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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팅 피켓을 들고 마중을 나온 TWX 인도 현지여행사 직원. 그는 매우 믿을 만하게 보였다.
 미팅 피켓을 들고 마중을 나온 TWX 인도 현지여행사 직원. 그는 매우 믿을 만하게 보였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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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 여행을 다녀온 사람들은 두 부류로 극명히 갈린다. 죽도록 인도를 좋아하거나, 죽도록 인도를 싫어하거나.

당신은 어느 편에 속하는가? 어쨌든 인도의 무언가에 끌려 인도 땅을 자꾸 밟다 보니 과거 생에 내가 인도에서 살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내 몸매는 인도인처럼 깡마르고, 피부색도 까무잡잡하다. 그리고 인도 음식인 카레와 짜이도 내 입맛에 점점 당겨지고 있으니 말이다. 바람의 신 바유가 나를 자꾸 인도로 날아가게 만드는 것일까? 나를 인도로 태워다준 비행기는 어쩌면 바람의 신 바유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인도 여행도 나이가 들면서 점점 더 힘들게 느껴진다. 그래서 나는 이번 인도 여행은 기차표 예약과 공항 픽업 서비스 등을 인도 TWX여행사를 통해 미리 준비했다. 홀로 여행을 가거나 아내와 둘이서 갔다면 당연히 항공권만 끊고 그냥 갔겠지만, 네 사람이나 되니 나이도 나이지만 기차표를 사는 것, 호텔 예약, 호텔로 가기 위해 호객꾼들과 우왕좌왕하며 실랑이를 벌여야 하는 문제들... 이런 것들이 귀찮았다. 또 시간도 많이 소비할 가능성이 많았다.

공항 픽업 서비스를 신청했더니 TWX 인도 현지 여행사 직원이 내 이름이 적힌 피켓을 들고 나왔다. 공항 픽업 서비스라고 해서 그냥 운전사만 보낸 줄 알았더니 운전사는 따로 있고, TWX 여행사 직원이 마중을 나와 있었다. 그동안 여러 번 인도를 여행을 했지만 처음 경험해보는 친절이다.

"안녕하세요? 델리에 오신 것을 환영합니다. 저는 TWX 여행사 직원 싱입니다."
"반가워요. 이렇게 픽업 나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피곤하시지요? 일단 제가 호텔로 모셔다 드리고, 내일 자이푸르로 떠날 기차표를 전달해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시바신을 모신 델리의 동네 힌두사원
 시바신을 모신 델리의 동네 힌두사원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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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말은 믿어도 될 것 같았다. 엉뚱한 곳으로 데리고 가거나 택시 요금을 더 달라고 하지는 않을 것 같아 믿음이 갔다. 하기야 예약을 했으니까. 그래도 인도 여행IT기업 인디아패스의 허훈 차장은 운전사에게 매너 팁을 100루피 정도 주는 것이 예의라고 했다. 줘도 되고, 안 줘도 되는데, 짐을 실어주고, 내려주고, 기다려주는 수고비 정도로 네 사람이 합해서 100루피 정도 주는 것은 많이 주는 것이 아니라고 했다. 100루피면 우리나라 돈으로 1700원 정도 인데 인도에서는 큰 돈이다. 그런데 넷이 나누면 25루피로 400원 꼴이다.

인상이 아주 좋아 보이는 그는 우리를 차에 태우고 올드 델리역 부근에 있는 베다스 헤리티지란 호텔(Vedas Heritage Hotel)로 데리고 갔다. 나는 재무 담당 H박사에게 매너 팁으로 운전사에게 100루피를 지불하도록 부탁했다. 매너 팁이기 보다는 무거운 짐을 실어주고 내려주는 것에 대한 보답이다. 

TWX는 인도 최대 여행사 중 하나로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우연히 발견한 인도 현지 여행사다. 한국에 있는 여행IT기업 (주)알플레이가 TWX와 제휴해 2013년부터 인디아패스를 창업해 인도 기차표를 판매하고 있었다. 인도 기차 여행을 몇 번 해본 경험이 있는 나는 현지에서 기차표를 예약해 구입하는 것이 얼마나 어려운 줄 잘 알고 있다.

델리 거리를 활보하는 인도의 소
 델리 거리를 활보하는 인도의 소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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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런데 마침 인디아패스에서 기차표 구입, 픽업 서비스, 호텔 예약까지 해주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여행 전체 구간을 예약할 수도 있고, 3일에서 일주일 전에 온라인으로 예약을 하면 이 모든 것을 온라인으로 대행해주고 있다. 예를 들어서 델리 공항에서 뉴델리나 올드델리 시내에 있는 호텔까지 픽업서비스 비용은 2만 9000원 정도 한다. 이렇게 필요한 부분만 예약할 수 있다.

나는 여행의 일부 기차 구간과 픽업서비스, 호텔을 인디아패스를 통해서 예약하고 네팔을 거쳐서 인도에 도착했다. 한국을 출발하기 전 나는 인디아패스의 허훈 차장으로부터 일정과 예약호텔 이름이 상세히 적힌 바우처를 받았다.

홀로 배낭 여행을 한다면야 큰 문제가 없겠지만 칠순을 전후한 세 여인을 모시고 하는 배낭여행이라 여러 가지 문제가 수반돼 심사숙고 끝에 결국 이 방법을 선택하기로 했다. 싱은 내일 자이푸르로 타고 갈 기차표를 내밀며 자세하게 설명을 덧붙였다.

"여기 자이푸르 행 기차표입니다. 그런데 두 분은 2A좌석이고요, 다른 두 분은 3A좌석입니다. 인도 기차 예약이 워낙 빡빡해서 같은 칸에 준비를 하지 못해 미안합니다. 내일 다시 픽업을 하러 와서 제가 좌석을 직접 안내해 드리겠습니다."
"그럼 열차 칸이 달라서 왔다 갔다 하지도 못하겠네요?"

"네, 그렇습니다. 기차는 델리 역에서 오후 1시 30분에 출발합니다."
"이를 어쩌나? 그럼 우린 내일 찰라님과 이산가족이 되네요? 큰일 났네. 자이푸르 역을 지나치지 말고 잘 내려야 할 텐데 걱정이 앞서네요."
"미안하게 됐습니다. 그럼 내일 뵙겠습니다."

싱은 미안한 표정을 지으며 호텔을 나갔다. 우리는 호텔에 짐을 푼 후 저녁 식사를 하기로 했다. 음식을 책임지고 있는 아내가 다소 지친 표정으로 말했다. 

"오늘 저녁 식사는 라면으로 준비하겠습니다. 두 분은 짐을 풀고 곧 우리 방으로 오세요."
"넵. 라면 먹을 생각을 하니 벌써 침이 흐르네요."

호텔 식당에 전화해서 라면을 끓일 뜨거운 물을 부탁하자 웨이터가 곧 포트에 뜨거운 물을 담아왔다. 아내는 라면 네 봉지를 꺼내 뜨거운 물을 부었다. 두 분이 곧 우리 방으로 들어왔다. 사실 나도 라면이 먹고 싶었다. 네팔에서 3일 동안 지내는 동안 네팔 음식만 먹었으니 매콤한 수프에 지글지글 끓인 라면 국물은 여행 중에 먹는 별미 중 별미다.

여행 경비를 절약하려면 금전 출납부를 써라

"라면이 끓는 동안 인도 돈을 재무 장관님께 넘겨 드릴 게요. 여기 2만 2700루피와 금전 출납부를 드리오니 돈 계산 잘 하세요."

나는 공항에서 환전을 했던 2만 2700루피를 회계를 담당하는 H박사에게 넘겨주었다. 핸드북처럼 생긴 금전 출납부를 보더니 H박사는 눈을 크게 뜨고 웃었다.

"아이고, 웬 금전 출납부까지. 호호, 이렇게 돈다발을 듬뿍 주시니 나는 인도에 와서 부자 되어부렀네요. 그럼 이제부터 재무 장관의 말을 잘 들어야 합니다. 돈줄은 내가 쥐고 있으니."
"금전 출납부는 장기 여행을 할 때 아주 요긴해요. 돈 씀씀이도 절약이 되고, 잔고가 얼마나 남았는지 알 수 있고, 또 귀국해서 여행기를 쓸 때에도 여행 현장을 생생히 기억하게 해주지요."

"호호. 그렇군요. 그런데 이렇게 많은 돈 다발을 어떻게 나 혼자 다 보관하지요?"
"그거야 다 방법이 있지요. 우선 네 사람에게 인도 현지에서 쓸 돈으로 1000루피씩 나눠 드리세요. 그리고 1만 루피는 제게 주세요. 돈은 나눠 보관해야 위험 부담이 적어지는 법이니까. 그리고 나머지를 가지고 오늘 저녁부터 공금으로 사용하시면 됩니다."
"그거 참 간단하네요. 이번 여행에서 많을 걸 배우네요. 자 여기 1000루피씩 나눠 드릴 테니 잘들 세어 보세요."

소형 금전출납부. 금전출납부에 여행 경비를 적어두면 여행경비가 얼마나 남아있나를 쉽게 알 수 있고, 여행경비도 절약을 하게 된다. 또 나중에 여행기를 쓸때 좋은 자료가 된다.
 소형 금전출납부. 금전출납부에 여행 경비를 적어두면 여행경비가 얼마나 남아있나를 쉽게 알 수 있고, 여행경비도 절약을 하게 된다. 또 나중에 여행기를 쓸때 좋은 자료가 된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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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박사는 100루피짜리 돈다발을 두 번씩 세보고 2만 2700루피를 확인한 다음 네 사람에게 1000루피씩 나눠 주었다. 그리고 1만 루피를 내게 넘겨주었다.

"하하, H박사님, 인도에서 루피로 세뱃돈 받는 기분이 드는 군요. 다시 말하지만 돈은 분산을 해서 여러 곳에 보관을 하는 것이 위험을 줄일 수 있어요. 그러니 각자 알아서 당장 쓸 돈 100루피 정도는 가벼운 주머니에 넣고 나머지는 전대에 넣어 두세요. 인도 사람들에게 돈다발 꺼내서 보여 주는 것은 절대 금물이거든요. 알겠지요?"
"호호 대장님, 분부 잘 받들겠습니다."

인도 루피를 받은 네 사람은 부자가 된 듯 각자 돈을 챙겨서 넣었다.

"자, 라면이 다 끓었군요. 오늘 저녁은 라면 특식입니다."

음식을 담당하는 아내가 뜨거운 물에 끓인 라면을 건넸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라면이 먹음직스럽게 바닥에 놓여졌다. 구수하고 매콤한 라면 국물 냄새가 식욕을 돋우었다.

"와아, 맛있겠다!"

후루륵 후루륵~ 네 사람은 말없이 면발을 빨아들이며 맛있게 먹었다. 외국에서 한국 라면을 먹는 것은 그야말로 특식 중 특식이다. 우리는 국물까지 남기지 않고 다 마셨다. 라면 국물을 마시고 나니 트림이 끅 하고 나왔다. 라면을 먹고 나니 긴장이 완화되고 세상 부러울 것이 하나도 없는 것처럼 마음이 태평해졌다. 배낭 여행에서나 만끽할 수 있는 여유다. 일정에 쫓기지 않고, 내 맘대로 행동하고.

"여보, 인도 돈을 받았으니 이제 혈당 측정기를 사러 가야지요?"
"흠~ 그렇군요. 그럼 두 분은 호텔에서 쉬세요. 난 이 근처 약국에 나가서 혈당 측정기와 측정 검사지를 사올 테니."
"델리 도착 기념으로 맥주도 한 잔 해야 하지 않겠어요, 목도 컬컬하니."
"하하, 그거 좋은 생각입니다. 그럼 맥주도 두어 병 사오지요."

인도 맥주 킹피셔를 한잔 마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J선생님이 목이 컬컬한지 맥주 이야기를 꺼내면서 돈 지갑을 꺼냈다. 그리고 분배를 받은 인도 루피를 지갑에서 꺼내 다시 세보더니 고개를 들며 말했다.

100루피가 어디로 사라졌지?

100루피를 찾기 위해 인도 루피를 다시 세어 보고 있다.
 100루피를 찾기 위해 인도 루피를 다시 세어 보고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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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 인도 루피가 900루피밖에 안 되네요."
"그럴 리가?"
"자, 여기 봐요. 100루피짜리로 아홉 장이에요."
"정말요? 이리 줘 보세요. 각하님은 열 장 맞나요?"

"어디 세 볼까요? 어? 나도 아홉 장밖에 안 되네?"
"그럴 리가? 찰라님은 어떤가요?"
"나요? 어디보자, 난 열장 맞는데요?"
"그럼 찰라님이 보관한 1만 루피와 내가 보관하고 있는 돈을 다시 세보지요. 뭔가 잘못된 것 같네요."

맥주값을 내려다가 우리는 갑자기 돈을 지갑에서 꺼내 세보기 시작했다. 그 모습이 암시장에 거래되는 환전소를 방불케 해서 나는 그만 피식 웃고 말았다. 내가 보관하고 있는 돈은 100루피짜리 100장으로 1만 루피가 딱 맞았다. 그리고 H박사가 보관하고 있는 돈도 세어보니 8700루피다. 총 2만 2700루피에서 네 사람에게 분배한 4000루피와 내가 보관하고 있는 10루피를 빼면 딱 맞다.

"이거 귀신이 곡할 노릇이네요. 분배하기 전에 분명히 2만 2700루피였고, 4000루피와 1만 루피를 빼면 8700루피 계산이 딱 맞는데... 200루피가 어디로 증발해 버렸지요?"
"J선생님 혹시 100루피를 다른 주머니에 넣어 둔 거 아닙니까?"

내가 J선생님을 바라보며 한마디했다.

"에이 그럴 리 있나요?"
"그래도 모르니 지금 입고 계시는 옷의 모든 주머니를 뒤져 보세요. 아까 내가 말한 대로 분산해서 넣어 둘 수도 있으니까."

내 말을 듣고 아내와 J선생님은 마지못해 주머니를 뒤지기 시작했다.

"어? 100루피가 정말 여기 주머니에 있네요."
"당신은?"
"나도 여기 왼쪽 주머니에 있네요."
"하하, 그러니까 내 말을 너무 잘 들어서 쓸 돈을 분산해서 넣어두고 그걸 두 분이 잊었군요. 자 두 분 모두 H박사님께 빨랑 사죄하세요?"
"아니 어찌 이런 일이... 앞으로 정신 바짝 차리세요. 일단 의심이 풀려서 좋군요."

H박사가 안도의 숨을 쉬며 말했다. 사실 짧은 시간이지만 100루피가 사라진 것에 대해 각자 여러 의심과 의문이 꼬리를 물고 지나갔을 것이다.

"하하, H박사님도 내 나이 되어 보세요. 손에 쥔 물건도 찾아다니기 십상이랍니다. 미안해요."
"나도 미안해요. 대신 내일 100루피로 H박사님께 선물하나 사드리지요. 호호."

못말리는 건망증 세대... 앞으로 여행이 캄캄하네

나이를 먹으면 이처럼 건망증이 심해진다. 네 사람의 나이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J선생님은 칠순을 이미 넘겼고, 아내와 나는 60대 후반, 그리고 H박사는 60대 초반이다. 건망증이 점점 많아질 나이다. 세 여인도 문제지만 나 역시 만만치 않은 건망증을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덜렁대기로 유명한 나는 내가 우산이랑 물건을 잘 잃어버려 어머님으로부터 "넌 차고 다니는 불알도 떼어 놓고 올까 봐 걱정이 되는구나"라는 말씀을 자주 들었다. 그런 내가 건망증이 심한 세 여인들과 과연 인도 배낭 여행을 잘 견뎌낼까? 심히 걱정된다.

거기에다 아내는 네팔에서 혈당 측정기와 혈당을 측정하는 검사지를 몽땅 분실하는 사고를 저질렀다. 아내는 하루에 네 번이나 인슐린 주사를 맞아야 하는데, 그 때마다 혈당을 측정해 그 수치에 적합한 인슐린을 투여하므로 당장 혈당 측정기를 사야 한다.

순간 나는 10여 년 전 아내와 단 둘이서 남미 여행을 하다가 페루 리마에서 아내의 약이 든 배낭을 몽땅 도둑을 맞고, 볼리비아 라파스에서는 택시 강도를 만나 수중에 있는 현금을 몽땅 털렸던 악몽이 되살아났다. 그 당시 우리는 여행 중에 최대 고비를 맞이했다. 나는 머리를 좌우로 세차게 흔들어댔다. 신이여, 나와 이 세 여인을 지켜주소서. 배낭 여행은 너무 긴장을 해서도 아니 되지만 방심은 금물이다.

"자, 그럼 100루피도 찾았으니... 난 각하랑 함께 나가서 혈당 측정기와 맥주를 사올 테니 두 분은 잠시만 기다리고 계세요."
"네, 얼른 다녀오세요. 맥주 사오 는 것 잊지 말고요."

혈당측정기를 샀던 델리 샨타약국. 구멍가게처럼 물간이 산재해 있다.
 혈당측정기를 샀던 델리 샨타약국. 구멍가게처럼 물간이 산재해 있다.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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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호텔 프런트 직원에게 약국 위치를 물어보고 아내와 함께 약국을 찾아 나섰다. 밤의 여신 라트리가 이미 어둠의 장막을 거리에 덮어씌우고 있었다. 아내와 나는 손을 잡고 다소 어두운 거리를 걸어갔다. 전기 사정이 좋지 않은 인도의 밤거리는 아주 번화가를 제외하고는 어둑어둑하다.

우리가 묵고 있는 호텔은 라젠든라플레이스 메트로역 부근이다. 메트로역 부근이라 사람들이 북적거렸다. 우리는 가게를 기웃거리다가 찬나 마켓 거리에서 샨타 약국을 발견했다. 약국이라고 해봐야 꼭 구멍 가게처럼 생긴 약국이다.

흰 가운을 입은 약사는 없다. 마치 재래 시장에서 장사하듯 청바지를 입은 젊은 남자가 높은 시렁에서 혈당 측정기를 꺼내며 생색내듯 말했다.

델리 약국에서 산 독일제 혈당측정기 <ACCU-CHEK>
 델리 약국에서 산 독일제 혈당측정기 <ACCU-CHEK>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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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제 측정기에요. 성능이 아주 좋아요."
"얼마지요?"
"혈당기가 1100루피고요. 검사지가 1480루피입니다. 어디보자 합해서 2,580루피입니다. 손님에게만 특별한 가격입니다."
"우리 한국에서는 검사지를 사면 혈당측정기는 공짜인데 좀 깎아주세요."
"이건 더 이상 깎을 수 있는 물건이 아닙니다."

그 놈의 '스페셜 프라이스'는 인도 어디에서나 들어보는 소리다. 나는 80루피를 겨우 깎아서 2500루피를 주고 'ACCU-CHEK'라는 혈당측정기와 검사지를 샀다. 인도에서는 뭐든지 흥정을 해야 한다.

"이건 사용하기도 엄청 불편하네요. 바늘이 잘 안 나와요."
"여보, 여긴 인도 아니요? 그러니 살살 달래서 써 봐요."

약국 직원이 시범을 보여줄 때는 잘 됐는데, 아내가 작동을 해보더니 잘 안 된다고 푸념했다. 약국 직원에게 다시 한 번 시범을 보여 달라고 했더니 그는 친절하고 자세하게 작동하는 방법을 일러줬다. 

"여보, 이제부턴 정신 바짝 차려야 해요. 약을 넣어둔 가방도 잘 보관하고요. 만약 약을 잃어버리면 심각한 문제가 발생하지 않겠소?"
"알겠어요. 조심할게요."

맥주는 사지 못했다. 인도에서는 맥주를 아무 가게에서나 팔지 않는다. 허가를 받은 주류 판매소에서만 술을 판다. 목이 컬컬해 킹피셔 인도 맥주 한 잔이 간절했지만 맥주 대신 찬물이라도 벌컥벌컥 마실 수밖에...  호텔로 돌아온 우리는 맥주를 사오지 못한 사정을 두 분에게 말하고 그냥 자기로 했다.

"모두 오늘 하루도 무사히 잠들게 해 주신 밤의 여신 라르티님께 기도하시고 잠자리에 드세요."
"인도의 밤의 신에게?"
"네, 인도에 오면 인도의 신이게 기도를 해야 직방으로 듣지요. 하하."

하루가 길다. 나는 잠을 자기 전에 날씬한 침대에 앉아 잠시 가부좌를 틀고 정신을 가다듬었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무사하게 잠들 수 있게 해준 밤의 여신 라트리님께 감사기도를 올렸다. 인도에 왔으니 인도의 신에게 감사기도를 올려야지. 내일은 새벽의 여신 우샤스가 우리를 깨워 주시겠지...

베다스헤리티지 호텔의 날씬한 침대
 베다스헤리티지 호텔의 날씬한 침대
ⓒ 최오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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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100루피, #인도여행, #델리 여행, #인디아 패스, #TW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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