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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의 출간 배경과 의미에 대해 설명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김두우 전 청와대 홍보수석이 30일 오후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이명박 전 대통령 회고록 <대통령의 시간> 출간 기념 기자간담회에 참석해 책의 출간 배경과 의미에 대해 설명한 뒤 자리를 나서고 있다.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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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공개 회담을 폭로하는 것은 국제관례에 어긋나는 일이었다."(360쪽)

이명박 전 대통령은 자서전 <대통령의 시간>에 이렇게 썼다.

2011년 5월 베이징에서 이뤄진 당시 김태효 청와대 비서관과 북측 간의 비밀접촉 내용을  북한이 같은 해 6월 일방적으로 전격 공개하면서 '남측이 정상회담을 구걸하며 돈봉투를 줬다', '남측이 천안함사건과 연평도 사건에 대한 사과을 애걸했다'는 식으로 주장했던 것을 반박하는 대목이었다.

"일부 참모는 이러한 내용을 언론에 소개하자고 건의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되면 더 이상 중국 지도부와 속 깊은 대화를 나누지 못할 게 뻔했다. 나는 중국 정상과 논의된 북한 문제와 관련한 내용을 일체 언론에 공개하지 못하도록 엄명했다. 중국 정상들이 나를 신뢰하고 솔직한 대화를 나눈 것은 비밀이 지켜졌기 때문이라 생각한다."(286쪽)

그는 임기 동안 한중 정상회담에서 줄곧 "21세기의 중국은 국제사회를 이끄는 책임 있는 일원이다. 따라서 중국은 북한과의 관계도 재설정해야 한다"고 했다면서, "내가 중국 정상과의 대화 내용을 그때마다 일일이 공개했다면 당시 국내 정치에는 분명히 도움이 됐을 것"이지만 "정치적 손실이 있더라도 한·중 정상 간에 신뢰를 쌓는 것이 국익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해서 그렇게 하지 않았다고 강조했다.

이 전 대통령은 이렇게 써놓은 바로 그 책의 다른 페이지들에서는 한중 정상회담과 남북 접촉 비사들을 '생생하게' 공개했다.

그는 특히 원자바오 전 중국 총리가 남북정상회담을 '주선'하는 과정을 상세하게 소개했다. 

2011년 5월 도쿄 한중일 정상회담 자리에서 만난 원 총리가 "김 위원장은 아무런 조건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대통령께서 북한이 남북 정상회담에 여러 가지 조건을 제시했다고 제게 알려주셨습니다. 솔직히 말씀드리면 김정일 위원장 밑의 사람들의 권력이 매우 크다는 것을 느꼈습니다. 그래서 저는 대통령께서 김정일 위원장을 직접 만나시는 것이 옳다고 생각합니다"라고 제안한 것을 비롯해 3차례 정상회담을 '주선'했다고 밝혔다.

심지어는 자신이 "북한은 젊은 사람(김정은 노동당 제1비서)이 권력을 잡았다. 앞으로 50~60년은 더 집권할 텐데 걱정"이라고 말하자, 원 전 총리가 "역사의 이치가 그렇게 되겠습니까?"라며, '북한 붕괴론'에 동조하는 듯한 발언을 했다는 내용까지 적었다.

"중국, 언론에 공개되는 것 매우 꺼려"라고 써놓고는...

2011년 5월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일본 미야기현 아즈마 종합운동공원내 실내체육관에서 이 지역 농산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오이를 시식하고 있다.
 2011년 5월 21일 이명박 대통령과 원자바오 중국 총리, 간 나오토 일본 총리가 일본 미야기현 아즈마 종합운동공원내 실내체육관에서 이 지역 농산물의 우려를 불식시키기 위해 오이를 시식하고 있다.
ⓒ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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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중국은 북한 문제에 대한 정상 간 대화 내용이 언론에 공개되는 것을 매우 꺼려했다"(296쪽)고까지 적어놓고는 정작 자신은 온갖 얘기를 다 쏟아낸 걸 보면, 과연 '유체이탈 화법의 달인'이라 할 만하다.

원 전 총리가 은퇴했다 해도, 신구 지도부 간 유대가 남다른 중국 지도부의 특성을 볼 때 이후 한중 관계에 악영향을 끼칠 가능성이 높은 내용들이다.

북한에 대해서는 훨씬 더 심각하다.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국장 때 방한한 김기남 노동당 비서가 김정일의 '정상회담' 메시지를 전달해왔다는 것을 비롯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임태희 노동부 장관 라인, 김숙 국정원 1차장-유경 국가안전보위부 부부장 라인, 김숙 유엔대사-신선호 유엔 주재 북한대사 간 뉴욕채널 등 남북 간 비선 등 접촉라인을 상세하게 공개했다.

더욱이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2009년에 싱가포르에서 임태희 당시 노동부 장관과 만났을 때 "(합의문 없이 북으로) 그대로 가면 죽는다"고 말했다는 대목까지 적었다. 김양건은 현재 북한에서 대남 업무를 총괄하는 대남 비서인 인물이다. 그가 '지는 해'라 해도 우리에게는 여전히 중요한 접촉라인이다.

MB정부 경제 제재로 북한 배급제 붕괴?....90년대 말에 이미 붕괴

북한에 대해 온갖 이야기를 했지만, 이 전 대통령은 북한 상황에 무지를 드러내기도 했다. "북한의 도발에 대한 우리의 경제 제재로 북한의 배급제는 붕괴됐다."(370쪽)고 했지만, 북한의 배급제는 2010년 이명박 정부의 5.24조치가 아니라 1990년대 후반 이른바 '고난의 행군'시기에 붕괴됐다.

현 정부 외교안보부서의 한 당국자는 "퇴임 2년 된 전직 대통령이 저렇게 하면 현 정부로서는 부담"이라며 "북에 (김태효 비서관이 돈봉투 주려했다는 북한 폭로로) 한번 당했으니까, 우리도 한다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비판했다.

청와대 고위 관계자도 기자들과 만나 "남북 대화를 비롯해 외교 문제가 민감한데 세세한 이야기가 나오는 게 외교적으로 국익에 도움이 될지 우려된다"고 비판했다. 분단 70주년을 맞아 남북 간 접촉을 시도하는 현 정부로서는 사실상 '북한과 남북정상회담을 해서는 안된다'는 이 전 대통령의 재뿌리기에 화가 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가뜩이나 남북관계가 파탄상태인 상황에서 북한이  이 전 대통령의 회고록 내용을 반박하고나올 가능성이 높다. 그렇게 마찰이 심해질 경우 실마리를 찾기는 더욱 어려워질 것이기 때문이다.

남북정상회담 회의록 공개한 박근혜도 할 말 없어

하지만 국가정보원 등 국가기관의 2012년 대선개입 의혹 사건이 파장을 일으키는 상황에서 남북정상회담 회의록을 공개하는, 전 세계 외교사에 전례 없는 행동을 한 박근혜 정부도 이 전 대통령을 비판할 자격이 없다는 점은 분명하다.

또 하나 분명한 것은, 어떤 이유로든 북한 핵 문제를 방기한 이 전 대통령 임기 5년 동안 북한의 핵능력은 소형화, 경량화의 문턱까지 왔다는 점이다.


태그:#이명박 , #대통령의 시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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