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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진성과 역사공원 조성기념 조형물.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포구에 자리하고 있다.
 회령진성과 역사공원 조성기념 조형물. 전라남도 장흥군 회진면 회진리 포구에 자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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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명량>으로 시작된 이순신 열풍이 뜨겁다. 이순신 관련 책이 많이 팔리고 있다. '신에게는 아직도 열두 척의 배가 있다'는 말을 패러디 한 광고도 나왔다. 유적지를 찾는 사람들도 부쩍 늘었다.

지자체도 이순신 마케팅에 열을 올리고 있다. 전라남도는 이순신이 걸었던 백의종군로와 조선수군 재건로를 여행코스로 개발했다. 순천과 보성, 구례도 발을 벗고 나섰다. 임진왜란과 정유재란 유적을 하나씩 복원하고 있다.

회령진성에서 내려다 본 회진포구. 포구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회령진성에서 내려다 본 회진포구. 포구를 중심으로 마을이 형성돼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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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령진성에서 내려다 본 회진항 전경. 이순신이 1597년 8월 18일(양력 9월 28일) 경상우수사 배설의 휘하에 있던 조선수군의 잔류 함대를 회수한 곳이다.
 회령진성에서 내려다 본 회진항 전경. 이순신이 1597년 8월 18일(양력 9월 28일) 경상우수사 배설의 휘하에 있던 조선수군의 잔류 함대를 회수한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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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4일 찾은 전남 장흥의 회진항(회령포)도 이순신 유적지 가운데 하나다. 장흥은 광화문에서 봤을 때 정남쪽에 자리하고 있다. '정남진'이라 부르기도 한다. 이순신은 1597년 8월 18일(양력 9월 28일) 여기 회령포에서 경상우수사 배설의 휘하에 있던 조선수군의 잔류 함대를 회수했다.

이튿날엔 포구에서 군사들과 함께 숙배(肅拜) 행사를 열었다. 숙배는 임금에 충성을 다할 것을 맹세하며 군사들의 사기를 높이는 군례다. 이른바 충성 서약식이다. 이순신은 장수와 장병들에게 선조 임금이 내린 교서와 전라좌수사 겸 삼도수군통제사 임명 교지를 보여주며 충성을 다짐했다.

이순신은 장병들에게 "우리는 지금 임금님의 명령을 다 같이 받들었다. 한 번의 죽음으로 나라에 보답하는 것이 무엇이 아깝겠는가. 오직 우리에게는 죽음만이 있을 뿐이다"고 외치며 엄격한 지휘권 행사를 시작했다.

회령진성 역사공원 설명판과 기념조형물. 이순신이 회령포에서 조선수군의 잔류 함대를 회수해서 명량으로 갔다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회령진성 역사공원 설명판과 기념조형물. 이순신이 회령포에서 조선수군의 잔류 함대를 회수해서 명량으로 갔다는 사실이 새겨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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숙배를 마친 이순신은 곧바로 회수한 조선함대 12척을 판옥선으로 개조하는 작업에 착수했다. 당시 일본군은 전투 때마다 판옥선에 가까이 접근해 사다리를 놓고 올라가 백병전을 벌이기 일쑤였다.

일본군은 백병전에 능했다. 일본군의 장점을 무력화시키고 조선수군의 전투력을 높이기 위해선 전함의 수리가 시급했다. 이순신은 김억추를 책임자로 지정하고, 전함을 거북 모형의 구선(龜船)으로 바꾸도록 했다.

건곤일척의 승부를 앞둔 명량으로 가는 이순신의 조선수군 재건이 마무리된 것이다. 이순신은 전라도 내륙의 구례와 곡성, 순천을 거치면서 군사를 충원하고 군기와 화약무기를 확충했다. 보성에선 군량미를 확보했다. 8월 3일 삼도수군통제사로 다시 임명돼 조선수군 재건에 나선 지 17일 만이었다.

장흥 회진항에 복원된 회령진성. 당시 둘레 6킬로미터의 큰 성이었으나 지금은 전체 성벽의 10분의 1만 남아있다.
 장흥 회진항에 복원된 회령진성. 당시 둘레 6킬로미터의 큰 성이었으나 지금은 전체 성벽의 10분의 1만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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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된 회령진성. 역사공원 조성기념 조형물에서 본 모습이다.
 복원된 회령진성. 역사공원 조성기념 조형물에서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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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이 조선수군 재건에 마침표를 찍은 회령포는 조선 초기 광산 김씨 김민경이 처음 들어왔다고 전해진다. 마을은 전라우수영에 소속된 수군만호가 주둔하면서 형성됐다. 여기에 진(鎭)이 설치된 것은 조선 초기였다. 평상시엔 식량과 군기를 쌓아두는 보급기지 역할을 했다.

회령진성은 회령포구의 뒷산을 이용해서 쌓았다. 1490년(성종 21년)에 쌓기 시작해 1554년(명종 9년)에 마무리됐다. 둘레가 6킬로미터로 큰 성이었다. 석축의 너비는 2∼4미터였다.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동쪽의 벽은 벼랑 위에 쌓았다.

회령진성의 흔적. 옛 모습 그대로의 성곽이 일부 남아있다. 성곽의 경계에 있는 밭에는 마늘이 자라고 있다.
 회령진성의 흔적. 옛 모습 그대로의 성곽이 일부 남아있다. 성곽의 경계에 있는 밭에는 마늘이 자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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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투리 땅을 가꾸고 있는 마을주민. 집과 집 사이 빈 터를 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자투리 땅을 가꾸고 있는 마을주민. 집과 집 사이 빈 터를 밭으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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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 남아있는 성벽은 전체의 10분의 1에 불과하다. 마을 뒤로 폐허가 된 성벽과 석축이 남아 있다. 집과 집, 산과 밭의 경계로 쓰이고 있다. 밭에는 마늘이 자라고 있다. 성문 터도 일부 남아있다. 이 성벽에 올라서면 회진마을과 포구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덕도와 노력도, 대마도, 대구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포구를 감싸고 있다.

250여 년 전 마을주민들이 이순신을 기리기 위해 심었다는 팽나무도 성내에 있다. 김귀례(82) 할머니의 집은 이 성벽에 기대 있다. 성벽이 담장이다. 마을사람들이 할머니를 보고 '성 길에 사는 사람'이라고 부른단다.

"남문 자리에 큰 돌이 있었고, 물레방아도 있었는디. 새마을운동 때 다 묻어 부렀어. 성돌을 지게로 져서 날라다가 돌담도 쌓고."

회진마을 주민 이선홍(67)씨의 얘기다.

회진마을 돌담길. 회진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마을이다. 옛 성곽에 쓰였던 돌이 돌담의 재료로 많이 들어갔다.
 회진마을 돌담길. 회진포구를 내려다볼 수 있는 마을이다. 옛 성곽에 쓰였던 돌이 돌담의 재료로 많이 들어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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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이 빠지면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탱자섬. 회진마을에서 내려다보인다.
 물이 빠지면 걸어서 건너갈 수 있는 탱자섬. 회진마을에서 내려다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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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이 당시 성을 중심으로 형성돼 있다. 골목마다 돌담으로 이어져 있다. 마을에서 노력항 여객터미널이 저만치 보인다. 제주도 성산포를 오가는 쾌속선을 타는 곳이다. 회진포구 풍경도 아름답다. 바다 색깔이 파랗다. 그 바다에 섬 하나가 그림처럼 들어서 있다. 탱자섬이다.

"저 섬으로 소풍 갔어요. 우리 어렸을 때에. 물이 빠지면 들어가서 놀다가, 물이 들기 전에 나왔죠. 그때는 잔디밭이 넓었어요. 모래도 많고요. 지금은 많이 변했죠. 새마을사업 때 해사를 채취해서 학교 짓느라고, 모래도 다 파버렸어요."

김귀례 할머니의 아들 박영만(57)씨의 말이다.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으로 쓰인 선술집. 장흥군 회진면 선학동마을 앞에 있다.
 영화 '천년학'의 세트장으로 쓰인 선술집. 장흥군 회진면 선학동마을 앞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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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진마을에서 나와 선학동마을로 간다. 벽화가 그려진 담장에서 문학의 향기를 맡는다. 회진이 소설가 이청준과 한승원의 고향임을 직감한다. 선학동은 지난 2008년 고인이 된 이청준의 소설 <선학동 나그네>의 배경이 된 마을이다. 임권택 감독이 이 작품을 원작으로 영화 <천년학>을 촬영했다. 의붓 남매인 동호와 송화의 이루어질 수 없는 사랑 이야기를 그리고 있다.

마을로 가는 길목에 영화 세트가 남아 있다. 바닷가에 소나무와 어우러진 선술집이다. 그 너머로 노력도를 뭍과 연결시켜 준 회진대교가 보인다. 금당도, 거금도 등 크고 작은 섬도 가깝다.

선학동마을 너머 진목마을에는 이청준의 생가가 있다. 이청준은 남도사람들의 웅숭깊은 한과 소리를 소설로 풀어냈다. 소설 속에 그려진 마을도 그대로다. 소설 속에 가끔 등장하는 마을사람들을 만나는 것도 행운이다.

최남단 장흥에 선 정남진전망대. 서울 광화문에서 봤을 때 정남쪽에 위치해 있다고 장흥을 '정남진'이라 부른다.
 최남단 장흥에 선 정남진전망대. 서울 광화문에서 봤을 때 정남쪽에 위치해 있다고 장흥을 '정남진'이라 부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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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산방조제 전경. 정남진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삼산방조제 전경. 정남진전망대에서 내려다 본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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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척에 가볼 만한 곳도 많다. 정남진전망대가 가깝다. 탑의 위층은 떠오르는 태양을, 가운데는 황포돛대를, 아래층은 파도를 형상화하고 있다. 여기서 바라보는 바다 경관이 황홀하다. 삼산방조제도 있다. 해양낚시공원에서 바다낚시의 짜릿한 손맛도 즐길 수 있다.

뭍의 평야처럼 넓은 바다 양식장도 만난다. 삼산리 후박나무도 눈길을 끈다. 세 그루의 나무가 한 무더기로 어우러져 하나의 수관을 이루고 있다. 육지에서 보기 드문 나무다. 역사와 관광을 두루 체험할 수 있는 장흥 회진이다.

삼산리 후박나무. 세 그루의 후박나무가 한 무더기로 어우러져 있다.
 삼산리 후박나무. 세 그루의 후박나무가 한 무더기로 어우러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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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 찾아가는 길
서해안고속국도 목포 요금소를 지나 순천 방면 남해고속국도를 탄다. 장흥 나들목에서 대덕 방면으로 23번 국도를 타고 관산읍을 지나 관흥 삼거리에서 회진으로 간다.



태그:#회령진성, #회령포, #회진항, #장흥, #회진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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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찰이 일상이고, 일상이 해찰인 삶을 살고 있습니다. 전남도청에서 홍보 업무를 맡고 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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