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 울산지회가 지난 2월 16일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파견 해결을 위해 현대차가 당사자 직접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대법원은 26일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에 대한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내렸다
 금속노조 현대차 비정규직 울산지회가 지난 2월 16일 현대차 울산공장 정문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불법파견 해결을 위해 현대차가 당사자 직접교섭에 나설 것을 촉구하고 있다. 대법원은 26일 현대차 아산공장 비정규직에 대한 불법파견 인정 판결을 내렸다
ⓒ 박석철

관련사진보기


지난 2월 26일, 대법원 1부(주심 고영한 대법관)는 현대차 아산공장의 사내 협력업체에서 일하다 지난 2003년 해고된 비정규직들이 현대차를 상대로 제기한 '근로자지위확인소송'에서 2년을 초과 근무한 4명에 대해 승소 판결을 내렸다. (관련 기사 : 대법원, '또' 현대차 비정규직 불법파견 판결)

이번 대법원 확정 판결은 자동차 본체 공정인 의장 뿐 아니라 엔진과 차체 등 여타 공정에 대해서도 불법파견을 판정하고, 이들이 현대차의 정규직임을 인정했다는 점에서 의의가 크다.

특히 울산공장 비정규직인 최병승씨가 제기한 소송에서, 대법원이 지난 2010년 파기환송에 이어 2012년 확정 판결을 내린 바 있다. 이번 판결은 현대차 모든 공장에서 대법원이 사내하청은 불법파견이 분명하다는 점을 확인한 것이다.

이번 승소자들이 여타 현대차의 비정규직들과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은 일을 했다는 점으로 미뤄볼 때, 이같은 대법원의 판결은 현대차 전체 비정규직에도 함께 적용될 수 있을 것으로 보인다.

지난 2004년 노동부가 현대차 대부분 공정에 대해 불법파견 판정을 내린 후, 기자는 지난 10여 년간 비정규직들이 투쟁하는 모습을 목격했다. 이들은 "불법파견 인정하고 정규직을 인정하라"며 공장 점거농성, 송전철탑 고공농성 등을 벌였다. 이들이 농성에 나선 원인이 분명함에도, 불법으로 낙인 찍혀 해고되거나 처벌받고, 나아가 손해배상 청구소송까지 당하며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것도 봐 왔다.

대법원이 수차례에 걸쳐 현대차의 불법파견임을 인정했으니, 이제 회사 측에도 사법적 처벌이 있어야 하고, 법원 판결에 따른 정규직 전환이 있어야 한다.

대법원이 판결했지만... 불법에 순응하도록 종용하는 사회

하지만 이후 진행되고 있는 현실은 다르다. 우리나라 최고 사법기관인 대법원의 판결이 '과연 무슨 소용이 있나'하는 회의감이 들 정도다. 오리혀 대법원 판결은 묻혀 버리고, 비정규직들에게 '이 판결에 눈감고 순응하기'를 종용하고 있다.

지난 1일과 2일, 여러 언론에는 "현대자동차의 사내하청을 대상으로 한 올해 첫 정규직 채용에 지원한 100여 명 중 비정규직노조 조합원이 상당수"라는 기사가 실렸다. 비슷비슷한 내용의 이 기사들은, 이런 현상이 '눈길'을 끈다고 지적했다.

또한 언론에서는 비정규직 전 노조간부 등이 신규채용에 응하면서 붙인 대자보에 "가장으로서 우리만 바라보는 가족의 마음을 외면할 수 없었다"고 적었다고 보도했다. 이를 두고 회사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최근 불법 집단행동에 가담했다가 해고된 하청조합원들이 지회에 반발하면서 대자보를 붙인 것"이라고 보도했다.

법원의 판결대로 불법파견에 대한 처벌과 정규직 전환이 진행되지 않는 게 현실이다. 오히려 동료들이 해고되고 손해배상 가압류로 고통 받는 처지에서, 소송을 포기해야만 하는 상황을 언론들은 정말 몰랐던 것일까?

현대차는 앞서 지난 2010년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 이후, 비정규직 중 2838명을 정규직으로 신규 채용했다. 이를 두고 각계로부터 "불법파견을 은폐한다"는 지적이 나왔다. 이에 1900여 명에 달하는 비정규직들이 2010년 11월 정규직 인정 집단소송을 제기했다.

이후 회사 측은 정규직 노조, 전주·아산 비정규직지회와 소송을 포기하고 신규채용에 응하는 것을 골자로 하는 8·18 합의를 했다. 이 합의에 따르면 올해까지 4000명의 비정규직을 정규직으로 신규채용할 예정으로, 아직 나머지 1162명이 남았다. 이번 지원자 100여 명도 그 대상자다.

이처럼 일부 비정규직들이 대법원의 불법파견 판결을 목격하고도 소송을 포기하면서까지 신규채용에 응할 수밖에 없었던 것은 왜일까? 법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 우리 사회의 실상에 자포자기한 것은 아닐까.

만일 법원의 판결대로 불법파견이 처벌받고 비정규직들이 정규직으로 전환될 징조라도 보였다면 사정은 달랐을지 모른다. 함께 고초를 겪어온 비정규직 동료들로부터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히면서까지 신규채용에 응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민주사회를 위한 변호사모임(민변)은 판결 다음날인 2월 27일 성명을 내고 "노동부와 검찰은 일부 사업장을 대상으로 한 간헐적인 수사와 감독에 그칠 것이 아니라 대공장, 공단, 비제조업 등 만연한 간접고용을 뿌리 뽑기 위한 철저한 감독과 엄중한 처벌을 진행해야 한다"며 "당장 불법파견이 명확히 확인되었음에도 이를 시정하지 않고 있는 완성차 사용자들을 현행범으로 수사하고 처벌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하지만 현실로 볼 때 이 요구는 요원한 것처럼 느껴진다. 앞으로 얼마나 많은 비정규직들이 불법에 순응하는 상황을 목격해야 할까.


태그:#현대차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울산지역 일간지 노조위원장을 지냄. 2005년 인터넷신문 <시사울산> 창간과 동시에 <오마이뉴스> 시민기자 활동 시작.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