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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주 선생님께서 원주 한살림 이행은 이사장님을 소개하고 계신다.
▲ 원주 한살림 이사장 소개 김영주 선생님께서 원주 한살림 이행은 이사장님을 소개하고 계신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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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은 사랑숲 협동조합 연구회 초청강연의 달이다. 연달아 3주째 원주의 협동조합 장인들을 모셔다가 재미난 강의를 듣고 있다. 오늘(12월 17일)의 주인공은 원주 한살림의 이사장을 맡고 계신 이행은 선생님이다. 아담한 키에 웃는 모습이 선한 분이신데, 막상 이야기를 들어보니 성질도 급하고 화끈한 면도 가지고 계신다.

이 이사장의 강연은 간단한 한살림 소개 후에 질의응답 형식으로 진행되었다. 내년이면 벌써 한살림이 30주년이라고 한다. 1985년 소비자협동조합이라는 이름으로 시작된 작은 움직임이 2014년 현재는 조합원 수 50만 명, 년 매출 3500억 원, 활동가 수 3천여 명, 21개 지역에 300여 개의 매장을 가진 명실상부 최고의 생활협동조합으로 자리매김하였다.

생산자와 소비자가 함께 공존하는 협동조합인 한살림은 이러한 숫자적인 면에서 보다 그 기저에 깔려있는 가치 면에서 사람들에게 더욱 인정을 받는다. 농부를 살리고, 땅을 살리고, 생명을 살린다는 생명사상은 한살림의 설립 취지이자 운영기조라고 볼 수 있다.

고 무위당 장일순 선생(한살림 운동의 창시자)은 나락 한 알 속에도 우주가 존재한다 하였으며, 이는 모든 생명 있는 것들에 대한 존중의 정신이다. 그것이 바로 한살림의 철학이자 가치인 것이다.

평범한 주부에서 한살림 이사장이 되기까지

다소곳한 자세로 한살림과 협동조합에 대해 재미있게 말씀해주셨다
▲ 원주한살림 이행은 이사장 다소곳한 자세로 한살림과 협동조합에 대해 재미있게 말씀해주셨다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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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살림에 대한 애정 어린 설명에서 느껴지는 자부심과 당당함은 그녀가 걸어온 삶 자체를 드러내고 있었다. 막힘없이 술술 풀어가는 한살림 이야기는 어느 한 아줌마의 인생역전기와도 같았다.

지극히 평범한 가정주부가 우연히 한살림의 소모임에 들어갔다가 조금씩 의식을 깨우치고 공부하여 성장하는 과정은 한편의 서사시였다. 다른 강연 내용은 접어두고 이번 회에서는 그 부분에 집중해 보기로 한다. 누구나 그렇게 할 수 있다는 확신을 가지고.

강원도 원주로 시집을 가서 시집살이와 더불어 전업주부로 나날을 보내고 있던 이 이사장. 본인의 활달한 성격 탓이겠지만, 주변에서 얼른 애 키워놓고 나가서 일하라는 무언의 압력이 심했다고 한다.

당시 부유한 형편의 형님 댁과 자주 비교되는 상황에서 자존심 강한 그녀가 선택한 길은 전혀 통념적이지 않았다. 그녀의 말을 들어보자.

"내가 돈을 아무리 많이 벌어봤자 우리 형님네가 저렇게 잘 사는데, 그렇다고 내가 기죽고 살 수는 없는 거라. 나는 다른 쪽으로 잘 살아볼 거야. 환경을 지키는 건 내가 더 잘하고, 아껴쓰고 절약하는 것도 내가 더 잘할 수 있어. 그러다가 한살림에서 나온 책들을 접하게 되었습니다. 장일순 선생님의 말씀이 담긴 책은 지금도 가지고 다니면서 읽고 있습니다. 저한테는 성경과 같지요. 거기서 생명 존중의 사상을 배웠으니까요."

한살림의 취지와 실천 덕목에 격하게 공감한 그녀는 생활 속 행동에 들어간다. 없는 건 부끄러운 게 아니다. 안 가진 건 홀가분한 거다. 그렇게 주변을 비워 나가기 시작했다고 한다. 옷장을 비우고, 냉장고를 비우고, 마음까지 비워 나가는 과정. 그렇게 비워진 자리에는 친환경적인 순면제품의 옷과 농부의 피와 땀이 어린 유기농 먹거리들로 채워졌다.

"처음 한 살림을 만들게 된 배경은 농부를 살리자, 라는 생각이었다고 합니다. 농부를 살리면 땅이 살고, 땅이 살면, 생명이 살아난다는 원리였지요. 그래서 저희는 요즘도 농부님들을 하늘처럼 모십니다. 즐거운 농부, 행복한 농부가 생산하는 농산물을 먹으면 우리도 즐겁고 행복해 질 수 있다는 걸 알았으니까요."

이 이사장의 아이들은 이제 고등학생, 중학생이 되었는데, 지금껏 학원 등의 사교육을 한 번도 시킨 적이 없다고 한다. 어릴 적부터 엄마의 한살림 운동에 함께 참여하면서 그 자체가 산교육이 되었고, 아이들에게 깨달음을 줄 수 있었기 때문이다. 둘째 아이가 초등학교 3학년일 때, 엄마의 생일에 편지를 적었다고 한다.

'엄마, 이제는 우리가 뭐든 스스로 할 테니, 마음 놓고 한살림 운동 하세요'라는 딸의 편지를 받은 뒤부터는 천군만마를 얻은 듯 힘을 내서 더욱 적극적으로 활동을 해 나갈 수 있었다는 얘기다. 그녀가 이사장이라는 직함을 얻기까지를 조금 더 살펴본다.

강연 중간 쉬는 시간에도 피곤한 기색없이 회원들의 궁금한 점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이행은 이사장님.
▲ 협동조합 연구회 회원들과의 대화 강연 중간 쉬는 시간에도 피곤한 기색없이 회원들의 궁금한 점에 대해 친절하게 설명해 주시는 이행은 이사장님.
ⓒ 이정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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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연 비누 만들기 소모임에 참석했다가, 한살림 운동의 의미에 눈을 뜨게 된다. 명랑한 성격 탓에 총무를 거쳐 소식지 편집 모임에 합류하게 되었고, 그러다보니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 한살림 운동을 설명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문제는 여러 사람들에게 한 살림과 관련된 질문을 받을 때 또렷하게 대답을 못해주는 부분이 많았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유기농이라는데 농약을 쳤는지 안 쳤는지 어떻게 믿을 수 있나?'라든가, '유정란, 유정란 하는데 그걸 어떻게 구분하느냐?'등의 질문에 대해서 구체적인 증거나 상황을 설명할 수 없었다는 얘기다. 그러나 우리의 아줌마는 거기서 굴복하지 않고 협동조합 산하의 농산물위원회에 몸으로 뛰어든다. 직접 생산지에 가서 눈으로 시설 및 물품들을 확인하고, 공부를 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렇게 관심을 가지고 적극적으로 참여하게 되니, 아는 만큼 보이고, 그만큼 역량을 갖추게 된다. 그러고 나니 여기저기서 홍보 및 자문을 구하는 위치가 되고, 그렇게 한 걸음씩 나아가다 결국에 이사장의 자리에 오르게 된 것이다. 뭐, 그렇다고 한살림 이사장의 자리가 대단하다는 것은 아니다. 모두가 주인인 협동조합이므로, 그 최전방에서 행동하고 실천하는 그런 역할, 일종의 '큰 머슴'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그간의 활동 중에서 감명 깊었던 일화 중 하나를 들어본다.

"일본산 수산물의 세슘 검출 농도 기준을 낮추기 위해 몇 달간을 조합원들끼리 갑론을박 했습니다. 정부의 기준은 일본 쪽에서 제시한 기준을 그대로 받아 들였지요. 처음에는 500Bq/Kg이하였는데, 걸리는 물품이 하나도 없으니까, 일본쪽에서 100Bq/Kg이하로 기준치를 낮춥니다.

그걸 우리 정부가 따라서 낮춘 것이 지금 현재의 기준입니다. 한살림에서는 토론 끝에 성인 기준 8Bq/Kg로 기준치를 낮추었습니다. 그리고 조합원들과 함께 탈핵과 에너지 아끼기 운동을 펼쳐나가고 있습니다. 한살림은 단순한 먹거리 바꾸기가 아닌 하나의 운동이라고 봐야합니다. 생명과 환경을 생각하는 사회 운동인 셈이죠."


태그:#한살림, #원주한살림, #생명사상, #무위당 장일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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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는 이야기 위주로 어줍지 않은 솜씨지만 몇자 적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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