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사례1. BMW가 벤츠를 받았다. 퉁∼ 그 충격으로 다시 인피니트까지 쿵. 하지만 '이 놈 보소, 저 놈 보소'식 삿대질은 없었다. 사실, 이들은 모두 '짝패'였다. 이들은 차량 미수선 수리비로 2100만 원을 챙겼다. '렉서스 친구'까지 합해 이들이 그동안 수입 차량 4종으로 유발한 고의사고는 16회, 모두 8300만 원의 미수선 수리비를 편취한 것으로 나타났다.

수입차 미수선 수리비, 보험사가 덜 민감한 이유

최근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은 수입차를 이용해 고의 사고를 일으킨 후 보험금을 가로챈 보험 사기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2011년 1월부터 2014년 4월까지 총 687건의 보험 사고가 사기 사건에 연루됐으며, 그로 인한 보험금 '출혈'만 41억9천만 원에 이르는 것으로 나타났다. 혐의자 1인당 가로챈 금액은 1억4천만 원이었고, 그중에는 무려 28건의 고의사고를 일으킨 경우도 있었다.

이와 같은 보험 사기의 대부분은 미수선 수리비를 노린 것이었다. 미수선 수리비는 차량을 수리하지 않고도 실제 수리비의 80% 수준에 해당하는 추정 가액을 현금 형태로 수령하는 보험금이다. 중소 수리업체를 이용해 낮은 가격에 수리하고 차액을 '꿀꺽'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수리를 하지 않더라도 문제가 되지 않기 때문에 보험 사기에 악용되는 사례가 속출하고 있다.

주로 수입차들이 범죄 수단으로 악용되고 있다. 부품 수급 문제로 수리 기간이 늘어나는 경우가 많아 그로 인해 발생하는 렌트비 부담을 꺼려하는 보험사들이 상대적으로 국산차보다 미수선 수리비 지급에 '민감'하지 않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손보사가 미수선 수리비로 지급한 보험금은 매년 증가하고 있다. 보험개발원 자료를 보면 최근 5년간 미수선 수리비 연평균 증가율은 국산차가 10.5%, 반면 수입차는 29.1%로 3배 가까이 오른 것으로 나타났다. 또 2010년 6936억 원이었던 미수선 수리비가 2012년 8373억 원으로 1437억 원이나 늘어났다. 보험료 인상으로 애꿎은 소비자들까지 피해를 볼 가능성이 제기되는 대목이다.

보험 사기에 악용되는 해묵은 숙제들

수입차를 이용한 보험 사기 사건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
 수입차를 이용한 보험 사기 사건이 최근 크게 늘어나고 있다
ⓒ 픽사베이

관련사진보기


사례2. "차에 결함이 많은 것은 물론이고 부속품 또한 자주 품절돼 차량 고장 뒤 보통 10∼15일의 기간이 걸리기 예사다. 또 부품 가격과 수리비가 국산차의 3배 가까이 한다. 포드 자동차 회사에 주장하고 싶다. 국내의 자동차 시장이 폐쇄되었다고 불만을 털어놓기 전에 이미 판매된 자사의 차량 품질 보증 및 고객 관리부터 하라고."

요즘 이야기가 아니다. 1995년 9월 17일자 <한겨레>에 한 독자가 투고한 글이다. 수입차 부품 가격과 높은 수리비가 오랫동안 해묵은 숙제였음을 보여준다. 보험개발원 자료를 보면 수입차 평균 수리비는 국산차의 5.4배, 부품 값 6.3배, 공임비(정비 비용과 정비 인건비 등) 5.3배, 도장료 3.4배로 각각 더 비싸다. 게다가 부품 가격이나 공임비 등의 불투명성이 국산차보다 훨씬 '진하다'. 보험 사기에 악용될 수밖에 없는 구조다.

이 때문에 상대적으로 AS센터가 부족한 지방에서 미수선 수리비 청구가 과다하게 나타나고 있다고 한다. 최근 <매경이코노미> 보도에서 한 보험사 보상팀 관계자는 "특히 지방의 경우 수도권보다 수입차 AS가 쉽지 않아 미수선 수리비를 악용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고 전했다. "국산차야 어디 가더라도 가격이 정해져 있는 편인데 지방에서는 아직까지도 수입차 AS센터 네트워크 자체가 제대로 갖춰지지 않은 경우가 많아 미수선 수리비가 보험 사기로 연결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다.

BMW 경우를 봐도 AS센터가 전국에 40여 곳, 아우디의 경우도 AS센터 숫자가 20여 곳에 불과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한국소비자원은 현대기아차가 정비소 한 곳 당 약 545대의 차량을 관리하고 있는데 반해 아우디는 2589대라고 밝힌 바 있다. 현대기아차 AS센터 숫자(2277개, 협력업체 포함)와 비교하면 수입차 업체들이 사후관리에 소홀하다는 지적을 피하기는 어렵다. 그래도 수입차의 '유혹'은 강렬하다.

'카푸어' 결과적으로 범죄의 유혹에도 노출

최근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은 수입차를 이용해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후 보험금을 가로챈 보험 사기 기획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혐의자 4명이 BMW, 벤츠, 인피니티 등 차량을 이용하여 차량 미수선 수리비 2천1백만을 편취한 사건이 주요 적발 사례로 소개됐다
 최근 금융감독원 보험조사국은 수입차를 이용해 고의로 사고를 일으킨 후 보험금을 가로챈 보험 사기 기획 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혐의자 4명이 BMW, 벤츠, 인피니티 등 차량을 이용하여 차량 미수선 수리비 2천1백만을 편취한 사건이 주요 적발 사례로 소개됐다
ⓒ 금융감독원

관련사진보기


사례3. 30대 회사원 K씨는 2010년 봄 독일제 중형 세단을 구입했다. 선납금 30%만 내고 36개월 동안 매월 리스비 30여만 원, 3년 뒤 나머지 60%를 납부하면 된다, 그때 힘들면 재리스를 해도 된다는 유혹에 넘어갔다. 하지만 결혼을 하고 아이를 양육하기 시작하면서 '빚'을 감당할 자신이 점점 없어졌다. 기름 값도 겁이 났다. 현재 K씨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지하철로 출퇴근한다.

<뉴시스>에 실린 '카푸어 K씨' 사례다. 매월 30∼40만 원만 부담하면 수입차를 몰고 다닐 수 있다는 유혹은 한창 소비 욕구가 왕성한 20대∼30대층에게 특히 효과적이다. 유예 할부 이용자 연령대 분포를 보면 30대가 34.6%로 가장 높은 것으로 나타난다. 20대의 경우는 8% 수준으로 두 연령대가 전체 할부 이용자의 절반에 가깝다.

20대의 수입차 구매량도 크게 늘어나고 있다. 지난 국정감사에서 이윤석 새정치민주연합 의원(국토교통위원회)은 "20대의 수입차 구매량이 2010년 3528대에서 2012년 7176대로 폭증했고, 원금 유예 금액도 3252억 원에서 5307억 원까지 늘어난 것으로 추정된다"고 지적했다. 현재와 같은 불황이 지속된다면 그만큼 K씨와 같은 '카푸어'들이 양산될 가능성 또한 매우 높아지고 있는 셈이다.

더 큰 문제는 '카푸어'들이 경제적으로 궁핍한 처지에 쫓겨 앞서 살펴본 보험 사기와 같은 범죄의 유혹에 빠질 확률까지 상승한다는 점이다. 개인의 문제만이 아니라 사회적 문제로까지 불똥이 튀고 있는 상황이다. 비싼 수리비, 불투명한 부품 가격과 공임비, AS센터의 부족 등 오랫동안 노출된 구조적 약점을 사실상 정부가 방치한 결과다.

'가난 창조' 또는 '범죄 창조'부터 막아야

1995년 9월 17일자 <한겨레>에 한 독자가 투고한 글이다. 수입차 부품 가격과 높은 수리비가 오랫동안 해묵은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1995년 9월 17일자 <한겨레>에 한 독자가 투고한 글이다. 수입차 부품 가격과 높은 수리비가 오랫동안 해묵은 문제였음을 보여준다
ⓒ 네이버 뉴스 라이브러리

관련사진보기


그동안 수입차 부품 가격, 수입차 정비비, 수입차 정비 직원 임금 등의 투명성을 강화해야 한다는 목소리는 줄기차게 나왔었다. 또한 수입차 AS센터 증설 및 일원화, 대체 부품 시장 활성화가 수입차 시장의 긍정적인 발전을 위해서도 꼭 필요하다는 주장 역시 여러 차례 제기됐던 것들이다. 그럼에도 이와 관련해 정부는 뾰족한 대책을 내놓지 않고 있다.

김필수 대림대 자동차학과 교수는 한 언론을 통해 "수입차 수리비, 합법의 탈을 쓴 일부 할부 금융, 해외 브랜드들의 국내 소비자 홀대 등은 정부 당국이 자세히 살펴 정책적으로 해결해야 하는 문제"라며 "특히 카푸어는 한 사람의 인생을 망치고 더 나아가 사회를 무너뜨릴 수도 있는 심각한 문제라는 데 국민과 국가가 인식을 같이 하고 하루 빨리 해결해 나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2003년 카드 대란으로 직격탄을 맞은 신용불량자 숫자는 300만 명에 이른다. 그중 상당수가 20∼30대 젊은이들이었다. 카드사들은 '묻지마 카드 발급'으로 젊은이들을 유혹했고, 뻔히 보이는 부작용을 정부는 '고의적으로' 외면했다. 아니, 그 이전에 기성 세대로서의 의무를 방기했다. 그와 같은 잘못을 또 다시 되풀이할 것인가.

'창조 경제'란 말만 앵무새처럼 되뇌는 것보다 '가난 창조'나 '범죄 창조'를 막는 것이 먼저다. 이를 방치하지 말아야 할 책임이 정부에 있다. 뒷짐 지고 훈수만 두라고 국회가 있는 것 또한 물론 아니다.


태그:#카푸어, #수입차, #보험 사기, #미수선 수리비, #외제차
댓글2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