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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문화> 책표지.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문화> 책표지.
ⓒ 책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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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와 장승은 언제부터? 그곳에? 왜? 세웠을까? 장승은 왜 한 쌍으로 세우며, 솟대에는 왜 하필 새를 앉힐까? 튼튼하면 충분할 다리에 우리 조상들은 왜 특별한 기술을 필요로 하는 무지개 모양을 넣었을까? 서낭당과 성황당이 다른 곳? 산신은 왜 하필 호랑이와 함께 다니는 걸까? 조왕신이나 동서남북 방위 신들은 언제, 어떻게 생겨났을까? 사찰들의 꽃살문은 단지 치장용이 아니다? 옛사람들은 왜 바위에 불상이나 글씨, 그림 등을 새겼을까?

역사나 문화에 관심이 많은 사람들이라면 한번쯤 궁금해 했을 법한 것들이다. 이 궁금한 것들을 알고자 인터넷 자료를 찾아보니 사전적인 내용이기 일쑤.

게다가 필요한 것만 찾아 읽다보니 다른 유물들과 연결해 이해하기 또한 쉽지 않다. 일목요연하게 정리해 주는 책은 없을까?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 문화>(책찌 펴냄)는 필자의 이런 목마름을 어느 정도 적셔준 책이다. 책이 다루는 것들은 '생가'를 시작으로 '비석'까지 모두 21가지. 책은 장승이나 솟대, 성황당이나 다리처럼 길을 가다가 문득 만났을 유물들이 형성된 문화적 배경과 가치, 그것이 상징하는 것 등은 물론 관련 설화까지 들려준다. 소소한 것들을 알아가는 재미가 남다르다.

장승이라는 이름에는 여러 설명이 있지만 원래 장승의 이름은 벅수였다. 장승이라는 말은 장생에서 왔다. 불로장생이란 말의 장생을 따왔다고도 하지만, 원래는 여러 마을을 찾아오는 중국의 역귀를 쫒아내는 노표를 장생이라고 불렀다. 장생은 점차 발음이 쉬운 장승으로 변했다. 조선 말기에 들어서면서 노표는 사라졌지만 그 이름은 사라지지 않았다. 장승배기나 장성고개는 장생에서 온 말이다. 한편 남쪽 지방에서는 아직도 벅수, 법수라고 불리며 하르방(제주도), 수살, 돌미륵, 신장 등의 이름으로 불린다. -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 문화>에서.

장승은 우리 조상들이 남긴 유물 중 상대적으로 많이 보는 유물 중 하나일 것 같다. 돌과 나무로 만들어 대개 마을 입구에 세웠던 옛날과 달리 요즘엔 특별한 장소나 특정 건물의 입구에 많이 세우기 때문이다.

오늘날 세운 장승들은 장식용에 가까워 보인다. 그런데 옛날에는 질병이나 화재, 재해 등을 일으키는 악귀로부터 마을을 보호하는 수호신인 동시에 어디로 갈 것인가를 알려주는 길잡이로 세웠단다. 마을입구에 세우고 특별한 날에 제(사)까지 지내기도 했다고.

길잡이라니 네비게이션처럼 어디로 가야하는지 특정 장소를 알려주는 정도로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겠다. 여기서 길잡이라 함은 '어떻게 살 것인가'를 알려주는 것이다. 태어나는 길을 안내하는 삼신할미와 죽음의 길을 안내하는 저승사자와 같은 차원 말이다.

부안 서문 안 당산(중요민속자료 제18호). 부안의 서문읍성을 지키던 한쌍의 솟대와 한쌍의 석장승이다. 숙종 15년(1689)에 서문으로 통하는 입구에 세웠던 것을 1980년에 현재의 자리(전북 부안군 부안릅 서외리)로 옮겼다.솟대의 오리는 바다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부안읍의 화재를 막고자이다. 매년 정월 초하룻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당산제를 지낸다.
 부안 서문 안 당산(중요민속자료 제18호). 부안의 서문읍성을 지키던 한쌍의 솟대와 한쌍의 석장승이다. 숙종 15년(1689)에 서문으로 통하는 입구에 세웠던 것을 1980년에 현재의 자리(전북 부안군 부안릅 서외리)로 옮겼다.솟대의 오리는 바다를 향하고 있는데, 이는 부안읍의 화재를 막고자이다. 매년 정월 초하룻날 밤부터 다음날 아침까지 당산제를 지낸다.
ⓒ 김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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솟대 위에는 대개 오리가 앉아 있다. 지방에 따라 까마귀나 독수리가 되기도 하지만 대부분은 오리라고 생각한다. 솟대를 만드는 재료는 소나무나 참나무, 오리나무 등을 쓰는데 이때 나무는 반드시 마을의 강 건너에서 베어온 나무를 쓴다. 나무를 구하기 위해 굳이 강물을 건너는 것은 솟대가 농경문화와 결합되어 있음을 보여준다. 적당한 비와 바람은 농작물을 건강하게 키우고 알찬 결실을 맺게 해주지만 거센 비바람은 농작물을 쓰러뜨리고 마을의 평화를 짓밟는다. 이런 면에서 솟대에는 농사에 필요한 물을 원하거나 홍수를 막아 달라는 기원이 담겨있다. -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 문화>에서.

솟대도 장승과 함께 많이 볼 수 있는 것 중 하나. 그렇다면 솟대에 왜 하필 오리를 앉혔을까? 책에는 수많은 새 중 하필 오리인 이유와, 우리의 홍수 신화가 소개되어 있다. 이 책을 통해 얻을 수 있는 재미 중 하나는 솟대에 스며있는 우리의 홍수 신화처럼 각 문화 유물마다 얽혀있는 신화 혹은 설화, 전설 등을 풍성하게 읽을 수 있다는 것이다.

서낭당을 지나며 침을 뱉는 진짜 이유를 알 수 있는 설화와 사찰의 상징인 일주문에 얽힌 설화, 옛사람들이 정지(부엌)와 측간(화장실)을 가급 멀리에 지은 이유를 알 수 있는 설화, 조왕신과 문(門)의 신, 그리고 동서남북 이 사방의 신이 생겨난 설화는 특히 흥미롭게 읽었다.

페르시아의 경전에는 지옥의 풍경이 묘사되어 있고 그 가운데 여러 다리가 나오는데 그 가운데 갈수록 길이 좁아지는 다리가 있다. 물론 아래에는 끔찍한 고통이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 길은 점점 좁아진다. 다리에서 떨어지지 않기 위해 안간힘을 쓰지만 야속하게도 다리는 점점 좁아지기만 할 뿐이다. 마침내 외줄타기를 배운 사람이라도 떨어질 수밖에 없을 만큼 칼날처럼 길이 좁아지고 죄를 지은 사람은 아래로 떨어진다.

사람들의 관계도 이와 같지 않을까? 내 안의 헛된 욕망으로 해서 사람들 사이에 난 다리를 좁고 초라하게 만드는 것은 아닐까? 다리가 꼭 넓어야 할 이유는 없겠지만 주위 자연과 어울리고 그 때문에 그 다리를 오가는 일이 즐겁고 흔쾌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 철학자는 사람의 위대함은 그가 목적이 아니라 다리라는 점에 있다고 했다. 나 스스로가 다리가 된다는 것, 그 또한 아름다운 일이 아닐까?-<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 문화>에서.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문화> 이 책의 가치는 특정 장소에 가야만 만날 수 있는 유적지 유물이나 박물관 등의 전시물로 만나는 유물들이 아닌 우리 일상 공간에서 흔히 만나는 유물들이 주인공이라는 것. 우리 조상들의 가치관과 숨결이 스며있는 중요한 유물들임에도 간과하기 쉬운 것들을 이야기하고 있다는 것이다.

단지 어떤 유물에 관련된 상식이나 설화 등만 들려주는 것으로 그치지 않고 이처럼 우리의 삶과 연결시켜 글을 마무리함으로써 우리의 삶을 돌아보게 하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중 하나.

21꼭지 모든 글마다 가볼 만한 곳들을 소개하는 것도 이 책의 장점. 첫 번째 주제인 '생가' 편에서는 정약용 생가를 비롯하여 명성황후, 김좌진, 한용운의 생가 등 12곳 생가를 간략한 설명과 소개한다. 그리고 '다리' 편에서는 절에서 볼 수 있는 아름다운 다리들과 무지개다리, 자연미가 돋보이는 다리 등을 소개한다. 이 책의 정보는 테마가 있는 여행을 하는 데도 어느 정도는 도움이 될 것 같다.

장승이나 솟대, 당산, 서낭당 혹은 성황당, 누군가 살았다는 생가, 다리, 정자 등 이 책이 다루고 있는 역사 유물들은 그리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는 것들이다. 그럼에도 정작 명확하게 아는 것이 없이 지나치고 마는 것들이기 일쑤다. 모르고 볼 때와 알고 볼 때 그 느낌은 전혀 다를 것. 알고 있는 것만큼 보일 것이며, 훨씬 각별하게 다가올 것이다.

또, 이사를 하거나 결혼식 날짜 등을 잡을 때 방위나 손 없는 날 등을 따지는 사람들이 여전히 많다. 조왕신에게 물 한 사발 올리는 사람들도 많다. 믿어서라기보다 아예 무시해 버리고 말기에는 왠지 개운하지 못한, 오랫동안 전해져온 우리만의 정서 때문이리라. 그렇다면 우리 조상들은 왜 그처럼 날짜나 방위를 중요하게 여겼을까? 조왕신을 비롯하여 집안 곳곳에 깃들어 있다는 신들을 어떤 이유로 언제부터 존중했을까?

우리의 옛 문화나 전통, 우리 안에 흐르는 정서 등을 이해하는 데 알고 있어야 할 이와 같은 것들을 이 책은 참 많이 담고 있다. 

덧붙이는 글 |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 문화>(이경덕) | 책찌 | 2014-11-30 | 15,000원



길 위에서 마주친 우리 문화 - 이야기가 있는 우리 문화 기행

이경덕 글.사진, 책찌(2014)


태그:#문화유물, #장승, #솟대, #서낭당,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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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도 제게 닿아있는 '끈' 덕분에 건강하고 행복할 수 있었습니다. '책동네' 기사를 주로 쓰고 있습니다. 여러 분야의 책을 읽지만, '동·식물 및 자연, 역사' 관련 책들은 특히 더 좋아합니다. 책과 함께 할 수 있는 오늘, 행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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