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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일전에 박물관에 갔다가 흥미로운 풍광을 접했다. 석기 시대 유물 앞에서 아버지와 어머니의 교육 방식이 전혀 달랐다. 한 어머니는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아이에게 시대별 유물의 특징, 유물의 이름 등을 설명하시면서 이론적 접근(?)에 매진하는 모습을 보이셨다. 반면 어느 아버지는 유물 앞에 아이를 세우고는 진지한 표정으로, 만약 정글이나 외딴 곳에 혼자 떨어지게 되면 어떤 모양으로 돌을 갈아서 사냥에 사용해야할지 자세히 관찰해두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같은 유물을 보고도 어떤 관점에서 접근하는가에 따라 이렇게 교육 방법이 달라질 수 있구나, 놀라기도 하고 재미도 있어 나도 모르게 귀를 기울였던 기억이 있다.

보건 수업 시간에 아이들에게 어떻게 하면 건강해질 수 있는지 물어보면, 십중팔구 동일한 대답이 돌아온다. 기름진 음식 피하고, 밀가루, 설탕, 소금 많이 안 먹고, 채소와 과일을 많이 먹으면서 운동을 열심히 하면 된다는 것. 즉 개인이 알아서 챙기면 된다는 것인데, 과연 그럴까.

서울 지역에서 사는 구에 따라 기대수명-앞으로 살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되는 수명-이 최대 약 6년 정도 차이난다는 기사 자료를 보여주고 왜 이렇게 차이가 나는지 가상의 예시를 들려줬다.  

부유층이 많다고 알려진 A구에 사는 '가' 할머니의 일상. 아침에 눈을 떠 문 앞에 나가면 A구 보건소에서 보낸 차량이 벌써 도착해있다. 10분가량 차를 타고 도착하면 A구 보건소에서 개설한, 노인들을 위한 스트레칭 프로그램이 시작되는 시간. 전문 강사의 지도에 따라 1시간 정도 스트레칭을 하면 보통 배가 출출해지는데, 어김없이 친한 할머니들과 함께 동네 카페에 들러 요즘 유행이라는 브런치를 먹는다.

수다를 떨고 나면 햇살이 제법 따뜻해지는 오후. 집 근처에 잘 조성된 공원을 천천히 산책한 후에 귀가한다. 집에 도착해 냉장고를 열어보면 유기농 야채부터 신선한 음식이 한 가득. 조금 아프다 싶으면 집 앞에 있는 수많은 병의원 중 마음에 드는 곳(?)을 골라 다녀온다.

반면 극빈층이 많다고 알려진 B구에 사는 '나' 할머니의 일상. 운동을 해야 건강해진다지만, 집이 높은 언덕에 있어 오가느라 이미 평소에도 너무 많은 운동을 한 탓에 관절염으로 고생이다. TV에서 설탕이 몸에 안 좋다고 하니 가급적 먹지 않으려고 했는데, 온 종일 폐지를 줍다보면 힘이 딸리니 단 것이면 뭐든 먹고 싶어져 오늘만 벌써 인스턴트 커피 3잔째다.

야채라도 많이 먹고 싶은데, 동네 슈퍼에서는 사람들이 잘 사가지 않아 빨리 상한다며 채소를 팔지 않은 지 벌써 1년. 채소를 사려면 언덕 아래 시장이나 마트까지 다녀와야 하는데, 다리가 아파서 그것도 여의치 않다. 아프다 싶어도 돈이 아깝기도 하고, 동네 근처에 병원도 별로 없어 그냥 참는 게 다반사다.  

건강에 큰 영향을 끼치는 사회구조적 이면을 외면한 채 식이와 운동요법 등 익히 알려진 노하우만 강조하면 누구나 건강해질 수 있을까, 다시 아이들에게 물으면 대답은 '아니오'로 바뀐다.

한 번은 교실에 화장지가 떨어지면 어떻게 할 것인지 물어본 적이 있다. 놀랍게도 상당수의 학급에서 집에서 직접 화장지를 가져와 친구들에게 빌려주겠다는 천사표 답변을 많이 했다. 극소수의 아이들만 화장지가 교실에 부족한 이유가 학급에서의 낭비 때문인지, 아니면 학교에서 충분히 주지 않기 때문인지 그 이유를 확인해보면서 문제를 해결하겠다고 답했다.

아이들과 부대끼면서, 그 주제가 무엇이든 관련된 구조적 이면, 맥락을 뜯어보고 개선안을 찾아보도록 가르쳐야겠다는 생각이 점점 짙어진다. 건강도 개인의 노력뿐만 아니라 사회적 책무성이 필요한데, 식이와 운동 등으로 점철된 개인적 건강 요법만 강조되니, 안타깝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부천자치신문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보건교육, #건강형평성, #건강격차, #학교보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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