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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과 유럽은 세계를 지배하고, 아시아, 아프리카, 오스트레일리아 대륙은 그들에게 침탈당하거나 식민지가 되었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생긴 것일까요? <총, 균, 쇠>는 바로 이 질문에 답하기 위한 연구서입니다.

<총, 균, 쇠>라는 제목도 낯설고 연구 범위도 방대하지만, 700여 쪽이나 되는 두께만으로도 녹록하지 않은 책입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는 거시적 관점에서 과학적으로 인류 역사를 다룬 책입니다. 이 책은 다음과 같은 여러 가지 질문에 답하는 연구 결과를 담았습니다.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 겉 표지
 재레드 다이아몬드가 쓴 <총 균 쇠> 겉 표지
ⓒ 이윤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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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각 대륙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시기가 달랐던 것은 인류사에 어떤 영향을 주었을까?
▲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은 무엇인가?
▲ 왜 식량 생산은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에서 시작되었을까?
▲ 식량 생산이 어떻게 인류의 운명을 갈라놓았을까?
▲ 아프리카는 왜 유라시아에 뒤처졌을까?
▲ 식량 생산과 문자사용은 어떻게 관련되어 있을까?
▲ 대륙 간 불균형은 어떻게 이루어졌는가?
▲ 남북아메리카는 왜 유라시아에 뒤처졌을까?

예컨대 오늘날 인류 문명이 가진 불평등의 기원, 제국주의의 기원을 밝혀내는 연구를 담은 책입니다. 저자는 이런 질문에 대하여 연구하게 된 계기가, 25년 전 뉴기니의 해변에서 만난 얄리(원주민 지도자)와의 대화에서부터 비롯되었다고 프롤로그에서 밝힙니다. 저자와 얄리의 긴 대화 중, 바로 다음과 같은 질문이 이 책에 담긴 연구로 이어졌습다.

"그는 자기 민족의 조상들이 과거 수만 년 동안 어떤 경로를 통하여 뉴기니에 도착했으며, 또 유럽의 백인들은 어떻게 지난 200년 사이에 뉴기니를 식민지로 만들 수 있었느냐고 질문했다." - 본문 중에서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문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한 겁니까?" - 본문 중에서

저자는 지난 25년 동안 인류의 진화, 역사, 언어, 지리 등 여러 측면에 대해 연구하고 집필했습니다. 이 과정을 통해 질문에 대한 답을 탐구해 왔고, 마침내 <총, 균, 쇠>라고 하는 책으로 답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그의 대답을 요약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만약 홍적세 말기에 오스트레일리아와 유라시아의 사람들을 서로 바꾸어놓았다면, 지금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이었던 사람들이 유라시아는 물론이고 남북아메리카와 오스트레일리아까지 차지했을 것이며 원래 유라시아 원주민이었던 사람들은 마구 유린당하며 오스트레일리아 곳곳에 간신히 잔존하는 신세로 전락했을 것이다." - 본문 중에서

다시 말하자면, 인종 간의 차이나 진화적인 차이가 아니라 단순히 지역적인 차이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유라시아 사람들이 세계를 지배하게 된 것은 그들이 그곳에 살았기 때문이며, 오늘날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들이 겨우 수렵·채집을 벗어난 삶을 사는 것도 그곳에서 살았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지리적 조건이 인류역사에 미친 영향

이 같은 저자의 결론만 들으면 좀 시시하게 여겨질지도 모릅니다. 하지만 저자는 이러한 주장의 근거를 회고적 실험을 통하여 설득력 있게 제시합니다. 저자는 오늘날 불평등과 지배-피지배의 양상으로 나타난 대륙 간의 차이는 다음의 4가지 원인에서 비롯되었다고 주장합니다.

첫째는 가축화와 작물화의 재료인 야생동식물의 대륙 간 차이, 둘째는 확산과 이동속도의 차이, 셋째는 확산을 가로막는 장애물의 차이, 넷째는 각 대륙 간 면적 및 전체 인구규모의 차이입니다.

식량 생산과 가축화는 초승달 지대나 중국처럼 비옥한 곳에서 먼저 시작됐습니다. 이는 그 지역에 작물화·가축화할 수 있는 야생동식물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잉여 식량이 축적되면서 사회적으로 계층화되고 정치적으로 중앙집권화 사회로 발전할 수 있었습니다.

지구 상의 동식물 중에서 가축화·작물화할 수 있는 야생종의 수는 그리 많지 않았습니다. 대륙 간의 차이도 컸다고 합니다. 그리고 그 차이는 각 대륙의 면적 차이와 더불어 홍적세 말기에 일어난 멸종(대형 포유류)의 차이에서 기인했습니다. 유라시아와 아프리카보다 오스트레일리아와 남북아메리카에서 멸종이 더 심했다는 것이지요.

두 번째 차이는 확산과 이동속도의 차이라고 주장합니다. 대부분 기술 혁신과 정치제도를 비롯한 여러 가지 발명과 문물은, 스스로 만드는 경우보다 다른 사회로부터 받아들이는 경우가 훨씬 많았습니다. 그런데 유라시아 대륙은 문물의 확산과 이동에 가장 좋은 조건을 갖추고 있었다는 게 저자의 주장입니다.

유라시아는 주요 축이 동서 방향이며 생태적·지리적 장애물도 비교적 적었습니다. 가축과 농작물은 기후의 영향을 받기 때문에 같은 위도를 따라 확산과 이동을 하기 쉬웠다는 것이지요. 아프리카나 남북 아메리카에서 이동 속도가 느렸던 것은 주요 축이 남북 방향으로 되어 있었기 때문이라는 겁니다.

세 번째 차이는 대륙 간 확산을 가로막는 장애물이 또 다른 원인이었다고 강조합니다. 유라시아로부터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로 문물이 퍼지는 것은 비교적 쉬웠습니다. 하지만 아메리카 원주민 사회나 오스트레일리아의 경우 유라시아와 격리되어 있었기 때문에 가축과 작물 기술뿐만 아니라 정치제도와 문자 체계 같은 것들이 전해지지 못했다는 것이지요.

마지막 요인은 대륙의 면적 및 인구 규모에서 비롯되었다고 합니다. 면적이 넓거나 인구가 많다는 것은 잠재적인 발명가 수도 많고, 서로 경쟁하는 사회(집단)도 많으므로, 주고받을 수 있는 혁신의 결과물도 더 많았습니다. 라이벌 사회에 의해 제거 당하지 않으려면 더 빨리 혁신하지 않을 수 없었다는 것이지요.

오스트레일리아와 뉴기니는 말할 것도 없고, 남북아메리카의 경우도 생태적으로 보면 사실상 두 개의 대륙으로 분열되어 있었습니다. 수렵·채집 사회가 지속됐기 때문에 경쟁과 혁신이 일어날 가능성이 없었다는 겁니다.

그러나 저자는 자신의 연구 결과를 '지리적 결정론'으로 오해해서는 곤란하다고 이야기합니다. 인류의 발전 과정은 인간의 창의성을 기반으로 하였지만, 더 많은 재료를 구비하고 있거나 발명품을 활용할 수 있는 여건이 나은 곳에서 더 빠른 변화와 혁신이 일어난 것뿐이라는 것이지요.

세계의 불평등과 제국주의의 기원

모두 19장으로 이루어진 <총, 균, 쇠>는 이러한 결론을 내릴 수 있는 여러 가지 근거들을 설득력 있게 제시하고 있습니다. 앞서 이야기하였던 4가지 이유로 남북아메리카가 유럽의 식민지가 될 수밖에 없었으며, 오스트레일리아의 운명 역시 별로 다르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유럽의 정복자들이 아메리카 원주민과 만났을 때 압도적으로 많은 숫자의 원주민들을 살해할 수 있었던 까닭은 바로 작물화와 가축화에서 앞섰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유럽에만 있던 균들이 원주민들을 몰살 시켰고, 기마병과 총이 있었기 때문에 압도적인 화력으로 승리할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수렵·채집 사회의 대를 살고 있던 원주민들, 병원균과 총·문자·정치 조직·군사 기술을 가진 유럽인들 사이에는 하늘과 땅만큼 큰 격차가 겉보기에 있습니다. 하지만 그런 차이의 기원은 바로 농경의 시작에서부터 비롯되었다는 지적입니다.

이 책에는 유럽이 세계를 정복한 힘의 원천, 식량 생산이 만들어낸 계급사회, 식량생산민과 수렵채집민의 경쟁력 차이, 야생 먹거리의 작물화 과정, 야생 동물의 가축화 과정, 각 대륙마다 다른 역사의 수레바퀴 축, 가축화 과정에서 생긴 세균이 준 질병, 식량 생산과 문자 고안의 연관성, 발명품이 확산하는 과정, 원주민 사회들이 낙후된 원인, 동아시아와 태평양에서 민족 간 충돌과정 등에 관하여 600여 쪽에 걸쳐 길게 설명하면서 자신의 주장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이 같은 긴 연구 과정을 읽어내는 것이 다소 지루할 때도 있고, 낯선 지명과 인류학적인 용어들 때문에 이해하기 어려운 경우도 많았습니다. 하지만 중간중간 아주 흥미로운 대목들도 적지 않았습니다. 덕분에 책을 읽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포기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

저자는 얄리의 질문에 답하고 난 뒤에도 독자들이 궁금해할 몇 가지 질문에 대하여 자문자답합니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인류 역사의 통찰적 이해를 높여줍니다. 예컨대 "비옥한 초승달 지대나 중국은 수천 년이나 앞서 갔으면서 왜 유럽에 추월당했을까?"하는 질문입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의 경우에는 분명한 해답이 나온다. 그곳은 원래 가축화, 작물화에 적합한 동식물이 집중되어 있어서 다른 곳보다 몇 천 년 일찍 출발할 수 있었지만, 일단 그 선발 간격을 추월당한 뒤에는 더 이상의 지리적 이점이 없었다." - 본문 중에서

BC 4000~3000년경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국가들이 탄생했습니다. 페르시아 제국까지는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 머물렀지만, BC 4세기 말 알렉산더 대왕 시대 이후부터 그리스인들이 제국을 건설함으로써 힘의 중심이 서쪽으로 이동하기 시작하였다는 것이지요.

BC 2세기, 로마가 그리스를 정복하면서 또 다시 서쪽으로 이동하였고, 로마 제국이 멸망한 뒤에는 서유럽과 북유럽으로 중심이 이동했다는 겁니다. 아울러 시간이 흐르면서 기후적으로도 비옥하던 초승달 지대는 사막과 반사막으로 바뀌어 농사에 부적합한 땅이 되었습니다. 반면 서유럽은 집약적인 농업이 가능한 강우량과 비옥한 토지를 갖추고 있었기 때문에 농작물·가축·기술·문자 등을 받아들여 더 발전시킬 수 있었다는 것입니다.

중국은 왜 유럽에 추월당하였을까?

그렇다면 중국은 왜 유럽에 추월당했을까요? 비옥한 땅과 가장 많은 인구를 유지하던 중국은 중세까지 세계의 기술을 선도하였습니다. 주철, 나침반, 화약, 종이, 인쇄술은 물론이고 정치적인 힘, 제해권, 항해술에서도 세계를 최고였다는 것이지요.

"15세기 초에는 수백 척의 배로 구성된 보물선 선단을 파견했는데, 그중 가장 큰 배의 경우 길이가 120미터에 달했으며 총인원도 최대 28000명에 달했다. 그들은 콜럼버스가 보잘것없는 세 척의 배로 협소한 대서양을 건너 아메리카 동해안에 도달하기 수십 년 전에 이미 인도양을 건너 아프리카 동해안까지 진출했다." - 본문 중에서

이런 중국이 왜 유럽을 식민지로 만들거나 태평양을 건너 아메리카의 서해안에 진출하지 못했을까 하는 질문입니다. 저자는 중국의 중앙집권적 정치구조의 착오에서 비롯되었다고 단언합니다. 중국이 보물 선단은 1405~1433년 사이에 일곱 차례나 항해를 떠났는데, 환관 세력이 권력을 잃자 선단 파견이 중지되었습니다. 선단 파견을 중지한 것뿐만 아니라 조선소를 없애고 해양 항해를 금지하는 일종의 '쇄국정책'이 펼쳐집니다. 정치적으로 통일된 조직을 갖고 있었기 때문에 조정의 결정은 변방까지 일사분란하게 적용되었고 돌이킬 수 없는 일이 되어 버렸습니다.

예컨대 중국의 경우 중앙집권적인 통일적 정치 구조가 역효과를 냈던 것이지요. 정치적으로 만성적 분열 상태에 있었던 유럽에서 탐험 항해가 시작되었을 때와 비교하면 확연한 차이가 난다는 것입니다.

콜럼버스는 여러 나라를 다니며 무려 네 번이나 실패한 후 다섯 번째 시도에서 항해를 위한 지원을 얻어냈습니다. 만약 유럽이 중국 같은 통일 국가였다면 그런 일이 생기기 어려웠겠지요. 문제는 중앙집권적인 통일국가였던 중국에서 이런 퇴행적인 정치적 결정은 한두 번이 아니었다고 합니다.

"14세기에는 정교한 수력 방적기의 개발을 포기함으로써 산업 혁명의 문턱에서 물러났고, 세계의 시계 제작 기술을 선도하고 있던 기계식 시계를 파기 또는 사실상 전폐해 버렸으며, 15세기 말 이후에는 기계장치나 기술 전반에 걸쳐 후퇴하게 되었다." - 본문 중에서

심지어 비교적 최근에 속하는 1960년대와 1970년대에도 문화대혁명의 광기 속에 소수 지도자가 내린 결정 때문에 전국 모든 학교가 5년 동안 문을 닫았었다고 합니다. 결과적으로 보면 무려 2000년 동안이나 문화적 통일성을 지켜온 것이 중국이 유럽에 추월당하는 원인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저자는 중국의 만성적 통일과 유럽의 만성적 분열 역시 지도를 보면 충분히 이해할 수 있는 일이라고 합니다. 유럽은 높은 산맥과 여러 개의 반도로 나뉘어 있는 반면에 중국은 해안선이 단조롭고, 큰 장애물이 없는 넓은 땅으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때문에 각각 분열과 통일의 다른 역사를 갖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유럽의 장애물들은 "정치적 통일은 막으면서도 기술과 아이디어의 전파는 중단시키지 못하였기" 때문에 유럽이 중국을 앞설 수 있었습니다.

비옥한 초승달 지대와 중국의 역사를 보면 상황은 변할 수 있으며 과거의 우위가 미래의 우위를 보장해주지 않는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열악한 조건을 가진 곳에서 역전을 이룰 가능성은 없다는 것 또한 분명합니다. 현대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신흥 강국들 역시 세계에서 가장 먼저 식량 생산을 시작한 중심국가의 영향권에 속해 있는 나라들이기 때문입니다.

따라서 앞으로도 사하라 사막 이남 아프리카인,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 아메리카 원주민 등이 세계를 지배할 가능성은 희박하다고 예언합니다. 오늘날 서유럽이 세계의 중심이 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이 더 현명하였기 때문이 아니라 그들이 더 좋은 조건을 가진 곳에서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 조건은 앞으로도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지요. BC 8000년경에 시작된 역사의 분수령은 쉽게 바뀌기 어렵다는 것이 저자의 결론입니다.

<총, 균, 쇠>는 지극히 상징적인 제목입니다. 최초로 식량 생산을 시작한 사람들이 총기와 병원균과 금속을 발전시킬 주도적인 위치를 선점하였다는 것이지요. 이 책은 지난 1만3000년 동안 복잡한 인간사회과 형성되는 과정을 통찰적으로 이해할 수 있도록 돕는 걸작입니다. 경제학에서 거시경제학과 미시경제학을 나누는 것처럼 거시 역사적 관점에서 인류의 역사를 이해할 수 있는 대작이라 할 수 있겠습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개인 블로그에도 포스팅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총 균 쇠 (반양장) - 무기.병균.금속은 인류의 운명을 어떻게 바꿨는가, 개정증보판

제레드 다이아몬드 지음, 김진준 옮김, 문학사상사(2005)


태그:#총균쇠, #식량생산, #인류의 기원, #원주민, #신대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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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산YMCA 사무총장으로 일하며 대안교육, 주민자치, 시민운동, 소비자운동, 자연의학, 공동체 운동에 관심 많음. 오마이뉴스 시민기자로 활동하며 2월 22일상(2007), 뉴스게릴라상(2008)수상, 시민기자 명예의 숲 으뜸상(2009. 10), 시민기자 명예의 숲 오름상(2013..2) 수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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