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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니는 밤 늦게까지 간호조무사 시험 공부를 했다.
 어머니는 밤 늦게까지 간호조무사 시험 공부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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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 안 주무시고 뭐하세요?"

새벽 1시 30분. 동생이 대학교 앞 원룸으로 떠난 뒤, 늘 비어있던 녀석의 방에 불이 켜져 있다. 책상에는 두꺼운 책과 글씨 빼곡한 연습장이 펼쳐져 있고, 스탠드가 그 위를 환하게 비추고 있다. 지난번 '집에서 공부하려면 스탠드가 있는 동생의 방이 그나마 나을 것'이라고 했던 내 말을 엄마가 떠올리셨나보다.

도수 높은 안경을 쓰고, 한 손에 볼펜을 쥔 엄마가 "아유, 눈 시리다"라며 슬쩍 웃음을 짓는다. 고압증기소독, 폐기종, 투베르쿨린…. 필기를 가만히 들여다보니 뇌 활동이 가장 활발한 연령대라는 나조차도 쉽게 외울 수 없는 말이 가득하다.

엄마가 오는 9월에 있을 간호조무사 시험을 준비해보겠다는 '깜짝 발표'를 하셨을 때, 나는 '이제 좀 제발 쉬시라'며 극구 말렸다. 그러나 "먹고 살려면 나도 일해야지"라는 엄마의 한 마디에 내 주장은 금세 수면 밑으로 가라앉아 버렸다.

돈, 돈, 정말 그 놈의 돈이 뭔지. 경제활동인구의 울타리에조차 들지 못하는 취업준비생에 불과한 나의 힘은 엄마를 집에서 쉬시게끔 하기에는 너무나도 나약했다. 괜한 미안함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그렇게 다시 수험생이 되어버린 엄마를 지켜볼 수밖에 없었다.

단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한 우리 엄마

팍팍한 살림에 일터로 나온 40·50대 중년 여성이 10명 중 6명이나 된단다. 우리 엄마 또한 이제껏 단 한 번도 제대로 쉬지 못했다. 지난해 봄까지 엄마는 자그마한 동네 로스터리 카페의 '사장님'이었다. 오랜 시간을 들여 바리스타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학원을 다녔고, 또 성공적인 자영업을 위한 준비에 나섰다. 그러나 현실은 결코 녹록지 않았다.

손님으로 올 것이라 예상했던 주변 교인들의 발길은 점차 뜸해졌고, 카페가 있던 작은 거리에는 일 년도 채 되지 않아 네댓 개의 경쟁 업체가 생겨났다. 그 업체의 주인들 또한 엄마와 같이 힘들어하는 자영업자라는 것을 알면서도, 차마 정을 줄 수 없었다. 카페는 어느덧 가족들만 모여 두런두런 이야기나 나누는 '사랑방'으로 전락했다.

엄마는 도통 아르바이트생을 두려 하지 않으셨다. 부담스러운 고정 비용을 달마다 지출하느니, 차라리 당신이 더 오래 일하는 게 낫겠다는 생각에서였다. 가끔 나 또는 동생이 부족하게나마 일손을 돕기 위해 카페를 찾으면, 빈속에 연신 쓰디쓴 커피를 들이키며 억지로 노곤함을 쫓는 엄마의 모습을 볼 수 있었다.

매일같이 커피를 만들어내고, 바쁘게 설거지를 하던 엄마의 온몸에서는 파스가 떨어질 날이 없었다. 밤늦게 집에 돌아온 엄마의 등허리에 얼음장처럼 차가운 파스를 붙여드리면서 울컥, 하고 올라오는 무언가를 나는 애써 속으로 삼켰다.

간호조무사 자격증 위해 새벽까지 책상 앞에...

어머니께서 열심히 운영하던 카페를 결국 2년 만에 문 닫아야 했다.
 어머니께서 열심히 운영하던 카페를 결국 2년 만에 문 닫아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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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국 2년이 조금 넘는 기간 동안 운영해오던 카페를 어렵사리 넘기고, 이런저런 일을 거치면서 엄마가 고심 끝에 선택한 길이 바로 간호조무사였다. 이제 엄마는 매일 오전 9시 50분까지 간호학원에 나가 오후 4시까지 수업을 듣고는 집에 돌아오신다.

얼마 전에는 내게 큼지막한 가방을 하나 빌려가셨다. 꽤나 무거운 책과 도시락을 담기 위해서였다. 간호학원에서의 점심식사는 '각자 해결'이란다. 그래서 엄마는 아침마다 집에 있는 반찬으로 직접 도시락을 싼다.

"아유, 나는 이거면 돼."

도시락이라고 해봐야 내게는 그저 쥐꼬리처럼만 보이는 밥 반 공기와 김치, 김과 멸치 따위가 전부다. 맛있는 반찬 좀 가져가시라고 해도, 밥 좀 더 가져가시라고 해도 엄마로부터 돌아오는 말은 늘 같다. 아무도 없는 집에 덩그러니 남아, 홀로 맛있는 고기반찬을 향해 젓가락을 움직이는 나는 또 씁쓸해진다. 그리고 다시 한 번 다짐한다. 조만간 하루는, 꼭 엄마보다 일찍 일어나 오직 '우리 엄마'만을 위한 도시락을 싸서 챙겨드리겠다고.

늦은 저녁, '수험생' 엄마가 집에 돌아와 오늘 학원에서 있었던 일들을 늘어놓으신다. 학원에서 엄마는 나이 많은 순으로 '넘버 투'란다. 그래도 다행히 비슷한 연령대의 수강생들이 많아 이야기가 통하지 않는 일은 없는 것 같다.

엄마의 하이 톤 웃음소리가 집안에 울린다. 무뚝뚝한 남자 셋이 있는 우리 집에 엄마의 웃음소리는 엔도르핀 그 자체다. 엄마를 따라 웃으며 기도한다. 내가 하루빨리 엄마를 집에서 편히 지내시도록 할 수 있게 되기를, 그리고 엄마가 평생 우리와 함께 저렇게 밝게 웃음 지으실 수 있기를.

어느덧 엄마가 나보다도 늦게 잠자리에 드는 날이 부쩍 늘었다. 온종일 학원에서 머리 쓰느라 지치셨으면서도, 화장도 채 못 지우고 소파에서 주무시면서도, 또 때로는 글씨가 너무 작아 잘 안 보이신다면서도 새벽까지 책상에 앉아 계신다. 학원에 조금 늦게 들어간 만큼 진도를 따라잡아야 한다며 열의를 불태우신다. 그런 엄마 앞에서 고작 공채 몇 개 떨어졌다고 우울해하는 나는 한없이 작아진다.

우리 집에서 가장 바쁜 사람의 이름, 엄마

오전 8시, 꿀맛 같은 잠을 자다가 거실에서 들려오는 부산한 소리에 퍼뜩 눈이 떠졌다. 평소에는 그런 소리도 도통 듣지 못하고 늘어지게 잤는데, 간밤에 잠을 뒤척였나보다. 두터운 이불 속에서 고개만 돌리자, 학원 갈 준비에 여념이 없는 엄마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분명히 어제도 새벽 두 시나 되어서야 주무셨을 텐데. 취업 준비생인 나보다도 분주한 삶을 사는 엄마의 모습을 보고도 그냥 누워 있기가 뭐해 서둘러 몸을 일으켰다.

"웬일로 이렇게 일찍 일어나셨대?"

엄마가 의아해하며 웃으신다. 대강 얼버무리며 학원으로 가는 엄마를 현관에서 배웅한다. 엄마를 학원에 보내는 장성한 아들이라니. 기괴한 광경이라고 생각하며 부엌의 싱크대에 눈길을 준다. 이른 시간 출근하신 아버지의 빈 밥그릇 하나밖에 없다. 엄마는 또 사과 하나만 깎아 드시고 훌쩍 가셨나보다. 아침 좀 꼭 챙겨 드시라니까. 앞으로의 다짐이 하나 더 생긴다. 다음엔 부실한 아침상이라도 차려드려야지.

문득 얼마 전 즐겨 본 드라마 <미생> 속의 대사 한 토막이 떠오른다. 주인공 장그래가 너른 한강을 바라보며 홀로 되뇌던 그 말.

"잊지 말자. 나는 어머니의 자부심이다."

그 말이 어쩐지 내게는 반대로도 들리는 것 같다.

"잊지 말자. 어머니는 나의 자부심이다."


태그:#엄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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