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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서피 양식집 주인 부부의 행복한 미소
 레서피 양식집 주인 부부의 행복한 미소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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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황제의 민정시찰 이야기

오래 전에 들은 얘기다. 어느 날 프랑스의 황제가 황금마차를 타고 시골로 민정시찰을 갔다. 한 시골마을 방앗간 앞을 지나는데 나이든 농사꾼 부부가 머리에 모자를, 수건을 쓰고 일을 하고 있었다. 황제는 마차를 세우게 한 뒤 그들 부부에게 다가갔다. 그러자 농사꾼 부부는 어찌할 바를 몰랐다. 황제는 그런 부부를 안심시킨 뒤 말했다.

"그대 부부의 먼지 묻은 모자와 수건이 내 왕관보다 더 낫소."

아마도 황제는 그들 부부의 일하는 모습이 무척 아름답게 보였기에 일부러 마차를 세우고 그들에게 다가가 덕담을 남겼으리라.

지난 가을 성남시 분당구 정자동에 있는 한 양식집을 갔더니 음식 맛도 아주 담백하고 깨끔해서 좋았을 뿐더러, 주인 부부의 일하는 모습에 매료되었다. 그날 점심을 초대한 김영숙(전 이대교육대학원장) 교수님은 이 집의 오랜 단골로 특징을 말씀하셨다.

우선 전 코스의 음식들을 주인이 직접 만들어낸다고 했다. 그리고 철저한 예약제로 손님들은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몇 시간 음악을 들으며 얘기를 나눌 수 있고, 무엇보다 정통 서양요리를 본고장에서 배운 주방장 이승옥 요리사의 솜씨가 좋다고 치켜세웠다.

연어스테이크
 연어스테이크
ⓒ 박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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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프스테이크
 비프스테이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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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레서피'란

나는 그날 좋은 분위 속에서 맛있는 요리와 김 교수님에게 좋은 말씀을 듣고 돌아온 뒤, 다시 그 분위기와 요리가 생각나 이 겨울에 다시 찾았다. 5~6 차례의 풀코스를 느긋이 즐기고 난 뒤 부부를 잠시 만났다. 먼저 전직 영어교사였던 부인 이승옥(62) 씨에게 물었다.

- '레서피(Recipe)' 상호가 무슨 뜻인가요?
"'요리법', '음식의 조리법'이란 말입니다. 제가 1990년대 초 아이들 때문에 호주에 갔습니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면 막상 할 일이 없더라고요. 그래서 생활영어도 배울 겸, 본고장의 요리도 배우고자 요리학원에 다녔습니다. 처음에는 가족들을 위해 배웠는데, 늘그막에는 평생직업이 되었네요." (웃음)

- 이 집의 특색은 무엇입니까?
"개업 이후 16년째 단일 메뉴로 스테이크만 내놓습니다. 다만 손님의 취향에 따라 쇠고기와 연어 중 택일하게 하지요. 저희 가게는 철저한 예약제로 그때그때 만들기에 버리는 음식이 전혀 없습니다. 수프, 빵, 스테이크, 후식 차까지 모두 제가 다 만듭니다."

레서피는 주택가 외진 곳으로 불곡산 계곡 바로 곁에 있었다. 아주 한갓진 곳으로 매우 조용하고 언저리 경치가 참 좋았다.

- 이렇게 외진 곳인데도 손님이 찾아옵니까?
"애초에는 강남 압구정동 도산공원 4거리에서 영업하였습니다. 거기서 한 10여 년 영업하다가 나이도 있어 그만 하고 이 마을로 들어와 쉬다가 이태 전 제 집인 이 자리에서 다시 시작했습니다. 고맙게도 옛날 단골들과 입소문을 들은 손님들이 꾸준히 찾아줍니다."

- 주인으로서 가게 자랑을 해주세요.
"저희 집은 턴(Turn)하지 않습니다. 한 자리에서 몇 시간 얘기를 나누고 가실 수 있습니다. 그리고 손님을 가족같이 모십니다."

부부가 함께 일할 수 있다는 데 감사합니다

부지런히, 그리고 진지하게 서빙을 하는 바깥주인 박남규(66) 씨에게 몇 마디 물었다.

- 1인 식대가 2만5천원으로 비교적 쌉니다.
"16년 전 개업 당시 그대롭니다. 저희집을 일부러 찾아오신 분들은 모두 오랜 단골들이시기에 값을 올리지 못하겠더라고요. 앞으로도 재료값이 폭등하지 않는 한 그대로 유지할 생각입니다."

- 부부가 같은 일을 하는 데 대한 소감은?
"저는 지난날 금융업계에 종사했는데, 솔직히 처음에는 적응하느라 매우 힘들었습니다. 압구정동에서 영업할 때는 주차문제로 가장 스트레스를 받았습니다. 지금은 한적한 곳이라 주차에 전혀 문제가 없습니다. 이 나이에도 부부가 함께 일할 수 있다는데 늘 감사하게 생각합니다."

나는 이즈음 내가 다시 태어나 직업을 고른다면, 늙도록 부부가 함께 할 수 있는 직업을 하고 싶다. 정히 그것이 어렵다면 아버지와 아들이, 아버지와 딸이 함께 할 수 있는 일도 좋겠다. 내가 강원도로 내려와 안흥마을에 살 때 이웃에 부자 농사꾼이 있었다. 어느 봄날 아버지와 아들이 옥수수 밭을 가꾸는 모습이 너무 아름다워 카메라에 담은 뒤 이따금 열어보고 있다.

부부가, 부자가 함께 땀 흘려 일하면 훨씬 힘이 들지 않을 것 같다. 하지만 이런 소박한 소망마저도 다 하늘의 뜻이 있어야 이루어지리라. 사실 행복은 지위가 높거나 먼 곳에 있는 게 아니고 아주 가까운 곳에 있음을 나는 이들 부부에게서 읽을 수 있었다.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말무더미 마을의 농사꾼 부자 모습
 강원도 횡성군 안흥면 말무더미 마을의 농사꾼 부자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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덧붙이는 글 | 이 연재 ‘유난히 맛난 집을 찾아가다’ 실록소설 <들꽃> 연재로 당분간 쉽니다.



태그:#맛난 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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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은퇴 후 강원 산골에서 지내고 있다. 저서; 소설<허형식 장군><전쟁과 사랑> <용서>. 산문 <항일유적답사기><영웅 안중근>, <대한민국 대통령> 사진집<지울 수 없는 이미지><한국전쟁 Ⅱ><일제강점기><개화기와 대한제국><미군정3년사>, 어린이도서 <대한민국의 시작은 임시정부입니다><김구, 독립운동의 끝은 통일><청년 안중근> 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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