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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은 되돌아보는 즐거움이 가장 편한 즐거움이라는 생각이 들 때가 많다. 특히, 어린 시절 기억들 속에는 그런 것들이 많다. 그런 기억 속에는 또렷한 것도 아스라한 것도 있다. 초등학교 다닐 때, 기억은 더욱 더 그렇다. 어찌된 일인지 기억 속에 가장 열렬한 싸움과 가장 그리운 아픔들이 더 선명하다.
 

어린 시절에 덩치가 좋던 한 친구가 있었다. 그야말로 요즘 표현으로 '짱'을 먹던 친구다. 우리는 한 동네에 살면서 매우 많이 시달렸다. 그러던 어느 날, 그야말로 거국적인 항거를 결심했다. 네 다섯 명이 덤벼도 당해내지 못하던 우리는 강한 결의를 다졌다. 날을 잡아 그놈을 혼내주기로 했었던 것이다.

 

그러나 우리의 결의는 무력했다. 끝끝내 그 결의를 지켜내려던 나는 나중에 무참하게 작살이 났다. 지금 그 무용담이 전설처럼 우리들 사이에서 이야기 되고, 그 자리에 나는 패자가 아닌 승자의 얼굴을 하고 웃고 있다.

 

오랜동안 정처를 모르고 살아오던 나는 그런 초등학교 동창생들과 어울린 지 몇 해 되지 않았다. 더구나 이미 시집, 장가 보낼만큼 아이들이 장성한 친구들과 함께 어울리기에 뭔가 어울리지 않는 때가 있다.

 

그런 생각이 들 때는 조금은 씁쓸하지만, 그래도 후회없는 삶을 바라보며 마음을 달랜다. 관혼상제가 함께 가지 못하는 것이 조금 불편할 뿐이다. 뒤늦게 정신차리고 가정에 책임을 지고 생활전선에 뛰어든 꼴을 한 나는 동창회 총무의 힘을 빌려 관혼상제의 예를 대신한다.

 

부의금, 축의금을 대신 전달하는 것이다. 멀리 오가는 교통비만 해도 축의금, 부의금을 상회하는 일이 부지기수기 때문이다. 다행히 내 친구들은 30년이 지나 만났고, 이제 그런 친구가 시인이 되어 나타났다며 많은 아량으로 이해해 주고 있다. 그래서 불편없이 동창회가 있을 때, 격일근무가 끝난 비번 일에 모임이 있으면 아내와 동석하곤 한다.

 

며칠 전에도 그렇게 함께 했다. 대부분의 친구들은 홀로 동창회에 오건만 우리는 항상 부부동반이다. 외국인 아내라며 더욱 세심하게 배려하는 동창생들이 고맙다.

 

가끔은 농이 넘치는 친구들 사이에서는 "자식들, 이제 제 놈들 시집, 장가간 자식을 보듯이 하려고 건방을 떠는 놈들도 있다." 그래도 흙발로 산천초목을 벗 삼았던 친구들이니 아무런 불편한 마음이 없다.

 

아내는 그런 친구들을 신기하게 바라본다. 그야말로 표정이 읽히는 친구들을 내가 보아도 신기하다. 아내는 외국인이고 한국말이 완벽하지 않아 서툴건만 이상하게도 고향의 벗들에 농의 영역을 넘어선 표정을 샅샅히 읽어내고는 하는 것이다. 그래서 아내와의 외출 그리고 동창회 모임에서 제수씨라 불리는 것이 어색하지도 않고 친구들에게 오빠, 언니해도 어색하지 않은 이런 만남이 내게는 또 다른 참 행복인 것이다.

초등생 동창 녀석들에게서 뒤늦은 우리 부부의 결혼에 2세 걱정하는 소리를 듣고 또 격려의 소리를 들을 때 내 마음은 거침없이 부딪히고 뛰어놀던 그리움의 시절보다 더 깊은 형제의 정을 느끼게 된다. 따뜻한 녀석들이다. 앞으로 3년이라고 못 박았다.

 

내가 한국에서 살며 네팔을 향한 꿈을 꾸는 시간이다. 무계획이 최선의 삶인 것처럼 살아온 세월에도 행복했다. 그러나 지금 아내와의 행복을 위해 하루하루 걸어가는 꿈의 길에 벗들이 있어 또한 행복하다. 동창회 모임을 끝마치고 아릿하게 취기가 도는 걸음에 아내와 마음 다짐을 한다. 우리가 꿈의 길을 향해 네팔로 가기 전 이 고향의 철부지 추억을 공유한 친구들을 다 불러 모아 멋진 파티를 한 번 열어주자고.

 

아내는 요즘 네팔인과 한국인 결혼 가정의 네팔인 여성대표가 된 일로 세계 네팔인협회와 자국에 사람들로부터 연일 축하세례다. 네팔의 한 라디오에서는 한국에 결혼해 살고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를 인터뷰 하자는 제안도 들어왔다고 한다. 행복은 내 발 아래 일상에 충실한 한 걸음, 한 걸음 속에 있다는 믿음의 일상이 또 간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e-수원뉴스에도 게재합니다.


태그:#외국인 아내와 동창회, #초등학교 동창회, #어린 날의 추억, #먼주 구릉, 김형효, #친구들의 2세 걱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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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집"사람의 사막에서" 이후 세권의 시집, 2007년<히말라야,안나푸르나를 걷다>, 네팔어린이동화<무나마단의 하늘>, <길 위의 순례자>출간, 전도서출판 문화발전소대표, 격월간시와혁명발행인, 대자보편집위원 현민족문학작가회의 회원. 홈페이지sisarang.com, nekonews.com운영자, 전우크라이나 예빠토리야한글학교교사, 현재 네팔한국문화센타 운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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