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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학생들의 진로를 풍자한 그림.
 한국 학생들의 진로를 풍자한 그림.
ⓒ 인터넷 커뮤니티 화면 갈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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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고 싶었던 사람들을 만나 간만에 술잔을 기울였습니다. 이미 번듯한 직장에서 자리 잡은 친구들도, 취업 직후 속시원하게 대학 졸업식을 마치고 온 친구들도 있습니다. 본격적으로 취업 준비에 발을 담근 저도 있습니다.

삶의 모습이 제각각인 청춘들이 모여 각자의 고민을 한껏 풀어놓습니다. 취업한 친구는 자신만의 시간이 너무나 부족해 고민, 아직 학생과 사회인 사이에서 '회색분자'로 남아 있는 저는 취업을 하지 못해 고민입니다. 연애와 결혼, 육아에 이르기까지 미래에 대한 공통의 고민까지도 막힘없이 이어집니다.

마음 같아서는 모든 것을 내려놓고, 한적한 시골로 내려가 TV 예능 <삼시세끼>에서처럼 자급자족하면서 살고 싶다는 생각도 불쑥 고개를 듭니다. 하지만 그저 상상에 불과한 찰나의 감정일 뿐입니다. 저에게는 취업하자마자 갚아나가야 할 수백만 원의 학자금 대출이 남아있고, 의식주를 비롯해 살아나가기 위한 최소한의 돈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이러한 부채의식은 하루하루를 여유롭게 보낼 수 없게 만들어 버립니다.

일반 수저 물고 태어난 취준생, 나는 어쩌나

금수저나 은수저가 아니라 평범한 '일반 수저'를 물고 태어난 저는 취업 준비와 아르바이트를 병행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임금을 많이 쳐주는 듯싶으면 가끔은 일용직으로 현장을 전전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공부할 수 있는 책 한 권이나 시험 응시료, 면접에 필요한 정장 한 벌조차도 제대로 구할 수 없을 테니까요. 비단 그런 비용뿐만이 아닙니다. 사람은 결코 혼자서만 혹은 온라인에서만 살아갈 수 없으니 말입니다.

마음 같아서는 주변에 통 크게 한 턱 내보고도 싶지만 얇은 지갑만이 남아 있는 현실에서는 정반대입니다. 연애를 하든, 친구를 만나든 밖에 나오면 더치페이는 이제 '일상 그 자체'가 됩니다. 옷 한 벌을 사더라도, 커피 한 잔을 마시더라도 이제는 무의식적으로 '가격 대비 성능'인 '가성비'를 따지고 있습니다. 인터넷으로 정신없이 화면을 돌려 보면서도 '무료'라는 단어는 놓치지 않고 클릭합니다. 넉넉지 않은 생활에 저축은 꿈같은 소리나 마찬가지입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쪼들리는 것만 같고, 당장에라도 그만두고 싶은 이 상황을 저는 단 한 번도 선택한 적이 없습니다. 결코 원해서 받아들인 환경이 아니라는 의미입니다. 그저 이렇게 살 수밖에 없으니까, 이렇게 해서라도 어떻게든 살아남아야 하니까 '죽을 듯 말 듯' 끈질기게 살고 있는 것뿐입니다. 그래서 저는 최근 폭발적인 반응을 얻으며 연재된 <조선일보>의 기획기사 <'달관 세대'가 사는 법>에 의문을 표할 수밖에 없습니다.

조선일보의 ['달관 세대'가 사는 법] 기획기사 중 하나.
 조선일보의 ['달관 세대'가 사는 법] 기획기사 중 하나.
ⓒ 조선닷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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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에 등장하는 청년들은 모두 자신의 삶을 긍정합니다. '덜 벌어도 덜 일하니까', '덜 써도 충분히 살 수 있으니까', '저녁 있는 삶을 즐기니까' 행복하다고 합니다. 노력으로는 도무지 바꿔낼 수 없는 미래에 더 이상 헛된 희망을 바랄 것이 아니라, 차라리 '안분지족'을 추구하자는 겁니다. <조선일보>는 '지금 이 순간'을 행복하게 살자는 이들을, 일본에서는 이미 사회현상으로 자리 잡은 '사토리 세대'에 빗대어 '달관 세대'로 이름 붙였습니다.

이른바 '달관 세대'의 삶을 폄훼할 생각은 추호도 없습니다. 각자가 자유의지에 따라 선택한 삶을 비난할 수는 없으니까요. 그러나 그 선택이 자유롭지 않고 그저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라면 이야기는 달라집니다. 여유로운 삶을 위해 정규직을 버리고 비정규직을 선택했다면, 그것은 정규직의 노동 강도가 그만큼 비현실적이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불안하기 짝이 없는 비정규직이 진정으로 여유로운 것인지도, 심지어 비정규직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인지도 장담할 수 없습니다.

최근 20대가 고비용 소비에는 관심이 없고 더치페이를 즐긴다면, 그것은 그만큼 경제력이 부족하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해 '안 되니까 못하는' 것입니다. 만일 임금과 노동 강도, 채용규모 등을 비롯한 노동시장의 여건이 나아진다면, 기사에 등장한 대부분의 20, 30대는 지금의 '안분지족' 생활을 바로 청산할 것입니다. 그러한 생활을 삶의 최종적인 목표로 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결국 <조선일보> 기사는 '달관 세대'의 원인과 결과를 뒤바꿔 버린 겁니다.

무엇이 '달관 세대'로 불리는 이들을 만들어냈는지부터 먼저 짚어야 했습니다. 한국 학생들의 진로가 대부분 '치킨집' 또는 비극적인 죽음으로 규정된다는 우스갯소리까지 나돌고 있습니다. 취업을 희망하고 또 1년 동안 구직에 매달렸지만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 '구직 단념자'도 50만 명에 이릅니다. 정규직은 물론 흔한 아르바이트 자리 하나도 쉽게 얻을 수 없고, 설령 취업하더라도 자신의 삶을 오롯이 희생해야만 합니다. 전과는 달리 그 어떤 희망도 존재하지 않는 오늘의 속사정을 우선 들여다봐야 했습니다.

유명 4년제 대학 다니며 '달관'? 이건 아니지요

지난 2014년 3월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기업의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면접을 보고 있다.
 지난 2014년 3월 25일 서울 삼성동 코엑스에서 열린 대기업의 채용박람회에서 구직자들이 면접을 보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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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속 청년들은 모두 서울 소재의 유명 4년제 대학에 다니고 있었습니다. 그들이 아니라 선택의 여지 없이 비정규직을 전전하고, 타의에 의해 씀씀이를 줄일 수밖에 없는 이들의 이야기를 깊이 들어봐야 했습니다. 그랬더라면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허덕이는 사람들'을 '모든 것에 달관해 속 편히 즐기는 사람들'로 만들어 버리는 일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사실, 비현실적이기까지 한 청년들을 통해 20, 30대를 '달관 세대'로 규정해 버리는 것 또한 맥이 빠지는 일입니다. 일련의 희망일랑 도전의식일랑 다 던져 버리고, 그저 이 가라앉은 사회의 순리에 고개를 숙이라는 말처럼 들리기 때문입니다. 마치 인터넷에서 유행하는 글귀 '포기하면 편해'를 떠올리게도 합니다. '달관 세대'가 전면에 등장해 버린 사회에서, 오늘도 자신의 꿈과 이상을 위해 피와 땀을 흘리고 있는 청년들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을지 궁금해집니다.

'사소한 사물이나 일에 얽매이지 않고 세속을 벗어난 활달한 식견이나 인생관에 이름, 또는 그 식견이나 인생관.'

국어사전이 설명하는 '달관'의 정의입니다. 삶을 살면서 온갖 풍파를 겪은 뒤에야 비로소 느낄 수 있는 감정으로 통용되기도 합니다. 그에 맞춰 해석해 보니 저는 여전히 사소한 사물과 일에 매여 있고, 세속으로부터 전혀 벗어나지 못했습니다. 물론 인생관이라는 거창한 것도 수립하지 못했습니다.

아무리 봐도 '달관 세대'와는 거리가 멀어 보입니다. '달관'이라는 상태에 이르면서까지 모든 것을 내려놓고 싶지는 않습니다. 가만히 앉아 조금 더 생각해 보니 동생도, 주변 친구들도 모두 그렇습니다. 캠퍼스와 길거리를 스쳐지나가는 수많은 청년들도 그럴 겁입니다.

우리는 '달관'하지 않았습니다.


태그:#달관 세대, #청년, #청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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