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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혁신고등학교 삼각산고의 교사이다. 혁신학교는 공교육 개혁의 시범 학교로서 구성원들의 민주적 결정과 협력으로 새로운 교육 체계를 만드는 실험을 계속하고 있다.

일반적으로 중·고교 교사들에게 기말고사 후 방학날까지 의미 있는 교육활동을 진행하는 것은 어려운 과제 중 하나다. 시험과 성적처리도 다 끝나 학생들의 마음은 방학날만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삼각산고에서도 이 문제 해결은 어려웠다. 개교한 2011년부터 학기말에 합창대회, 프로젝트 수업 과제 발표 대회, 교사 개인별 특별 수업 등 마무리 활동들을 계속해왔지만 체계적인 대응이 되지 못했다.

그런데 지난 12월 23일부터 29일 사이 삼각산고 학생들은 진정한 배움과 나눔의 축제로 일년 중 가장 바쁘고 신명나는 날을 보냈다. 아이들이 보여준 숨은 재주, 눈물겨운 성과들은 참으로 놀랍고 감동적이었다. 교사 중심으로 이 시기의 혼란과 낭비를 줄여야 한다는 부담감에서도 벗어날 수 있었다. 삼각산고등학교에서 진행한 이 실험 과정을 학기말 운영을 고민하는 수많은 학교와 나누어 조금이라도 상호 자극에 도움이 됐으면 한다.

'나도 교사다'

축제의 하이라이트는 희망 학생 누구나 교사가 되는 '나도 교사다' 프로젝트 수업 장터였다. 학생들이 벌인 '난전'이라고나 할까?  30개 팀 115명이 넘는 학생들이 30개 주제 강좌로 총 195시간의 수업을 맡았다. 진도를 마저 끝내야 하는 수학 수업, 합창 대회 준비 시간, 외국어 영화제를 개최한 제 2외국어 교과 수업 등을 제외한 시간이다.

수업 방식은 '학생 교사'들이 스스로  결정한 것인데, 토론, 모둠 활동, 실험 등 그 동안의 삼각산고 교실에서 익숙한 방식이다. 2학년이 1, 2학년 대상으로 진행한 수업도 있고, 1학년이 2학년을 대상으로 진행한 수업도 있었다.

수업을 혼자 또는 팀으로 진행할 지, 주제도 학생 스스로 정했다. 주제는 평소 잘 하거나 좋아하는 것, 문제 의식을 갖고 있던 것, 자신의 희망 전공과 관련이 있는 것, 인상 깊었던 프로젝트 수업 관련 주제 등 가지 가지다.

몸이 탄탄하고 재빠른 효겸이는 호신술 수업 교사로 폭발적 인기를 누렸다. 낙법을 지도하느라 몸이 엄청 힘들었다고 '투정'을 하는데, 싫지 않은 표정이다. 그의 시범 파트너로 함께 수업을 이끈 창호는 조용하고 몸도 가늘어 운동하고는 거리가 먼 줄 알았는데 놀라운 실력을 보여줬다.

평소 수업에서 모둠 활동을 이끄는 게 힘들었다는 나연이 팀은 역할극으로 모둠 활동 중 생기는 갈등을 보여주고 '비협력 친구들의 문제를 어찌 풀 것인가?'를 주제로 토론 수업을 진행했다. 토론 결과 사실 뾰족한 수는 나오지 않았지만 "함께 고민한 과정 자체가 의미 있었다"는 게 나연이의 소감이다.

호신술 수업 중.
 호신술 수업 중.
ⓒ 김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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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브 리미널 광고 피해 발생시 누구에게 가장 큰 책임이 있는가?'라는 주제의 토론 수업.  '과학 기술 사회 시민들의 바람직한 자세 및 의식과 정부, 언론, 과학자의 책임'에 대해 같이 생각해보고 싶다는 인서 팀. 피해 사례를 먼저 소개하고 정부, 언론, 과학자, 시민 등 네 집단 대표가 각자 자기 입장을 해명한 후 학생 속으로 들어가 반론을 들으며 토론했다. 수업은 반론을 제기했던 학생들의 발표로 마무리됐다. 

팔레스타인 친구를 둔 지혜는 팔레스타인-이스라엘 간의 분쟁에 대한 우리나라 청소년의 의식을 주제로, 앞으로 독일을 연구해보고 싶다는 혜민이는 독일 문화, 역사, 통일에 관해 우리의 통일 준비 문제와 관련지었고, 수년째 다문화 가족 지원 활동을 하고 있는 민지는 '다문화 가족에게 가장 필요한 지원은 무엇일까'에 관해 친구들과 함께 공부했다.
   
195시간의 주제 외에 학교 현안 문제도 학생 중심으로 풀었다. 1학년 학생들이 1, 2학년 20개 반을 맡아 사회적 협동조합 형태의 매점 운영 취지와 방법을 설명했고, 혁신학교 운영 평가를 위한 학생 대상 설문도 학생 주도로 토론을 결합해 진행했다. 졸업반 학생과 졸업생들은 후배들에게 겨울 방학과 남은 고교 생활을 의미 있게 보내는 방법에 대해 후회와 반성을 섞어 들려줬다.

수업에 참여한 학생들의 모습과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토론과 모둠 활동이 익숙하니 대부분 적극적으로 참여하고 호응했다. 평소와 완전 딴판인 모습으로 교사들을 놀라게 한 아이들도 많다. 특히 수업 시작 5분 후면 반드시 자고, 쉬는 시간까지 내쳐 잠들어 점심을 먹이려면 흔들어 깨워야 했던 한 아이는 지리와 역사를 결합한 퀴즈를 활용한 수업에서 제일 시끄러울 만큼 적극적인 데다 정답도 제법 잘 맞추는 게 아닌가? 수강 학생들의 소감을 보니 다음에는 "나도 하고 싶다"는 등 의욕이 충만했다.

토론 중인 아이들.
 토론 중인 아이들.
ⓒ 김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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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잔치의 제안은 한 교사로부터 나왔다. 학년부(담임)회의에서 학생이 수업 전체를 진행해보면 어떻겠는가 하는 제안이었다. 고3학생 재현이가 자신이 연구한 프로젝트 소논문을 주제로 2학년 대상 수업을 했는데, 학생 반응도 아주 좋았고, 발표한 본인도 매우 흡족했다는 것이다.

삼각산고는 올해 1학기 기말에 교사, 학생이 통합 수업 태스크포스팀을 꾸려 교사 기획 수업과 학생 기획 수업의 이원적 통합 수업을 진행했다. 이 때 학생 기획 수업에 대해 기획자, 단순 참여자 모두 좋아한다는 사실을 확인한 바 있는데, 학생들은 더 나아가 자신들이 주도한 부분이 적었다고 아쉬워했다. 교사 기획 수업도 사실상 학생 참여와 발표 중심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문학 교사들은 학생 대상 수행 평가 주제 공모전을 시작했다.

'그래, 이번 학기말 수업은 아예 학생들이 모든 걸 주도하고 모두가 능동적인 참여자가 되는 수업을 하는 거다. 그동안 토론과 프로젝트 수업, 테마형 수학여행 등 학생이 기획 운영을 도맡아 해 온 활동이 좀 많은가? 잘 해낼 것이다. 좀 부족하면 또 어떤가?'

그렇게 통합 수업 담당 교사가 학생들의 수업 기획과 진행을 도왔다. 취지를 안내하고 수업 참여자 신청을 받았다. 구름처럼 몰려 온 '학생 교사'들에게 수업 계획서를 쓰게 하고 지도 교사와 연결해 계획서 검토를 받게 했다. 시간을 배당하고 필요한 교구 및 소모품을 제공하고, 수업용 노트북을 제공했다. 그렇게 '나도 교사다' 수업 준비가 이루어졌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이 수업은 2학년 과학 토론 동아리가 1학년을 대상으로 수업했던 경험과 맞닿고, 더 올라가면  2011년부터 시작된 주제 중심 통합 수업으로 연결된다. 고교에서 하기 어려운 통합수업을 명맥이라도 유지하며 노력해오다가 학교가 좀 더 자리 잡고, 교사 구성원들이 늘어나고 아이디어가 결합하면서 '점프'한 셈이다. '나도 교사다'는 이렇게 삼각산고 역사 속에서 숙성돼 온 것이다.

합창부터 뮤지컬 공연까지... 아이들이 꾸린 축제

뮤지컬 공연 모습.
 뮤지컬 공연 모습.
ⓒ 김정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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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하나의 마당은 1학년 다섯 개 반 대상 (1학기 우승반의 찬조 공연도 더불어 진행됐다)의 합창 대회였다. 학기말에 4년째 계속하고 있는 프로그램이다. 합창이 주는 감동은 참 특별하다. 제 각각의 목소리, 개성, 삶을 가진 학생들이 몸과 머리, 마음을 다해 하모니를 만들어 내고 있다. 게다가 담임 교사의 지휘와 장고 반주가 결합되니 사제가 또 하모니를 만든다. 난방이 신통치 않은 연습실 사정으로 두 달 넘게 감기로 고생한 음악 교사도 고된 과정을 잊게 되는 순간이었다.
  
마지막 마당이자 피날레는 직업 기초반의 뮤지컬 공연이었다. 대안 교실로도 불리는 이 반 의 담임교사는 반드시 '직업 기초반' 명칭을 존중해달라고 한다. 교실 위치도 중앙이다. 이 학생들을 세심하게 배려한 결과이다. 삼각산고의 대안 교실 역사도 4년 됐다. 처음에는 시간제로 더듬더듬 모색하며 시작했는데, 4년째는 전일제로 운영했다.

뮤지컬 제목은 '꽃이 피는 시간'으로 아이들이 함께 정했다. 담임교사말대로 "끙!"하고 버텨 온 아이들이, 학교를 중도 포기하지 않기 위해, 일 년을 버티고 버텨 온, 꽃이 되고 싶으나 그동안 밟히고 밟혀 피어나는 법을 알 수 없었던 아이들이 직접 자신들의 성장기로 대본으로 쓰고, 연출하고, 배우가 되어 무대에 올렸다. 더 이상 완벽할 수 없는 성장이었고, 더 이상 아름다울 수 없는 무대였다. 2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2차례 공연을 했고, 격려와 우정의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교사들도 많이 울었다. 아이들의 고통이 그대로 전해져  울고, 아이들의 성장 및 담임과 지도 교사들의 헌신이 고마워 울고, 그간 제대로 돌보지 못해 미안해 울고... 따뜻한 눈물이었다.

수업 후기를 읽으니 '학생 교사들' 스스로가 많이 배웠고, 보람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학생들의 수업을 통해 가장 많이 성장한 사람은 교사가 아닐까?  혁신 학교는 교학 상장을 넘어 진정으로 '우리 모두가 교사'인 학교다.


태그:#김정안, #삼각산고, #혁신학교, #진짜공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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