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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견 복잡해 보이는 세월호를 둘러싼 문제들의 핵심은 의외로 간단하다. 본질과 현상.

먼저 본질.

누군가 사랑하는 사람을 사고로 잃게 됐다고 가정하자. 상식적인 인간이라면 여기서 가장 먼저여야 할 것은 분명하다. 대체 왜 사고가 일어났는가? 그 원인과 과정에 대한 규명이다.

그런데 이렇게 당연한 요구에 관해 돌아온 답변이란 게 가관이다. 가해자와 관련이 깊은 누군가가 사건의 원인과 과정을 한번 조사해보겠다는 것. 기가 막히고 피가 거꾸로 솟을 일이다.

배상액이 얼마라는 등 인간없는 언론과 정부가 수많은 지엽적인 문제들로 호도하고 있지만 지난 1년간 세월호 희생자 가족들이 바라온 것은 오직 하나였다. 사랑하는 아들, 딸, 남편과 아내를 잃은 이유를 누가봐도 투명하고 공정한 절차에 따라 명백히 밝혀달라는 것.

그리고 이에 대한 대한민국 정부의 대답은 결국 이것이다. 그 원인의 일부 일수도 있는 조직의 사람들 통제 아래 사건을 한번 살펴보겠다. 이보다 더 최악일 수 없는 비상식적이고 몰지각한 정부의 대응에 대한 당연한 분노와 항변. 이것이 이 순간 세월호 문제의 본질이다.

다음으로 현상.

한편, 본질을 둘러싸고 나타나는 현상들은 우리 사회의 괴물을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295명의 사망자와 9명의 실종자를 낸 사건에 관해, 이 사건을 밝히기 위해 온 몸으로 싸우고 있는 희생자 가족들에 관해, 또 이들을 향한 정부의 폭력에 관해, 무엇보다 사회와 언론, 시민들이 보여주는 무관심과 방관은 결국 우리가 어느 정도 수준을 가진 국가와 국민인지, 얼마나 무능하고 무기력한지 까발린다.

1961년 나치 전범 아돌프 아이히만의 재판을 지켜본 철학자 한나 아렌트는 이렇게 말했다.

그가 유죄인 명백한 이유는 아무런 생각이 없었기 때문이다.
다른 사람의 처지를 생각할 줄 모르는 생각의 무능.
생각의 무능은 말하기의 무능을 낳고
말하기의 무능은 행동의 무능을 낳는다.


아무도 그렇게 말하지 않지만, 세월호 사건을 둘러싼 현상들은 이제 명백히 우리 각자를 가리키고 있다. 2015년이라고는 믿기 힘든 정부의 폭력에 관해 생각하지도 않고, 말하지도 않는 무능. 침묵하는 괴물.

그래서 우리는 얼마나 괴물인가.
혹은, 우리는 괴물이 아닐 것인가.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허핑턴포스트코리아에 함께 게재되었습니다.



태그:#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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