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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 상황이 아주 웃기게 돌아가고 있다."

3일 오후 금융권의 한 고위인사가 허탈한 표정으로 말했다. 그는 "요즘 청와대는 정윤회가, 금융권은 서금회가 판을 흔드는 양상"이라고도 했다. 그는 이어 "지난번 대우증권 사장에 이어 이번엔 우리은행장까지 노골적으로 움직이고 있다"면서 "정상적인 인사시스템마저 이들이 무용지물로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4대 시중은행의 부행장인 A씨도 "착잡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평생 은행을 위해 소신껏 자기 자리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을 하루아침에 전화 한 통으로 날려보내는 세상"이라고 말했다.

그의 말대로 요즘 금융권은 바람 잘 날 없다. '관치금융'으로 올해 내내 시끄러웠던 케이비(KB)사태가 가라 앉기도 전에 '신(新)' 관치, 정치금융 논란이 일고 있는 셈이다. '정치 금융' 논란의 핵심에 '서금회'가 있다. 서금회는 박근혜 대통령을 지지하는 서강대 출신의 경제, 금융인들의 모임이다.

'박근혜 대통령 사랑한다'는 이덕훈 수출입행장, 서금회의 좌장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자료사진)
 서울 회현동 우리은행 본점(자료사진)
ⓒ 유성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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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들은 지난 2007년 박 대통령이 이명박 후보에 밀려 대선에 나서지 못한 것을 계기로 만들어졌다. 처음엔 75학번 중심으로 10여 명 정도였다가 18대 대선직전 송년모임에 300여 명까지 늘었다. 주로 은행을 비롯해 증권, 보험, 카드사 등 금융권 전반에 포진해 있다.

금융권에서 서금회의 이름이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올해 초다. 서강대 출신인 이덕훈 수출입은행장이 임명되면서부터다. 이 행장은 서금회의 사실상 좌장 역할을 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그는 아예 공공연히 "박근혜 대통령을 사랑한다"고 말하고 다닐 정도라고 한다.

A씨는 "아마 정권초에는 이쪽(금융권)에 MB맨들이 여전히 자리를 잡고 있어 눈치를 보다가 2년차부터 본격적으로 움직인 것이 아닌가 싶다"고 설명했다. 실제 이덕훈 행장이후 선임된 정연대 코스콤 사장도 서금회 출신이다. 이후 최근에는 케이디비(KDB) 대우증권 사장에 홍성국 대우증권 리서치센터장이 내정되면서 서금회의 파워가 다시 드러났다.

서금회 논란의 절정은 이순우 우리은행장의 연임 포기 선언이었다. 최근까지만해도 금융권에선 이 행장의 연임을 기정사실화하는 분위기였다. 하지만 지난 1일 이 행장은 갑작스레 차기 행장후보에 나서지 않겠다고 선언했다. 행장추천위원회가 열리기로 돼 있기 하루 전이었다. 

차기 우리은행장 유력후보 전격사퇴... 서금회 논란 계속되나?

우리은행 주변에선 온갖 설들이 난무했다. '청와대서 특정인사를 이미 점 찍었다'부터 '서금회가 또 움직였다' 등등. 이 행장도 3일치 <동아일보>인터뷰에서 "돌아가는 걸 보면 모르나, 내가 뭘 더 하겠다고..."라고 말했다. '특정인사 내정설'에 대해 그 스스로 물러나는 것이 우리은행 조직을 위한 것이라는 설명이었다. 그는 "연임하는 걸 포기하지 않고 내가 (차기 행장이) 되면 조직이 난장판이 될 것"이라고 덧붙이기도 했다.

우리은행 행장후보추천위는 지난 2일 차기행장 후보로 이광구, 김승규 부행장과 김양진 전 수석부행장 등 3명을 선정했다. 이광구 부행장이 서금회 회원이다. 이 부행장은 천안고와 서강대 경영학과를 나와 1979년 상업은행에 들어왔다. 이후 홍콩 지점장과 경영기획본부 부행장 등을 지냈다.

김양진 전 수석부행장은 휘문고와 서울대를 졸업한 후 한일은행에 입행했다. 중소기업영업본부장, 준법감시인, 업무지원본부장, 수석부행장, 우리금융지주 미래전략본부 부사장 등을 역임했다.

은행 주변에선 서금회 논란에도 불구하고 이 부행장을 차기 행장으로 유력하게 보고 있다. 최근 금융권 인사를 둘러싼 잇따른 낙하산 논란에도 불구하고 결국 사전에 내정된 인물들이 그대로 선임됐기 때문이다.

하지만 정치권의 정윤회씨 비선 후폭풍이 거세지고 있는 상황에서 금융권도 우리은행장 선출을 계기로 서금회 논란에서 벗어나야 한다는 지적도 많다. 이 때문에 우리은행장 선임과정에서 이변이 일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금융권 한 인사는 "지금 거론된 3명의 후보 모두 그동안 충분한 검증이 잘 안 되기는 마찬가지"라며 "지난번 기업은행장 인선 과정에서 당초 유력한 후보 대신 여성인 권선주 행장이 선임되는 과정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그는 "만약 이 부행장이 그대로 행장후보로 추천되면, 행추위 스스로 서금회를 인정하고 거수기 노릇으로 전락하게 된다"면서 "국민 여론 등을 감안할 경우 김양진 전 수석부행장 등도 행장으로 유력하게 거론될 수 있다"고 전했다.


태그:#우리은행장, #서금회, #이광구, #김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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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공황의 원인은 대중들이 경제를 너무 몰랐기 때문이다"(故 찰스 킨들버거 MIT경제학교수) 주로 경제 이야기를 다룹니다. 항상 배우고, 듣고, 생각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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