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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털사이트에서 '산업재해'라는 단어를 검색하면 나오는 이미지의 대부분은 안전모를 쓴 노동자의 모습이다. 안전모를 쓰고 작업하는 현장에서 산업재해가 많이 발생하기 때문일 것이다. 2013년 고용노동부가 발표한 '산업재해 발생현황'에 의하면 제조업과 건설업에서 재해자와 사망자 수가 가장 많다고 한다.

그러나 중장비가 오가는 작업현장이 아니더라도 산업재해는 발생한다. 음식점, 커피전문점, 편의점 등 주로 청년들이 알바를 하는 사업장도 예외는 아니다. 남들에게 간단히 보이는 업무를 수행하다가도 예고 없는 사고가 벌어진다. 이렇게 끊이지 않는 사고 덕분에 청년유니온에도 산업재해와 관련한 노동상담이 적지 않게 접수된다. 그 중 기억에 남는 이야기를 하나 해볼까 한다.

카페 첫 근무하던 날, 손에 입은 3도 화상

카페 알바에게 남은 생애 첫 노동의 흉터
 카페 알바에게 남은 생애 첫 노동의 흉터
ⓒ freeimage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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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은 지난해 2월 초로 거슬러 올라간다. 여고생이었던 J는 스스로 용돈이라도 벌어보겠다는 생각으로 알바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마침 집 근처에 있는 프렌차이즈 카페에서 구인공고를 낸 것을 보고 지원을 했다.

얼마 후 사장님으로부터 출근하라는 연락을 받고 일을 시작하기로 약속했다. 드디어 출근 첫날! 간단한 교육을 받은 후에 커피를 만드는 업무를 하게 되었다. 아쉽게도 근로계약서는 작성하지 않았지만 모든 것이 순조로워 보였다. 한 손님이 들어와 '캬라멜 마끼아또'를 주문하기 전까지는.

커피를 만들기 위해서는 적당량의 커피가루를 포터필터(커피 가루를 담는 필터. 손잡이가 달려 있음)에 담아 에스프레소 머신에 장착해야 한다. 그러면 포터필터를 통해서 뜨거운 커피가 내려와 커피잔에 담긴다.

저녁 무렵 카페로 들어온 손님이 커피를 주문했고, J는 배운 대로 커피를 만들기 시작했다. 포터필터를 에스프레소 머신에 장착하고 나서 작동 버튼을 누른 뒤 잠시 기다리던 차였다. 그때 갑자기 포터필터가 기계에서 분리되어 떨어져 나왔고, 뜨거운 커피가 J의 손등으로 떨어졌다.

사장님과 함께 황급히 병원에 가서 응급처치를 했지만 손등에는 3도 화상이 남았다. 사장님은 병원을 나서면서 붕대를 칭칭 감은 J의 손에 5만 원을 쥐어주며 "오늘은 집에 가라"고 말했다. 그리고 다음 날 "우리 가게에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아도 된다"는 문자를 한 통 받았다. 그 후 사장님에게는 더이상 아무 연락도 없었다.

안타까운 사연이지만 사실 매우 전형적인 레퍼토리다. ① 근로계약서 없이 일하는 것 ② 일을 하다가 다치는 것 ③ 해고당하는 것. J의 사례가 놀라운 건 이 모든 일을 '단' 하루 만에 경험했기 때문이다.

J는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청년유니온에 전화를 걸었다. 전화 한 통으로 J와 청년유니온의 인연이 시작되었고, 청년유니온의 자문 노무사와 함께 근로복지공단에 찾아가서 산재보상을 신청했다. 취미로 커피를 배우러 갔다가 다친 게 아니라 일을 하러 가서 커피를 내리다가 다친 것이니까.

상시근로자를 한 명이라도 고용한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산재보험에 가입해야 한다. 그러나 근로계약서도 구경 못한 J가 4대보험에 가입되어 있을 리 만무했고, 심지어 사업장인 카페도 아직 사업자등록을 하지 않은 상태였다. 개업한 지 며칠 되지 않은 따끈따끈한 신생 카페였으니 그럴 수도 있지만, 사업자등록이 되어 있지 않다고 해서 산재보상을 받지 못하는 것은 아니다. 사업주가 사업자등록을 한 후에 산재에 가입하고 보상신청을 하면 된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J가 '보험사기단'으로 의심받는 웃지 못할 일도 있었다. 한 병원에서 지속적인 진료를 받지 않고, 여러 병원에서 진료를 받은 것이 의심을 샀다. 산재사건이 본격적으로 진행되자 연락이 닿은 카페 본사의 노무사로부터 들은 말이다.

사고 당시 응급처치를 받았던 A병원, 집과 가까운 곳에서 입원치료를 받고자 갔던 B병원, 큰 차도가 없자 다시 진료받기 위해 갔던 C병원, 세포이식수술을 위해 찾아간 화상전문 D병원. 이렇게 총 네 군데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았다.

손등에 화상 상처가 생각처럼 낫지 않으니 답답한 마음에 이리저리 병원을 찾아다닌 것이 이렇게 문제가 될 줄은 몰랐던 것이다. 다행히 병원을 옮긴 과정과 이유를 근로복지공단에 상세히 밝히고 난 후에 사기단이라는 의심은 사라졌다.

많은 우여곡절이 있었지만 J는 지난 6월 산재보험을 통해 업무상의 재해에 대한 치료비를 보상받을 수 있었다. 아르바이트 노동자라 하더라도 일을 하다가 다쳤을 때는 산재보상을 받아야 하고, 단 하루를 일했더라도 마찬가지라는 사실을 확실히 각인시켜준 속 시원한 사건이었다.

알바노동자라도, 단 하루를 일해도 산재 받을 수 있어요

"자기 딸이라면 이렇게 했을까요?"

노동상담을 받으러 왔던 J가 울분을 토하며 했던 말이다. 초보 카페 알바가 경험한 생애 첫 노동은 이루 말할 수 없이 뜨거웠다. 손등에 남은 흉터만큼이나 마음의 상처도 묵직하다. '가족처럼 일할 직원을 구한다'는 비현실적인 구인공고를 믿지는 않았지만, 쓰고 버려졌다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기 때문이다.

이런 찜찜한 기분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 근로기준법에는 '해고금지기간'이란 게 있다. 막무가내로 해고하는 것은 당연히 안 될 일이지만, 이유가 있어도 절대 해고할 수 없는 경우를 몇 가지 정해 놓은 것이다.

그 중에 하나는 일하다가 다친 사람이 휴식하는 기간에는 해고할 수 없다(근로기준법 23조 제2항)는 규정이다. 하지만 이런 법의 존재가 무색할 정도로 일하다 다쳐서 잘린 청년들의 상담 요청은 계속해서 청년유니온에 접수되고 있다.

주방에서 칼질을 하다가 피망과 손가락을 함께 썰어 버린 청년, 미용실에서 하루 종일 서서 일하다가 하지정맥류가 생긴 청년, 배달알바를 하다가 교통사고로 중상을 입은 청년, 빵집에서 도넛을 튀기다가 기름이 튀어 화상을 입은 청년을 포함한 수많은 청년들이 여전히 식상한 레퍼토리의 주인공 노릇을 하고 있다.

몸과 마음에 상처를 남긴 생애 첫 노동이 '인생의 좋은 경험'으로 기억되기 위해 청년들에게 필요한 것은 다름 아닌 휴식이다. 땀 흘려 일한 대가를 받는 것이 당연한 것처럼, 일하면서 얻은 상처를 치유할 여유를 보장받는 것도 당연한 것이다. 더 많은 청년들이 휴업수당, 산재보상이라는 휴식을 정당하게 누릴 수 있기를 바란다. 우리는 다만 조금 아플 뿐이다. 아프니까 산재다!


태그:#청년유니온, #청년노동, #노동상담, #산업재해, #청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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