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용산전자상가의 밤하늘이다. 이곳 노동자들은 거칠고 투박하다. 생각보다 생활을 말하길 좋아하고, 쉽게 정을 나눈다.
 용산전자상가의 밤하늘이다. 이곳 노동자들은 거칠고 투박하다. 생각보다 생활을 말하길 좋아하고, 쉽게 정을 나눈다.
ⓒ 성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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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며 말한다.

"이 자식 진짜 못생겼네." 
"뭐?! 네 얼굴을 보고 얘기해, 인마!"

용산전자상가에서 일하는 이들의 대화다. 이처럼 고등학교 교실을 연상케 하는 대화가 많다. 종종 욕설도 많이 던진다. 심각한 다툼이 벌어질 때도 있다. "죽이니 살리니"하며 악다구니를 벌인다. 그러나 반나절만 지나면 다시 장난을 걸면서 즐거운 관계로 돌아간다.

그동안 이곳에서 일하며 '용산 사람들'의 관계를 지켜봤다. 말은 거칠고 투박하지만, 스스럼이 없다. 내가 처음 왔을 때, 이들은 동네 형들처럼 다가왔다. 어떤 게임 좋아하느냐고, 술은 얼마나 잘 마시냐고, 돈 벌어서 뭐 할 거냐고 물었다. 처음엔 조금 당황도 됐지만, 친해지고 나니 아주 편한 관계가 됐다. 중·고등학교 시절 사귄 친구처럼 자연스럽다.

이들은 겉치레를 잘하지 못한다. 마음에 없는 말은 잘 못하고, 하려고도 않는다. 대신 정이 많다. 몇 달 넘게 같이 지내면 서로 어떤 사정이 있는지 꽤 뚫는다. 뭘 좋아하고 뭘 싫어하는지 자연히 알게 된다.

나는 소위 지식인 사회라 하는 것을 얼핏 경험했다. 사회적 위치가 있는 이들도 정이 많거나 스스럼 없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관계에 있어 거리를 두고, 자신을 잘 안 보여주는 이들을 많이 봤다. 그것은 예의이기도 하고 관계 설정이기도 하다.

지식인이라 하면 공부를 많이 했기 때문에 세상 보는 눈이 다르다. 같은 지식인끼리도 다르다. 모두 각자 눈이 있다. 그 눈은 날카롭다. 통찰력이기도 하지만, 날카롭기 때문에 고집스럽다. 자신의 관념, 기준에 반하는 것과 타협하기를 어려워한다. 고집 센 지식인은 타인을 배제하는 때도 있다.

지식인들은 '생각 말하기'를 좋아한다. 자신의 생각에 동의하고 인정해 주는 사람이 많을수록 즐거워한다. 그러나 용산 사람들은 생각보다 생활 말하기를 좋아한다. 지식인들이 설명에 능한 반면 용산 사람들은 이야기를 좋아한다.

이들은 낚시 가서 고기를 낚은 이야기와 휴대폰 게임 이야기, 연애 이야기, 텔레비전 방송 이야기 등 일상에서 겪는 것들을 이야기한다. 그걸 재밌게 말하는 사람을 좋아하고, 직접 재밌게 말하고 싶어한다.

소소한 일상을 이야기하기 때문에 타인과 갈등을 일으킬 소지가 적다. 재밌으면 좋은 것이고, 재미 없어도 거기서 그친다. 소신이나 관념, 판단을 좋아하지 않는다.

오래 전, 유명한 논객 고종석씨는 <인물과 사상>에 '도량에 대해서'라는 글을 썼다. 요지인즉, 주변인 중 보수 진영 사람이지만 상대에 대한 인간적 배려와 도량이 넓은 이들이 있다는 것, 반면에 진보적 인사들 가운데 사소한 것에도 까다롭게 굴고 전투적이며 도량이 좁은 사람이 많다는 것이었다.

이 말이 꽤 일리 있다고 느꼈지만, 나는 '도량'으로 오히려 다르게 구분할 수 있다고 본다. 지식인과 그렇지 않은 이들 간의 구분이다. 앞서 말했듯이 지식인들은 저마다 세상 보는 눈이 날카롭고, 판단하길 좋아한다. 자신의 말이 옳다고 증명되길 바란다.

반면에 용산 사람들과 같은 소시민들은 명제 말하기, 판단하기보다 이야기하길 즐기기 때문에 논쟁을 싫어하고, 생각을 기준으로 편 가르는 것도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지식인들이 사회에서 맡은 역할은 막중하고, 그 공적은 크다. 그러나 그들이 소시민의 일상을 이해하는 체감은 부족하다. 때문에 소시민의 계몽, 또는 의식화에 뜻이 있어도 접근이 쉽지 않다. 어쩌면 누구의 잘못이라기보다 어쩔 수 없는 보편적인 현상이라 할 수 있겠다.

지식인이 아니라고 밝히는 이들이 앞으로 정치 뉴스를 주의 깊게 보거나 인문 서적을 탐독하는 일이 벌어지려면 아주 오랜 시간이 필요할지 모른다. 다만 내가 겪고 있는 용산 사람들이 일하고 놀고 이야기하길 좋아하는 것은 즐거움과 아름다움이라 말하고 싶다.

이들은 앞으로도 거친 말을 주고받으며, 때로는 다투고 다시 화해하고 부대끼는 생활을 거듭할 것이다. 투박하고 거칠지만, 이들의 삶은 그 자체로 존중할 만한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태그:#노동,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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