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건너뛰기

close

【오마이뉴스의 모토는 '모든 시민은 기자다'입니다. 시민 개인의 일상을 소재로 한 '사는 이야기'도 뉴스로 싣고 있습니다. 당신의 살아가는 이야기가 오마이뉴스에 오면 뉴스가 됩니다. 당신의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오른편 바구니에 거쳐진 것이 제주에서 사용되는 골갱이다. 육지로 치면 호미에 해당되는 것이다.
▲ 바구니와 골갱이 오른편 바구니에 거쳐진 것이 제주에서 사용되는 골갱이다. 육지로 치면 호미에 해당되는 것이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육지에서는 흔히 '호미'라고 부르는 농기구를 제주도에서는 '골갱이'라 부릅니다. 물론, 모양새는 조금 다릅니다. 육지의 호미가 넓적하다면 제주도의 골갱이는 얇고 가볍습니다. 사람의 근력을 이용하는 농기구 대부분이 단순하고 가볍습니다만, 호미나 골갱이는 농기구 중에서도 작고 단순하면서도 가장 많이 애용되는 대표적인 농기구라 할 수 있겠습니다.

이 글에서는 결국호미에 대한 이야기겠지만, 제주도의 골갱이에 초점을 맞추어 쓰고자 합니다.

골갱이는 또 다른'제주인'이라고 불릴만큼 농사일뿐 아니라 해녀들의 물질에도 없어서는 안 될 소중한 농기구입니다. 물이 빠진 모래사장에서 조개를 캘 때에도 왜 조개를 줍는 것이 아니라 캐는 것인지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것이 골갱입니다. 제주도 해안가를 걷다보면 물이 빠진 모래밭에 앉아 골갱이질을 하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마치 도화지에 크레파스나 색연필로 줄을 긋는 것처럼 보입니다. 그렇게 골갱이질을 하다보면 '딱!'하고 뭔가 부닥치며 소리가 납니다. 그게 바지락이나 조개입니다.

조개를 캘 때에도 골갱이를 사용합니다. 조개를 캐는 모습을 보면 왜 '줍기'가 아니고 '캐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 조개캐기 조개를 캘 때에도 골갱이를 사용합니다. 조개를 캐는 모습을 보면 왜 '줍기'가 아니고 '캐는 것'인지 알 수 있습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해녀들이 바다에서 사용하는 골갱이는 밭에서 사용되는 골갱이보다 조금 더 길고 가늘어서 해초를 따거나 바위틈에 붙어있는 전복이나 틈 속에 숨어있는 해삼, 성게 등을 쉽게 채취할 수 있습니다.

밭에서 사용되는 골갱이는 육지의 호미보다 날렵하고 작지만 바다에서 사용되는 것보다는 넓적하고 짧습니다. 이렇게 제주의 골갱이가 호미보다 면적이 적고 날렵하게 생긴 이유는 제주의 토양과 깊은 관련이 있습니다. 돌이 많은 제주도의 토양, 그래서 검질만 하면 화산석이 지천이니 돌과 돌 사이를 자유롭게 오갈 수 있는 도구가 필요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육지의 호미보다 더 작고, 작아서 더 단순한 듯 보입니다.

호미와 골갱이는모두 종자를 심거나 '검질(김)'을 매는 데 사용됩니다. '검질'은 제주도의 방언으로 '김'에 해당되는 말인데, 밭이나 논에 난 잡초를 가르키는 말입니다. 호미보다는  골갱이가 좀 더 섬세하게 농작물을 다치지 않게 김을 맬 수 있습니다. 예를들면 잔디에 난 검질을 맬 때 잔디의 뿌리가 얽혀있어 호미로 김을 매다가는 잔디의 뿌리도 많이 상할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골갱이는 잔디사이의 검질만 쏙쏙 뽑아낼 수 있어서 잔디의 손상이 적습니다. 그리고 김을 매는 과정에서의 상처는 오히려 잔디의 성장에 좋을만큼 적당합니다.

일반적으로 육지에서 사용되는 호미, 호미도 큰 호미와 작은 호미가 있다.
▲ 호미 일반적으로 육지에서 사용되는 호미, 호미도 큰 호미와 작은 호미가 있다.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김을 매는 것은 단순히 잡초를 뽑는 일에만 목적이 있는 것이 아닙니다. 김을 매면서 땅을 골라줍니다. 제주도야 땅을 파기만 하면 돌이 나와서 돌담으로 쌓아야할 정도의 큰 돌이 아니라면 대체로 그냥 두고 검질을 맵니다만, 육지는 김을 매면서 돌도 골라냅니다. 그래서 농부의손이 자주간 밭은 돌이 적습니다. 김을 매면서 딱딱한 땅을 고슬고슬하게 해주고, 북을 돋워주며 드러나 뿌리들에게 이불을 덮어주듯 흙을 덮어주기도 합니다. 잡초가 뽑혀나가면서 고슬해진 땅은 딱딱한 땅에 비하면 호흡하기가 편안헤 집니다. 그러니까 검질은 단순히 잡초만 뽑아내는 것이 아니라, 땅을 숨쉬게 하는 일도 동시에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다양하게 쓰이는 농기구 골갱이와 호미가 가진 아름다움은 무엇입니까?

일단은 작고 가볍습니다. 그래서 손에 들어도 부담이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어린 아이들 조차도 사용할 수 있는 농기구입니다. '작은 것이 아름답다'는 말의 증거를 여기서 보는 듯합니다.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사용할 수 있는 골갱이와 호미가 가진 첫 번째 미덕은 작은 것입니다. 작으니 당연히 가벼운 것이지요.

호미를 이용하여 도라지를 캐고 있는 할머니
▲ 도라지캐기 호미를 이용하여 도라지를 캐고 있는 할머니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그리고 단순합니다. 손으로 사용하는 농기구들의 특징이기도 하지만 골갱이나 호미는 고작해야 ㄱ자 모양입니다. 얼마나 단순합니까? 농경사회가 시작된 이후 호미나 골갱이의 역할을 하던 기구가 있었을 터이고, 호미와 골갱이가 생긴 이후에도 그 모양새는 별로 변하지 않았습니다. 단순하지만 최적의 모양인 셈이지요. 최첨단 과학이란 복잡한 것이 아니라 남녀노소 누구나 쉽게 기기를 이용할 수 있게 한 것이라는 말이 있습니다. 아직 기술이 완벽하지 못할수록 소위 '전문가'들에게나 사용되는 것이지요.

작은 것의 아름다움과단순함의 아름다움뿐 아니라 또 하나의 미덕을 말하라고 한다면, 조금씩 자신을 희생하며 새로워진다는 점입니다. 사용되지 않는 농기구는 녹이 습니다. 그러나 사용되는 농기구는 녹이슬지 않고 반짝거리며 빛나는 대신에 점점 몸이 닳아 작아집니다. 그렇게 작아지다보면 훨씬 더 빨리 없어질 것 같은데, 녹이 슬어서 없어지는 속도에 비하면 훨씬 오래 존재합니다.

자신을 조금씩희생해가면서도 오히려 더 반짝거리고 예리하게 빛나는 골갱이와 호미를 보면서 인간의 삶을 생각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하루하루 살아간다는 것은 그만큼 우리의 삶이 짧아진다는 이야기와도 같습니다. 그런 하루하루를 살아가면서 우리는 이전보다 더 예리하게 빛나는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인지 돌아보지 않을 수없는 것이지요.

골갱이로 당근밭 검질을 매고 있는 제주의 할망
▲ 당근밭 검질 골갱이로 당근밭 검질을 매고 있는 제주의 할망
ⓒ 김민수

관련사진보기


사용하다보면 손에맞는 골갱이나 호미가 됩니다. 일의 능률은 손에꼭 맞는 도구를 사용하는 것에서도 좌우됩니다. 손과 일체가 된 호미나 골갱이로 일을 하는 것과 아직 손에 잘 들어오지 않는 도구로 일하는 것은 많은 차이가 있습니다. 손에 맞는 도구가 되기 위해서는 도구를 사용하는 이와 도구 사이에 적당한 밀당이 있어야 합니다. 그 밀당이라는 것은 어쩌면 시간이고, 노력입니다. 그냥 시간만 지난다고 도구가 손에 맞는 것이 아니라 자꾸 사용하다보면 손잡이도 닳고, 쇠도 달아가면서 손에 맞는 도구가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손에 꼭 맞는 도구로 일하면 일이 편안합니다. 낯설지 않습니다.

작음, 단순함의 미를 간직한 골갱이를 손에 쥐고 일하던 때가 가장 사람다운 삶을 살아가던 시간이었음을 새삼스레 깨닫게됩니다. 올 겨울 지나면 재래시장에 나가 호미와 골갱이를 구해 내 손에 맞는 도구로 삼아야겠습니다.


태그:#골갱이, #호미, #검질
댓글
이 기사가 마음에 드시나요? 좋은기사 원고료로 응원하세요
원고료로 응원하기

자연을 소재로 사진담고 글쓰는 일을 좋아한다. 최근작 <들꽃, 나도 너처럼 피어나고 싶다>가 있으며, 사는 이야기에 관심이 많다.




독자의견

연도별 콘텐츠 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