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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나는 어릴 적에 별로 돈 구경을 하지 못했다. 내가 유아 때는 잘 살았다고 하지만 내 기억에는 없다. 내가 성장할 때 아버지 사업이 갑자기 부도가 났다. 그래서 가세가 기울어서 돈이 집에 들어오고 나가고 하는 것을 별로 보지 못했다. 돈이란 것은 나와는 무관한 세상의 것 같이 반평생 살았다.

내가 어릴 때 기억하는 돈은 빚쟁이들이 찾아와 돈 달라는 소리를 하는 것이었다. 그들이 소리를 치고 나면 엄마가 울었다. 그래서 나는 돈이 나쁜 것인 줄 알았다. 그래서 나는 일찌기 돈 없이도 혼자서 재미있게 하루를 잘 보내는 방법을 날마다 고안하면서 성장했다.

그러나 가장이 되고 나이가 들어면서, 한 달 벌어 한 달 먹고 살면서 서서히 돈이란 것이 상당히 쓸모있는 것임을 절감하고 있다. 그래서 그런지 지금도 가끔 전혀 생각하지 않았던 곳에서 '돈'이 나오면, 그 돈이 없어도 어제와 다름없이 오늘을 잘 지냈고 내일도 잘 지내리라 생각하기 때문에 그냥 털어버리기를 잘한다.

누군가로부터 돈 때문에 상처를 받아도 그저 그 상처가 시간의 강물 속으로 흘러가게 둔다. 결코 돈과 사람을 결부시키지 않고 살아가는 셈이다. 그리고 태어나서 처음 받는 돈은 내 돈이 아닌 생경함이 든다. 그래서 태어나서 처음 받은 보너스도 언젠가 밀양할머니들에게 털었는데, 이번에도 태어나서 처음 받는 돈이 생겼다.

오래전 서각해졌던 작품..새해엔 각박하지만 그래도
돈보다는 사람이 더 귀하게 여겨지길 희망한다
▲ 새해 첫 달력 오래전 서각해졌던 작품..새해엔 각박하지만 그래도 돈보다는 사람이 더 귀하게 여겨지길 희망한다
ⓒ 이영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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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자기 연락이 왔다. 교과서 저작료를 지불하는 기관이라고 했다. 내 작품이 고등학교 인문미술교과서에 연달아 몇 년간 실렸는데 정작 작가인 내가 저작료를 청구하지 않아 연락을 했다고 한다. 국립현대미술관 미술은행에 소장된 내 작품 하나가 미술교과서에 실렸다는 것은 알았지만 정작 거기에 저작료가 붙는 것은 몰랐다.

큰 돈은 아니지만 내게는 태어나서 처음인 각별한 돈이다. 그래서 그 돈을 쓸모있는 곳에 쓰기로 했다. 작품때문에 생긴 것이니깐 작품이 들어간 달력을 약간 만들어서 평소에 고마웠던 사람들에게 선물하고, 우연히 보았던 시린 발의 시리아의 아이들에게 설날 선물로 부츠를 보내는 데 보태기로 했다.

몇 년만 있으면 환갑이다. 그런데 이 나이가 되어가면서 나는 여전히 태어나서 처음인 것들을 경험한다. 눈 덮인 내 연구실 마당에 고개 숙인 해바라기 씨앗을 새들이 무리를 지어 쪼아먹고 가는 것도 처음 보는 것이라 감동이다.

그래서 집에 있는 다양한 곡류와 먹거리를 좀 가져와서 연구실 마당 곳곳에 뿌려놓았다. 새들을 위한 것인지 먹는 새가 보기 좋아 감동하는 나 자신을 위해서인지 모르겠지만 그냥 그 느낌이 좋다.

앞으로도 태어나서 처음인 돈들이 종종 선물같이 들어오면 좋겠다. 그러면 그 선물은 또 다시 릴레이처럼 누군가의 선물이 된다. 돈이 누군가에게는 머리와 가슴을 돌게 만드는 것이기도 하지만, 쓸모있게 잘 쓰면 세상을 돌고 도는 고마운 선물이다.


태그:#서예가 이영미, #나눔문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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