혼자 빔프로젝트를 가지고 주물럭댈 수 있을 정도가 되었다.

이제는 자기 전 으레 빔프로젝트 이야기부터 꺼내는 까꿍이. 덕분에 두 남동생들도 지금은 자기 전 누나가 빔프로젝트 틀어주기만을 기다린다. 물론 가끔 아빠가 해주는, 똥과 방귀로 점철된 라이브(!) 옛날이야기가 더 재미있지만 그건 어쩌다 있는 연중행사이기에 녀석들은 오늘도 빔프로젝트를 틀고자 한다.

혼란스러웠다. 결국 미니 빔프로젝트는 나 대신 아이들에게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용도였는데 이게 옳은 건지 자문해야만 했다. 내가 아버지의 역할을 방기하고 있는 건 아닌지, 내가 아이들의 기억 속에 가장 오랫동안 남을 수 있는 기회를 차버리고 있는 건 아닌지. 

빔이 읽어주는 옛날이야기
▲ 조용~~~ 빔이 읽어주는 옛날이야기
ⓒ 이희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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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개인적으로 아버지에 대한 기억을 떠올릴 때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옛날 이야기를 해주시던 당신의 모습이다. 하루 종일 업무에 시달리다가 늦은 시각 집에 오시어 저녁식사 후 양팔에 아들과 딸을 눕힌 뒤 옛날이야기를 해주시던 아버지.

얼마나 피곤하셨으면 아버지는 가끔 했던 이야기를 또 하며 구간반복 하셨는데 그 당시에는 그게 얼마나 짠한 일인지도 모른 채 마냥 재미있었다. 아직 나는 그때 아버지에게 들었던 '구미호 이야기'와 '엉덩이 박박 긁으며 호랑이 찾던 할머니' 이야기를 잊지 못한다.

정작 어렸을 때는 아버지로부터 그렇게 옛날이야기를 들어놓고, 내 자식들에게는 한낱 기계를 틀어놓으려는 나의 게으름. 문제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미니 빔프로젝트가 무척이나 편하다는 점이다. 과연 난 빔프로젝트를 포기할 수 있을까?

"엄마, 복댕이가 TV보고 싶대요"

스마트폰 사용금지의 부작용
▲ 이게 스마트폰이구나 스마트폰 사용금지의 부작용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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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 대신 아이들을 재워주는 미니 빔프로젝트. 그러나 그보다 더 유용한 기기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TV이다.

어떤 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TV를 아예 없앤다고도 하지만, 우리 부부에게 TV는 세 아기를 키우는 데 있어서 필수 아이템이다. 특히 아내에게 TV는 각별할 수밖에 없는데, 내가 없는 동안 저녁을 하거나 뭔가 바쁜 일을 할 때 TV는 아이들의 주의를 가장 오랫동안 잡아놓을 수 있는 기기이기 때문이다. 아직 스마트폰을 아이들에게 잘 보여주지 않는 우리로서는 TV가 최선이다.

엄마, 아빠가 주말 늦잠을 자거나 뭔가 바쁜 일을 하는 것 같을 때, 첫째 까꿍이는 둘째 산들이게 조용히 지령을 내린다.

까꿍이 : "산들아, 엄마, 아빠한테 TV 봐도 되냐고 물어봐."
산들이 : "엄마, 복댕이가 TV 보고 싶다는데, TV 봐도 돼요?"

첫째가 둘째에게 시키고, 둘째는 셋째를 팔아 TV를 보려는 우스꽝스러운 광경. 우리의 허락이 떨어지면 둘째는 이 기쁜 소식을 누나에게 큰 소리로 전하고 까꿍이는 소파에 리모컨을 들고 앉아 있다가 곧바로 TV를 튼다. 그러나 허락이 떨어지지 않으면 첫째의 특명을 받은 셋째 복댕이가 투입된다. 엄마, 아빠가 막내의 막무가내에 약하다는 것을 녀석들은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초집중 삼남매
▲ 조용해진 세상 초집중 삼남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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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아이들의 영웅
▲ 미니특공대 최근 아이들의 영웅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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덕분에 우리 아이들은 여느 또래 아이들과 마찬가지로 TV에 나오는 온갖 캐릭터들을 줄줄 외운다. '뽀로로'부터 시작해서 '타요', '폴리', '소피아 공주', '바다탐험대 옥토넛' 등등. 요즘은 '최강전사 미니특공대'에 빠져 있는데, 아직까지는 뽀로로가 제 수준인 막내도 누나와 형 때문에 덩달아 미니특공대 노래를 흥얼거릴 지경이다.

물론 아이들의 TV 시청에 대해 마냥 긍정적일 수는 없다. 아이들이 EBS에서 나오는 광고를 보고 장난감을 사달라고 할 때, 만화의 폭력적인 장면이나 대사를 따라할 때 어찌 걱정이 없을 수 있겠는가. 다만 또래들 간의 소통을 위해서는 아이들도 TV 프로그램을 알아야 한다고 자위할 뿐이다. TV, 그것은 아이를 키우는 부모가 가질 수 있는 가장 큰 유혹임에 분명하다.

몸으로 하는 이야기

엄마, 아빠를 대신해 옛날 이야기를 해주는 미니 빔프로젝트와 아이들이 원할 때 친구가 되어주는 TV. 그러나 이 두 가지를 뛰어넘는 울트라 초특급 육아 용구가 있으니 그것은 바로 아빠의 몸이다. 나는 여느 아빠들과 비교하여 아이들과 잘 놀아주는 편인데, 그 빈도나 시간, 지속가능성을 볼 때 우리 아이들에게 나의 몸을 능가하는 육아용품은 존재하지 않는다.

사실 아이들에게 아빠와 논다는 것은 엄마와 노는 것과 차원이 다른 개념이다. 보통 노래를 불러주거나 책을 읽어주는 등 정적인 놀이를 지향하는 엄마와 달리 힘이 좋은 아빠는 몸으로 부대끼는 놀이를 하는 경우가 많은데, 그것이 아이들에게는 훨씬 자극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아이들을 하늘 높이 들어올리고, 집어 던지고, 깔아뭉개기도 하는 아빠와의 과격한 몸놀이가 어찌 엄마의 그것과 같을 수 있겠는가.

그래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다
▲ 무조건 아빠무릎에 앉기 그래 아직까지는 버틸 수 있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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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고 아빠 죽는다
▲ 뻐꾹뻐꾹 아이고 아빠 죽는다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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따라서 몸놀이는 아이에게 아빠의 존재를 각인시킬 수 있는 가장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몸놀이는 아이와의 시간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많은 아빠들이 집약적으로 자식들과의 친밀감을 형성할 수 있는 시간이며, 격렬한 부대낌을 통해 아이들의 스트레스도 풀어줄 수 있는 시간이기 때문이다.

어른들도 스트레스를 받으면 아무 생각 없이 몸을 쓰고 싶은 경우가 많은데, 어찌 아이들이라고 그렇지 않겠는가. 아이들이 퇴근하는 아빠를 쌍수를 들고 환영하는 것은 바로 이와 같은 기대가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돌이켜보면 나 역시 아버지를 위와 같은 몸놀이를 통해 기억한다. 내가 어렸을 때 아버지는 자주 늦는 편이셨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우리가 자기 전까지 자식들과 몸으로 많이 놀아 주셨다. 아버지는 그렇게 자상한 분이셨고, 나는 으레 세상의 모든 아빠들이 다 그렇다고 생각했었다.

그리고 그때 아버지와 했던 몸놀이를 지금 내가 나의 자식들에게 그대로 하고 있다. 아이들을 발등 위에 올려놓고 걸어 다니는 '짝사랑', 아이들이 배꼽을 누르면 소리를 내는 '빼~', 아빠가 누운 채 아이들을 다리에 올려놓고 움직이는 '뻐꾹뻐꾹'이나 '비행기', 아이를 등 뒤에 안은 채 돌려대는 '독 사려', 누워 있는 아이의 다리를 잡고 격렬하게 움직인 '축구 중계' 등등 그 모든 것이 어렸을 때 아버지께 몸으로 배운 것들이다.

왜 이게 버스놀이가 됐지?
▲ 아빠와의 몸놀이 왜 이게 버스놀이가 됐지?
ⓒ 정가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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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록 정형화 되지 않았지만 끊임없이 변용하면서 아이들과 놀 수 있는 움직임. 어쩌면 아빠의 몸이 아이들에게 가장 좋은 육아용품이 될 수 있는 건 바로 그와 같은 창의성과 사랑 때문일지도 모른다. 딱딱하고 반복되는 기계와 달리 따뜻한 온정을 품고 아이의 눈높이에 맞춰 진행되는 몸놀이. 나의 자식들도 30년이 지나 자신들의 자식들을 보며 나와 같은 생각을 하게 되겠지. 아마도 이것이 어른들이 말하는 가정교육의 한 부분이리라.

세상에는 수많은 육아용품들이 존재한다. 그러나 그 육아용품의 사용법은 아이들의 수만큼이나 다양하다. 각자에게 맞는 육아용품을 골라 사용하자. 육아에 정답은 없다. 선택만이 있을 뿐.

○ 편집ㅣ홍현진 기자


태그:#육아용품, #육아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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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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