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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사람들이 한국에 와서 통일에 대해 이야기하면 깜짝 놀랍니다. '너희들은 어떻게 통일문제를 비용으로 따지냐?' 서독은 한국과 같은 자본주의 체제였지만, 통일문제를 돈으로 환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생각했다는 것이죠. 제가 얼마 전 참석한 회의에서도 한국 측에서 경제적인 측면을 언급하니깐 독일 측에선 '우린 비용을 중요하게 거론하거나 그것 때문에 통일이 힘들다고 생각해본 적이 없다'라고 반응했습니다. 이게 우리사회가 뭔가 잘못 되어가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는 거죠."

지난 18일 오후 2시 신촌의 한 이야기 카페에서 다준다 연구소(소장 이동학)가 윤영관 전  장관을 만났다.

현재 서울대학교 외교학과 교수인 그는 참여정부에서 초대 외교통상부 장관으로 일하며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6자회담 현장을 누볐다. 또 미래전략연구원 원장과 한국정치학회 상임이사를 10년 넘게 맡아왔다. 청년들과 만난 이 자리에서도 그는 주로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이야기했다.

주변국의 원심력 이겨내는 통일 구심력 만들어야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이야기 중인 윤영관 전 장관
▲ 윤영관 전 장관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이야기 중인 윤영관 전 장관
ⓒ 박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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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통일을 보면 한번 사태가 터지기 시작할 때 급속도로 발전합니다. 정신을 차릴 수 없을 정도로 급속도로 진행되기 때문에 우리가 철저하게 주인의식으로 뭉쳐 있어야 합니다.  철저히 우리의 이익을 계산하고 그것을 실현해 나가기위해 노력해야 하는데, '우리는 고래싸움에 등터지는 새우인데 대국들 싸움에 뭘 어떻게 하겠어?' 하는 식으로 기가 죽어 있으면 되는 일이 없죠. 정말로 우리가 그런 준비가 돼 있나 하는 의문이 들어요."

윤 전 장관은 통일문제를 다루기 위해 우선 주변국들과의 관계에 대해 파악할 것을 주문했다. 한반도의 지정학적 위치상 네 강대국인 미국과 일본, 중국, 그리고 러시아의 이해관계를 잘 따져야 한다는 것. 또 이들 네 나라가 통일보다는 한반도의 현상유지를 원한다고 진단했다.

"네 나라들 입장에서 보면 한반도가 통일이 된다면 그 이후에 어느 나라로 붙을지가 불안해 서로 의심하는 거예요. 미국은 한반도가 통일된 다음에 중국하고 가깝게 되면 곤란하다고 생각하는 것이고, 중국은 반대로 통일된 한국이 일본, 미국과 연합해서 중국을 포위한다면 곤란하다고 보는 것이겠죠. 그런 시나리오는 분단된 현상의 유지보다도 못하다고 생각하는 거죠. 다들 미래의 그런 불확실함 때문에 한반도가 통일이 되기보다 가능하다면 오래오래 현상유지를 했으면 좋겠다고 판단하는 거예요. 나는 그걸 바깥에서 통일하지 못하도록 힘이 작용하는 '원심력'이라고 표현합니다."

하지만 이런 상황을 우리가 적극적인 주인의식을 갖고서 대응해 나간다면 극복할 수 있지 않겠느냐고 그는 되물었다. 그를 통해 주변국들과의 이해관계를 잘 조율해 나가면 그들도 우리의 통일에 적극적으로 찬성할 거라는 것.

구체적으로는, 중국에겐 그들을 포위할 의도가 없으며 통일이 되어도 한미동맹이 필수임을,  미국에게도 한반도의 평화와 안정을 위해선 중국의 협력이 중요하다는 것을 이해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또한 러시아에게는 그들이 얻게 될 경제적 이득을, 일본에게는 동맹관계를 유지해나갈 것을 보장하면 통일에 협조적으로 나올 것이라고 주장했다.

보수와 진보 뛰어넘는 통일 전략 세워야

"독일의 경우 아데나워의 서방정책과 빌리 브란트의 동방정책이 통일로 결실을 맺게 되는 거죠. 한국에서도 보수적인 정책과 진보적인 정책이 합리적인 관점에서 수렴하지 못할 이유가 없어요. 그런데 (한국은) 국가적 이익보다는 정당의 이익을 우선하니깐 상대방의 정책을 극단화시키면서 햇볕정책을 퍼주기라 몰아붙이고, 다른 쪽의 정책을 호전적이다, 전쟁하려는 거냐고 몰아붙이는 거죠. 참 안타까워요."

독일 통일 당시 서방과의 협력을 강조하던 보수적인 기민당의 헬무트 콜 총리가 사민당의 동구권 및 동독과의 협력도 지향하는 '동방정책'을 과감히 차용해 통일을 이루어 냈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를 한국의 상황에 어떻게 적용시킬 수 있을까? 이에 대해 윤 전 장관은 보수의 원칙과 진보의 포용을 결합시킬 것을 주장했다. 즉, 개성공단 등의 경제협력을 하되(포용), 북한이 시장원리에 충실하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독일인들에 비해, 통일을 경제적 비용의 차원에서 접근하려는 대중들의 인식에 대해서도 일침을 가했다. 민족은 결국 하나의 운명 공동체며, 문화와 피를 공유한 것 그 이상이기에 돈으로 따질 수도, 따져서도 안 되는 문제라는 것이다. 또한, 우리와는 상반되는 독일인들의 자세를 상기시켰다.

"당시에 그 사람들이 그렇게 이야길 했거든요. '통일이 힘들 거라고는 생각했지만, 1989년 베를린 장벽 무너지고 통일로 가는 과정이 전개되었을 때 이렇게 생각했다. 이 기회를, 사명을 우리 세대한테 준 하느님에게 감사한다.'라고요."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이야기 중인 윤영관 전 장관
▲ 윤영관 전 장관 한반도 통일 문제에 대해 이야기 중인 윤영관 전 장관
ⓒ 박한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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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만 7천 탈북주민 포용정책 펼쳐야

"남한과 북한 사람들 사이에 화학적인 결합이 필요한데, 이는 하루 이틀 만에 되는 것이 아닙니다. 10, 20년이 넘게 걸릴 수도 있어요. 정말 우리가 통일을 원한다면 화학적인 결합을 어떤 식으로 용이하게 할 것인지 지금부터 머리를 써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연습이라도 했었어야죠. 근데 이미 우리는 늦었어요. 우리 중 누가 탈북주민들에 대해 진지하게 관심을 쏟고 있나요? 그러다보니깐 다시 탈남하는 사람도 생깁니다."

그는 통일을 준비하는데 있어 우리들 스스로가 충분히 대비가 되어있는지 반문했다. 당장 주변의 탈북자들에 대해서도 무심한 상황에서 통일이 이루어진다고 해서 2천5백만 주민들을 제대로 포용할 수 있겠냐는 것이다.

"한국 생활이 괴롭기 짝이 없고, 이등시민 취급받고, 정말 살 곳이 못 된다면 북에 있는 주민들이 왜 통일을 원하겠어요? 그러니까 2만 7천명 탈북 주민들을 단순히 돈으로 지원할 게 아니라, 완전히 체제가 다른 남쪽에 어떻게 하면 빠른 시일 내에 성공적으로 자립을 해서 살아갈 수 있을지 체계적으로 연구하고 지원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추가로 그는 정부의 대북정책도 정치와 외교를 넘어 사람 중심으로 갈 것을 역설했다. 개성공단이나 인도적인 지원 등을 통해 북한 주민들의 삶을 좀 더 인간적일 수 있도록 돕고, 핵문제 등으로 인해 긴장감이 조성될 때도 환경이나 의료협력 등 사람에 대한 지원은 지속할 수 있지 않느냐고 되물었다.

강연이 끝나갈 때쯤, 한 청중이 통일을 하게 되면 현실적으로 경제적인 타격이 오지 않겠는지 되물었다. 평상시라면 몰라도 현재의 남북 모두 경제상황이 양호하지 않다는 것.

이에 대해 윤 전 장관은 남북한이 교류를 할 때 경제가 오히려 활성화되었음을 예로 들었다. 개성공단 등의 경제협력을 통해서 일자리를 창출하는 한편, 북한의 싼 임금을 이용할 수도 있다는 것. 또한 통일이 된다면 북한에 사회 인프라를 구축하는 과정에서 천문학적인 투자가 발생함과 동시에 일자리가 대량으로 창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마지막으로 윤 전 장관은 통일을 이룰 미래의 지도자를 꿈꾼다면 자신의 잇속만이 아니라 자신의 삶을 통해 주변과 공동체를 풍요롭게 만들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한다는 조언으로 강연을 마무리했다.


태그:#통일, #통일대박, #윤영관, #다준다연구소, #독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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