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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오천원짜리 파마, 맘에 드는 표정입니다.
▲ 할머니의 크리스마스 선물 만오천원짜리 파마, 맘에 드는 표정입니다.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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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리스마스 이틀 앞둔 23일은 아이의 어린이집이 방학을 했습니다. 하지만 직장에 다니는 관계로 종일반을 갈 수 밖에 없기에 아이에게는 특별한 의미가 없었지요. 대신 아이에게 어떤 선물을 할까 고민하고 있었습니다. 그때, 친정아버지에게 전화가 왔습니다.

"야, 오늘 막내 방학이지? 내가 가서 데리고 올 거니까 어린이집에 전화해!"

방학 맞이 깜짝 선물. 이렇게 갑자기 전화하시면 전 조금 당황합니다. 아이와 할아버지에는 깜짝 이벤트지만, 저는 걱정이 이만 저만이 아닙니다. 어린이집에 전화해서 할아버지가 데려 가야한다며 일찍 데려다 달라고 요청해야 하고, 할아버지 또한 추운 길에서 아이가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는 시간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시겠다면 하시는 울 아버지. 더구나 손녀와 할아버지 사이는 아무도 막을 수가 없습니다. (관련기사 : 낮잠 자는 할아버지 옆 손녀, 샘이 날 정도네요)

예상대로 할아버지는 아이와 만나는 장소인 빵집 앞에 한 시간 전에 도착하셔서 기다렸다고 합니다. 아이가 어린이집 차에서 내리자마자 빵집으로 향했습니다. 거기서 둘이 맛 나게 빵을 먹고, 시외 버스에 올라 타 시골집으로 갔습니다.

그날, 오랜 만에 만난 할아버지와 할머니는 손녀 딸에게 공주 대접보다 더한 대접을 했습니다. 저녁으로는 할머니가 직접 갈아 만든 순두부를, 그리고 밤이 되자 간식으로 할아버지가 농사 지으신 당근을 깎아 먹이고 재웠다고 합니다.

그 다음날, 시골 집은 매우 분주했습니다. 작년에도 그랬듯이 크리스마스 전 날 할머니와 손녀는 미용실을 가기위해 바삐 움직였습니다. 저에게 전화하셔서 머리를 자르고 파마하냐 마냐를 묻기도 하고, 전화하면 바빠서 못 받는다고 끊기까기 하다가 드디어 미용실에 도착했습니다.

할머니가 몇 십년 동안 다닌 미용실, 아이는 간혹 할머니를 따라왔었고 또 작년에도 왔던 곳이라 많이 익숙합니다. 대부분 손님은 시골 할머니와 아주머니들, 할머니와 손녀가 도착했을 때 미리 온 손님이 염색하고 있었습니다. 온통 백발인 할머니가 젊게 보이려고 검정으로 물들이는데 손녀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할머니, 은색이 예쁜데 왜 검정색으로 물들이세요."
"저 할머니는 얼굴이 넙죽해서 파마해도 안 이쁠것 같은데요."

미용실에 오는 할머니들마다 외모에 대한 평을 하다가, 아줌마들 대화에도 끼어 '그게 뭔데요?', '왜요?' 등 끊임없는 질문을 쏟아냈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배가 출출해짐을 느꼈을 때 미용실 아줌마가 시켜 준 국수를 '호로록 호로록' 잘도 먹었다고 하네요. 그리고 아줌마들 하시는대로 정수기 앞으로 다가가 녹차 티백을 꺼내 녹차까지 호호 불어 마셨습니다.

2시간, 3시간을 6살 손녀의 왕 수다에 지치신 아주머니들이 이젠 그만 떠들라고 한 마디씩 하셨지만, 호기심이 왕성하고 거침없는 손녀는 끊임없이 웃고 떠들었습니다. 급기야 미용실 원장 아주머니는 농담반 진담반으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머리 집에 가서 풀어주고. 로트는 담에 가져와요. 하하하.. 그 녀석 정말 쉬지 않고 떠드네."

미용실에서 할머니들의 혼을 쏙 빼고 말은 파마가 이렇게 잘 나왔습니다.

왕수다속에서도 파마는 잘 나왔습니다.
▲ 할머니단골 미용실 파마 왕수다속에서도 파마는 잘 나왔습니다.
ⓒ 김춘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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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크리스마스 때, 할머니와 나란히 파마하고 와서는 "라면처럼 꼬불꼬불해서 머리 다 망쳤다"며 다시는 할머니 따라 미용실 안 가겠다고 1년을 떠들던 아이가 이번에는 마음에 드는지 좋아라 합니다.

알고보니 이번 파마는 순전히 아이를 위해 특별히 시간을 내서 미용실에 간 것이라고 합니다. 도시에서 파마하면 아이들도 몇만 원 줘야하니, 싸고 잘 나오는 할머니 단골 미용실 파마를 해 주고 싶어서 일부러 가신거라고. 정말 쌉니다. 어른은 이만 원, 아이라 만오천 원. 아이는 하루종일 동네 할머니, 아주머니들과 수다를 떨고 와 기분이 좋습니다. 또, 원장님이 준 국수까지 배불리 얻어먹고 말고 왔으니 나름 만족했나 봅니다. 엄마인 제가 봐도 아이의 파마가 만족스럽습니다.

작년부터 올해까지 크리스마스 이브에 파마하면 일 년 정도 거뜬하게 버팁니다. 할머니가 막내 손녀에게만 주는 선물입니다. 만오천 원짜리 할머니 단골 미용실표 파마 정말 특별한 선물입니다.


태그:#크리스마스 선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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