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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김순희 시민기자는 울산 동구의 마을 도서관, 꽃바위작은도서관에서 사서로 일하고 있습니다. 마을사람 누구나 오순도순 소박한 정을 나누는 마을 사랑방 같은 작은도서관. 그곳에서 만난 아름다운 사람들의 이야기를 <오마이뉴스> 독자 여러분들께 전합니다. [편집자말]
수다스런 아줌마들이 말 한 마디 안 하고 집중합니다. 보기 좋아요.
▲ 공부를 이렇게 했으면 뭐가 되었을라나 수다스런 아줌마들이 말 한 마디 안 하고 집중합니다. 보기 좋아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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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만히 있기만 해도 춥다는 소리가 저절로 나오는 겨울의 매서움을 몸으로 느끼는 요즘입니다. 그 많던 행사들도 끝이 나고 곧 있을 겨울방학을 기다리는 때, '올해도 이제 마무리를 해야 하는구나' 생각을 합니다.

"샘들~ 낼은 아침에 기차 시간 잘 지켜서 오이소."
"아무렴요. 그건 걱정 마소. 꽃바위(도서관)에서 나가는 시간이 있으까네, 시간 맞춰 갈게요."
"아무래도 걱정이 쪼매 되네. 제때 기차 못 타믄 그냥 남겨두고 감더. 알았지요?"

여러 차례 KTX 시간 맞춰서 역까지 가는 리무진을 타시라 당부했지만, 안심이 안 되어 연신 문자메시지를 보내고, 전화하고 그랬습니다. 아, 어디 가냐고요? 저희 도서관 도서보수팀이 선진지 견학이라고 해서, 도서관에서 여러 가지 활동을 하는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다른 지역의 가볼 만한 곳을 견학하는 것입니다. 도서관 활동 하는 모든 분들이 가는 것은 아니고, 도서보수팀처럼 한 가지 뜻을 가지고 꾸준히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가는 것입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두 번째인데, 어렵게 예산을 받아 가는 거라서 신경이 많이 쓰이기도 합니다. 원래는 5월 책잔치가 한창일 때나, 10월에 가려고 했는데 이런저런 사정이 있어 가지를 못하고 이렇게 추운 겨울에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파주출판도시', 우리나라 출판사들이 모여 있는 곳으로 현대적 감각의 건축물과 출판사에서 쏟아져 나오는 많은 책들을 한눈에 볼 수 있는 곳입니다. 도서보수팀 자원봉사자 '샘'들은 오랫동안 파주출판도시에 가보길 원했고, 그곳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활자인쇄소 '활판공방'의 책 제본에 관심을 보였습니다. 활자인쇄의 과정을 통해 새로운 책의 소중함을 깨닫게 될 기회여서, 일정을 잡는 저로서는 걱정과 고민에 휩싸였습니다.

울산 방어진 아줌마들의 파주출판도시 나들이

책을 고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이런 문구들은 가슴이 아파요
▲ 지혜의 숲에서 눈길을 끄는 곳 책을 고치는 사람들이어서 그런지 이런 문구들은 가슴이 아파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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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왔는교? 밤새 걱정돼서 한숨 못 잤는데, 다들 무사히 방어진에서 여기 울산역까정 잘 찾아왔네요."
"샘은 우리를 뭘로 보고 그나는교? 잘 맞춰 왔잖아요. 흐흐."
"그러게. 괜한 걱정했는가베. 자~, 그라믄 인원점검 하고, 기차 타러 가입시더."

당일 아침은 다른 날보다 아침 기온이 무척 쌀쌀했습니다. 해마다 그래도 울산은 다른 지역에 비해 따뜻한 편이었는데, 올해는 정말 장난 아닌 것 같았습니다. 모처럼 기차 타고 먼 서울로 간다고 하니 다들 잠을 설쳤는지, 얼굴이 부스스 했습니다. 그렇게 다들 들떴습니다.

물론 이들을 하루 동안 지켜야(?) 한다는 막중한 책임을 진 저로서는 좋기는커녕, 서울 지리도 잘 모르는데 어떻게 가야 할지부터 고민이 되었습니다. 밤새 인터넷을 뒤져 서울역에서 몇 번 지하철 타고 내려서 몇 번 갈아타고, 파주행 버스를 타고 내려서 어떤 출판사를 어떤 식으로 다닐지 알아봤지만, 하나부터 열까지 다 걱정이었습니다.

"그나저나 샘, 샘은 서울 지리 쫌 아는교? 아무래도 걱정이 되네."
"서울 지리 모르믄 물어서 가믄 되지 뭐 걱정인교? 못 가믄 서울역에서 서울 하늘 쳐다보고 사람 구경하고 오믄 되지, 안 그런교?"
"아~ 그 방법도 있었네. 암튼 우린 샘만 믿고 따라감더."
"그라소. 나도 서울이 한 다섯 번째쯤 되나? 맨날 따라다니는 것만 해봐가 오늘 일은 나도 모름더. 우째 되겠지요. 흐흐."

서울 지리 모르는 울산 방어진 아줌마들의 서울 나들이가 그렇게 시작되었습니다. 그동안 핸드폰 쳐다본다고 애꿎은 애들만 나무라던 아줌마들이, 다들 핸드폰으로 서울 지리를 찾았습니다. '모르면 사람들한테 물어보고 가면 되겠지' 생각했지만, 막상 서울에 도착하니 정신을 바짝 차려야겠다는 생각도 들었습니다. 울산보다 더 추운 서울의 바람을 맞자니 다들 얼굴만 빼꼼 내밀고 다녔습니다.

활자들이 즐비하게 있네요. 한 자 한 자 찾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힘든 만큼 보람이 있어요.
▲ 신기하고 대단합니다 활자들이 즐비하게 있네요. 한 자 한 자 찾기가 힘들었지만 그래도 힘든 만큼 보람이 있어요.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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겨우겨우 지하철 타고 또 갈아타고 파주행 버스에 몸을 실었습니다. 한 30여 분을 달렸을까, 옛 기억을 더듬어 버스에서 내리긴 내렸는데, 한 정류장 덜 가서 내린 것이었습니다. 바람을 고스란히 맞고 전부 총총걸음으로 출판도시 입구에 다다랐지만 생각보다 추위는 더 심했습니다.

"아이고~ 샘들, 미안테이. 한 코스 더 와서 내려도 되는데, 이래 고생하게 됐네."
"추버 죽겠지만 운동한다 셈 치고 갈라요. 얼릉 따신데 들어갑시더."
"견학을 하러 온 거지 뭐 오자마자 찻집을 찾는교? 뭐 구경이라도 해야지요."
"아이고~ 샘, 추버 죽겠심더. 우선 따신 차로 몸이라도 녹이고 구경함시더, 야~?"

몇 분도 안 돼서 다들 카페를 찾았습니다. 구경이고 뭐고 따뜻한 곳으로 가기를 원했습니다. 그래도 여기까지 찾아온 보람은 있어야 할 것 같아 지도를 찾아들고, 가기로 한 곳을 찾아 몸을 녹였습니다.

처음 들른 곳은 아시아출판문화정보센터의 '지혜의 숲'이었는데, 온통 기증받은 책들로 벽을 가득 채우고 있는 것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조금 전 추워서 아무것도 못할 것 같다던 도서보수팀 샘들은 책 구경 하느라 정신을 잃어버릴 지경이었습니다. 정말 제가 생각해도 신기하고, '책을 대하는 마음자세가 정말 중요하구나'라는 걸 느꼈습니다.

그곳을 나와 허기진 배를 채울 식당을 찾았습니다. 오기 전엔 맛집이 어디며, 뭘 먹어야겠다는 생각들이 있었지만 찬바람 좀 쐬고 나니 다들 그냥 평범한 따뜻한 국물이 있는 음식이면 좋다며 저만 졸졸 따라다녔습니다. 아무 데나 들어가기가 오히려 참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운은 있었던지 가까운 곳에서 식당을 찾았고, 그다지 나쁘지 않은 점심 식사로 얼어붙은 몸을 녹이고, 그동안 못다 피운 웃음꽃도 조금 피웠습니다. 빠듯한 일정을 소화해내야 한다는 생각에 저 혼자 마음은 타들었고, 오늘만큼은 내가 '엄마 노릇'을 해야 한다는 강박관념이 생겨 먹는 둥 마는 둥 하였습니다.

"샘~, 오늘 메뉴 정말 좋았심더. 탁월한 선택!"
"그렇게 잘 묵었다니 다행임더. 그나저나 다 묵었으믄 얼릉 갑시더. 다음 들러야 할 곳은 미리 예약이 된 곳이라 제 시간이 맞춰 가야함더. 자자, 일어나소."

"학창시절 때 이렇게 했더라믄 반에서 1등은 안 했겠능교?"

진지하게 잘 듣고 있네요. 함께 온 보람이 있어요.
▲ 완전 '집중' 중입니다 진지하게 잘 듣고 있네요. 함께 온 보람이 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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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촉하며 서둘러 들른 곳은 우리나라에 유일하게 남아 있는 활자인쇄소 '활판공방'이었습니다. 아이들은 물론 많은 사람들이 견학을 다녀가는 곳입니다. 종이책이 전해주는 무언가 모를 소중함 같은 것들이 그곳에 머무는 내내 가슴 속을 채웠습니다.

"샘들, 여기서 평소 자신이 생각하고 있던 글귀를 직접 활자를 통해 인쇄까지 해보는 시간을 갖는다고 함니더. 설명 자알 듣고 한번 해보고 가입시더."
"우리가 할 수 있을랑가 모르겠네요. 뭐 해야 하는지…."

갑자기 생각나는 글귀가 없는지 한참을 생각하더니, 가르쳐준 대로 글귀 하나하나 활자를 찾아 문장을 만들어갔습니다. 그렇게 진지한 모습은 처음 봤습니다. 꼭 엄마(?)가 된 듯했습니다. 왜 그리 흐뭇한지.

"샘들, 학창시절 때 이렇게 했더라믄 반에서 1등은 안 했겠능교? 글쵸?"
"그러게요. 이렇게 열심히 해보지 않아서…. 자랑은 아니지만 그래도 재미있네요 은근히."
"좋은 글귀를 자알 맹글어보소. 아마 추억이 될 낍니더."

그렇게 두 시간 가까이 활판공방에서 '꿈을 찍는 활자' 체험을 하고 활자인쇄로 만들어진 시선집을 구경하고, 아쉬움을 뒤로한 채 그곳을 나왔습니다. 돌아오는 기차 시간이 빠듯해서 출판사를 다 둘러보지는 못했습니다. 가까운 몇 군데와 북카페가 있는 책방을 둘러보는 정도로 하루 일정을 마무리 지어야 했지요.

본인이 직접 인쇄하는 체험을 하면서 다들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네요
▲ 직접 인쇄를 해봐요 본인이 직접 인쇄하는 체험을 하면서 다들 신기해하고 즐거워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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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은 아쉬움을 뒤로하고 파주를 떠나 서울역으로 오는 길에, 늘 TV에서만 듣고 봐오던 '인사동거리'를 가보길 원했습니다. 다행이 울산으로 내려오는 기차 시간이 조금 남아 '인사동거리'를 찾았습니다. 해는 지고 어둑해졌지만, 정말 말로만 듣던 그 거리는 옛 추억을 잠시 생각할 수 있는 분위기를 안겨주었습니다. 추워서 많이 돌아다니지는 못하고 그곳에서 간단한 저녁을 먹었습니다.

"오늘 다들 부족한 나를 따라다닌다꼬 고생했심더. 원래 고생은 사서도 한다카이 너무 불평은 하지 않기로 하입시더."
"아이고, 그래도 아무것도 모르는 우리를 잘 데리고 당기가 고맙심더, 사서샘."
"그래도 기억에 남은 건 하나라도 있지요? 없음 다시 가야 하고. 흐흐."
"아임니더. 오늘 참말로 잘 보고 감니더. 배도 부르게 잘 묵었고, 춥고 피곤하지만 그래도 좋았심더. 언제 우리가 여기 먼 데까정 와보겠능교? 앞으로 더 열심히 책보수 해야겠심더."

한 달 걸을 것을 하루 만에 다 걸은 것 같다며 투덜대기도 했지만 보람 있는 하루였다고 얘기합니다. 좀 일찍 왔더라면 책 제본하는 걸 볼 수 있었는데, 다음을 기약하고…. 잊혀가는 활자인쇄를 유지하기 위해 한정 수량으로 시선집을 만들어 판매도 하고, 찾아오는 이들에게 활자 체험 기회도 주는 것은 종이책에 대한 작은 배려가 아닐까 하는 생각을 했습니다.

추운 날씨 때문에 고생은 했지만 그래도 다들 말없이 일정을 소화해주고, 서툰 초행길 이어서 더 고생스러웠지만 불만 않고 따라다녀 준 것이 정말 고마웠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다시 찾아오고 싶다는 도서보수팀 샘들의 한마디가 또 힘이 되어, '다시는 엄마 노릇 안 해야지' 한 제 마음에 새로운 내년 일정표가 아른거립니다.

여기까지 왔는데 단체사진 한 장 찍어 가야 한다고 우겨서 겨우 한 장 찍었네요. 너무 추워서 사진은 별로 찍지를 못했어요. 그래도 다들 표정은 서울아줌마.
▲ 김치~ 웃어요 여기까지 왔는데 단체사진 한 장 찍어 가야 한다고 우겨서 겨우 한 장 찍었네요. 너무 추워서 사진은 별로 찍지를 못했어요. 그래도 다들 표정은 서울아줌마.
ⓒ 김순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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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그:#파주출판도시, #도서보수팀, #견학, #꽃바위작은도서관, #활자인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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