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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누구에게는 푸근하고 안락한 집(Home)일 테다. 누구에게는 기어코 살아내야 하는 삶의 전쟁터일 테다. 또 그 누구에게는 아무리 해도 올라갈 수 없는 봉우리일 테다. 또 어떤 이에게는 도저히 벗어날 수 없는 올가미일 테다.

대한민국 사람에게 서울은 도대체 무엇일까. '대한민국의 수도'라는 단답형이 만든 그런 겉치레 말고, 서울의 진짜 모습은 무엇일까.

여기, 그럴싸한 서울의 정치경제학적 접근이 있다. 경제학자인 류동민 교수의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속 책의 시각이 그것이다. 서울을 살아 온, 서울을 나름 안다고 하는 류 교수는 흰 천 위에 수를 놓듯, 스타벅스에서 아파트, 고시원, 대학 캠퍼스, 도서관 그리고 대형교회 등으로 옮겨가며 케인스, 피케티, 마르크스 등의 경제학자들을 엮는다.

권력 주체는 호모 이코노미쿠스를 강요한다

책 속 소제목들 몇을 나열하는 것으로 본론을 시작할까 한다.

▲ 당신이 사는 곳이 당신을 말해 줍니다 ▲ 교회는 무엇으로 사는가 ▲ 따라올 테면 따라와 보라!  ▲ 관계자 외 출입금지  ▲ 누가 당신 등에 빨대를 꽂았는가 ▲ 약탈에 의한 축적, 대강 떠오르지 않는가. 서울의 진면목이

그랬다. 서울의 작동 원리를 정치경제학이라는 안경을 쓰고 보면 휘황찬란한 불빛만 보이는 게 아니다. 불빛에 사그라지는 삶도 고스란히 보인다.

책을 통해 만나는 서울이 더욱 가슴 저미게 만드는 것은 그게 서울만의 이야기가 아니라는 데 있다. 그것은 곧 대한민국의 민낯이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에서 서민으로 살아가는, 아니 살아내야 하는 우리들의 이야기다.

서울은 한국 자본주의의 성취와 모순이 집약되어 나타나는 곳이다. '압축 성장' 혹은 '후발 산업화'라 불리는 한 세대 남짓 짧은 기간에 벌어진 극적인 변화, 그 상징적 장소인 서울은 어떻게 변화해 왔는가.(28쪽)

저자는 이렇게 질문부터 던진 뒤 에둘러 도시 서울을 데이비드 하버의 '시·공간 압축'이라는 단어로 설명한다. 시·공간이 교차하면서 엮어내는 생산은 다시 르페브로의 '공간 실천-공간 재현-재현 공간'이라는 등식을 업은 '공간의 생산'이라는 것이다. 새빛둥둥섬을 예로 들며 공간 실천의 주체인 정치 권력이 디자이너의 공간 재현을 끌어들인 결과물이라고 설명했다.

서울은 그러니까 보이는 게 다가 아니다. 저자는 스타벅스의 그럴듯한 '자유론'이 생존의 법칙이라고 설명한다. 스타벅스는 아메리카노, 카라멜마끼아토, 디카페인 커피 등 자유로운 선택을 존중한다. 그러나 실은 그것이 소비자로서 "재화의 목록과 그것이 가져다 줄 만족의 크기, 주머니 속에 든 예산의 한도 등을 감안해 극댓값을 신속하게 찾아내는 미분기계로서의 인간"을 만들 뿐이라고 한다. 즉 호모 이코노미쿠스가 되도록 강요하는 것이다.

자본에 의한 하드웨어가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 달아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표지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표지
ⓒ 코난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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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서울의 작동 원리는 코엑스몰, 대형 할인마트, 롯데월드, 코스트코 등으로 번지게 된다. 특히 코스트코는 멤버십 제도를 통하여 배제의 원리를 적용함으로 서울에서 성공한 케이스라고 지적한다. '관계자 외 출입금지', 이 기막힌 특권 의식 주입이 서울에서 먹힌다는 이론이다. 강남과 강북, 압구정동, 대치동, 파워펠리스 이런 특권적 이미지들이 서울의 상징이 된 지 오래다.

마치 서울대, 서울에 있는 대학, 서울 주변 대학, 서울에서 좀 떨어진 대학, 서울에서 많이 떨어진 대학 등으로 대학을 분류하는 웃지 못할 촌극이 바로 서울이 자아낸 성장 자본주의의 모습이다. 성장 자본주의는 자연스럽게 소자본의 도태와 하드웨어적 대형화로 나아간다. 그렇게 되려면 케인스의 이론인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피라미드라도 지었다 부수고 다시 짓는 것이 경제에는 도움이 된다"는 쪽으로 가는 것이다. 아마 MB가 4대강을 굴착기로 파헤친 것도 이와 같은 원리일 테다.

짧은 시간에 빠른 속도로 발전했다는 역사적 특수성을 감안하더라도 서울은 비유하자면 커다란 공사판과도 같은 곳이다. 지은 지 삼십여 년이면 미련 없이 부수고 새로 짓는 아파트는 대표적인 예다. 재건축을 통한 수익 창출이라는 논리 때문에 아파트 단지들은 같은 크기의 면적에 점점 더 많은 세대를 집어 넣어야 한다.(110쪽)

아파트 뿐 아니라, 도서관, 운동장 심지어는 대학 캠퍼스, 대형 교회까지 이런 움직임의 중심에 있다. 이는 '건설 자본가의 잉여 자본을 처리하기 위한 출구'라고 저자는 지적한다. 다른 분야는 생략하고 그리스도인인 나로서는 대형교회 이야기가 마음에 와 닿아 적어본다. 저자는 '충격과 공포'라는 슬라보예 지젝의 신자유주의 자본원리를 들어 대형교회를 설명한다.

대형교회 현상, 성장 자본주의의 상징

저자에 따르면, 불안과 공포에서 벗어나려는 시스템의 중심에 교회가 있다. 저자는 "좁은 공간에 점점 더 많은 신도를 수용해야 '비즈니스'로써 생존이 가능한 교회는 고층에서 지하 예배당까지 갖춘 대형 건물이 될 수밖에 없다" 아울러 "점점 더 위압적인 숭고미를 갖춘 화려한 외관의 대형교회는 그 경쟁력에서 스스로를 차별화하려는 요소"라고 설명한다.

비즈니스의 관점에서만 볼 때, 서울의 종교 단체는 공급 과잉 상태다. 이를 극복하기 위해 대형 교회는 포드 주의를 선택했다. 포드주의의 '노동자의 주택은 쾌적해야 한다'는 원리를 따르려면, 대형교회는 당연히 하드웨어를 중시하게 된다. 1990년대 강남의 대형교회 현상은 여타의 '서울 현상'과 마찬가지로 일종의 성장 자본주의의 생존 형태다.

상대를 압도하는 '성전'의 하드웨어, 신자들의 사회적 지위, 함부로 진입할 수 없는 사회적 네트워크 등이 그것이다. 그러므로 대형교회의 공간 구조는 고급 아파트나 쇼핑몰, 놀이동산, 심지어는 패키지 여행의 그것과 닮아 있다. 디즈니랜드에는 미국이 없고, 코엑스 몰에는 서울이 없듯이, (대형)교회에는 기독교가 없는 것이다.(133쪽)

책을 읽으며 MB정권 때 '고소영'이란 단어가 유행한 것도 신자유주의라는 성장 자본주의에 의한 '관계자 외 출입금지'의 특화 정책의 이면을 까발린 말이라는 생각이 든다. 책은 권리금이나 임대료, 2호선 지하철역 대학 이름 논쟁, 구로 공단과 산업화, 러브호텔과 고시촌, 서울 주변의 인서울 풍경 등을 들며 '동시성과 비동시성', '약탈에 의한 축적' 등의 물신적 서울 지배를 이야기한다.

그럼 어떻게 이런 서울에서 살아나가야 할까. 권력에 의해 직조된 호모 이코노미쿠스로 강요되는 사회에서. 약탈에 의해 축적된 성장자본주의가 지배하는 사회에서, 대형화된 하드웨어가 '관계자 외 출입금지' 팻말을 붙여놓은 사회에서. 서울은 야비하게 말한다.

"각자 알아서 살아남아라!"

책은 저자의 특별하고 현란한 글 솜씨와 지적 놀이로 무엇이 포인트인지 맥 잡기가 여간 어렵지 않다. 그러나 일단 익숙해지면 그 속에 숨은 보석을 캐내는 일이 재미있어 놓을 수가 없다. 실은 고백하건대, 쪽수는 별로인데 이 책처럼 몇 번이나 그만 읽을까 했던 책도 없다. 그러나 100쪽 쯤 이르렀을 때 그 이후 책을 놓을 수가 없었다.

독자들도 이 책의 마력에 빠져 서울(어쩌면 한국 전체)의 진면목을 보았으면 하는 바람이다. 내가 미처 못 한 이야기까지 모두를 섭렵하며.

덧붙이는 글 |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류동민 지음 / 코난북스 펴냄 / 2014. 12 / 286쪽 / 1만4000원)



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 그리고 삶은 어떻게 소진되는가

류동민 지음, 코난북스(2014)


태그:#서울은 어떻게 작동하는가, #류동민, #새책, #서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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