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병풍도 병풍바위.바람에 침식되고 풍화된 해안선이 가히 절경이다.
 병풍도 병풍바위.바람에 침식되고 풍화된 해안선이 가히 절경이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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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른 아침부터 마음이 바빴다. 엊저녁 막배로 들어온 탓에 어두워서 병풍바위를 보지 못했기 때문이었다. 해안선 절벽이 파도와 바람에 침식되고 풍화된 모양이 가히 절경이어서 신선이 놀다갔다는 이야기도 전해지고 있다. 오죽했으면 바위 이름을 따 섬 이름을 병풍도라 지었겠는가.

마을안길을 돌아 찾아간 병풍바위의 태반은 볼 수 없었다. 밀물 때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세월과 바람, 파도가 일군 침식과 풍화의 흔적은 쉽게 볼 수 있었다. 떡시루 판을 얹은 것처럼 바위는 켜켜이 층을 이루고 있었고, 바위에서 떨어져 나온 조각들은 편절처럼 얇았다.

누적되고 분절되어진 바위와 그 조각들 속에 바람이 어루만진 위로의 기억과 매번 선을 긋고 달리던 별리(別離)의 세월이 쌓여 있다. 오늘 무심코 흘려보낸 한숨조차 바위의 한 층을 이루다 어떤 날 그렇고 그런 여러 기억의 편린들처럼 분절되어 갯가를 뒹굴 것이다.

그나마 살아있는 동안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여기까지. 세월 많이 흘러 바위 흔적조차 남아있지 않은 날엔 이조차 기억되지 않을 것임을 알기에 생은 늘 쓸쓸하고 아프다.

병풍바위를 둘러보고 나와 신추도로 향했다. 병풍도와 신추도는 노둣길로 하루에 두 번 연결된다. 썰물 때가 되면 하루에 두 번 길이 210m의 노둣길이 열린다. 길이 열리면 오로지 한 사람만이 신추도로 들어간다. 신추도에서 염전을 하는 박두월(63)씨다. 

염전 일을 한지 37년째... 1월부터 3월말까지는 염전 준비 작업

병풍도에서 신추도로 가는 노둣길.
 병풍도에서 신추도로 가는 노둣길.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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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추도에는 모든 것이 하나밖에 없다. 염전도 하나고, 집도 한 채고, 주소지를 둔 거주자도 박씨 한 명뿐이다. 하지만 신추도는 여느 섬 못지않게 풍성하다. 염전에선 연간 200톤의 소금이 생산돼 약 1억 원 안팎의 소득이 나온다. 섬을 둘러싼 바다는 온통 굴 바탕이어서 마음만 먹으면 자연산 굴을 실컷 캘 수 있다.

박씨는 염전 일을 한지 37년째다. 신추도 염전은 지난 2000년에 구입했다. 혼자서는 염전을 감당키 어려워 직원 두 명과 함께 일하고 있다. 지금은 소금밭이 쉬는 때라 직원들은 육지 나가고 없고 박씨 혼자 일을 하고 있다.

소금은 4월 1일경부터 10월 15일까지 생산하는데 11월부터 12월 말까지는 염전을 정리하는 작업을 하고 이듬해 1월부터 3월말까지는 염전 준비 작업을 한다. 직원들은 설 쇠고 2월 말경에 들어와 박씨와 함께 소금밭을 일굴 예정이라고 한다.

박씨는 스스로를 "물로 소금을 만드는 남자"라고 소개했다. 너무나 당연해서 더욱 사실적으로 다가오는 이 설명엔 소금쟁이들의 옹고집이 그 어떤 소금 결정체보다 투명하게 응축돼 있다.

소금 만드는 일은 염도가 높고 깨끗한 바닷물을 들이는 것으로부터 시작한다. 이때 빗물이 희석된 저농도의 바닷물은 피한다. 그리고 이물질과 염전주변 쓰레기가 바닷물과 함께 유입되지 않도록 온통 신경을 쓴다. 특히 장마철 등 강우량이 많을 경우에는 저수지에 받아들인 바닷물을 빼고 다시 비중이 높은 바닷물을 들인다.

신추도에 유일하게 주소지를 두고 있는 박두월씨가 선착장에서 자신이 농사 지은 소금을 건네고 있다.
 신추도에 유일하게 주소지를 두고 있는 박두월씨가 선착장에서 자신이 농사 지은 소금을 건네고 있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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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농사가 그러하겠지만 바다농사는 수만 번의 수고를 들이고서야 가까스로 대가를 얻는다. 내가 지은 소금 농사라고 내 맘대로 수확도 못한다. 황사가 심한 봄이나 바람이 강하게 부는 가을엔 소금 품질이 떨어지기 때문에 생산을 자제하는 경우도 있다.

그렇게 귀하게 얻은 소금을 박씨가 맛이라도 보며 건넨다. 좋은 소금은 짜지 않고 달다. 그러나 소금이 달기 위해서는 바닷물과 땀이 제대로 짜야 한다. 앞으로 소금 한 톨 허투루 뿌리지 않을 것 같다.

이른 아침의 보기선착장. 이곳에서 타는 여객선은 압해도 송공이 아닌 지도 송도로 간다.
 이른 아침의 보기선착장. 이곳에서 타는 여객선은 압해도 송공이 아닌 지도 송도로 간다.
ⓒ 이주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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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신안군 작은 섬, #신추도, #박두월, #염전, #병풍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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