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2014년 5월 27일 45미터 굴뚝에 올라 계절이 세 번 바뀌는 동안 농성 중인 구미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 5년의 투쟁 끝에 2014년 12월 13일 평택공장 70미터 굴뚝에 오른 쌍용자동차 해고노동자 이창근·김정욱. '희망편지 이어쓰기'는 그들에게 힘을 주기 위한 각계각층 시민들의 응원가입니다. 그들을 잊지 않고 함께하겠다는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하늘의 노동자'들에게 부치는 편지를 보내주세요. [편집자말]
어느 기사에선가 청도 밀양 할매들이 직접 차광호 대표의 생일상을 차려 올려주었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 청도 밀양 할매들의 생일 축하 현수막 어느 기사에선가 청도 밀양 할매들이 직접 차광호 대표의 생일상을 차려 올려주었다는 글을 본적이 있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아침 일찍 길을 나섰다. 잠 기운이 채 가시지 않은 상태로 차에 시동을 건다. 하늘은 맑았지만 바깥 온도는 영하 6도를 나타내고 있다. 그를 만나러 가는 길, 아니 정확히 말하자면 그를 먼발치에서 바라보러 가는 길이다. 나는 땅 위에 있고, 그는 하늘 위에 있다. 내가 선 땅의 날씨가 영하 6도라면, 그가 있는 굴뚝의 날씨는 무참할 정도로 매서울 것이다.

굴뚝 위의 남자, 스타케미칼 해고노동자 차광호. 그를 만나고 계절이 두 번 바뀌었다(관련기사 : 삼복더위에 굴뚝 위에서... 이 남자의 소원). 고공농성 52일째 날 처음 찾아갔는데, 어느덧 236일째가 되었다(1월 18일 기준). 그가 땅을 밟는 날, 막걸리 한잔 나누고자 한 나의 소박한 바람은 여전히 소망으로 남아 있다. 그가 하늘 높은 곳에서 외롭게 투쟁을 이어갈 때, 나는 땅 위에서 까마득히 그를 잊은 채 일상에 젖어 있었다. 망각에 대한 미안함 혹은 죄책감 때문인지 찾아가는 발걸음이 가볍지만은 않다.

굴뚝이 위치한 후문 쪽으로 먼저 가본다. 아침운동이라도 하고 있는 그를 만난다면 힘차게 손을 흔들어줄 요량이다. 하지만 추운 날씨 탓인지 그의 모습은 보이지 않는다. 다만 주변에 달라진 풍경들이 눈에 들어온다. 빨간 벽돌 담장에는 '힘내라 차광호'라는 글씨를 벽돌 한 장마다 알록달록한 색깔로 새겨놓았다. 아침 햇살을 받아 반짝이는 글씨만큼 그 또한 삶의 빛을 잃지 않기를 소망한다.

굴뚝을 배경으로 청도·밀양 송전탑 반대 '할매'들의 생일 축하 현수막도 보인다. 얼마 전 그의 생일에 맞추어 다녀가신 모양이다. 하늘에서 생일상을 받는 기분은 어땠을까? 따뜻한 밥 한 그릇에 더운 미역국이라도 제대로 전달됐을까? 탄생을 축하해야 할 행복하고 소중한 날에 가족이 아닌 차디찬 굴뚝과 함께했을 그를 생각하니 명치 끝이 아려온다.

그를 응원하는 각종 현수막들을 뒤로한 채 정문 쪽에 마련된 해복투(해고자복직투쟁위원회) 천막으로 이동한다. 천막 밖에는 장작과 연탄재가 쌓여 있다. 달랑 비닐 한 겹으로 만들어진 천막 안에서 난로 두 개의 열기만으로 매서운 겨울 추위를 이겨내기란 역부족이다. 하지만 그 안에서 사람들은 서로의 온기에 의지해서 살고 있다. 굴뚝 위의 그에 비한다면 차라리 호강이 아니겠느냐면서.

240여 일 동안 바뀐 건, 탈 나기 시작한 육체와 속절없는 계절뿐
전국 각지에서 응원 온 사람들에 의해 씌여진 담벼락 예술작품
▲ 공장 담벼락에 씌여진 '힘내라 차광호' 전국 각지에서 응원 온 사람들에 의해 씌여진 담벼락 예술작품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연탄과 장작을 때는 난로 두개로 이 추운 겨울을 헤쳐나가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따뜻한 방에서 발뻗고 자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스타케미칼 농성 천막 연탄과 장작을 때는 난로 두개로 이 추운 겨울을 헤쳐나가고 있는 해고 노동자들. 그들이 하루라도 빨리 따뜻한 방에서 발뻗고 자는 날이 오기를 바라고 또 바란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천막 안으로 들어가 보니 아침 식사 준비가 한창이다. 가스통 위의 프라이팬에서는 계란말이가 익어가고 있고, 천막 안에는 김치찌개 냄새가 가득하다. 남자들의 투박한 손끝에서 먹음직스러운 음식들이 만들어지고 있다. 그리고 그 음식을 가장 먼저 받는 이는 다름 아닌 차광호씨다.

"동지들이 만들어준 식사를 가장 좋아합니다. 시간이 될 때는 최대한 이렇게 만들어서 올려보내지요."

식사 담당자의 말끝에 애틋함과 미안함이 동시에 묻어난다. 정성스레 준비한 음식과 생수 한 통이 검정 봉지에 담긴다. 그에게 식사를 배달하러 간다기에 혹시라도 그를 볼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따라나선다. 하지만 굳게 잠긴 철문 앞에서 발걸음을 돌려야 했다. 정해진 한 사람만 문을 통과할 수 있다고 한다.

천막 안으로 돌아와 보니 침낭 속에서 자고 있던 해고노동자들이 하나둘 깨어나고 있다. 앞서 계란말이를 정교하게 자르던 식사 당번 노동자에게, 가장 궁금한 차광호씨의 건강상태를 물었다.

"다른 곳은 큰 이상은 없는데, 발가락에 동상이 걸린 듯합니다. 며칠 후에 의료진에게 검사를 한번 받아보기로 했습니다."

대구에 있는 인도주의실천의사협의회 소속 의료진들이 한 번씩 굴뚝 위에 올라 차광호씨의 건강을 체크한다고 한다. 며칠 후에 또 의료진들이 찾아오기로 한 모양이다.

그가 굴뚝에 오른 지 236일이 지났다. 그동안 회사 측의 입장에는 변화가 없었는지 묻는 질문에 돌아온 대답은 예상대로였다. 공장 가동은 멈춘 지 오래지만, 회사 측은 여전히 폐업 신고조차 하지 않고 있다. 그 간 두 번에 걸친 협상의 자리에서 해고노동자들이 제안한 모회사 '스타플렉스'로의 고용승계(12명)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고 한다. 결국 그 긴 시간 동안 바뀐 거라곤 조금씩 탈이 나기 시작하는 그의 육체와 속절없는 계절뿐이었다. 

하늘에서 누군가 보고 있다면, 당신의 간절함을 알아차릴 겁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동지들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준비를 하는 해고 노동자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 차광호 대표의 아침 식사 준비 열악한 환경 속에서도 동지들을 위해 즐거운 마음으로 식사준비를 하는 해고 노동자들의 모습이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굳게 닫힌 철문 넘어로 전경버스와 멈춰버린 공장의 모습이 보인다.
▲ 차광호 대표에게 아침식사를 건네고 돌아오는 동지의 모습 굳게 닫힌 철문 넘어로 전경버스와 멈춰버린 공장의 모습이 보인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집으로 돌아오는 길. 공단 지역 곳곳의 굴뚝에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른다. 그렇다. 저것이 제대로 된 풍경이고, 지극히 당연한 모습인 거다. 굴뚝은 연기를 내보내기 위한 구조물이지 사람들이 기거하기 위한 장소가 아니다.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사람들이 자꾸 굴뚝으로 오르고 있다. 당연한 것조차 요구하지 못하는 비틀린 세상. 노동자가 마음 편히 일할 수 있는 세상이란 아직도 멀리 있는 것일까?

이 글은 사실, 차광호씨에게 편지를 보내려고 시작하였다. 그러나 나는 여전히 그에게 편지를 쓸 수가 없다. 따뜻한 집에 살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일상의 안락함에 젖은 내가, 그의 안부를 묻고 그를 걱정하는 체하는 것이 위선처럼 느껴져 견디기 힘들다. 나는 가끔씩 고개를 돌려 그를 바라보지만, 그는 항상 굴뚝 위에서 추위와 외로움 그리고 자기 자신과 싸우고 있다.

이제 나는 무엇을 할 것인가? 거창하게 무언가를 욕심내지 말자. 우선 그의 존재를 많은 사람들이 알 수 있게, 그리고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게 알려내자. "저기 굴뚝 위에 사람이 있어요!"라는 외침이 메아리로 퍼질 수 있게 목청껏 소리치는 거다. 그리고 가끔씩 들러 안부를 묻는다면 더욱 힘이 될 것이다. 너무 어렵게 생각하지는 말자. 지금 그에게 가장 필요한 것은 땅 위 사람들의 관심과 응원이다.

그에게 간단한 엽서 한 장 띄우는 것으로 글을 마무리한다.

"잘 지내시냐고 묻는 것 자체가 상황에 맞지 않겠지만, 잘 지내고 계시리라 믿고 싶습니다. 그래야만 작은 관심이 할 수 있는 일의 전부인 제 자신에게 덜 미안해지니까요. 굴뚝은 하늘과 가장 가까운 곳이지요. 저 하늘 위에서 누군가 내려다보고 있다면, 당신의 간절함을 가장 먼저 알아차릴 겁니다. 이 땅 위의 많은 사람들이 바라고 또 원하고 있습니다. 건강한 모습으로 내려오셔서 웃으며 일할 수 있는 그날을 말이지요. 그날까지 부디 몸과 마음이 무사평온하시길 기도합니다."

스타케미칼 주변의 다른 공장에서는 굴뚝 위로 흰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것이 제대로 된 풍경일 것이다.
▲ 굴뚝 위로 연기를 쏟아내는 구미 공단의 전경 스타케미칼 주변의 다른 공장에서는 굴뚝 위로 흰 연기가 솟아오르고 있었다. 저것이 제대로 된 풍경일 것이다.
ⓒ 이정혁

관련사진보기


덧붙이는 글 | * '희망편지 이어쓰기'는 시민 모두에게 열려 있습니다. 스타케미칼과 쌍용자동차 고공농성 노동자들에게 부치는 편지를 보내주세요.



태그:#스타케미칼 , #해고노동자, #차광호, #고공농성
댓글1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