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광복 70주년을 맞이해서 남북통일의 물꼬를 틀 수 있는 귀한 일들을 잘 감당해 주실 것을 부탁드립니다."

지난 13일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아래 한기총)을 방문했을 때 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가 주문한 말이다. 한국 보수 개신교계를 대표하고 있는 이영훈 목사는 연일 남북관계에 대한 발언을 쏟아내고 있다.

종교계 신년사, "남북관계, 정부가 양보해야"

이 목사는 15일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통일문제는 남한이 '슈퍼 갑'으로, '갑'이 양보하지 않으면 해결이 어렵다"며, "남한은 북한과는 비교할 수 없이 잘사는 만큼 북한에 일일이 대응하며 자극하기보다는 여유와 관용을 가져야 해결책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남북통일을 대비해 "교회마다 1% 통일기금을 적립해 통일됐을 때 사라진 북한 교회들을 재건하는 데 쓸 수 있도록 하자"며 구체적 방안까지 내놓았다. 이 목사는 이미 자신이 당회장으로 있는 여의도순복음교회가 올해부터 통일기금 적립을 시작했다고 밝혔다.

이 목사는 북한에 '조용기심장병원'을 건립하다 5년째 중단된 것에 대한 아쉬움도 표했다. 그는 "조용기심장병원은 남북 갈등의 희생물"이라며, "6개월만 더 공사하면 완공할 텐데 5·24조치 때문에 건축자재를 보낼 수가 없다"고 말해 5·24조치의 해제를 간접적으로 요구했다.

이처럼 종교계에서는 분단 70년을 맞으며 일제히 통일에 대한 관심을 표명하고 나왔다. 가톨릭에서도 지난 6일 명동성당에서 가진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에서 남한 신자 1명이 북한의 54개 가톨릭교회에 한 명씩 소속되는 '영적신자운동'을 전개하기로 했다. 이번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는 1000회를 앞두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의 정세덕 신부는 미사에서 "영적신자운동은 북한 교회의 재건과 남과 북의 진정한 화해와 일치를 위해 천주교회 차원에서 마련한 기도운동"이라고 밝히고, "종이학 천 마리를 접으면 소원이 이뤄진다는 말이 있는데 우리의 간절한 기도가 어느덧 천 번이나 봉헌되었다"며 소회를 말하며, "우리의 기도로 남과 북이 하나 되어 온 민족의 꿈이 이루어지길 소망한다"고 말했다.

서울대교구장이며 동시에 평양교구장 서리인 염수정 추기경은 "온 정성을 모아 봉헌한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가 곧 1000차를 맞는다"며, "그동안 함께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한반도의 평화와 북녘의 형제, 자매를 위한 교회의 기도는 모든 이들의 마음과 삶 안에서 계속되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우리나라 불교종단 중 가장 신도수가 많은 대한불교조계종 역시 신년기자회견에서 올해 5월경 기원대회에서 '불교통일선언'을 발표하겠다고 했다. 총무원장인 자승 스님은 "불교통일선언은 불교의 통일사상인 화쟁을 기반으로 공존과 상생, 합심을 열쇠말로 마음의 통일이라는 관점에서 발표될 것"이라며, "정부는 물론 각계의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대중적 통일담론을 제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자승 스님은 이어 "구체적인 방북 계획은 단순한 종교적 문제가 아니라 정치적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는 만큼 구체적으로 밝히기는 어려운 점이 있다"며, "남북 관계가 큰 틀에서 풀리게 되면 종교 간 대화도 쉽게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통일대박' 외치는 정부가 걸림돌?

종교단체들은 이처럼 남북분단 70주년을 맞이하는 올해를 남북관계 개선의 주요 시점으로 보고 있다. 종교단체들은 모두 조심스럽게 정부의 아량을 기대고 있는 눈치다. 신년사에 그치지 않고 구체적인 방안을 내놓거나 남북접촉을 시도하고 나섰다. 정부의 반응이 주목된다.

통일부에 따르면, 천주교 서울대교구 민족화해위원회에서 16일 대북접촉을 신청한 것으로 알려졌다. 신청 이유는 "민족의 화해와 일치를 위한 미사 1000회차에 북한 신자들을 초청해 '분단 전 북한 소재 54개 본당 교회사' 제작의 건을 협의하겠다"는 취지라고 말했다.

천주교 정의구현전국사제단에서는 '장충성당 남북합동미사 등 협의'을 위해, 천주교 주교회의 민족화해위원회에서는 '남북신자모임 협의'를 위해 남북접촉을 신청했다. 또 한국종교인평화회의(KCRP)는 '2018년 세계종교인평화회의 한반도 남북공동개최 협의'를 위해 이달 중으로 대북접촉을 신청했다.

이외에도 평화3000, 안중근의사기념사업회, 겨레얼살리기운동본부 등 총 7개 단체에서 대북접촉을 신청했다. 통일부 관계자는 "남북 종교교류와 관련해서 순수 사회·문화교류는 허용한다는 측면에서 접촉신청 건을 검토하고 있다"며, "실무협의에 필요한 인원 위주로 속히 검토를 마치고 승인 여부를 결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종교계는 그간 여러 차례 대북접촉이 정부에 의해 불허된 상황이라서 이번 접촉 신청에 대하여도 반신반의하는 눈치다. 박근혜 대통령의 '통일대박' 발언이 있었음에도 남북관계는 냉기류 속 행보가 여전했기 때문이다.

한기총 대표회장 이영훈 목사의 "6개월만 더 공사하면 완공할 텐데 5·24조치 때문에 건축자재를 보낼 수가 없다"는 발언은 조심스럽게 5·24조치의 해제를 요구하는 발언이다. 조계종 관계자의 "5월에 열 '세계평화와 국민화합을 위한 기원대회'에 북한 조선불교도련맹 신도들을 초청하려 하지만 정부가 이를 허용해줄지 현재는 확신하기 어렵다"는 발언도 정부의 결단을 요구하는 말이다.

정부는 분단 70주년을 맞은 올해에 종교계의 대북접촉을 전면 허용하여 남북대화의 물꼬를 텄으면 좋겠다. 남북 당국의 직접 대화는 그리 단순한 문제가 아니다. 대외 정세나 남북 당국자의 당면한 과제에 대한 여러 변수들을 추스르려면 시간이 걸린다. 그러나 더 이상 남북대화가 교착상태에 빠지는 것은 남과 북 모두에게 도움이 안 된다.

그렇다면 종교계가 이리 적극적으로 나올 때 종교계를 통해 남북교류의 발판을 삼는 게 좋다. 직접 갈 수 없는 길은 돌아가면 된다. 종교계의 화해 움직임은 좋은 선례가 있다. 소련의 해체는 1989년 교황 요한 바오로 2세가 당시 고르바초프 소련 서기장을 만나 개혁개방을 논의한 이후에 가속화되었음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19일 통일부 업무보고에서도 5·24 조치 해제나 금강산 관광 재개 같은 대북 유화책은 빠져있다. '선 대화 후 해제'의 정부 입장이 변하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그렇다면 이번에 종교계의 남북접촉 신청을 허락하는 등 남북대화에서 종교계에 힘을 실어주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국민은 '통일대박'이란 말을 듣고 싶어 하는 게 아니라 정말로 정부가 '통일대박'의 길로 향하기를 바란다.


태그:#남북대화, #남북교류, #종교계, #남북통일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오늘도 행복이라 믿는 하루가 또 찾아왔습니다. 하루하루를 행복으로 엮으며 짓는 삶을 그분과 함께 꿈꿉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