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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 사회는 지식이나 정보를 얼마나 점유하는가에 따라 이윤의 크기가 달라진다. 때문에 특정인이 지식·정보에 관한 배타적인 권리를 행사할 수 있도록 보장한 지적재산권은 현 사회에서 가장 중요한 권리 중 하나다. 지적재산권을 침해하는 해적(海賊)행위를 불법으로 규정하고, 엄격하게 처벌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 있다.

하지만 지적재산권을 인정하는 사회 전반의 분위기와는 달리 이를 반대하는 움직임도 있다. 예컨대 카피레프트(copyleft) 운동이나 최근 여러 나라에서 성장하고 있는 해적당 등이 그것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지적재산권 자체를 반대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지적재산권을 악용해 지식과 정보를 특정한 집단이 독점하는 것을 막고자 하는 것이다.

지식·정보를 생산한 자의 권리를 보장해주는 것과 특정 집단의 이익이 아니라 인류의 진보를 위해 지식·정보를 공유하는 것은 서로 상충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생산자의 시각에서 보면 자신의 정당한 몫을 가지길 원하는 것이 옳으며, 사회적 시각에서 보면 지식·정보가 공유되는 것이 사회의 진보에 도움이 되는 것은 명백하기 때문이다.

최초의 저작권 분쟁

<해적판 스캔들>, 책  표지
 <해적판 스캔들>, 책 표지
ⓒ 사계절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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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적판 스캔들>은 앞서 언급한 지적재산권의 딜레마에 관한 고민이 담긴 책이다. 고민을 진전하기 위한 첫 걸음은 문제의 시발(始發)로 돌아가는 것이다. 이에 따라 저자는 지적재산권의 개념이 처음 법으로 정립된 18세기 영국으로 독자들을 이끈다.

저자에 따르면 1710년 영국에서 제정된 '앤여왕법'이 최초의 저작권법이라고 한다. 이는 영국의 서점주 조합이 "학문의 진흥을 위해 문학의 소유권을 법률로 정해달라고 의회에 청원(76-77쪽)"한 것에서 연원했다. 앤여왕법은 11조로 구성돼있는데, 핵심 내용은 다음과 같다.

제1조 책의 저작자 및 저작자로부터 판(版)을 양도받은 자에게는 인쇄의 독점권이 있다. 이미 출판된 책은 1710년 4월 10일부터 21년간, 앞으로 출판되는 책은 공표된 때부터 14년간 보호된다.

제2조 보호를 받으려는 자는 출판하기 전에 책을 서점주 조합에 등기해야 한다.

제11조 14년간 보호 기간이 끝날 때까지 저자가 살아 있으면 인쇄 독점권은 일단 저자에게 돌아가고 다시 14년간 보호된다.(78-79쪽)

앤여왕법은 책의 저작자 및 저작자로부터 판(版)을 양도받은 자에게는 인쇄의 독점권이 있다고 명시한다. 여기서 저작권과 인쇄의 독점권은 다른 개념이다. 하지만 당시 영국에서는 저자에게 지급하는 인세의 개념이 없었다.

대신 저작권자가 작품의 권리 자체를 서점주 조합에 파는 형식의 지적재산 거래가 이뤄지고 있었다. 때문에 서점주가 저작권자의 작품을 인쇄해 막대한 돈을 벌어 들이더라도 저작권자는 서점주에게 작품의 권리를 팔았기 때문에 인쇄로 남긴 이윤의 배부를 요구할 수 없었다.

하지만 당시 영국 출판 시장에서 서점주 조합의 힘은 막강했기 때문에 이러한 관행은 문제없이 횡행할 수 있었다. 그런데 앤여왕법이 법으로 보호하는 21년의 기간을 넘긴 작품이 등장하면서 문제가 생기기 시작했다. 서점주 조합이 해적판이라 부르는 책들이 나타난 것이다. 이는 주로 스코틀랜드에서 출판됐고, 이를 주도한 대표적인 인물이 알렉산더 도널드슨이다.

당시 스코틀랜드에서 유통된 해적판은 서점주 조합이 출판한 책보다 상당히 저렴했다. 가격 경쟁력을 바탕으로 도널드슨은 사업을 확장했는데, 이러한 도널드슨의 해적판 유통으로 피해를 입은 서점주 조합은 도널드슨을 저작권 침해로 제소했다.

최초의 저작권 분쟁을 촉발한 책은 제임스 톰슨의 <사계절>이었다. 앤여왕법에 따르면 당시 <사계절>의 법적인 보호 기간은 끝난 상태였다. 하지만 <사계절>의 저작권을 소유하고 있었던 런던의 서점주 베케트는 생각이 달랐다. 저작권은 영구적인 것이라 생각했고, 이는 서점주 조합의 생각과도 같았다. 베케트를 필두로 한 서점주 조합은 도널드슨과의 재판을 통해, 손실을 만회할 뿐만 아니라 영구적인 저작권을 획득하려는 노림수가 있었다.

사적 이윤의 창출 vs. 인류의 발전

지금 논쟁이 되고 있는 영구성은 꺼림칙하고 이기적인 것입니다. 그것은 어떻게든 반대해야 할 것일 뿐 아니라 참을 수 없는 것입니다. 지식과 과학이 이러한 거미줄에 갇혀서는 안 됩니다. (193쪽)

3주 동안 진행된 도널드슨·베케트 재판은 엎치락뒤치락하는 과정이 있었지만 결국 도널드슨이 승리했다. 얼핏 보면 이 재판이 저작권의 찬반 논쟁으로 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 재판은 저작권의 영구화를 주장하는 측과 앤여왕법을 유지하자는 측의 싸움이었다. 현재의 카피레프트 운동이나 해적당의 활동도 동일한 맥락에 있다.

권력이나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지식과 정보를 독점하려는 시도는 어느 때나 있어왔다. 하지만 지식과 정보의 생산은 한 사람이 독자적으로 생산해낼 수 있는 성질의 것이 아니다. 인류가 오랜 기간 축적해온 지식과 정보의 기반 하에서만 가능한 것이다. '하늘 아래 새로운 것은 없다'는 말은 이러한 인식에서 기인한다.

물론 저자의 권리라는 의미로써 저작권은 분명히 중요하다. 분명히 하나의 작품은 누군가의 창작물이며 자본주의 사회에서 이윤을 창출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 하지만 그것은 인류의 유산이기도 함으로 그것을 창출해낸 인물의 사후에는 공유되는 것이 마땅하다. 그 위대함을 발판으로 사회와 문명이 발전할 수 있기 때문이다.

현재와 같은 인세 제도나 한시적 저작권 제도는 "신이나 하늘이 준 것이 아니라 문화를 독점하는 자에게 도전한 '해적'의 싸움에 의해 얻어진 것(324쪽)"이다. 그런데 지금에 와서는 저작권이 보호하는 배타적 권리의 기간은 계속해서 늘어나는 중이다. 앤여왕법의 21년에서 시작한 보호 기간은 이제 저작권자 사후 50년이 지나야 끝난다. 이러한 추세라면 언젠가 지적재산권의 영구화에 이를지도 모른다. 이제 18세기 영국이 했던 고민을 다시 시작해야 할 때다.

덧붙이는 글 | <해적판 스캔들>(야마다 쇼지 씀/ 사계절 출판사/ 2011. 9/ 정가 15,000원)

이 기사는 본 기자의 블로그 picturewriter.tistory.com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해적판 스캔들 - 저작권과 해적판의 문화사

야마다 쇼지 지음, 송태욱 옮김, 사계절(2011)


태그:#해적당, #카피레프트, #해적판, #앤여왕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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