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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찰이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려 미 대사를 피습한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의 배후 세력을 집중적으로 추적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채 13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역시 입증하지 못했다.
▲ ▲ 수사 결과 발표하는 김철준 서울지방경찰청 수사본부장 경찰이 대규모 수사본부를 꾸려 미 대사를 피습한 김기종 우리마당 대표의 배후 세력을 집중적으로 추적했지만 결국 아무것도 밝혀내지 못한 채 13일 사건을 검찰에 송치했다. 국가보안법 위반 혐의 역시 입증하지 못했다.
ⓒ YTN 생중계 캡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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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퍼트 주한 미국대사가 김기종씨로부터 피습 혹은 테러를 당한 지 어언 2주일이란 시간이 흘렀다. '한미동맹 찌른 종북 테러', '한미 동맹이 테러 당했다'라며 호들갑 떨던 보수신문들도 이제는 잠잠한 편이다. 처음에는 그 배후를 밝히기 위해 김기종씨의 사돈의 팔촌까지 파헤칠 기세더니 언제 그랬냐는 식이다.

사실 이는 처음부터 예견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사건 당시에야 서울 한복판에서 주한 미국대사가 피습을 당했다는 사실 자체만으로 이슈가 될는지는 몰라도, 김기종씨의 지난 행적을 보고 있노라면 그가 조직적이고 치밀하게 누군가의 지령을 받아 범행을 저질렀을 가능성에 대해서는 회의가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민주화운동과 통일운동에 투신했지만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채 노년을 맞고, 그러다 보니 오히려 극단으로 치달아 이전에도 주한 일본 대사에게 돌을 투척하는 등 비상식적인 행위를 일삼았던 김기종씨. 비록 하태경 의원이 종편에 나와 과거 자기가 김기종씨의 동지였기 때문에 그가 종북세력과 연결되어 있음을 잘 알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일반 시민의 시선으로 봤을 때 김기종씨의 배후에 무슨 엄청난 세력이 있다고 우기는 건 침소봉대다. 토지정의시민연대 이태경 사무처장의 표현처럼 '민주상이용사'는 그에 대한 가장 정확한 정의인 듯하다.

그런데도 정부여당은 김기종씨와 관련돼 끊임없이 종북몰이를 했다. 엄청난 배후가 있는 듯 CCTV를 통해 아침부터 사건이 발생한 시각까지 김기종씨의 일거수일투족을 관찰했고, 국내 북한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가지고 있을 수 있는 책들을 가지고 이적성이 있느니 없느니 등의 언론플레이를 펼쳤다. 지금까지 정부여당이 그토록 즐겨 쓰던 '개인적 일탈'의 가능성은 열어두지 않은 채, 오로지 김기종씨와 관련된 간첩단 사건을 그려내는 데 총력을 쏟은 것이다.

정부여당이 이번 사건에 이렇게 호들갑을 떠는 이유는 누구나 짐작할 수 있다. 이번 사건은 정부여당의 계속되는 실정으로 떨어지고 있는 지지율을 다시 끌어올릴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 때문이다. 아무리 말이 안 되고, 한물 간 메카시즘적 방식이라 해도 아직 우리나라에는 '종북'이란 단어만 나와도 빨간색 색안경을 자진해서 쓰는 이들이 많지 않은가. 실제로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은 이 사건 이후 반짝 40%를 넘겼다고 한다.

그러나 문제는 그 이후다. 비록 국내 지지율은 올렸는지 몰라도 김기종 사건에 대한 정부여당의 이와 같은 대응은 국제적으로 전혀 다른 방향의 부작용을 낳았다.

위험한 나라, 그 이름은 대한민국

무엇보다 이번 사건은 다른 나라 사람들에게 대한민국이 아직도 여전히 세계에서 가장 위험한 나라라는 인식을 재확인시켜 주었다. 한국인들은 외국을 다녀와서 밤거리를 돌아다녀도 안전한 건 우리나라 밖에 없다며, 한국에는 이슬람 테러세력이 아직 존재하지 않는다며 치안만은 우리나라가 최고라고 자화자찬한다. 하지만, 바깥에서 볼 때 한국은 가장 위험한 나라에 속한다. 우리는 아직까지 판문점이 최대 관광 상품인 휴전국가이기 때문이다.

휴전선 155마일을 두고 약 160만의 대군이 대처하고 있으며, 연평도 해전, 연평도 폭격 등 최근까지 실제로도 국지적 전쟁이 일어나고 있는 긴장의 한반도. 우리는 설마 전쟁이 실제로 일어나겠냐며 안보불감증에 가까운 인식을 보이지만, 다른 나라 사람들이 볼 때 한국은 전쟁의 가능성이 매우 높은 곳이다. 세상에서 가장 비합리적으로 보이는 북한과 대치하고 있으며, 지정학적으로도 미·일·중·러 강대국의 틈바구니 속에 끼어 있기 때문이다. 실제로 지금까지의 역사를 보면 한반도는 자주 그들의 전쟁터이지 않았던가.

문제는 이런 불안정한 상황에 대해 남한 정부가 그 불안을 불식시키지 않고 조장한다는 데에 있다. 전쟁을 막고 평화를 유지하며 국내 치안은 이상 없다고 이야기해야 할 정부가 오히려 나서서 인간어뢰 등을 보유한 것으로 추정된다며 북한의 전지전능함을 과대포장하고, 국내에도 밥솥 폭탄이라도 제조해 체제를 전복시키려 하는 세력들이 수도 없이 많다고 고백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상황에서 백주대낮에 세계 최강국 미국 대사가 피습을 당했다. 이 사건이 개인적 일탈에서 비롯된 피습이면 그나마 다행이건만, 정부여당과 보수언론은 이 사건을 한결같이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고 자체적으로 규정하고, 뚜렷한 증거도 없이 그만큼의 조직력을 갖춘 테러조직이 국내에서 버젓이 활동하고 있음을 세계적으로 홍보했다.

물론 정부야 그 조직이 종북세력이라고 주장하고 있지만 외부에서는 달리 오해할 수도 있다. 어쨌든 현재 세계는 IS 등을 주축으로 반체제적 개인이나 테러집단들이 국제적으로 연대하고 있으며 미국은 그 테러의 주된 대상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김기종씨의 피습을 '조직적인 테러'라고 규정하는 순간 이는 국제적으로 다른 시그널이 될 수도 있는 것이다.

비상식적인 나라, 그 이름은 대한민국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사건이 발생한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엄마부대 봉사단을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동맹 와해하는 종북 테러를 규탄하며 살인미수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 리퍼트 미 대사 입원한 병원에 몰려간 엄마부대 마크 리퍼트 주한 미대사 피습 사건이 발생한 지난 5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신촌세브란스병원 앞에서 엄마부대 봉사단을 비롯한 보수단체 회원들이 기자회견을 열어 한미동맹 와해하는 종북 테러를 규탄하며 살인미수자 처벌을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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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사건은 또한 대한민국이 위험한 곳인 동시에 비상식적이고 이상한 곳임을 인식시켜주는 계기가 되었다. 우선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는 규정부터 생각해 보자. 아무리 범인이 피습 이후 '한미훈련반대' 구호를 외쳤다고는 하나, 이를 무조건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고 앞서 규정짓는 건 비상식적이다.

그 배후에 누가 있는지, 범인이 무슨 생각에서 이런 짓을 행했는지도 모르는 상태에서 한미동맹이라는 우리 사회의 역린을 언급하는 자체가 어불성설이기 때문이다. 오죽하면 미국조차도 '테러'라는 표현을 자제하지 않는가. 그런데 우리가 먼저 나서서 한미동맹에 대한 테러라니, 이는 정권 초 윤창중 전 대변인의 행위를 한미동맹에 대한 추행이라고 표현하는 것과 다름 아니다.

게다가 사건 이후 벌어진 대한민국의 풍경은 외국인들을 더욱 아연실색하게 만들었다. 사람이 다쳐서 누웠는데 그의 쾌유를 빈다며 일부 단체들이 서울 도심에서 "리퍼트 대사님 사랑합니다"를 외치면서 기도회와 발레, 부채춤, 난타 공연 등을 벌인 것이다. 엄마부대와 자유청년연합, 구국채널 등 보수단체들은 연일 같은 주제의 기자회견과 집회를 열었으며, '미안합니다 사랑합니다' 'We Love Mark' 등의 구호를 남발했다. 거기에다 문화적 다양성은 전혀 고려하지 않을 채 리퍼트 대사에게 전해주라며 개고기와 미역국 선물까지.

과연 우리는 몇 년도를 살고 있는 걸까? 아무리 미국이 우리의 혈맹이고 중요한 국가라지만 이렇게까지 하는 것이 옳은 일일까? 미국인들은 그런 우리들을 마냥 고맙다고 할까?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입원 중인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 인도에서 '리퍼트 지못미 석고대죄 단식'을 이틀째 이어 가고 있다
▲ 대통령 제부 신동욱 "리퍼트 So Sorry"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신동욱 공화당 총재가 9일 오후 서울 서대문구 마크 리퍼트 주한 미 대사가 입원 중인 서울 신촌 세브란스 병원 앞 인도에서 '리퍼트 지못미 석고대죄 단식'을 이틀째 이어 가고 있다
ⓒ 이희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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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이런 추행의 화룡점정은 역시 신동욱 공화당 총재의 석고대죄 단식이었다. 석고대죄란 "거적을 깔고 엎드려 벌(罰) 주기를 기다린다는 뜻으로, 죄과(罪過)에 대(對)한 처분(處分)을 기다림"을 의미하는데, 전근대 동아시아에서나 쓰이던 행위를 21세기 대한민국에서 미국을 상대로 벌인 것이다.

게다가 더욱 기가 막힌 것은 석고대죄 단식에 관한 그의 설명이다. 석고대죄는 예로부터 왕실에서만 했다는 것이다. 이는 결국 그가 21세기 대한민국을 민주공화국이 아닌 왕조국가로 인식하고 있다는 뜻이며, 또한 박근혜 대통령의 제부인 스스로를 왕족으로 여기고 있음을 의미한다. 과연 이런 의식 수준으로 그가, 그리고 그와 함께 하는 이들이 북조선인민공화국을 한낱 김씨 왕조로 힐난할 수 있을까?

결국 이번 김기종 사건으로 인해 대한민국은 미국인들을 비롯한 많은 외국인들에게 발가벗겨졌다. 그들은 대한민국의 비상식적인 일들을 계기로 아직 우리 사회가 채 벗지 못한 전근대성을 뼈저리게 느꼈을 것이며, 보수진영이 항상 이야기하는 대한민국의 '국격'을 새삼 느꼈을 것이다. 소위 대한민국의 주류라고 주장하는 그들이 아직도 이 나라가 야만에서 벗어나지 못했음을 여실히 증명한 것이다.

김기종씨 범행과 사드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백주대낮에 벌어진 주한 미국대사에 대한 어처구니없는 피습사건과 미국에게 용서를 비는 질펀한 굿판. 그리고 현재 우리에게 남겨진 건 때 아닌 사드 논쟁이다. 미국과 중국 혹은 러시아 사이에서 가능하면 전략적 모호성을 지키며 오로지 국익을 위해서 논의되어야 할 사드 문제가 이번 사건을 계기로 공론화 되고 수면 위에 드러났다.

더구나 사드 도입을 공공연히 이야기하는 이들의 논리는 그야말로 일차원적이다. 이번 김기종 사건에서도 봤듯이 한미동맹을 해치려는 세력들이 많기에, 미국과 좀 더 굳건한 동맹 관계 유지를 위해서는 사드를 도입해야 한다는 것이다. 도대체 김기종씨의 범행과 사드가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만약 누군가가 중국 대사를 습격했다면 중국의 AIIB에 가입해야 하고, 일본 대사가 습격당하면 일본과 기꺼이 군사협정을 맺어야 하는가?

부디 정부여당이 좀 더 이성적으로 대처하기 바란다. 김기종씨의 범행 일체는 명명백백히 밝히되 그것이 한반도에서 삶을 영위하고 있는 이들의 목숨을 좌지우지하는 일과 연관되지 않기를 바란다. 또다시 고래 싸움에 터지는 새우등이 될 수는 없지 않은가.


태그:#김기종, #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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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와 사회학, 북한학을 전공한 사회학도입니다. 물류와 사회적경제 분야에서 일을 했었고, 2022년 강동구의회 의원이 되었습니다. 일상의 정치, 정치의 일상화를 꿈꾸는 17년차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서, 더 나은 사회를 위하여 제가 선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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