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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국지라는 소설은 누구나 알고 있을 것이다. 그만큼 오랜 세월에 걸쳐 저서, 음악, 연극, 영화, 만화, 애니메이션, 게임에 이르기까지 많은 문화 예술의 소재로 사용돼 왔다. 이번 기사를 통해 필자가 소개하려고 하는 것 역시 <삼국지>를 소재로 한 한국의 동인 게임, <시, 연 삼국지화>다. 참고로 동인(同人)이라는 것은 취미나 뜻이 같은 사람의 모임을 의미하며, 필자가 주로 집필하는 독립 게임과도 어느 정도 연관이 있다.

<시, 연 삼국지화> 프로모션 이미지
 <시, 연 삼국지화> 프로모션 이미지
ⓒ Studio N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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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연 삼국지화>는 열세 명으로 이루어진 한국의 동인 게임 제작팀 <Studio NOOP!>이 제작한 여성향(여성들에게 초점을 둔)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이다. 이 게임은 우연한 사고로 건안 12년의 중국에 떨어지게 된 여주인공이 집에 돌아가기 위해 화씨지벽의 신수와 계약을 맺으며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적벽대전>이라는 소설 <삼국지연의> 위주의 사건 전개에서 벗어나 진수의 <정사 삼국지>를 기반으로 고증에 힘을 실어 재구성한 스토리 구조가 강한 여성향 시뮬레이션으로 격동의 역사 속에 펼쳐지는 로맨스를 담고 있다.

좀 더 쉽게 설명하자면, 고등학교 2학년을 맞아 중국으로 수학여행을 떠난 여주인공 '한시연'이 우연한 사고로 장강에 빠지게 되는데, 물 속에서 정신을 잃고 깨어나 보니 서기 208년의 중국이라는 설정에서 시작되는 <삼국지>의 영웅들과 연애를 하는 게임이다.

게임의 주요 특징으로는 높은 자유도를 기반으로 한 행동 선택 시스템, 선택지와 함께 전개되는 다양한 이야기, 풍성한 볼륨의 게임 아트, 다양한 미니게임, 플레이하면서 모은 정보를 확인할 수 있는 거북 수첩, 플레이어가 본 이벤트를 다시 볼 수 있는 메뉴 등이 있다. 여기에 공략 가능한 <삼국지> 캐릭터의 인물 정보, 게임 내 언급되는 단어를 설명해주는 단어장, 공략 캐릭터들의 생각을 엿볼 수 있는 뇌 구조를 제공해 친밀도의 변화도 살펴볼 수 있다.

<시,연 삼국지화>는 지난 4월 14일에 패키지 게임으로 정식 출시되어 <북새통>과 <북컬쳐>, <사보텐 스토어>, <코믹커즐>, <한국독립게임마당> 총 다섯 개의 매장에서 판매됐다. 이 게임은 수요를 파악하고 물량생산비용을 충당하기 위해 두 번의 사전예약을 진행했고, 사전예약기간을 제외한 일반판매기간인 지난 11월 19일에 네이버 지식쇼핑에서 게임타이틀로 23위까지 진입했다. 현재 구조상 큰 의미가 있다고 볼 수는 없으나 인디게임 키워드 랭킹으로 2개월째 1위에 집계되고 있다. 그만큼 두꺼운 팬층을 보유한 게임이라고 할 수 있으며,한국에서 오랜만에 패키지로 출시된 동인게임 타이틀로써 나름대로 성공했다고 평가할 수 있을 것이다. 참고로 게임 타이틀 순위에 한국 게임 자체를 찾아보기 어렵다.

하지만 모든 일이 그렇듯 과정이 순탄치만은 않았다. 상당히 오랜 기간을 개발에 소모했고, 패키지 게임이기에 출시하기 위한 과정에서 <게임물관리위원회>의 심의도 받아야 했기 때문이다. 당시에는 사업자 등록이 돼있지 않으면 심의 자체를 받을 수 없는 구조였고 현재는 사업자 등록을 하지 않아도 심의를 받을 수 있지만 15세 이하 등급 게임의 심의 수수료가 더 비싸졌다.

필자는 이번 글에서도 어김없이 <Studio NOOP!>과 <시, 연 삼국지화>의 팬들, 기사를 읽고 있을 대중을 위해 서면 인터뷰를 준비했다. 아래 그 전문을 공개한다.

<시, 연 삼국지화> 로고
 <시, 연 삼국지화> 로고
ⓒ Studio NOO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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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인터뷰에 응해줘서 감사하다. 먼저 기사를 읽을 대중과 팬들에게 팀에 관해 소개를 부탁한다.
"동인게임 제작팀 <Studio NOOP!> 이다. 올해 4월 14일 발매한 삼국지 기반 여성향 연애 시뮬레이션 게임 <시, 연 삼국지화>를 제작했다. 게임을 플레이하신 모든 분이 "오늘 내가 누울 자리는 여기냐!"라고 외쳐 주시기를 바라고 게임을 만들어 왔다."

- <시,연 삼국지화>를 제작하게 된 계기가 상당히 재밌는데 공개해줄 수 있나.
"<시,연 삼국지화>는 총대(인빈시블), 그러니까 기획 총괄이 제갈량과 연애하고 싶어 만든 게임으로 알려졌는데 맞다. 총대가 고등학교 때 제갈량을 아주 좋아했다. 그러던 중 고등학교때 충동구매한 일본 게임 잡지에 <연희무쌍>의 기사가 실린 걸 보고, '이젠 삼국지로는 무슨 짓을 해도 괜찮겠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래서 삼국지 좋아한다던 친한 친구를 붙잡고 '삼국지로 연애 시뮬레이션이 있으면 재미있을 것 같지 않으냐, 난 제갈량이 좋다' 따위의 뜬구름 잡는 소리를 지껄였던 게 모든 문제의 시초였다. 여기서 그냥 '그래, 재미있겠네' 하고 넘어갔으면 좋았을 텐데, 친구가 삼국지 관련 미디어믹스에는 정사에 기반을 둔 게 너무 적다고 거들고 나섰다. 정사 삼국지, 정사가 뭔진 잘 몰랐지만, 그 말이 매우 멋있어 보이는 것이었다. 시험기간에 공부는 하기 싫으니까 자꾸 이야기에 살이 붙고, 캐릭터가 나오고, 제목도 정해지고, 정신 차리고 보니까 게임을 만들고 있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둘 다 어려서 철이 없었다."

- <시,연 삼국지화>는 <삼국지>의 영웅들과 로맨스를 다루고 있는데 공략 가능한 남성들은 몇 명이나 되고 이들의 성격은 어떤가? 취향대로 고를 수 있을 정도인가?
"공식적으로는 열두 명의 공략 가능한 남성들이 있다. 열두 명의 성격을 다 설명하기엔 지면이 모자랄 것 같다. 똥차부터 벤츠까지, 168cm부터 194cm까지, 심지어 산 사람부터 죽은 사람까지 다양하게 갖춰 놓았다. 어지간한 분들은 다 만족하게 할 수 있지 않을까?"

- <시,연 삼국지화>는 <정사 삼국지>를 기반으로 <적벽대전>을 재구성했다. 상당한 연구가 필요했을 거라고 생각되는데, 실제 시나리오를 구성하는 작업은 어땠나.
"어려웠다. <정사 삼국지>는 열전 형식이고, 큼직한 사건 위주로 기술하다 보니 하나의 전체적인 흐름을 잡는 게 쉽지 않았다. 게임 기획 초기의 반년 정도는 거의 모여서 삼국지 관련 서적을 읽고 수다를 떨면서 보냈다. 중요한 역사적 사건은 정사에 나온 이야기를 기반으로 하되, 연의와 야사의 재미있는 부분들을 차용했다. 거기에 양념처럼 요즘의 평가나 해석을 조금씩 채워 넣었다.

이렇게 역사의 흐름을 한 번 잡고, 큰 사건들의 사이사이에 연애 이벤트를 순서대로 채워 넣었다. 그 다음에 전체적으로 시간 순서가 맞는지, 감정선이 이상하지는 않은지 손을 봤고. 시나리오를 탈고한 후에는 팀원들과 두 번 다시 정사의 '정'자도 꺼내지 말자는 굳은 맹세를 나눴다."

- 음악을 담당한 김트레는 <Studio NOOP!>의 팀원이 아닌 것으로 보이는데, 그에 대한 소개와 어떤 계기로 그가 참여하게 됐는지 알려주기 바란다.
"아. 약간 오해가 있어 정정하겠다. 김트레씨는 <Studio NOOP!>의 팀원이 맞다. 밴드 'SMOKER Z', 'ZENITH'에서 활동했고, <군주온라인>, <아틀란티카> 등의 게임에 사운드 스태프로, 웹툰 <들어는 보았나 질풍기획>의 테마곡에 보컬 및 드럼으로 참여한 재원이다. 우리가 동인게임 카페에 사운드 팀원 구인글을 올렸고, 그걸 본 김트레씨가 지원해줬다. 처음에는 포트폴리오가 너무 훌륭해서 '아니, 이런 분이 왜 우리 팀에?' 하고 많이 놀랐다.

<시,연 삼국지화>에는 사운드 뿐만 아니라, 그래픽, 프로그래밍 등등 분에 넘치게 훌륭한 분들이 많이 참여해 주셨는데 그중에서 왜 하필 사운드만 따로 페이지를 빼게 됐냐면, 이렇게 말씀 드리니까 굉장히 없어 보이는데 사실 홈페이지의 스탭란에 빈 자리가 없어서... 공간 문제도 있고, 홈페이지 담당자 분이 OST 샘플도 올려야 하니 차라리 사운드 페이지를 하나 따로 빼서 멋지게 꾸미는 게 좋겠다고 했다. 그래서 특별히 멋지게 꾸며 봤다. 우리 팀원 맞다."

- 등장하는 캐릭터들의 복장이나 게임의 배경 등 시나리오와 마찬가지로 아트에도 상당히 신경을 써야 했을 텐데 어떤 과정을 거쳐 작업했나.
"실제 작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자료를 막 찾았다. 하도 주변에서 삼국지, 삼국지 해서 자료가  많을 줄 알았는데 별로 있진 않더라. 도서관에 들어가서 일단 잡히는 대로 건물이나 복식이나 생활상이나 그런 것들 찾아보고, 쓸모가 있든 없든 보여주거나 하고 나서 만나서 회의를 했다.

팀원이 전부 제각각 다른 지역에 살다 보니까 평소에 만나기가 어려워서 한 번 모이면 주구장창 회의하고, 몇 장씩 스케치하고 그랬다. 그렇게 먼저 메인이자 선화 담당 스태프가 작업을 마치면 AD가 확인, 수정할 게 있으면 수정하고 채색 단계로 넘어가고, 채색 담당 스태프가 작업은 인계하여 완성. 그 다음 기획 팀과 다시 한 번 살펴본 뒤 수정할 게 있으면 수정 요청을 드리고 AD 분이 수정 들어온 걸 스케줄 고려해서 걸러낸 뒤 수정하는 단계를 거쳤다. 배경도 비슷한 과정으로 진행됐는데 배경은 혼자서 스케치에서 채색, 수정까지 전부 진행했다.

말로는 작업이 간결하고 깨끗해 보이는데 실제로는 전혀 그렇지 않았다. 나중에 가서는 채색 담당 스태프가 UI를 제작하고, 배경 담당 스태프가 AD 역할을 도맡아 하고, 또 다른 배경 담당 스태프가 영상을 만들고... 그때는 되게 다행이다 싶었는데 지금 생각해보면 헛웃음만 나고 참 미안하고 그렇다."

- 의견을 보면 상당히 행복해하는 유저도 많지만 어렵다고 울상을 짓는 유저도 간혹 있는 것 같다. 실제 게임의 난이도는 어느 정도인가. 남성들을 쉽게 공략할 수 있는 팁이 있다면 알려줄 수 있나?
"쉬운 캐릭터와 어려운 캐릭터가 섞여 있다. 전체적인 밸런스를 따지자면 여성향 게임 평균을 조금 웃도는 난이도인 것 같다. 공략집이 없는데 반해 선택지가 많은 편이고, 호감도와 현지적응도, 타이밍을 동시에 맞춰야 연애를 할 수 있다 보니 많이들 어렵게 느끼시는 것 같다.

사실 생각이 멀쩡한 열 두 명의 남자가 여자 한 명을 동시에 사랑한다는 게 가능한가? 말이 안 된다고 생각한다. 여주인공이 천하절색이면 또 모르겠지만 그 정도는 아니지 않느냐. 우리가 성격이 맞는 사람과 안 맞는 사람이 있듯이 공략 캐릭터들도 각자의 기준이 있다. 캐릭터의 입장에서 이 남자가 뭘 좋아할지, 여기 남아서 이 남자와 행복해지기 위해서는 어떤 조건이 필요할 지를 잘 생각해 보시면 공략에 도움이 될지도 모르겠다."

- <시,연 삼국지화>를 제작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팀원들 간의 에피소드가 있다면 무엇인가, 또 가장 힘들었을 때는 언제인가.
"사실 발매까지 마친 지금 떠올려보면 '다같이 엄청 힘들었지~' 하는 생각밖에 안 들지만 하나 계속 기억에 남는 거라면 아무래도 <게임물관리위원회>에서 등급분류 받을 때 일인 것 같다. 등급분류 자체가 엄청나게 어렵고 고된 일은 아니지만 왠지 국가기관에서 심사를 받는 절차고, 만약 등급분류가 늦어지거나 결과가 늦게 나오면 게임 발매 자체를 늦춰야 했으니까.

거기다가 등급분류 수수료도 꽤 돼서 팀원 모두가 나눠내는 돈이었지만 학교 다니면서 아르바이트해서 번 돈으로는 꽤 부담이 되더라. 당시에도 어쩌다 보니까 돈이 부족했는지 뭔가가 문제여서 직장인인 팀원에게 돈을 빌려서 일단 내고, 그 다음에 팀원들이 모은 돈으로 갚고 그랬다. 지금이야 편하게 말하지만 당시에는 어찌나 심장 졸여지고 떨리던지."

- OST CD에는 어떤 곡들이 들어있나? 음악 외에 숨겨진 무언가를 얻을 수도 있다고 하는데 설명을 부탁한다.
"OST CD는 게임의 오프닝곡 <설렘의 발라드>, 엔딩곡 <어제의 기억>을 비롯해 게임 내에 삽입된 13곡의 BGM을 포함하고 있다. 지난 만우절에 팀원들이 재미로 제작한 보이스 드라마 코드도 들어가 있다."

- <시,연 삼국지화>는 렌파이 엔진으로 제작됐다. 글로벌 디지털 게임 유통 플랫폼 <스팀>에도 렌파이로 제작된 게임이 상당히 많은데, <스팀>에는 출시할 생각이 없나.
"스팀 출시! 많은 게임 개발자들의 꿈이다. 출시하면 멋질 것 같다는 생각은 든다. 불법다운로드 걱정 안 해도 되고. 하지만 지금 시점에서는 어렵지 않을까 싶다. 우선 영어로 번역해야 뭘 해도 할 텐데, 이 비용이 학생 용돈으로 해결될 금액은 아닌 것 같다. 한때는 팀 내에서 초벌번역을 해서 감수만 전문가한테 맡길까 하는 생각도 해 봤는데 아무리 생각해도 너무 분량이 많아서 포기했다. 아쉬운 부분이다."

- 마지막으로 <시, 연 삼국지화>를 구매하고 플레이한 유저들과 팬들, 기사를 읽은 대중들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해주길 바란다.
"긴 개발 기간을 참고 기다려주신 분들, 플레이해주신 분들께 항상 고맙고 미안한 마음 뿐이다. 제작하면서 셀 수도 없을 만큼 많은 좌절이, 그만두고 싶은 순간이 있었지만, 여러분이 보내주신 응원 덕에 우리가 쓰러지지 않고 살아남아 여기까지 올 수 있었다. 많이 부족한 제작 팀을, 그리고 게임을 너그러이 봐 주시고 사랑해주셔서 정말 감사하다. 여러분이 상상하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우리가 여러분을 사랑한다. 앞으로도 잘 부탁한다."

<시, 연 삼국지화>는 10대부터 4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연령층의 팬을 확보하고 있다. 이 게임에서 당신은 유비, 조조, 손권부터 제갈량, 관우, 장비, 사마의, 하후연, 순욱, 주유, 손책, 여몽에 이르는 당대의 군웅들과 연애를 할 수 있다. 당신의 선택과 그의 선택은 어떻게 될 것인가? 당신의 로맨스는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것은 당신이 어떻게 하느냐에 달렸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한국독립게임마당의 주요 매체에 실릴 예정입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동인게임, #삼국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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