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요양원 이용자들 중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연령대는 70-80대다. 영화 <국제시장>처럼 격변의 시대를 살아온 그들이지만 자식들에게 혹여 피해가 갈까 먼저 요양원 입소를 선택하기도 한다.

최근 그런 세대에 속하는 한 사람을 취재했다. 그는 요양원 과실로 화상을 입은 후 감염으로 인해 다리를 절단했다. 그의 자녀들은 최신식 요양원이란 말만 믿고 아버지를 맡겨버린 자신들을 탓하고 있었다.

요양원 "그냥 물집이에요"... 알고 보니 '2도 화상'

침대 위에서 거동하지 못하는 최행근 환자의 상태
 침대 위에서 거동하지 못하는 최행근 환자의 상태
ⓒ 환자보호자 최임선

관련사진보기


지난 18일 A요양원으로 찾아가 만난 최행근(83)씨의 모습은 처참했다. 환자보호자인 아들 최임선(47)씨는 아버지가 휠체어로 산책조차 힘든 상태라고 말했다.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지난 2013년 4월 요양원에 입소하게 된 과정부터 이야기를 시작했다.

"아버지는 70대 중반까지만 하더라도 정정하셨습니다. 그런데 70대 후반부터 무릎이 안 좋아지셨고, 뇌경색이 생기셨습니다. 사고능력이나 판단력은 그대로였지만 걷는 것과 언어구사가 잘 안 되니까 간병이 필요해졌어요. 지방에서 사업을 하는 저는 현실적으로 요양원을 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최씨는 외아들인 자신이 아버지를 직접 못 모신다는 죄책감 때문에 요양원 선택에 신중할 수밖에 없었다. 좋은 곳에 모셔야 된다는 생각으로 2011년 강남에서 유명한 A요양원에 아버지를 입소시키기로 결심했다. 무려 1년간을 입소대기자로 기다렸다.

마침내 2013년 4월 해당 요양원에 입소했다. 처음 6개월은 잘 계셨다고 한다. 그런데 같은 해 10월 문제가 터졌다. 아버지가 고통스러운 듯 인상을 찡그리고 있었고 오른쪽 무릎에 큰 물집 같은 것이 보였다. 직원에게 물었더니 그저 '자연적으로 생기는 수포'라고 대답했다. 큰 '물집'에 불과한 수포가 왜 고통스러운지 이해가 안 갔지만 요양 과정을 보지 못한 보호자들로서는 직원 말을 믿는 수밖에 없었다.

며칠 뒤 요양원에서 문자 한 통이 왔다. 이유는 설명이 없었고 피부과에 가라는 말뿐이었다. 이틀 뒤 피부과에서 듣게 된 의사의 진단은 '2도 화상'이었다. 최씨의 가족들이 아버지의 물집을 발견한 지 열흘도 더 지난 시점이었다. 피부과 의사는 "이렇게 오래도록 화상을 방치하는 것은 고령 환자에게 좋지 않다"고 말했다.

생사를 오가는 수술... 요양원은 우수기관 선정

최씨는 '2도 화상' 진단서를 들고 가서 요양원 측에 항의했다. 그러자 요양원은 잠시 진상 조사할 시간을 달라고 했다. 최씨는 일단 화상용 연고, 처방약, 의사의 지시사항 등을 요양원 측에 건네며 필요한 치료부터 요청했다. 며칠 뒤 요양원에서 이 사안에 '책임이 있는 한 명의 직원이 퇴사했다'는 말을 들었다. 그 직원이 누구인지, 언제, 어떻게 일어난 과실인지는 설명이 없었다.

최씨는 아버지를 계속 모셔야 할 요양원을 상대로 더 항의를 해야 하는지 고민했다. 그러다 아버지의 무릎 화상이 점점 악화되기 시작했고, 급하게 협진병원으로 이송됐다. 그곳에서도 60일 동안 차도가 없자, 아버지는 화상전문 대학병원으로 다시 옮겨졌다. 하지만 회복은커녕 악화되기만 했다.

화상부위가 감염되고 세균이 무릎관절로 침투하면서, 2014년 2월 결국 무릎 상단 절단수술을 시행했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1차 절단수술 뒤 5개월이 지나 해당 부위에 괴사가 일어나 괴사조직을 제거하는 2차 수술까지 해야 했다.

고령인 환자로서는 생사를 오가는 수술이었다. 두 차례의 수술이 끝난 뒤 수술후유증으로 폐렴이 도져 아버지에게 또 한 차례 고비가 왔다. 당시 담당의는 환자가 못 버틸 확률이 크다는 진단까지 내렸지만 아버지는 극적으로 버텨냈다.

최근 보호자 최 씨가 손해배상금 민사조정 과정에서 받은 요양원측 보험사 진술서.
 최근 보호자 최 씨가 손해배상금 민사조정 과정에서 받은 요양원측 보험사 진술서.
ⓒ 환자보호자 최임선

관련사진보기


두 차례의 수술과 330여 일간의 입원치료는 고령인 환자에게 가혹했다. 최씨는 당시 아버지의 모습을 떠올리면 "차라리 이렇게 살 바엔 돌아가시는 것이 더 낫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고 말한다. 최씨는 누나 두 명과 돌아가면서 아버지를 돌보았고, 그들 역시 정신적으로 피폐해졌다. 최근에서야 여유를 되찾고 손해배상금과 관련해 요양원 측 보험사와 접촉할 수 있었다.

최씨는 "요양원 측이 이전까지는 사고에 대한 사과나 설명 한 번 한 적 없었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얼마 전 손해배상 관련 법적 분쟁을 통해 요양원의 구체적인 과실 정황을 1년 4개월 만에 처음으로 들었다는 것이 최씨의 주장이다.

요양원 측 보험사는 진술서에서 "본 건 사고는 피보험자(요양원) 시설에 입소중이던 피신청인(최씨 아버지)이 간호조무사의 잘못된 핫팩 처치로 인해 화상이 발생하였고, 이후 피신청인이 지속적인 통증을 호소하였음에도, 적절한 치료 없이 단순 통증으로 판단하여 진통, 소염제만을 도포하여 피신청인의 화상을 악화시킨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피보험자는 사고 후 상당한 시간이 흐를 때까지 피신청인에게 화상이 발생하였음을 인지하지 못함과 더불어 간호조무사의 관리, 감독 책임을 해태한 과실이 있다"고 덧붙였다.

최씨는 "요양원은 보험사가 알아서 다 보상해줄 것이라고 말하는데 실제로 보험사가 제시한 금액은 이제껏 들어간 치료비, 간병인 비용, 그 외 부대비용의 60%밖에 안 될 뿐더러 아예 정신적 위자료는 계산에 넣지도 않았다"고 분통을 터트렸다.

최씨가 더 화나는 것은 해당 요양원이 우수기관으로 선정됐다는 사실이다. A요양원은 2013년도에 건강보험공단이 시행하는 장기요양기관 평가에서 'A등급'을 받아, 2014년 초 노인장기요양기관 우수시설로 선정됐다는 결과가 공표가 됐다. 그 당시 아버지는 무릎 상단 절단수술을 끝마치고 고통에 몸부림치고 있었다.

요양원 "전체 과실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

2015년 1월 12일, 최씨는 요양원에서 아버지의 간호기록을 떼어왔다. 아무리 노령 환자라지만 아무 이유도 없이 단순 화상이 이렇게 번질 수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였다. 그리고 간호기록상에서 이해 못할 정황이 하나둘 씩 드러났다.

"분명 마지막 핫팩(온열팩) 치료는 2013년 9월 27일에 행해졌다고 나와 있습니다. 핫팩 아니면 화상 입을 일이 없어요. 그리고 저보고 피부과 데려가라고 문자를 보낸 게 10월 17일입니다. 그래서 이틀 뒤 화상진단을 받았고요. 그러니까 (요양원에서 화상 사실을) 3주 동안 숨긴 거예요."

간호기록을 보면 3주 동안 화상 관련 부위에 3번의 소독 후 연고 도포가 있었다. 횟수도 부족하지만 일반 상처용 연고를 썼기 때문에 제대로 된 화상치료라고 보기는 어렵다. 화상이 방치된 기간은 피부과에 다녀온 후 2주 동안 계속 됐다. 그런 과정에서 처음 2도 화상이었던 것이 3도 화상으로 발전했다.

"화상연고하고 약을 가져가서 치료방법도 요양사한테 전부 설명까지 해줬는데, 간호기록에는 2주 동안 소독 후 연고 한 번, 붕대 한 번 감아준 게 다예요. 치료가 그 전 3주에 비해 나아진 게 하나도 없었어요."

요양원 측은 "그게 화상인지 전혀 몰랐다"고 주장하고 있다. 그리고 "'촉탁의사(신경과 의사)' 조언대로 보호자 측에게 즉시 피부과 치료를 권했기 때문에 절차에 따른 것일 뿐"이라는 입장이다. 또 "보호자 측에서 즉시 피부과에 내원한 것은 아니며, 치료상의 과실은 이후 병원에서 생겼을 수도 있기 때문에 요양원 측의 전체 과실로 보는 것은 부당하다"는 뜻도 밝혔다.

또 요양원 측은 "수포가 정상적으로 이렇게 악화되기는 힘들고, 환자가 가진 죽상경화증을 비롯한 일부 병세가 영향을 미쳤을 확률이 크다"고 설명하면서, 향후 의료 자문을 구해 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해당 간호기록에 대해 전문 약사로부터 자문을 구한 결과, 또 하나 이상한 사실이 발견됐다. 환자는 우측 고관절 통증이 자주 있어 해당 부위에 케토로겔(케토프로펜, Ketoprofen)을 도포하는 치료를 자주 받아왔다. 문제는 케토로겔이 화상을 입은 후에도 그 주변에 4차례나 도포됐다는 사실이다. 전문가들은 화상이 있는 피부 근처에 케토프로펜 성분이 들어간 연고를 도포하는 것은 화상을 악화시킬 수 있다고 설명한다.

케토프로펜은 흔히 '파스'라고 부르는 약품들에서 자주 쓰이는 성분인데, 피부에 자극적이기 때문에 15세 미만은 사용이 금지되어있다. 전문가들은 피부 손상 및 광과민증 반응이 발생할 수 있어 각별한 주의가 필요하다고 설명한다. 광과민증 반응(Photosensitivity reaction)이란 태양광선(자외선)에 노출 후 수분 내에 홍반·두드러기·발진·수포 등이 발생하는 것을 말한다.

서울시립북부병원 권용진 원장은 "요양원은 병원과 달라서 촉탁의사가 방문 진단하는 정도이고 처방전을 발급하거나 의료적 조치를 취하기 어려운 구조"라며, "보통 요양원에서는 이런 의료사고가 일어나면 크게 번지기 전까지 경과만 지켜볼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환자단체연합회 안기종 대표는 "노인들은 살짝 넘어지거나 가볍게 데이는 정도에도 장기간 치료를 요하기 때문에 '요양병원'이 아닌 '요양원'도 전문 의료인력을 갖출 필요가 있다"고 설명하면서, "앞으로 자주 의료사고가 발생하는 요양원들은 정부 차원의 실태조사를 통해 사고가 재발하지 않도록 대책을 세울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요양원 평가' 믿을 만한가?
장기요양기관평가 결과통보서
 장기요양기관평가 결과통보서
ⓒ 국민건강보험공단

관련사진보기


1990년대부터 많은 노인요양시설이 지어졌지만 동시에 부작용들도 발생했다. 턱없이 부족한 인력, 열악한 시설상태를 비롯해 노인 학대까지 자행되는 등 운영 전반에 있어서 수많은 문제가 불거져 나오고 있다.

부실 운영에 대해 비판의 목소리가 커지자 정부는 전문적이고 수준 높은 서비스 제공을 유도하기 위해, 2009년부터 2년마다 건강보험공단에서 장기요양기관평가를 시행하고 있다. 하지만 현장에 나가 서류를 확인하는 형식적인 절차에 그칠 뿐, 시설 입소자나 종사자를 상대로 한 제대로 된 면담은 시행되지 않고 있다.

특히 의료사고의 경우 평가를 하면서 간호기록 등을 살펴보는 것이 절차상 존재하지만 결과에는 제대로 반영되기 힘들다. 한두 줄로 정리된 내용만으로는 누가, 어떻게 저지른 과실인지 설명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그리고 대부분의 의료사고는 요양원측 보험사가 보험금을 지급하는 선에서 외부 노출 없이 마무리되기 때문에 평가시행기관에서도 해당 요양원에서 얼마나 많은 의료사고가 발생했는지 알 수 없다.

알립니다
본 인터넷신문은 지난 2월 26일자 홈페이지 사회면에 "1년 기다려 들어간 요양원... 아버지 다리가 잘렸다. 화상치료 방치, 다리 절단까지..."라는 제목으로 요양원 과실로 화상을 입은 후 감염으로 인해 다리를 절단했다고 보도한 바 있습니다.

그러나 서울중앙지방검찰청 수사결과, 요양원 시설장 박아무개씨는 위 내용에 대해 지난 8월 25일 무혐의 처분을 받았음을 알려드립니다. 이 보도는 언론중재위원회의 조정에 따른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승태완 시민기자는 환자단체연합회에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태그:#요양원, #환자단체연합회, #무릎 절단, #장기요양기관평가, #화상
댓글3
이 기사의 좋은기사 원고료 4,000
응원글보기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