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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상 깊게 들은 구절 하나가 내 생각을 헤집어 놓을 때가 있다. 문화학자 엄기호 선생님의 말씀을 들었을 때 특히 그랬다. 그의 저서 <단속사회> 소개로 참여한 팟캐스트 방송에서, 우리 사회가 왜 '단속사회'가 되었는지에 대해 "그냥요"라는 표현을 쓰셨다.

그는 "인간의 삶이라는 것은 거의 우연의 연속이다. 인과관계로 연결되어 있다기 보단, 의미를 회수하는 형태로 연속성을 만들어 가는 것이 아닐까"라고 풀이하셨다. 처음에는 당황했지만, 그 말을 듣고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내 인생에서도 많은 일이 계획적으로 된 것 같지는 않았다.

그와 마찬가지로 우리 가족이 반려견을 기르게 된 특별한 계기는 없었다. 그냥 우연히 2009년 2월 말티즈를 분양받게 되어 기르게 된 이후로, 우리 삶에서 반려견은 빼놓을 수 없는 존재가 되어 버렸다.

어느날 갑자기 세상을 떠난 반려견 '예삐'

공부하는 내 곁에 앉아 있는 우리 집 첫 번째 반려견, 예삐
 공부하는 내 곁에 앉아 있는 우리 집 첫 번째 반려견, 예삐
ⓒ 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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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년 동안 길렀던 말티즈는 작년에 세상을 떠났다. 2014년 6월의 마지막 날, 그날은 그냥 평범한 월요일이었다. 주말에 가족들 때문에 낮잠 한 번 시원하게 자지 못했던 강아지는 여느 직장인들처럼 월요병을 앓았다. 월요일이 되면, 온종일 집에서 공부하는 내 뒤편에서 숙면을 취했다. 자다가 가끔 깨곤 했는데, 그날은 많이 피곤했는지 가족들이 출근한 이후 8시간을 내리 잔 것 같다.

늦은 오후, 강아지는 엄마와 함께 동물병원에 갔다. 강아지는 동물병원 입구에 들어서자 자기가 제일 싫어하는 동물병원임을 감지한 순간, 목에 매고 있던 목줄을 뚫고 탈출했다. 흥분한 강아지는 도로변을 뛰어다니기 시작했다.

나는 비보를 접하자마자 동물병원으로 뛰어갔다. 이미 강아지의 뒷다리는 이미 싸늘히 차가워져 있었다. 강아지는 작별인사를 나눌 틈도 주지 않고 세상을 떠났다. 눈은 반쯤 뜨고, 피를 토한 채 누워 있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뒤늦은 작별인사를 했다. 그 녀석은 내 마지막 인사를 들었을까.

시끄러워야 할 집안에는 정적만 흘렀다. 이제는 외출 후 집에 돌아와도, 격하게 환영해 주던 그 누구도 없었다. 예민해서 '예삐'라고 불릴 정도로 작은 사소한 소리에도 소리치고 경계하던 그녀의 목소리는 다시는 들리지 않았다. 그 녀석의 울음소리 때문에 혹여 주변에 피해를 끼칠까 봐 마음 편할 날이 없었는데, 이젠 그 친구가 사라져도 마음이 편하지 않았다.

내 양쪽 팔에는 강아지를 앉고 있었던 느낌이 너무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내가 공부하고 있으면 내 다리에 올라와 다리가 욱신거릴 정도로 자던 강아지의 묵직한 무게는 이제 느낄 수 없었다. 며칠 동안 밥도 먹지 못하고, 일상생활도 무너져 버렸다. 그러던 중, 어렸을 때부터, 기르던 강아지를 하늘나라로 보낸 적이 있다는 친구의 이야기에 다시 밥을 먹을 수 있었다.

세상을 떠난 날 여기에서 온종일 잤다.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찍어 두었다.
 세상을 떠난 날 여기에서 온종일 잤다. 마지막 순간을 기억하고 싶어서 찍어 두었다.
ⓒ 신진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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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동안 아버지도 강아지도 모두 내 곁을 떠났다. 이젠 누군가를 새로 알고 싶지도 않았고, 새로운 누군가를 받아들일 마음의 공간도 없었다. 새로운 사람을 알아간다는 즐거움 보다, 이별의 순간이 먼저 떠올랐으니까.

그래서 가족끼리 암묵적으로 반려견을 다시 기르는 것에 관해 이야기를 꺼내지 않았다. 하지만 애도의 시간이 지나자, 어머니가 다시 기르고 싶어 했다. 간절하게 날 쳐다보는 어머니의 시선을 매번 거절할 수 없었다. 그래서 어머니와 협상했다. 강아지를 다시 기르고 싶으면 '유기견'을 입양하는 건 어떻겠냐고. 사실 유기견을 내가 강력하게 주장하게 된 건 2014년 봄, 반려견 세미나에서 '강아지 출생의 비밀'을 알고 나서다.

강아지가 어떻게 태어나는지, 당신은 아시나요

적어도 내가 내 새끼를 낳게 된다면 한 번 읽어봤을 육아서적을, 강아지를 6년씩이나 길렀으면서 강아지를 기르는 방법에 대해 공부를 제대로 하지 않았다는 걸 뒤늦게 반성하고 참여한 세미나였다. 노트와 펜, 그리고 녹음기까지 대동하며, 모든 걸 다 습득할 만반의 준비는 다 하고 있었다. 특별한 기술을 알려줄 것 같았던 세미나에서, 반려견 행동 전문가는 내가 한 번도 생각해보지 않았던 강아지들의 탄생에 대한 이야기를 꺼내기 시작했다.

나는 참 순진했다. 강아지는 자연스러운 교배로 탄생되는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강의 주제와 관련 없는 강아지의 임신에 대한 이야기를 들으며 뭔 소린지 감을 잡지 못했다. 식용으로 생산되는 강아지에 대한 이야긴가, 했다. 나는 보신탕 같은 거 먹지 않으니까, 하며 흘려 들으려는 순간, 사육사의 말이 내 머릿속을 강타하기 시작했다.

그는 한국 대부분의 강아지들은 (90% 이상) 공장식 번식장에서 성폭행과 같은 강제 임신을 통해서 태어난 강아지라고 했다. 삼 층으로 된 아주 작은 상자에 수컷과 암컷이 들어가 평생토록 강제적인 출산과 임신을 반복한다고 했다. 그렇게 태어난 강아지들은 걸음을 막 시작할 때 즈음 어미와 떨어져 판매장으로 이동된다고 했다. 물건 찍어내듯 생산된 강아지가 건강하겠는지 생각해 보라고 거듭 강조하셨다.

공장식 번식장 모습
▲ CBS <세상을 바꾸는 시간, 15분 - 강형욱 반려견 훈련사편> 방영분 일부 갈무리. 공장식 번식장 모습
ⓒ CB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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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 나는 가끔 강아지를 쓰다듬으며 "엄마 기억나? 엄마 안 보고 싶어?"라고 소곤댔다. 그런 예삐는 '네가 내 엄만데, 왜 자꾸 엄마를 물어보느냐'고 짜증 났겠다 싶었다. 애견 가게에서 분양받은 예삐도 작은 상자 속에서 태어났을 것이다. 태어나서 눈을 떠 엄마를 보기 시작하고, 엄마의 냄새를 기억하기도 전에 헤어졌을 테니까. 아마 제대로 보고 느끼기 시작했을 때에는, 예삐 곁에 우리 가족이 있었을 거다.

세미나가 계속 진행되는 동안, 사육사의 얼굴을 쳐다보지 채 한참 동안 노트에 낙서만 끄적거렸다. 터져 나올 것 같은 눈물은 목구멍으로 흘려보냈다.

살아 있는 것조차 고통이었을 어미의 삶은 어땠을까. 그녀의 뱃속에서 자란 자식들은 엄마의 불안감 때문에 초조하기만 했을지도 모르겠다. 나의 이기심 때문에, 나의 행복을 위해서 누군가는 엄청난 불행을 안고 살아가야만 했다. 세미나를 들은 후, 죄책감이 나를 한동안 압박했다. 이제는 더 많은 수를 생산하기 급급해 하는 공장식 번식산업에 이바지하는 사람이 되지 않기를 다짐했다.

하지만 사육사가 주장하는 건강한 부모 밑에서 태어난 강아지를 입양하기는 쉽지 않았다. 인터넷에서 이루어지는 분양도 결국 공장식 번식에서 태어난 아이들이었기에 인터넷으로만 정보를 얻을 수 있는 나 같은 사람은 좋은 브리더(breeder, 전문적으로 동물을 교배하고 분양하는 사람)에 대해 안다는 것은 불가능했다. 그래서 유기견을 입양하는 게 가장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했다.

물론 유기견 입양하겠다고 생각하고 행동으로 옮기기도 사실 쉽지 않았다. 유기견은 건강하지 않을 거라는 것과 문제 행동이 많을 것 같다는 선입견을 바꾸기란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우리 집 첫 번째 반려견, 예삐는 스트레스를 받으면 이빨을 썼다. 그래서 집에 시한폭탄 하나를 기르는 것 같이 조마조마했고, 가족의 손과 발에는 상처 아물 틈이 없었다. 그것보다 더 심한 문제 행동이 있으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유기견 입양센터의 선생님과 우리가 고민하는 부분에 대해서 솔직하게 상담을 했다. 그리고 우리 가족이 기르고 싶은 반려견의 이상형을 조목조목 물어보셨다. 입양센터 선생님은 상담내용을 바탕으로 우리 집에 가장 어울릴 만한 강아지를 추천을 해주셨고, 강아지의 성격적 장단점에 대해 상세히 설명해주셨다. 다시 유기견이 파양되지 않기 위한 서로의 배려였다.

이상형은 이상형이랬는데, 그래도 우리가 희망하는 조건의 강아지를 입양하게 되었다. 아, 맞다. 암컷을 기르고 싶어 했던 것만 제외하면 말이다.

우연한 기회로 분양한 강아지 때문에 유기견을 입양하게 되었다. 우연한 기회로 많은 걸 배우고 깨우치게 된 것 같다. 하양이를 기르면서 어떤 걸 더 배우게 될까.


태그:#유기견, #하양이 , #공장식 번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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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구의 과거가 궁금한 빙하학자 (Paleoclimatologist/Glaciologis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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