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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5일 저녁 아내와 함께 모처럼만에 충남 태안의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을 찾았다. 태안군 교직원합창단 '블루비치'의 두 번째 정기연주회를 관람하기 위해서였다. 지난해의 '내 생활일기'를 읽어보니, 지난해 제1회 정기연주회 때는 시간에 맞춰 간 탓에 앉을 자리가 없어 그냥 돌아왔기에 이번에는 일찌감치 가서 앞쪽 자리에 앉을 수 있었다.

태안군 교직원합창단은 지난해 창단해서 올해 두 번째 정기공연을 가졌다. 총 44명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이들 중에는 2명의 여성 원어민교사도 있다. 교육지원청과 군내 여러 초·중·고에서 근무하는 교사들, 행정실 직원들, 급식담당 직원들이 고르게 참여하고 있다. 또 교장과 교감들도 있다.

교직원합창단은 이웃 동네인 서산에도 있고, 전국적으로 웬만한 동네는 다 있다고 한다. 해마다 전국 곳곳에서 교직원합창단의 정기연주회가 열린다. 그러므로 교직원합창단의 정기연주회는 별로 특기할 만한 일이 못 된다. 그런데도 나는 부부 동반으로 일찌감치 공연장을 찾았고, 이 글을 쓰고 있다.

25일 저녁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 무대. 태안군교직원합창단 제2회 공연 모습. 단원들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무대에 올랐다.
▲ 합창단의 노란 리본 25일 저녁 태안문예회관 대공연장 무대. 태안군교직원합창단 제2회 공연 모습. 단원들은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무대에 올랐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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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쩌면 나는 정기연주회 자체보다도 합창단원들의 '가슴'을 보러 왔는지도 모른다. 노래하는 그들의 가슴, 음악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가슴의 무늬'들을 확인하러 온 것일 수도 있다. 기대와 이상한 긴장감으로 내 가슴이 조마조마하기도 했다.

지난 월초였다. 아침에 초등학교 교사인 아내를 출근 시켜 주기 위해 함께 아파트 승강기를 타고 내려가다가 5층에서 사는 '보경 엄마'를 만났다. 40대 시절을 살고 있는 그녀는 중학교 행정실 직원이었다. 교직원합창단에 참여하고 있는데, 제2회 공연을 위해 매주 화요일 저녁마다 연습을 한다고 했다. 미리 축하와 격려를 해주었다.

며칠 후 승강기 안에서 다시 만났는데, 그녀는 우리 부부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을 보며 합창단원들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무대에 오르고 싶어 한다는 말을 했다. 누군가가 그런 의견을 내자 거의 전원이 찬동을 했다는 얘기였다.

나는 반색을 했다. 즉시로 아파트 로비의 우리 집 우편함에 들어 있는 노란 리본을 여러 개 꺼내 그녀에게 주었다. 항시 우편함에 여러 개씩의 노란 리본을 보관해놓고 사는 내 '준비성'이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다음날 또 승강기 안에서 그녀를 만났는데, 내가 견본으로 준 노란 리본이 작은 편이어서 좀 더 크게 만들어야 할 것 같다는 말을 했다. 자신이 노란 리본을 만들어야 한다는 얘기이기도 했다. 나는 그 말을 귀담아 들었다.

그리고 나는 10일 오후 다시 서울 광화문 광장을 찾았다. '세월호 참사 진상규명을 염원하는 천주교 130936인 선언식'에 참석하기 위해서였다. 나는 그 행사 시작 전에 먼저 '노란 리본공작소'를 찾았다. 노란 리본 만드는 일에 참여하고 있는 봉사자들께 우리 고장 교직원합창단의 정기공연 얘기를 하고 노란 리본 50개를 부탁했다.

선언식 행사가 끝난 후 다시 공작소를 찾으니, 두 가지 노란 리본을 50개씩 100개를 담았다며 작은 가방을 내게 주었다. 가슴에 달도록 옷바늘이 꿰어져 있는 작은 리본들과 가방 같은 데에 달도록 다소 크게 만든 리본들이라고 했다. 다소 크게 만든 리본들에 꿰어져 있는 고리를 모두 빼고, 따로 옷바늘을 작은 비닐 주머니 안에 챙겨 넣었다는 말도 해주었다. 나는 고맙다는 말을 여러 번이나 했다.                      

그날 집에 내려온 나는 즉시 리본 가방을 5층 보경엄마에게 전달했다. 그리고 그날부터 25일 교직원합창단 정기공연 일을 기다리며 기대와 불안이 교차하는 특이한 긴장감을 겪기 시작했다. 과연 합창단이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무대에 오를 것인지, 혹 중간에 무슨 입김이 작용하여 그 계획이 철회되는 것은 아닌지, 나는 실로 난분분한 심정이었다.

태안군교직원합창단 제2회 정기연주회 중간에 서산시교직원합창단이 우정 출연했다.
▲ 우정 출연 태안군교직원합창단 제2회 정기연주회 중간에 서산시교직원합창단이 우정 출연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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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일 저녁 우리 부부는 저녁식사 후 '저녁기도'와 함께 한국천주교 여자수도회 장상연합회가 만들고 서울대교구장 염수정 추기경이 인준한 '세월호 참사를 기억하며 바치는 기도'를 정성껏 바친 후 집을 나섰다. 문예회관 대공연장의 앞쪽, 귀빈석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아서 긴장감 속에서 공연 시간을 기다렸다.

드디어 공연 시간이 되어 단원들이 무대로 줄지어 입장했다. 예쁜 의상들의 가슴 부위에 노란 리본들이 달려 있었다. 멀리에서도 식별이 되도록 다소 큰 사이즈로 만든 리본들이었다. 나는 마음속으로 "하느님,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아내가 내 손을 꼭 쥐어주었다.

여성 피아노 반주자의 가슴에도, 또 남성 지휘자의 가슴에도 노란 리본이 달려 있었다. 그리고 지휘자는 단원들을 대표하여 인사말을 하면서 "오늘이 205일째입니다"라는 말을 했다. 4월 16일의 충격과 슬픔, 그 후의 상처들을 간략하게 술회한 다음 "우리 아이들이 저 하늘에서도 외롭지 않도록 하기 위한 마음으로 우리는 오늘 노래를 부릅니다"라는 말을 했다. 관람석을 가득 메운 청중들의 뜨거운 박수 가운데서 나는 손바닥이 아프도록 박수를 쳤다. 또 한 번 콧마루가 시큰하며 눈물이 솟았다.

합창단은 우선 세 곡을 연이어 들려주었다. 아름다운 화음의 합창들을 들으며 나는 그들의 가슴을 주시했다. 그들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들이 절묘한 화음과 율동 속에서 수억만 개의 꽃으로 피어나는 것 같았고,  수억만의 새들이 날갯짓을 하는 것만 같았다. 가슴에 노란 리본을 달고 노래하는 저들은 자신의 목소리로, 화음과 율동으로 노란 리본을 무수히 빚어내는 셈이었다.

나는 고마움과 아릿한 환각 속에서 행복감을 맛보기도 했다. 세월호 속에서 수장된 어린 영혼들을 떠올리며, 오늘밤의 노래 향연이 그들에게도 위안이 되기를 간절히 기도했다.

일단 퇴장을 했다가 옷을 바꿔 입고 다시 무대에 오른 합창단원들의 가슴에 노란 리본은 달려 있지 않았다. 변화를 주기로 한 것 같았다. 나로서는 아쉽고 섭섭한 마음이 컸지만, 첫 번 무대에 노란 리본을 착용한 것만으로도 고마운 일이라고 나 자신을 위로했다.

태안군교직원합창단 제2회 정기연주회에 서산시교직원합창단도 함께 했다. 두 합창단이 연합으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 연합합창 태안군교직원합창단 제2회 정기연주회에 서산시교직원합창단도 함께 했다. 두 합창단이 연합으로 마지막 무대를 장식했다.
ⓒ 지요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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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간에 서산시 교직원합창단의 우정 출연이 있었다. 그들의 가슴에는 노란 리본이 없었다. 그래서 태안군 교직원합창단의 노란 리본이 내게는 더욱 값지게 느껴졌다. 마지막 무대는 태안군 교직원합창단과 서산시 교직원합창단이 함께 장식했다. 무대가 꽉 차는 느낌이었다.

태안군 교직원합창단은 원래의 단복을 착용했지만, 처음과 달리 노란 리본을 착용하지 않았다. 섭섭한 마음 컸다. 노래하는 단원들은 그렇더라도 지휘자와 반주자는 끝까지 노란 리본을 착용하는 것도 좋을 텐데…라는 생각이 왕왕거렸지만, 애초의 고마웠던 마음을 잘 유지하자는 생각으로 나를 위안했다.

중간 이후의 아쉬움과 섭섭함 가운데서도, 태안군 교직원합창단의 제2회 정기공연, 그들의 가슴에 달린 노란 리본들이 아름다운 화음과 율동 속에서 수억만 개의 꽃으로 피어나는 것 같았던 환각을 안고 나는 힘껏 박수를 칠 수 있었다.


태그:#노란 리본, #태안군교직원합창단, #광화문 농성장, #노란리본공작소, #세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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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남 태안 출생. 1982년 동아일보 신춘문예에 중편「추상의 늪」이, <소설문학>지 신인상에 단편 「정려문」이 당선되어 문단에 나옴. 지금까지 120여 편의 중.단편소설을 발표했고, 주요 작품집으로 장편 『신화 잠들다』,『인간의 늪』,『회색정글』, 『검은 미로의 하얀 날개』(전3권), 『죄와 사랑』, 『향수』가 있고, 2012년 목적시집 『불씨』를 펴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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