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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 노래부르는 사람에게 집중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직장상사나 거래처 바이어가 노래를 부른다면 쳐다보기라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이크잡고 홀로 취해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노래부르라 시키고 딴청피우는 문화 어떻게 봐야 할까?
▲ 노래방 풍경 사진 속의 사람들은 모두 노래부르는 사람에게 집중을 하고 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않다. 직장상사나 거래처 바이어가 노래를 부른다면 쳐다보기라도 하겠지만 그렇지 않다면 마이크잡고 홀로 취해 있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노래부르라 시키고 딴청피우는 문화 어떻게 봐야 할까?
ⓒ 출처 : SBS 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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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의 10여 년 전에 있었던 일이다. 친구들, 선후배들이 모여 식사 자리가 한참 무르익어가고 있을 때였다. 누군가 말했다.

"야들아! 노래방 가자."
"아, 싫어 싫어."

"왜? 이럴 때 노래방 안 가면 언제 가냐? 가서 신나게 불러 보자고."
"에이, 그런데 가면 노래 부르는 사람만 부르고 앉아있는 애들은 자기들끼리 얘기만 하잖아. 난 싫어!"

하긴 그런 면도 있다. 신나게 놀며 스트레스를 해소하기 위해 노래방에 가는 사람도 있지만, 다른 사람들의 강요에 어쩔 수 없이 참석하는 사람도 있다. 뿐인가! 노래 부르기를 좋아하는 사람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도 있다. 이렇게 취향이 다른 사람들끼리 노래방에 갔을 때 나타나는 현상을 자세히 보면 재미난 부분이 있다.

나름대로 유형을 정리해봤다.

▲ 자기가 부를 노래를 대여섯 곡 정도 예약을 해놓고 기다리다 마이크를 잡으면 누가 보든 안 보든 혼신의 힘을 다해 열정적으로 부르는 사람! ▲ 노래 부르는 것을 좋아하나 선뜻 나서지 않는 사람. 이 사람은 다른 사람이 자기를 부추겨야 노래를 부른다. ▲ 자신은 노래를 부르지 않고 한 사람씩 골라가며 노래를 시키는 사람. 만약에 직장에서 이런 상사가 있다면 부하직원들은 몰래 도망가지도 못하고 시계만 쳐다 볼 것이다. ▲ 노래보다는 분위기에 취해 춤만 춘다거나 아니면 술잔만 기울이는 사람.

이 네 가지의 유형이 다는 아니지만 유형마다 공통적으로 볼 수 있는 현상은 딱 하나 있다. 정작 남들 노래 부를 때 듣지 않는다는 것이다. 옆 사람과 얘기하거나 술 마시거나 노래책을 열심히 넘기는 사람들……. 노래로 관심을 받고 싶은 사람이 마이크를 잡고 있다면 굉장히 상처받을 장면이다. 그러나 이런 모습은 거의 모든 노래방에서 볼 수 있는 풍경이 아닐까?

한국인의 '의례적인 행위들'

한국에 살고 있는 어느 프랑스인은 바로 그런 점이 자기로서는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한국인의 행동 중 하나라고 했다. 우리는 그러려니 하고 익숙해 있지만, 외국인의 눈엔 기이하게 보인 것이다. 한국인들은 도대체 왜 그러는 것일까? ……. 이것은 이미 앞서 살펴보았듯이 한국인의 특유한 '의례성' 때문이다. (28쪽)

이 프랑스인의 이야기를 소개한 최상진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이 현상을 학문적 차원을 떠나 상식적 일상 대화의 맥락에서 조명해보면, 부하직원들은 '의례적'으로 노래를 시켰고 상사 자신도 이를 '의례적' 요청으로 받아들였고 '의례적'으로 노래를 불렀다고 볼 수 있다. ​(29쪽)

물론 이 대상은 직장 회식에서의 경우에만 해당되는 얘기는 아니다. 필자의 경우처럼 사회에서 만난 모임이나 학교 친구들과도 동일한 현상을 보인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의례적'이라는 것은 문자 그대로 '의식과 예절을 갖춘' 것을 뜻하는 말로 진정한 의미에서의 '의례'는 아니다. 단지 '의례'의 형식만을 빌려온 것이다.

우리는 흔히 인사말로 '식사하셨습니까?'라는 말을 많이 사용한다. 이는 진짜 식사 했느냐를 물어본다기보다 의례적으로 말을 건네기 위해 혹은 인사치레로 던지는 말일 뿐이다. 밥을 먹지 않았어도 "예"라고 대답하는 것이 보통이다.

이뿐 아니라 우리는 사람들과 헤어질 때 흔히 '언제 한번 만납시다', '나중에 밥 한번 먹죠.' 라는 말을 사용한다. 이 말 역시 실제로 언제 만나자 또는 일정한 날짜에 만나서 식사를 하자라는 뜻보다는 헤어질 때의 인사법이다. 정말 언제 만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단지 헤어질 때 '의례적'으로 사용하는 말이다.

결혼식 피로연서 신랑 발바닥 때리는 것 역시...

결혼식 피로연에서 신랑 발바닥을 때리는 것이 바로 그 경우인데, 데리고 가는 자, 차지해 버리는 자 그리고 장차 고난을 가할 처지에 있는 자 - 대체로 이런 이름으로 불릴 수 있는 것이 신랑과 신랑 측인 데 비해서 이득과 정반대 징표가 붙을 수 있는 것이 바로 신부 측이다. 서로 반대되는 징표가 붙는 마음을 지닌 두 가족 사이에 갈등이 빚어질 것은 뻔하다. 따라서 혼례에는 이 갈등을 해소하는 장치가 필요해질 것이다. 그것이 곧 신부 측에 신랑에게로 가하는 '의례적 모독'과 '의례적 가해'로 나타난다. (29쪽)

<세계문화의 겉과 속> 표지.
 <세계문화의 겉과 속> 표지.
ⓒ 인물과 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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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의 발바닥을 자극하면 용천혈에 뜸을 하는 효과가 있어 성기능을 활성화시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러고 보면 결혼식 전날 신랑의 발바닥을 때리는 관습은, 결혼 후 아이들을 많이 낳으라는 차원에서 유래되었다고 볼 수 있다. 더불어 이 현상은 한국인의 '의례성'으로도 설명이 가능하다.

결혼 이후 벌어질 수 있는 신부 측의 '손해'를 '의례'의 힘을 빌려 노골적으로 장난 혹은 가해를 한다. 어떻게 보면 애지중지 키운 딸을 떠나보내는 부모의 마음이 표현된 것일 수도 있고, 함께 자란 신부에게 가족과 동네 친구들이 해줄 수 있는 마지막 위로일 수도 있다.

중국으로 눈을 돌려보면 삼국지연의에서 유비의 제갈량에 대한 삼고초려가 좋은 예이다. 중국 사람들은 선거를 한다고 할 때 주위에서 아무리 추천을 해도 계속 사양하는 '의례성'이 있다. 그러나 그가 사양한다고 해서 정말 그를 추천하지 않는다면 평생 내게 원한을 품을 수도 있다.

서구인들은 '나를 뽑아 주십시오'라고 적극적으로 자신을 드러내며 타인을 설득하는 것이 일상적이지만, 중국을 비롯한 고맥락사회(대한민국, 일본 등)에서는 의례적으로 한두 번의 사양은 미덕으로 여기는 사회이기에 이러한 관행이 통용될 수 있는 것이다.

'의례성'을 어떻게 보아야 할까?

그렇다면 '의례성'이란 것은 나쁜 것인가? 나쁘다고 정의한다면 중국이나 대한민국이나 일본이나 수천 년을 살아오며 나타난 문화적 관례가 부정적인 것이라는 꼬리표를 달 수밖에 없다. 그러나 이 '의례성'을 남을 배려하고 상대의 심정을 이해하려는 마음이 묻어나 있는 것이라고 본다면 오히려 내 본 마음은 그렇지 않더라도 상대방을 위해서 하는 행동이라고 여길 수도 있다.

지난번에 언급했던 고맥락사회와 저맥락사회에 이러한 내용이 서술되어 있다(관련 기사 : 한국인의 일처리, 정말 시원시원할까?). 서구인의 입장에서는 고맥락사회의 '의례성'이라는 것이 겉과 속이 다른 표리부동한 사람이나 거짓말을 일삼는 사람으로 보일 것이다. 그리고 그런 행동은 자신의 정체성이나 언행의 일관성과 어긋나기 때문에 심각하게 다가올 수도 있다.

그러나 이것은 좋다 나쁘다 정의할 수 없을 것이다. 동양과 서양, 고맥락사회와 저맥락사회는 나름대로 기나긴 역사를 이어오며 그 사회의 고유한 행동양식이 나타났고, 타인과의 관계를 유연하게 하거나 친밀도를 높이는 방식이 발달했기 때문이다.

21세기는 문화 충격이 변증법적 토대 위에서 다양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인정하고 이해 가능한 맥락을 지닌 소통법을 만들어가고 있다. 이제는 신랑 발바닥도 적당히 때리며 신랑 신부 측이 서로 동등한 위치에서 결혼생활을 할 수 있다.

본인이 선거에 나갈 생각이 있다면 제갈량처럼 세 번이 아닌 한두 번의 추천으로도 세상에 그 모습을 드러낼 수 있다. 더불어 노래방에서 타인에게 마이크를 양보하는 미덕도 중요하지만 다른 사람이 노래 부를 때 딴짓하지 않고 잘 들어준다면 좀 더 나은 소통법이 되지 않을까.


세계 문화의 겉과 속 - 모든 문화에는 심리적 상흔과 이데올로기가 숨어 있다

강준만 지음, 인물과사상사(2012)


태그:#고맥락사회, #저맥락사회, #신랑 발바닥 때리기, #노래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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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음악, 종교학 쪽에 관심이 많은 그저그런 사람입니다. '인간은 악한 모습 그대로 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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