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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대 MRF길, ‘MRF길’이란 산길(Mount Road), 강길(River Road), 들길(Field Road)을 말한다.
 경천대 MRF길, ‘MRF길’이란 산길(Mount Road), 강길(River Road), 들길(Field Road)을 말한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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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노라 옥주봉아 잇거라 경천대야... 잊거라 가노라 가노라 있거라."

우담 채득기 선생의 가사 <봉산곡(鳳山曲, 일명 '천대별곡')>의 앞머리와 뒤꼬리 부분이다. 굽이쳐 흐르는 낙동강, 깎아지른 천주봉, 유유히 흐르는 강물 곁으로 치솟은 경천대, 그리고 그 밑으로 단아한 무우정, 이곳은 상주의 낙동 1경이라고 불리는 경천대다. 이곳에 기거하며 낙동강의 유유함과 경천대의 기개를 벗 삼았던 우담 선생의 마음이 꼿꼿한 소나무들에서 그대로 읽힌다.

11월의 마지막 옷이 낙엽으로 나뒹굴던 휑한 오후, 상주의 경천대를 찾았다. 이제 단풍을 찾아 요란하던 구경꾼도 없다. 싸늘한 바람만이 이미 떨어진 시신인 초라한 이파리들을 이리저리 굴리며 장난을 친다. 사그락 사그락, 그들의 마지막 절규는 차라리 음악이다. 유행과는 거리가 먼 음악이다. 음악이 거창하다면 철 지난 유행가라고 하자.

“가노라 옥주봉아 잇거라 경천대야... 닛거라 가노라 가노라 잇거라” 우담 채득기 선생의 가사 <봉산곡(鳳山曲, 일명 ‘천대별곡’)>의 앞머리와 뒤꼬리 부분이다.
 “가노라 옥주봉아 잇거라 경천대야... 닛거라 가노라 가노라 잇거라” 우담 채득기 선생의 가사 <봉산곡(鳳山曲, 일명 ‘천대별곡’)>의 앞머리와 뒤꼬리 부분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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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대 MRF길은 몇 번 걸었던 기억이 있는 길이다. 그러나 이번 트래킹은 더 마음에 닿는다. 'MRF길'이란 산길(Mount Road), 강 길(River Road), 들 길(Field Road)을 말한다. 이를 골고루 갖춘 상주의 여러 길 중 하나가 경천대를 중심으로 한 길이다. 이번 트래킹에 낙엽들이 덩달아 따라오니 삭막함이 정겨움으로 바뀐다.

선조들의 얼이 새록새록 살아난다

이번 여행이 다른 때보다 더 가슴에 들어온다. 가을이라 그런지, 우담 선생에 대해 알고 나서 그런지, 그 중간 어디쯤일 지도 모른다. 예전에는 그냥 경치만 감상하고 사진 찍고 돌아왔다. 그러나 이번에는 그의 가사 <봉산곡(鳳山曲)>을 읽고, 그와 관련된 역사를 더듬었다. 경천대가 더 진하게 가슴에 와 부딪힌다.

주차장 주변은 한창 공사 중이다. 경천대는 낙동 제1경답게 송림의 운치가 아름답다. 어느 쪽에서도 소나무의 아름다움이 조명된다. 우담 선생은 경천대에 올라 시 한 수 읊으며 오랑캐들에게 유린당하는 조선의 한을 잊으려 했을 것이다.

"기이한 바위 우뚝 솟아 저절로 대를 이루고 푸른 절벽 동에서 시퍼런 강물이 감돌아 가네... 아마도 하늘이 만든 것일 거야" - 우담의 <자천대> 중에서

얼마나 아름다우면 '하늘이 만든 것'이라고 했을까. 경천대(擎天臺의 한자 '경(擎)'은 공경 '경(敬)'자에 손 '수(手)'가 받히고 있다. 이름을 풀면 '하늘을 들어 모시는 암벽'이다. 그 밑에 정자(무우정) 하나 짓고 거기서 오랑캐 때문에 힘겨워하는 조국을 잊지 못한 옛 선비의 마음은 <봉산곡(鳳山曲>에 그대로 담겨 있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하늘이 만든 것’이라고 했을까. 경천대(擎天臺의 한자 ‘경(擎)’은 공경 ‘경(敬)’자에 손 ‘수(手)’가 받히고 있다. 이름을 풀면 ‘하늘을 들어 모시는 암벽’이다.
 얼마나 아름다우면 ‘하늘이 만든 것’이라고 했을까. 경천대(擎天臺의 한자 ‘경(擎)’은 공경 ‘경(敬)’자에 손 ‘수(手)’가 받히고 있다. 이름을 풀면 ‘하늘을 들어 모시는 암벽’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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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 선생은 병자호란을 예견하고 경천대로 내려와 칩거하며 책을 읽으며 세월을 보냈다. 선생이 32살 되던 해 병자호란이 일어났고 삼전도 굴욕이란 쓰라린 역사가 조선을 뒤덮었다. 조선은 봉림대군(鳳林大君: 효종)을 비롯해 세자·대군을 심양에 볼모로 보내기로 결정했다.

이때 우담은 대군들과 함께 심양에 왕호(往護)로 갔다. 세자 왕호로 가면서 지은 시가가 바로 <봉산곡(鳳山曲)>이다. 옥주봉과 경천대에게 '잘 있으라'고 인사하는 선비의 마음이 참 아름답다. 환국해서도 벼슬에 나아가지 않고 옥주봉 아래 초가집을 짓고 살았다. 그의 집터가 옥주봉 밑에 남아 있다. 지금은 길손들에게 쉼을 주는 의자들로 채워져 있다.

원래 경천대는 '하늘이 스스로 만든 경치'라고 해서 '자천대(自天臺)'라고 불렀다. 그러나 우암 선생이 '대명천지(大明天地) 숭정일월(崇禎日月)'이란 글귀를 바위에 새기며 '경천대'로 바꿔 불리게 되었다. 경천대에 올라 유유히 흐르는 낙동강 물을 물끄러미 바라보면 찌든 일상이 강물에 다 씻기는 기분이다.

한동안 상주보 공사로 흙탕물이 흐르던 강이 보 공사가 마친 지금 맑은 물로 변한 것은 다행한 일이다. 경천대에서 보는 낙동강은 아무 말이 없다. 겉으로 보는 강물은 그저 평온하기만 하다. 강물 안에 있는 물고기들이나 자신의 환경이 변한 걸 알지 누가 알겠는가.

경천대는 우암 선생의 이야기만 있는 곳이 아니다. 조선 시대 장군 정기룡이 하늘에서 내려온 용마를 얻었다는 전설도 전해지는 곳이다. 용마가 나왔다는 용소 곁에는 MBC 드라마 <상도>의 촬영지가 있다. 정 장군이 젊었을 때 이곳에서 수련을 쌓았다고 전해진다. 입구에 들어서면 인공 폭포가 있고 그 앞에 기마상이 있는데 말 위에 장군이 바로 정기룡 장군이다. 경천대에는 정기룡 장군이 바위를 파서 말 먹이통으로 쓰던 유물이 남아 있다.

경천대, 찬찬히 걷다 보면 말 걸고 싶어진다

경천대를 알리는 표지글
 경천대를 알리는 표지글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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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천대는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에 있다. 주변에는 상주 박물관이 있다. 경천대의 입구에서는 경천문이란 유리로 된 조형물이 반긴다. 2004년 김동주 작가의 작품이다. 왼쪽 주차장에 차를 세우고 잠시 올라가면 인공 폭포가 나오고 그 앞으로는 정기룡 장군의 위용이 찾는 이를 반긴다.

경천대와는 어울리지 않는 놀이시설이 오른쪽으로 자리한 게 흠이라면 흠이다. 좀 더 비탈을 오르면 왼쪽 언덕으로 작은 돌탑들이 즐비하다. 누구의 정성인지 그 정성만으로도 소원을 벌써 이뤘을 성 싶다. 돌탑들을 돌아보며 왼쪽 계단으로 올라 황톳길을 지나면 전망대가 있는 옥주봉에 이른다.

전망대에서 내려다보는 금강의 조망은 너무 아름다워 다시 내려가고픈 마음이 안 들 정도다. 태백산 황지(黃池)에서 시작되는 낙동강은 1300여리를 달리며 황금벌판의 풍요를 경상도민에게 안긴다. 그 첫 번째 절경이 바로 경천대다. 경천대쪽을 향해 계단을 내려오면 흡사 용오름이라도 하는 듯 경천대가 반갑게 반긴다.

이곳에서 보는 강 건너 논들이 더할 나위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띄엄띄엄 하얀 비닐로 감싸놓은 소먹이용 풀 더미들이 다른 우주의 비행선들 같다.
 이곳에서 보는 강 건너 논들이 더할 나위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띄엄띄엄 하얀 비닐로 감싸놓은 소먹이용 풀 더미들이 다른 우주의 비행선들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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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용소에서는 정기룡 장군의 용마가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 치솟아 나올 것만 같다.
 지금이라도 용소에서는 정기룡 장군의 용마가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 치솟아 나올 것만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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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의 늦 자락에서 은행잎은 이미 반은 부서져 있다. 경천대 옆으로는 무우정이 누워 있다. 평평한 마루 위에 올라 예전에 선비 우담이 그랬을 것이란 생각을 하며 흐르는 물을 무심히 보는 낙도 썩 좋다. 질펀한 길 대신 오롯한 길을 걷다 보면 우담의 초가 터가 나온다. 참 알뜰하다. 몇 평이나 될까. 이곳에서 선비는 나라를 걱정하고 글을 읽으며 <봉산곡>이며 <자천대> 같은 시를 지었을 것이다.

생가 터에서 입구 쪽을 외면하고 왼쪽으로 돌아가면 출렁 다리가 나온다. 출렁다리에 올라 한번 흔들어대는 맛도 괜찮다. 출렁다리 끝에서 왼쪽으로 돌아 내려가면 <상도>의 촬영지 초가들이 오밀조밀하게 앉아 옛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지금도 상도의 출연자들이 금방이라도 달려 나올 것 같다. 강을 보고 오른쪽으로는 용소가 있고 그 위로 치솟은 언덕의 경치가 아름답다.

가을의 늦 자락에서 은행잎은 이미 반은 부서져 있다. 질펀한 길 대신 오롯한 오솔길이 좋다.
 가을의 늦 자락에서 은행잎은 이미 반은 부서져 있다. 질펀한 길 대신 오롯한 오솔길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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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담의 초가 터, 참 알뜰하다. 몇 평이나 될까. 이곳에서 선비는 나라를 걱정하고 글을 읽으며 <봉산곡>이며 <자천대> 같은 시를 지었을 것이다.
 우담의 초가 터, 참 알뜰하다. 몇 평이나 될까. 이곳에서 선비는 나라를 걱정하고 글을 읽으며 <봉산곡>이며 <자천대> 같은 시를 지었을 것이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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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이라도 용소에서는 정기룡 장군의 용마가 길들여지지 않은 채로 치솟아 나올 것만 같다. 이곳에서 보는 강 건너 논들이 더할 나위 없는 향수를 불러일으킨다. 띄엄띄엄 하얀 비닐로 감싸놓은 소먹이용 풀 더미들이 다른 우주의 비행선들 같다.

다시 입구 쪽으로 향할라치면 왼쪽으로 조각품들이 눈에 띈다. 지난해 문화관광자원개발 사업으로 이곳에 이색조각공원이 조성되었다. 나무로 새긴 기기묘묘한 사람 모양의 조각들이 그야말로 이색적이다. 이색적인 것은 맞는데 경천대와 어울리는 것 같지는 않다.

경천대의 길은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다.
 경천대의 길은 아름답다 못해 경이롭다.
ⓒ 김학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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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무로 새긴 기기묘묘한 사람 모양의 조각들이 그야말로 이색적이다.
 나무로 새긴 기기묘묘한 사람 모양의 조각들이 그야말로 이색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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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송, 깎아지른 절벽, 은빛 모래가 경천대의 삼대경관이라는데 아쉽게도 은빛 모래는 보지 못했다. 4대강 사업의 후유증인가 하는 생각이 드니 씁쓸하다. 경천대를 나서면서 내가 우담은 아니지만 우담 선생이 썼던 시구를 뇌어 본다.

"가노라 옥주봉아 있거라 경천대야... 잊거라 가노라 가노라 있거라"

덧붙이는 글 | *경천대: 경상북도 상주시 사벌면 삼덕리 소재, 054) 536-7040, 상주시청 시설관리사업소 문화시설담당으로 문의하면 상세한 안내를 받을 수 있습니다.



태그:#경천대, #우담 채득기, #정기룡 장군, #MRF길, #상주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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