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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해 세월호 침몰 사고와 더불어 국민에게 큰 충격을 준 사건은 육군 28사단 윤 일병 사망 사건이다. 윤 일병은 선임병들로부터 지속적으로 비인간적인 폭행과 가혹행위를 당한 뒤 목숨을 잃었다. '제 식구 감싸기'라는 오명을 받은 군 사법제도를 비롯해 병영문화 전반을 혁신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 나왔다. 결국 군은 지난 8월 외부전문가가 참여하는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아래 혁신위원회)를 출범시켜야 했다.

이러한 흐름의 중심에 임태훈(38) 군인권센터 소장이 있다. 그는 윤 일병 사건을 비롯한 비극적인 군 사망 사건을 폭로함으로써, 군 인권 문제가 전 국민적인 관심사로 떠오르게 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혁신위원회 위원으로 참여해 군 사법제도 개혁 등에 온 힘을 쏟았다.

혁신위원회는 18일 22개 혁신과제를 발표한다. 과거처럼 군 개혁이 용두사미로 끝나는 것 아니냐는 국민의 우려가 크다. 임태훈 소장은 "혁신과제를 평가하면 100점 만점에 60~70점이다, 아쉬운 점이 많지만 성과도 있다"면서 "군 수뇌부가 이 정도까지 개혁하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고 밝혔다.

"사람들 의식 안 바뀌면, 제2의 윤 일병 사건 재발"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임태훈 군인권센터 소장
ⓒ 남소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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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과제에 따르면, 군판사가 아닌 일반 장교가 군재판에 참여하는 심판관 제도는 군사기밀 관련 사건 등을 제외하면 원칙적으로 폐지된다. 지휘관의 형량 감경권(확인조치권)도 성 관련 범죄나 구타·가혹행위 사건에 적용할 수 없도록 제한된다. 또한 사단 군사법원 제도가 폐지되고 국방 인권 옴브즈만 제도(부당한 행정처분 등으로 그 구제를 호소할 때 일정한 권한의 범위 내에서 조사해 시정을 촉구함으로써 시민의 기본권을 보호하는 인권보호관실을 의미)가 도입된다. 혁신과제들은 이미 국방부에 전달됐고, 국방부는 이를 면밀히 검토해 정부안을 마련한다.

임태훈 소장은 "활동기간이 짧고, 위원 150여명 중 진보성향 인사는 저를 포함해 2명뿐이었다, 위원회에서 100% 만족할 만한 대안을 내놓기 어려웠다"고 아쉬움을 털어놓았다. 근본적인 군 사법제도 개혁안으로 평가되는 군사재판 제도 폐지는 이뤄지지 못했고, 보통군사법원을 사단이 아닌 군단에 설치하는 선에서 결론이 나왔다.

임 소장은 "국방 인권 옴부즈만 제도 도입도 의미가 있다"고 말하면서도 옴브즈만 제도를 운영하는 인권보호관실을 총리실 산하에 설치하는 것으로 의견이 모아진 것을 두고 "실효성에 의문이 제기된다"고 지적했다. 인권보호관실을 대통령 직속으로 두거나 국회 산하에 설치하자는 임 소장의 주장은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병사 월급 인상, 복무기간 단축, 모병제를 위한 중장기 마스터플랜 마련 등도 논의되지 못해 아쉽다고 밝혔다.

그는 혁신안이 최종 확정된다 해도 제2의 윤일병 사건은 언제든지 재발될 수 있다고 내다봤다. "제도는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전환돼야 한다"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인권교육을 강조하고 있지만 개혁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군인 인권보다 북한 인권에 더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고 지적했다.

군 수뇌부를 향해서는 "군인의 인권이 보장되고 군 내부의 투명성이 확보될 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병사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고 전했다. 그는 국민에게 군 문제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을 주문했다. "국민이 군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책상을 치며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질책한 뒤 사과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처럼 쇼가 반복될 수 있다"고 꼬집었다.

인터뷰는 17일 오후 서울 영등포 군인권센터 사무실에서 진행됐다. 다음은 기자와 임태훈 소장의 일문일답을 정리한 것이다.

"군 수뇌부, '개혁 못하면 국민 외면' 인식"

- 육군 28사단 윤 일병 사망 사건을 공론화시킨 공로로 올해 여러 단체의 인권상을 받았다.
"작은 인권단체가 한 해 35조 원의 예산을 쓰고 60만 명의 대군을 거느리는 군과 대립하니, 주목받는 것 같다. 보통 국민의 눈으로 봤을 때, 군에서 상식적이지 않은 충격적인 사건들이 연이어 발생하고 있다. 국민들이 용인해주던 군 폐습의 한계를 넘어섰다. 상을 받아서 좋다기보다, 더 큰 책임감과 더 잘해야겠다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다."

- 지난 8월 출범한 민·관·군 병영문화혁신위원회는 지난 12일 22개 혁신과제를 확정하고 이를 국방부에 권고했다. 위원으로서 활동한 소감을 말해 달라.
"아쉬움이 남는다. 우선 활동기간이 짧았다. 또한 위원회에 관련 전문가들만 모인 게 아니었기 때문에 백가쟁명 식으로 각종 안을 낸 뒤 취사 선택하는 식으로 논의가 이뤄졌다. 또한 위원 150여명 중 진보성향 인사는 저를 포함해 2명뿐이었다. 위원회에서 100% 만족할만한 대안을 내놓기 어려웠다. 그럼에도 성과가 있었다. 심판관 제도를 원칙적으로 폐지하고 지휘관의 형량 감경권(확인조치권)을 제한한 것은 진일보한 것으로 평가할 수 있다. 사단 군사법원 폐지도 의미 있다."

- 군의 반대는 없었나.
"일부 전역 군인 출신 위원들이 지휘권 약화에 대한 우려를 내놓긴 했지만 큰 반대는 없었다. 보수성향의 위원들은 오히려 군 사법제도 개혁을 강하게 요구했다. 현역 군 위원들은 아무 말 못했다. 군 수뇌부가 이 정도까지 개혁하지 않으면 국민들로부터 외면당한다고 인식하고 있는 것 같다."

- 심판관 제도·감경권의 전면 폐지를 이루지 못했다.
"심판관 제도는 군사기밀과 관련되거나 군사지식을 요하는 경우에만 예외적으로 운영되도록 했다. 감경권도 성 관련 범죄나 구타·가혹행위 사건에 적용할 수 없다. 내심 여기에 반대하는 군의 의견과 절충점을 찾은 것이라 할 수 있다. 위원회 권고안은 100점 만점의 70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 사단 내 보통군사법원 폐지도 성과로 보인다. 하지만 이전부터 근본적인 군 사법제도 개혁은 군사법원 폐지라는 주장이 강했다.
"저는 1심인 보통군사법원과 2심인 국방부 고등군사법원을 폐지하자는 안을 냈다. 국방부 내에 중앙군사법원을 설치해 1심을 진행하고, 2심과 3심을 민간 고등법원과 대법원에서 진행하자는 것이다. 또한 군판사가 전문성을 갖출 수 있도록 보직을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이견이 있어 전체회의까지 올라가지 못했다. 제가 나머지 위원들을 설득하지 못한 셈이다. 군사법원 폐지를 논의할 상황이 아니었다."

"참여정부의 군 사법제도 개혁안이 있었기에 성과 있었다"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출입통제에 항의하며 군관계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정 출입통제 항의 16일 오전 '윤일병 사망사건' 재판이 열리는 경기도 용인시 3군사령부 보통군사법원에서 군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이 출입통제에 항의하며 군관계자들과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 권우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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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참여정부 때 사법제도개혁추진위원회(사개추위)가 내놓은 군 사법제도 개혁안은 좌초됐다. 하지만 이번에는 일정한 성과를 거두었다.

"당시는 상부로부터의 개혁이었다. 이번에는 윤 일병 사건 이후 화가 난 국민으로부터 개혁 요구가 나왔기 때문에, 군도 눈치를 볼 수밖에 없었다. 또한 참여정부 당시 군 사법제도 개혁안이 있었기 때문에, 혁신위원회의 짧은 활동 기간에도 논의가 비교적 수월했고 성과를 낼 수 있었다. 처음부터 군 사법제도 개혁안을 논의했다면, 지금보다 후퇴한 안이 나왔을 것이다."

- 혁신위원회는 지난 8월 즉시 추진 과제로 부모와 병사간 24시간 소통 보장, GOP 면회 허용, 일반 부대 평일 면회 보장 등을 내놓았다. 그 이후 어떻게 진행되고 있나.
"설익은 안이었다. 통제 일변도의 병영구조에서 24시간 소통을 어떻게 보장하겠다는 것인지 모르겠다. 주말 GOP 면회는 좋은 것인지 모르겠다. GOP나 일부 전방부대 군인들이 지켜야할 전선이 넓은데, 이런 곳의 병력을 늘리는 게 더 중요하다. 또한 외출과 외박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언제든지 외부에 연락할 수 있도록 휴대전화 반입을 허용하자고 주장했지만, 통과되지 않았다."

- 혁신위원회는 국방 인권 옴브즈만 제도 도입을 국방부에 권고하기로 했다.
"100점 만점에 60점으로 평가할 수 있다. 국방 인권 옴브즈만 제도를 도입하는 것 자체가 의미 있는 일이다. 총리실 산하에 설치하는 안이 확정됐는데, 실효성을 담보하기 어려워 보인다. 국방부를 조사할 수 있는 힘 있는 기관이 되려면, 대통령 직속으로 두거나 국회 산하에 설치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현장조사도 제대로 못할 것이다. 제가 독립성을 보장해야 한다고 강조해, 그나마 관련 문구가 들어갔다."

- 혁신위원회는 폭행·가혹행위 가해자뿐만 아니라, 묵인·방조하는 군인까지 엄중하게 처벌하는 권고안을 마련했다. 실효성이 있다고 보나.
"경각심을 일깨워주는 계기가 될 수 있겠지만, 근본적인 대안은 될 수 없다. 폭행·가혹행위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가 외부 단체에 신고할 수 있도록 한다면, 묵인·방조하는 군인은 없어질 것이다."

- 다루지 못해 아쉬운 사안도 있나.
"선택과 집중에 따라 군 사법제도 개혁, 국방 인권 옴부즈만 도입에만 힘을 쏟았고, 나머지 사안에는 그렇지 못했다. 혁신위원회가 많은 것을 담아낼 수 있는 기구가 아니었다. 병사 월급 인상, 복무기간 단축, 모병제를 위한 중장기 마스터플랜 마련 등을 주장하기 어려웠다. 또한 혁신위원회에서 군 가산점 제도가 통과됐는데, 개인적으로 반대한다. 위헌 판결을 받은 바 있기 때문에, 국방부가 이를 추진해도 국회 입법 문턱을 쉽게 넘지 못할 것이다."

"박 대통령, 우리나라 군인 인권보다 북한 인권에 더 신경"

- 국방부가 혁신위원회 권고안을 받아들일 것으로 보나.
"국방부가 받아들일 것으로 본다. 그렇지 않으면 혁신위원회 내의 보수성향 위원들을 모두 적으로 돌리게 된다. 군 입장에서는 혁신위원회가 점령군으로 보일 수 있다. 저 같은 사람을 보면, 적장이 아군 진지에 와서 칼 차고 이래라 저래라 하는 것으로 비칠 수 있다. 저는 우리 젊은이들이 군에서 다치거나 죽지 않게 되면 군이 건강해지고 국방력이 강해진다고 생각한다. 군 수뇌부도 군인의 인권이 보장되고 군 내부의 투명성이 확보될 때 국가를 위해 목숨을 바치는 병사들이 늘어난다는 것을 명심해야 한다."

- 박근혜 대통령에게 군 사법제도 개혁 등에 대한 의지가 있다고 생각하나.
"군 개혁은 통치권자의 의중이 반영되지 않으면, 한계를 드러낼 수밖에 없다. 박 대통령은 전군 지휘관 회의에 참석해 인권교육을 강조했고, '이쯤하면 됐다'는 자세를 버리라는 국군의 날 메시지도 내놓았다. 이 점은 인정해야할 것 같다. 하지만 일선 군부대 인권교육을 보면, 대통령의 개혁 의지가 제대로 전달되지 않는 것 같다. 또한 대통령이 개혁에 대한 철학을 갖고 있는지 의문이다. 우리나라 군인 인권보다 북한 인권에 더 신경 쓰고 있는 것 같다."

- 이번 혁신안이 최종 확정된다면, 윤 일병 사건은 재발하지 않을 것으로 보나.
"아니다.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다. 제도는 완벽한 대안이 될 수 없다. 제도를 운영하는 사람들의 의식이 전환돼야 한다. 대통령, 정치인, 군 수뇌부의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 또한 국민 의식도 바뀌어야 한다. 국민이 군 문제에 관심을 두지 않으면, 책상을 치며 한민구 국방부 장관을 질책한 뒤 사과한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처럼 쇼가 반복될 수 있다. 국민들이 군을 감시하고 군인권단체에 관심을 더 기울인다면, 군대 내 비극은 크게 줄어들 것이다."


태그:#임태훈 소장 인터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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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 법조팀 기자입니다. 제가 쓰는 한 문장 한 문장이 우리 사회를 행복하게 만드는 데에 필요한 소중한 밑거름이 되기를 바랍니다. 댓글이나 페이스북 등으로 소통하고자 합니다. 언제든지 연락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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