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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덕항
 삼덕항
ⓒ 변종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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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 역사에 제일 크게 영향을 준 사건이 금속활자의 발명이라고 한다. 우리나라는 독일 구텐베르크가 제작한 42행 성서보다 무려 78년이나 앞선 1377년 청주의 흥덕사지에서 직지를 인쇄했다. 현재 프랑스 국립도서관에 있는 직지가 유네스코 세계기록문화유산으로 지정된 것을 최고의 자랑거리로 여기는 청주. 이곳에 '직지'라는 이름을 앞에 내건 산악회가 있다.

욕지도, 사슴이 많아 '녹도'라고 불리기도

지난 7일, 직지 산악 회원들이 통영의 욕지도로 겨울 산행을 다녀왔다. 통영 관광 포털에 따르면 욕지도는 '알고자 하거든'을 뜻하는 이름처럼 열정이 가득한 섬이다. 사슴이 많아 녹도라고 불리기도 했으며, 지금도 등산길에 사슴을 만날 수 있다. 또한 통영항에서 뱃길로 32km 거리에 위치한 우리나라에서 44번째 큰 섬으로 한산도, 사량도, 비진도, 연화도 등 통영 앞 한려해상 국립공원에 있는 섬 중에서도 비교적 크고 먼 거리에 있다.

오전 6시, 어둠 속에서 청주 공설 운동장을 출발한 관광버스 두 대가 한참을 눈이 쌓여 있는 산의 을씨년스러운 풍경을 지나다 통영 대전 고속도로 함양 휴게소에 들렀다. 스쳐 지나가는 창밖 풍경으로 남쪽은 아직 기온이 따뜻하다는 것을 확인했다. 바닷가가 나타나고, 동양의 나폴리로 불리는 통영을 지나 오전 9시 35분께 산양읍의 삼덕항(당포항)에 도착했다.

오전 10시가 되자 삼덕항과 욕지도를 오가는 정기 여객선이 출항했다. 제법 쌀쌀한 날씨였지만 몸과 마음이 하나 되는 여행을 하기 위해 갑판으로 올라섰다. 직선으로 바라보이는 욕지도까지 곤리도, 만지도, 연대도, 추도, 우도, 연화도, 노대도 등 크고 작은 섬들이 뱃길 좌우에서 새로운 풍경을 만들며 맞이한다. 오전 11시께 순박한 사람들이 편안히 다가오는 아늑한 섬, 욕지도에 발을 디뎠다.

욕지도 선착장까지
 욕지도 선착장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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욕지도는 택시도 없고, 마을버스마저 선착장에 배가 도착하는 시간에 맞춰 운행하는 등 섬 안에서의 교통편이 미흡하다. 산행을 하려면 야포까지 3km의 해안 도로를 마을버스로 이동해야 한다. 11시 13분께 마을버스가 나타나 관광객 일부만 태우고 야포로 향한다. 차안이 콩나물시루라 어촌 마을의 멋진 풍경을 구경할 수 없었지만 걸어와야 하는 일행보다는 행복하다.

11시 21분, 야포에 도착해 욕지도 선착장 주변과 뒤편의 청황봉을 카메라에 담고 산행준비를 하는데 말 한마디만 해도 다 통하는 죽마고우가 하늘나라로 갔다는 연락이 왔다. 마른하늘에 날벼락이라고, 자주 만나고 통화를 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았기에 믿기 어려웠지만, 그게 현실이었다. 깃털 같은 인생살이를 생각하며 무거운 마음으로 산행을 시작했다.

산행하다 문득 뒤돌아보면 바다 풍경 펼쳐져

청황봉 갈림길까지
 청황봉 갈림길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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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포에서 시작하는 욕지도 산행은 오르막 언덕이 이어지는 일출봉까지 0.6km가 제일 힘들다. 초입에서 산악회의 리본을 만나며 산행하다 뒤돌아보면 선착장이 있는 동항리 앞바다의 풍경이 아름답다. 일출봉에 오르면 욕지도와 기암절벽, 주변의 섬과 바다가 한눈에 내려다보인다. 북동쪽으로 산책길을 조금 벗어나면 연화도의 용머리 해안을 가까이서 바라볼 수 있다.

일출봉(높이 190m)에서 0.84km 거리의 망대봉(높이 205m)까지는 뒷동산을 걷는 것처럼 편안한 산길이 이어진다. 나뭇가지 사이로 일출봉에서 봤던 풍경이 각도를 달리하며 모습을 드러낸다. 산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즐거움이 음식 먹는 것이다. 망대봉 정상에 옹기종기 모여앉아 진수성찬으로 차려진 점심을 먹었다.

망대봉까지
 망대봉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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잿고닥을 지나며 선착장 주변의 새로운 풍경을 구경하고, 망대봉에서 1.53km 거리에 있는 펠리컨 바위로 간다. 스릴을 느끼면서 주변의 멋진 풍경을 감상하며 출렁다리를 건너면 부리가 긴 펠리컨이 먼바다를 향해 둥지를 틀고 있는 형상이 모습을 드러낸다. 산책로와 나무 계단, 전망대와 절벽이 어우러진 욕지도 비렁길의 일부분으로, 좌우 바닷가에 펼쳐진 풍경이 멋지다.

해안 산책로를 걸어 펠리컨 바위에서 0.9km 거리의 고래 강정으로 간다. 출렁 다리와 가까운 해안 산책로의 전망대에서 바라보면 펠리컨 바위의 모습이 제대로 보인다. 엄청난 높이의 깎아지른 절벽이 마주하고 있는 고래 강정의 바위 절벽 사이로 수형이 아름다운 나무가 자태를 뽐낸다. 절벽 사이로 부딪혀오는 바람과 파도소리가 고래 강정의 풍경을 더 멋지게 만든다. 빨간 열매가 무척 예쁘지만 사약의 재료가 되는 겉과 속이 다른 독성 식물 천남성이 길가에서 눈길을 끈다.

펠리칸 바위까지
 펠리칸 바위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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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행과 떨어져 고래 강정에서 2.4km 거리의 대기봉을 향해 부지런히 발걸음을 옮긴다. 이곳은 길게 오르막이 이어져 힘이 든다. 숨을 헐떡이며 오르는데 두 명의 남녀가 산길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다. 가까이 가보니 큰 봉지에 쓰레기가 가득한데 직지 산악회의 테네로 고문과 시새움님이다. 직지 산악 회원들과 두 번째 산행이라 인사를 나눈 일도 없지만 존경심과 함께 봉사의 의미를 되새기게 했다.

친구의 부음, 석양도 슬프게 다가왔다

고래강정까지
 고래강정까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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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봉 가기 전에 만나는 할매 바위에 오르면 연화도에서 선착장까지 욕지도 주변 풍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대기봉과 천황봉은 가까운 거리에 있다. 가끔은 시간에 쫓겨 뜻을 이루지 못한다. 어차피 다 이룰 수 없는 게 인생살이다. 정상에 오르면 약속 시간에 늦을까 봐 천황봉을 눈앞에 두고 0.3km 거리의 태고암으로 향했다.

태고암
 태고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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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리를 했더니 수술한 무릎이 아파온다. 가정집같이 작고 아담한 사찰 태고암의 법당과 산신각을 둘러본 후 터덜터덜 걸어 2km 거리의 선착장으로 향했다. 막간을 이용해 욕지중학교와 원룡초등학교, 좁은 골목길과 아름다운 교회, 조형물과 포구, 갈매기와 여객선을 카메라에 담았다.

오후 4시 30분 욕지도 선착장을 출항한 여객선이 북동쪽의 삼덕항으로 향한다. 바람이 찬 갑판에 홀로 앉아 여러 가지 생각을 정리했다. 친구의 부음 때문인지 오늘따라 바다를 붉게 물들이며 사라지는 석양마저 기분을 착잡하게 만든다. 어둠이 물들자 사방이 섬으로 둘러싸인 바다 위에 홀로 남은 느낌이다. 오후 5시 30분께 전등 빛으로 불을 밝힌 삼덕항에 도착한 후 도남동 통영 유람선 터미널 3층의 횟집으로 이동해 소주를 마시며 기분을 풀었다. 낯익은 사람이 아닌데도 살갑게 대해주며 친절을 베푸는 사람들이 많아 직지 산악회에 정이 느껴졌다.

욕지도 선착장 주변 풍경
 욕지도 선착장 주변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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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 7시 15분 청주로 향하는 관광버스가 부지런히 달리며 통영 대전고속도로 공룡나라휴게소와 인삼랜드휴게소에 들렀다. 실내등을 꺼 캄캄한 차 안에서 모두들 조용히 잠을 자며 피로를 푼다. 눈을 감은 채 마음만 급했지 일정에 따를 수밖에 없었던 하루를 뒤돌아보며 욕지도 산행을 마무리했다.

삼덕항으로
 삼덕항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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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제 블로그 '추억과 낭만 찾기'에도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욕지도, #야포, #욕지도 천황봉, #삼덕항, #직지산악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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