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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 계곡의 장. 읊어보니 참 외로운, 혹은 독립적인 이름이다. 19년간 감옥살이를 하기 전에도 그는 충분히 외로운 존재였다. 세상을 떠난 형 대신 형수와 조카들이 있었지만, 형수는 살뜰하지 않았고 조카들도 다정하지 않았다. 장 발장이 번 돈으로 먹고 살면서도 밥 먹을 때면 그를 흘기곤 했다. 먹고 살기 너무 고단해 그랬을 게다. 19세기 초, 혁명과 혁명 사이에 낀 프랑스.

<레미제라블>은 혁명기 인민에 대한 책이자 나폴레옹과 루이 필립에 대한 책이고, 1832년의 봉기에 대한 책인 동시에 가톨릭 사회주의를 전파하는 책이지만, 그 모든 것에 앞서 여전히 '장 발장 이야기'다. 정 붙일 데 하나 없었던 장 발장. 감옥살이를 마치고 나올 때쯤엔 그는 전형적인 전과자가 돼 있다. 배척 당하는 데 익숙하고 기회 닿는 대로 잇속을 챙기려 하는, 그렇지 않으면 살아남을 수 없는 존재로서 말이다.

<레미제라블>은 특이하게도 한 인간의 변모를 보여주는 데서 시작한다. 소설은 많은 경우 변신담이지만, 변신담이 실현되는 것은 보통 결말에 이르러서인데 말이다. 미리엘 비엥브뉘 주교의 변신과 죄인 장 발장의 변신.

비엥브뉘(Bienvenu), '웰컴'이란 뜻의 성을 갖고 있는 미리엘 주교는 프랑스대혁명 이전에는 평범한 귀족이었을 뿐이다. 잘 놀고 유쾌하고 적당히 매력적이었던 이 청년은 혁명 이후 성스러운 인간으로 거듭난다. 그가 어떤 사건을 겪었는지, 왜인지는 모른다. 다만 혁명이 그 위대성을 통해, 혹은 그 추악을 통해 한없이 성스러우면서도 한없이 개방적인 어떤 인간을 탄생시켰다는 사실이 전해질 뿐이다.

사람은 좀체 바뀌지 않는다. 나를 보나 남을 보나, 참 많이 바뀐 것 같다가도 그 원형이 문득 살아난다. 하긴 이토록 작은 존재로서 어떻게 끝없는 확장을 감행할 수 있으랴 싶다. 열 몇 살 나와 마흔 몇 살 내가 희한하게 닮아 보일 때가 있다. 그러면서도 인간은 끝없이 바뀐다. 최상의 위인에서 최악의 범죄자까지, 대부분의 인간은 그 자체로 거의 우주를 품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 요소들이 어떻게 자리 잡고 어떻게 표현되느냐에 있다. 사회를 논하고 좋은 지도자를 바라는 이유가 여기 있을 터이다.

공동체로서 지속 가능한 선을 어떻게 구축해 나갈 수 있을 것인가. 미리엘 주교는 이 목표를 잊음으로써 이 목표에 헌신하는 인물이다. 그는 무한히 타인을 신뢰하고 어떤 경우에나 타인을 '환영'한다. 강도가 날친다 해도 대문을 잠그는 법 없고, 치안이 불안하다 해서 경계를 요청하는 일 없다. 신성모독의 구 자코뱅 지도자가 죽어가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면 내쫓길 걸 각오하고 허위단심 먼 길을 간다. 장 발장에게 베푼 호의가 배반당했을 때도 그는 더 큰 호의를 베풀 뿐이다. 장 발장은 미리엘 주교에 의해 생애 처음으로 '환영'받는다.

그럼에도 그는 단번에 바뀌지 않는다. 촛대를 선사받은 장 발장이 들판에서 겪은 사건을 보면 그렇다. 은전 한 닢을 얻어 즐거워하는 소년이 아차, 그 돈을 놓친 것이 장 발장 앞으로 굴러간다. 장 발장은 '무의식적으로' 그 돈을 밟아 감춘다. 그것은 마음이 저지르기 전에 몸이 저지르는 죄다.

의식하지 못한 채 장 발장은 소년을 윽박질러 쫓아버리고, 그런 후에야 제가 저지른 일을 알아채고 흐느껴 운다. 냉대와 배척뿐인 세상에서 기회 닿는 대로 잇속을 챙기지 않으면 생존 자체가 어려우리라는 생각, 태어나 중년이 될 때까지 뼛속 깊이 새겨 넣은 생각은 그토록 강했던 것이다. 장 발장이 완전히 다른 존재가 되는 건 그 다음이다.

<레미제라블>은 한편, 장발장처럼 성화(聖化)된 존재로도 세상과 인간을 바꾸긴 지난하다는 사실을 알려준다. 미리엘 주교는 장 발장을 남겼지만 장 발장은 누구를 남겼나. 그는 코제트를 거두었고 테나르디외를 용서했지만 그들은 장 발장이 안겨준 안온한 환경을 누리고 혹은 모든 것이 장 발장 탓이라며 저주하는 수동적 존재에 머무른다.

아마 장 발장이 바꾸어 놓은 존재가 있다면 그것은 평생 그를 쫓았던 형사 자베르일 것이다. 옥중 여죄수의 몸에서 태어난 자베르, 그는 추방 직전의 존재가 권력에 충성을 다할 때가 종종 있다는 것을 여실히 상기시키는 존재다. 의심받고 버림받기 쉬운 존재로서, 그는 과잉 충성과 고도의 효율성을 통해 살아남는다. 인간다운 정이 가 닿을 곳 없어 뵈는 그는, 장 발장의 끝없는 관용에 의해 마침내 뿌리에서부터 흔들린다.

그러나 변화 자체를 견디지 못하는 인간도 있다. 변화하느니 파멸을 택하는 경우도 있다. 몇십 년 지켜온 자신이 무너지는 것을 느낀 자베르는 세느강에 뛰어들어 자살하는 길을 선택한다. 파리 경시청의 제도 개선을 제안하는, 극히 무미건조한 유서를 남겨둔 채다.

유서의 내용이 비단 제도의 효율성뿐 아니라 수감자의 인권도 향하고 있다는 점이 변화라면 변화였을까. 자베르가 남긴 유서는, 권력에의 맹목으로 수십 년을 살아온 형사도 시시각각 문제를 느꼈다는 사실을 증명한다. 또한 그러면서도 한 마디 이의 없이 권력의 효율적 기계로만 사는 것이 가능하다는 사실 또한 증명한다.

미리엘 브엥브뉘와 장 발장과 자베르(여죄수의 몸에서 태어난 까닭인지 그는 성으로 불리지 않는다). <레미제라블>의 '장 발장 이야기'를 구성하는 주인공들이다. 그들은 혁명의 거대한 파노라마가 외면당할 때도 살아남고, 세상이 축제로 떠들썩할 때도 구석에서 조용히 말을 건넨다. 자신이 변화하지 않고 타인을 변화시킬 수는 없다고, 그 때조차 세상은 아마 거의 바뀌지 않을 거라고, 그러나 포기하지 말라고 말이다. 애초에 자기 자신을 바꾼다는 것이 얼마나 큰 난제인가. 인권연대에서 '장발장 은행' 계획을 들을 때마다 절로 내 머릿속에 떠오르는 생각의 갈피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를 쓴 권보드래씨는 인권연대 운영위원으로 현재 고려대 교수로 재직 중입니다. 이 기사는 인권연대 주간 웹진 <사람소리>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레미제라블, #장발장, #장발장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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