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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 대선 때 나는 당시 민주당 당사로 갔다. 성소수자 문제를 비롯해 고전적인 '진보' 어젠다인, 또 앞으로 점점 더 중요해질 동물의 권리와 환경에 대해 민주당 정책은 뭐냐고 물었다. 별말 들은 게 없다. 그들은 대신 '이명박근혜'와 BBK 문제를 언급했다."

지난 3일 <중앙일보> 칼럼에 실린 다니엘 튜더의 글 중 일부분이다. '삶의 향기'라는 제목으로 지난해 1월부터 꾸준히 연재되고 있는 코너인데, 이번의 주제는 '동성애 어젠다와 대한민국 진보정치'였다. 튜더의 글은 외국인의 시각에서 한국의 사회와 문화를 들여다보는 논지로 색다른 관점을 제공한다.

'보수정당에서 성소수자 돕는 법안 만들 것' 예측한 튜더

 지난 3일 <중앙일보> '삶의 향기'에 게재된 다니엘 튜더의 칼럼 '동성애 어젠다와 대한민국 진보주의' 중 일부.
 지난 3일 <중앙일보> '삶의 향기'에 게재된 다니엘 튜더의 칼럼 '동성애 어젠다와 대한민국 진보주의' 중 일부.
ⓒ 중앙일보 누리집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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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 <이코노미스트> 한국 특파원이었던 다니엘 튜더는 보수언론으로 평가되는 일간지에서 '동성애' 관련 주제를 언급하면서, 비난 대신 다른 내용의 글을 썼다. 이 글에서 그는 점차 '동성결혼'에 대한 찬성 여론이 높아지는 한국의 추세로 볼 때, "몇 년 내로 새누리당에서 성적 소수자를 돕기 위한 정책을 제도화하는 작업에 착수할 것이다"라고 예측했다. 2001년 17%에 불과했던 한국 내 동성결혼 의제 찬성률이 2013년 25%를 거쳐 현재는 35%에 육박한다는 것을 근거로 내세웠다.

이어 튜더는 "다음 혹은 다다음 총선에서 새누리당이 동성애자를 지역구 혹은 비례대표 국회의원으로 밀어도 나는 놀라지 않을 것이다"라고 분명하게 언급한다. 새누리당이 지난 총선에서 귀화한 이자스민을 국회의원으로 만들었던 일을 언급하면서 말이다. 사실 그의 말처럼, 이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사회에서는 생각하기도 힘들었던 일이다.

새누리당이 먼저 외국인 의원을 배출한 것처럼, 성소수자 국회의원 후보를 공천하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튜더는 "지금부터 한 세대가 지나도 외국 출신 대한민국 시민과 그 자녀들은 다른 문제를 떠나 바로 이자스민 때문에 새누리당을 지지할 것이다"라고 보았다. 이자스민 의원의 존재로 정당의 이미지가 달라질 것이고, 따라서 표심을 움직이게 될 것란 이야기다. 마찬가지로 성소수자 의원이 보수정당에서 당선된다면 같은 정체성을 가진 사람들의 표도 자연스럽게 움직일 것이라는 주장이다.

이 글에서 튜더는 선거를 앞둔 상황에서조차 'BBK'와 '이명박근혜'만을 언급하면서 별다른 정책적 이슈를 끌어내지 못하는 야권을 꼬집은 셈이다. 그러면서 "'쉰 세대' 진보주의자가 보기엔 신세대는 '보수적'이다. 내가 보기엔 한국의 20대는 이전 세대보다 훨씬 진보적이다. 그들은 맹목적으로 야당을 찍지 않는다"고 덧붙였다. 새로운 어젠다 선점이나 이슈 선점에 취약함을 보이며 젊은층에 인기를 얻지 못하고 있는 야권에 대한 다니엘 튜더의 비판이다.

보수진영에 불편할 이슈 거론한 <중앙>의 속내

사실 이런 칼럼이 보수언론에 실렸다는 것이 조금은 놀랍다. '정치권에서 성소수자를 포용해야' 한다는 주장은 아마 해당 일간지 구독자들에게 작은 충격이었을 것 같다. 아마도 <조선일보>나 <동아일보>보다 상대적으로 합리적이라 평가받는 <중앙>이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는지도 모른다.

다니엘 튜더의 예측이 현실적인 것인지를 따져보는 것도 좋겠지만, 먼저 이런 칼럼에 선뜻 지면을 할애한 <중앙>의 의도가 궁금해진다. 물론 튜더의 칼럼은 좋은 글이지만, 언뜻 보기엔 보수진영을 지지하는 독자들을 만족스럽게 만들 내용이 아닐 것 같기 때문이다. 보수 지지층이 불편하게 생각할 '동성애'를 글의 소재로 삼았지만, 표면적인 주장의 이면에 다른 지점이 포착된다.

뜬금없이 '성소수자 의원을 보수정당에서 배출해야 한다'고 주장한다면 보수진영 지지자들은 경악할 것이다. 하지만 튜더는 이자스민 의원으로 인해 움직일 외국계 한국인의 표심을 지적한다. 현실적인 변화에 발맞추어 특정이슈에 대한 입장을 바꾸는 것이 이득이 될 경우가 있다는 주장이다.

"게이·레즈비언의 권리는 빠르게 진화하는 사안이고, 언젠가는 한국의 선거결과를 좌우하게 될 것"이라는 문장이 이를 압축한다. 초반부에 "오히려 경상도에서 동성결혼 찬성률이 가장 높다"며 독자의 이목을 끌고, 미국 닉슨 전 대통령의 전략을 인용하면서 글은 후반부로 갈수록 설득력을 높인다. 해산된 통합진보당을 거론한 뒤에 '합리적인 진보주의의 필요성'을 제기한 것은 최근 보수언론이 말하던 것과도 일맥상통한다.

말하자면, 지금도 보수진영이 유권자로부터 얻는 표의 파이는 이미 큰 상태이지만 점차 더 늘려나갈 수 있다는 제안이다. 보수언론 독자에게 있어서, 이 얼마나 솔깃한 이야기란 말인가? 지난 대통령 선거에서 '51대49'의 득표율 싸움을 하고, 거기서 아슬아슬하게 승리한 보수진영이 더 탄탄한 토대를 다져가겠다는 전략. 이것이야말로 이 글을 게재한 <중앙>의 속내가 아닐까 싶다.

그리고 진보진영이 놓치고 있는 것

물론 다니엘 튜더의 예측이 반드시 실현되리라 볼 근거는 없다. 그의 말은 일리가 있지만,  '통계'로 나타난 인식의 변화 외에는 다른 실질적인 증거를 찾아보기는 힘들다. 새누리당이 그의 뜻을 심각하게 받아들여서 당장 현실적인 법안을 마련할 것 같은 분위기도 아니다. 그렇지만 튜더의 글이 한국 진보정치에 던진 일침은 분명 새겨들을 부분이 있다.

한국에서 오래 거주한 외국인인 다니엘 튜더가 지적한 것들은 최근 몇 년간 한국의 야권이 드러낸 문제점들이다. 이는 곧 진보진영이 놓치고 있는 무언가를 가리킨 것이라 지금부터 천천히 고찰해볼 필요가 있다. 선거가 코앞으로 다가온 뒤에야 의제를 정하려고 하다보니, 단순히 '수구세력 반대'의 입장에서 그치게 되는 경향도 이제는 야권이 떨쳐내야 할 부분이다.

진보주의자를 자칭하는 사람들조차, 한국에서 거주중인 '외국인 노동자'나 '성소수자' 이슈를 두고는 적대적인 감정을 드러내는 경우가 많다. '병역거부'를 비롯한 사안에서, 합리적인 사고를 통해 입장을 결정하는 것에 앞서 불쾌하다는 심리적 표현을 강력하게 앞세우는 것이다. 포털·언론의 관련 기사에 쏟아지는 댓글에서도 이를 확인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직접 한국에서 체류한 경험이 있는 튜더의 글도 이를 뒷받침한다. 오죽하면 그는 본문에서 "현재로선 새정치민주연합이 성소수자 권리를 위해서 나서는 게 의지나 능력상으로 역부족이다"라고 적기까지 했다.

단순히 득표의 파이를 넓히는 차원을 넘어서도, 유권자의 삶을 바꿀 현실정치를 이끌어나가는 면에서도 야권의 행보가 아쉬운 것이 사실이다. 다니엘 튜더의 칼럼 마지막 문장이 "'연관성 있는(relevant)' 진보주의가 아쉬운 때"라고 마무리된 것도 같은 선상의 지적으로 보인다. 성공한 의제 선점으로 불리던 야권의 '무상급식'을 향한 보수진영의 흔들기가 시작된 가운데, 다른 의제를 보수정당이 먼저 가져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가 될런지 민주·진보진영이 깊이 생각해볼 문제가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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