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곰스크로 가는 기차  표지
▲ 곰스크로 가는 기차 곰스크로 가는 기차 표지
ⓒ 북인더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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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리츠 오르트만의 <곰스크로 가는 기차>에 대한 잔상.

남자는 어렸을 적에 곰스크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내가 아주 어렸을 때, 아버지는 나를 무릎에 앉혀놓고 곰스크에 대해 설명해주셨다. 곰스크, 그 멀고도 멋진 도시... 언젠가 곰스크로 떠나리라는 것은, 내 성장기에 더 말할 것도 없이 자명한 사실이었다. 곰스크는 내 유일한 목표이자 운명이었다. 그곳에 가서야 비로소 내 삶은 새로 시작될 터였다.

곰스크로 떠나려던 그의 꿈은 거의 실현될 뻔했다. 아내와의 결혼 후, 그는 있는 돈 없는 돈을 탈탈 털어 곰스크행 기차표를 끊었다. 기차를 타고 그들은 곰스크로 향했고, 그냥 그렇게 앉아있으면 남자는 조만간 자신의 운명과 맞닥뜨릴 수 있을 터였다.

잠시 기차는 정차했고, 그와 아내는 간이역에 내려 맛있게 점심을 먹는다. 산책이나 할 겸 시골 마을을 구경하던 아내는 날아갈 듯한 기분에 휩싸여 산등성이로 오른다. 아내는 아름다운 풍경에 홀딱 빠져 그에게 조금 더 앉아있자고 말한다. 기차가 떠날까 걱정이 되었지만, 그는 아내의 아름다운 모습에 넋을 잃고 그냥 그렇게 앉아 있는다. 그냥 그렇게 기차를 떠나 보낸다.

아내와 나는 그저 우연히 여기에 정착했다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역전의 허름한 건물로 찾아 들어간 그들은 방이 없다는 주인을 설득해 깨진 유리창이 그대로 방치돼 있고 유리 파편들이 바닥에 흩어져 있는 방에서 하룻밤을 묵는다. 일찍 잠에서 깬 남자는 아내에게 말한다. 기차가 오면 타고 가자. 아내는 알았다고 대답하며 바닥을 쓸고 방안을 꾸민다. 

곰스크행 기차는 규칙적이지 않았다. 언제 다시 이곳을 통과할지 몰랐다. 그들은 이곳에서 기다려야 했다. 주인은 숙식을 해결해줄 테니 허드렛일을 하라고 젊은 부부에게 제안한다. 아무런 계획도, 돈도 없었던 부부는 그 제안을 받아들인다. 아내는 부엌일을, 남편은 머슴일을 한다.

기차가 왔다. 부부는 달렸다. 그런데 그들은 떠나지 못한다. 허망하게도 그들의 기차표는 유효기간이 지난 기차표였던 것이다.

"이 촌구석에서 영원히 머물 수는 없어요! 방법이 없을까요?"

방법이 없었다. 기차표를 다시 끊는 수밖에. 돈이 없었던 젊은 부부는 그곳에 계속 머물며 돈을 벌기로 한다. "극도로 고통스럽고 무료한 일상이 시작"된 것이다. 이곳을 빨리 떠나기를 바라며 남자는 한 푼, 두 푼 돈을 쓰지 않고 모아갔다. 반면, 아내는 남편엔 아랑곳하지 않고 이곳에서의 생활에 적응해간다. 마치 여기에서 영원히 살기라도 할 것처럼 그녀는 안락의자를 포함한 세간살이를 늘여갔고, 마을 사람들하고도 안면을 트며 이웃이 되어갔다. 그런 아내가 남편은 못마땅하다. 아내는 곰스크로 가고 싶지 않은 것 같다. 예전에 곰스크행 기차를 탔을 때도 아내의 반응은 시큰둥하지 않았던가. 이렇게 말했던 걸 보면.

"우린 모든 것에서 멀어져가는군요."

남편은 마침내 기차표를 샀다. "우린 떠나야 해." "알았어요." 이제는 기차를 타기만 하면 된다. 드디어 남자의 꿈이 이루어지기 직전이다. 그런데 아내는 무슨 짓인가. 왜 안락의자를 끌고 나오는가. 아내는 말한다. "안락의자를 갖고 가겠어요." 남편은 말도 안 되는 소리라며 악을 쓴다. "그럴 거면 나 혼자 가겠어." "그러세요." "도착하면 편지나 보내요. 주소를 적어서. 아이가 태어나면 편지 줄게요."

곰스크에 눈이 멀어 남자는 아내의 배가 불러오는 줄도 모르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절망하며 기차에서 내린다. 아내의 청대로 조금 더 안정적인 일자리를 얻은 남자는 조그만 촌구석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이 된다. 이후 곰스크에 대한 이야기는 남자의 입에서 나오지 않는다.

우리가 선택했던 것들이 곧 우리의 운명

소설을 읽는 내내 나는 남편에게서 아내를 떼어내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아내만 없었다면! 아내가 그를 산등성이로 이끌지만 않았다면! 아내가 그를 조금만 더 이해했더라면! 그는 꿈을 이룰 수도 있었을 텐데!

하지만 곧 나는 진정했고, 이런 1차원적인 독법에서 벗어나 조금 더 생각해보기로 했다. 생각을 더 해보자 나는 곧 아내의 존재가 무엇을 의미하는지 알 수 있을 것 같았다. 아내는 남자의 또 다른 목소리였던 것이다.

우리의 내면에는 두 개의 목소리가 공존하고 있다. 목표와 꿈, 이상을 향해 달려가려는 뜨거운 목소리 하나. 일상과 안정, 정착을 꿈보다 더 아름다운 가치라고 여기는 부드러운 목소리 하나. 남편과 아내의 다툼은 이 두 목소리의 충돌이었던 셈이다. 소설에서는 부드러운 목소리인 아내가 승리했다.

부드러움의 승리. 우리 대부분은 이런 승리를 거둔다. 다만, 우리는 이를 승리라 부르지 않을 뿐. 꿈의 포기, 무료한 일상, 운명을 거스른 삶이라고 부를 뿐. 소설에서 남자는 내내 아내를 원망한다. 하지만 결국 이는 자신의 우유부단함, 주저함, 단호하지 못함을 원망한 것일 뿐이다. 우리 대부분이 그러하듯이.

하지만 원망할 필요 있을까. 소설을 쓴 작가 프리츠 오르트만은 이렇듯 자신을 원망하고 있을 우리를 따뜻이 감싸준다. 오랜 세월 그곳에서 선생으로 지냈던 어느 노인의 목소리를 빌려 이렇게 토닥이면서.

"사람이 원한 것이 곧 그의 운명이고, 운명은 곧 그 사람이 원한 것이랍니다. 당신은 곰스크로 가는 걸 포기했고 여기 이 작은 마을에 눌러앉아 부인과 아이와 정원이 딸린 조그만 집을 얻었어요. 그것이 당신이 원한 것이지요. 당신이 그것을 원하지 않았다면, 기차가 이곳에서 정차했던 바로 그때 당신은 내리지도 않았을 것이고 기차를 놓치지도 않았을 거예요. 그 모든 순간마다 당신은 당신의 운명처럼 선택한 것이지요."

꿈이나 목표가 우리의 운명이 아니라, 우리가 했던 선택들이 우리의 운명이라고 노인은 말하고 있었다. 그러니 우리의 선택으로 창조된 지금의 삶을 무의미하다 여기면 안 된다는 것이다. 이 삶이 바로 우리의 운명이니까 말이다.

그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난 시절, 때로는 강요된 선택을 해야 하기도 했지만 결국 어찌 됐건 그마저도 내 선택이었으니 내가 했던 모든 선택들은 나로부터 비롯되었던 셈이다. 나로부터 비롯된 선택을 거쳐 만들어진 나, 내 삶, 내 사랑. 이를 운명이라 하지 못할 게 무얼까.

하지만 이러한 따뜻한 위로의 말도 꼬깃꼬깃 구겨진 채 오랜 세월 방치돼있는 우리 주머니 속 곰스크행 기차표에 대한 미련을 아예 없애주지는 못하는 것 같다. 습관처럼 다른 삶을 꿈꾸며 우리는 언젠간 타고 말 곰스크로 가는 기차를 떠올리고 또 떠올린다. 곰스크로의 여행은 실현될 수도 있고, 실현되지 않을 수도 있다. 우리는 기차표를 내밀 수도 있고, 평생 주머니 속에 재워둘 수도 있다. 우리의 운명이 무엇이 될지는 이러한 고민 끝의 선택에 달려있다. 

기차표 앞에서 너무 오래 고민할 필요는 없을 테다. 어느 삶이든 운명이 되기에 충분할 만큼 의미를 지니고 있을 테니까.

덧붙이는 글 | <곰스크로 가는 기차> ( 지은이 프리츠 오르트만 / 펴낸곳 북인더갭/ 2010년 12월 20일/ 값 1만 2000원)



곰스크로 가는 기차

프리츠 오르트만 지음, 안병률 옮김, 최규석 그림, 북인더갭(2018)


태그:#곰스크, #운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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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생처음 킥복싱>, <매일 읽겠습니다>를 썼습니다. www.instagram.com/clianna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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