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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성의 성염색체 이상으로 인한 불임은 혼인취소의 사유가 될 수 없다는 대법원의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는 지난달 26일 남편 A씨가 성기능 장애사실을 알면서 이를 숨기고 결혼했다며 혼인을 취소해달라는 아내 B씨의 청구를 받아들인 부산고등법원의 원심을 파기 환송했다고 3일 밝혔다.

지난 2011년 전문직 종사자끼리 중매로 결혼한 남편 A씨와 아내 B씨는 결혼 뒤 10개월 여 동안 제대로 된 성관계를 하지 못했다. 한달에 2~3회 정도의 성관계도 유사성행위로 대신하면서 부부 간 불화가 시작됐다.

이후 남편 A씨는 불임검사를 받았는데, 무정자증이 있고 성염색체에 선천적 이상이 있다는 진단을 받았다. 이후 염색체검사, 고환조직검사 등을 통해 A씨가 모자이시즘이라는 염색체 질환이 있어 성기능이 저하돼 불임이 유발될 수 있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아내 B씨는 남편이 의사였기에 자신의 신체적인 결함을 잘 알면서도 결혼했다고 생각했고 이는 불화로 이어졌다. 결혼 1년이 다 돼가는 시점에서 부부는 성기능 문제로 말다툼을 하다 남편이 아내의 목을 조르는 등 폭력을 행사하기도 했다.

그로부터 반년 뒤 별거를 시작한 부부는 서로 소송을 제기했다. 아내 B씨는 ▲ 혼인의 취소 ▲ 남편이 아내에게 위자료로 1억 원 지급 ▲ 재산분할로 1억3800여만 원 지급 ▲ 혼인시 이전한 자동차 소유권 이전 및 혼인 지참금 5000만 원 환불을 청구했다. 남편 A씨는 ▲ 이혼 ▲ 아내가 남편에 위자료 3000만 원 지급 ▲ 재산분할로 1억500만 원 지급을 청구했다.

1심을 맡은 창원지방법원은 아내의 혼인취소 청구를 기각했다. 1심은 부부는 이혼하고 남편은 아내에게 위자료로 5000만 원을 지급할 것과 혼인시 이전한 자동차 소유권을 돌려주라고 판결했다.

항소심은 위자료와 자동차 소유권 부분은 1심 그대로 유지하면서 혼인을 취소한다고 판결했다. 부산고등법원은 A씨가 자신의 성기능 장애를 알면서도 숨기고 결혼했다고 보기는 어렵다고 판단했다. 그러나 "혼인 당시부터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가 있었음에도 원고(아내)가 이를 알지 못한 채 혼인신고에 이르렀다고 할 것이고, 이는 민법상 혼인취소 사유에 해당한다"고 판결했다.

"혼인의 본질은 인격적 결합, 임신가능여부는 중대 사유 아냐"

그러나 대법원의 판단은 2심과 달랐다. 대법원은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중대한 사유'는 엄격히 해석해 그 인정에 신중을 기해야 할 것"이라고 전제했다.

대법원은 남편 A씨가 불임검사 과정에서 발기·사정 등 성기능이 문제되지 않았던 점 등을 들어 "부부생활에 피고의 성기능 장애는 크게 문제되지 않았다고 볼 여지가 많다"고 판단했다.

대법원은 또 남편의 수면 발기검사 등 신체감정에서 정상 결과가 나온 상황 등을 들어 "약물치료, 전문가의 도움 등으로 개선이 가능하다고 할 것"이라며 "민법이 정한 부부생활을 지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결했다.

대법원은 "혼인은 남녀가 일생의 공동생활을 목적으로 하여 도덕 및 풍속상 정당시되는 결합을 이루는 법률상, 사회생활상 중요한 의미를 가지는 신분상의 계약으로서 그 본질은 양성간의 애정과 신뢰에 바탕을 둔 인격적 결합에 있다"며 "특별한 사정이 없는 한 임신가능 여부는 민법의 부부생활을 계속할 수 없는 악질 기타 중대한 사유에 해당한다고 볼 수 없다"고 판시했다.


태그:#혼인취소, #대법원, #무정자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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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상근기자. 평화를 만들어 갑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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