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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수정 : 2014년 12월 1일 오전 10시 10분)

중학교 때부터 지도를 보는 것이 즐거웠습니다. 한 대륙이 한 페이지에 담긴 그 성긴 지도 말입니다. 지리부도를 볼 때마다 그저 초록색이나 옅은 누른색으로만 표시되고 듬성듬성 호수들만 표기된 곳이 궁금했습니다. 과연, 그곳에는 사람이 사는지, 산다면 어떻게 살고 있는 지가….

2003년 여름, 북미를 여행하면서 저는 무작정 대서양 해안을 따라 북쪽으로 올라갔습니다. 미국의 메인 주에서 캐나다의 노바스코샤로 건너갔고 다시 북행을 계속해 뉴펀들랜드에 닿았습니다. 래브라도 반도는 사람이 사는 곳인지가 궁금했던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저는 북으로 갈 때마다 점점 마을이 뜸해지는 그곳을 히치하이크로 횡단하려고 계획하고 뉴펀들랜드 코너브룩(Corner Brook)의 윌프레드그렌펠경대학(Sir Wilfred Grenfell College ; Memorial University Grenfell Campus)의 기숙사에서 정보를 수집하고 있었습니다.

북미를 여행 중에 만난 네덜란드의 자전거 모험여행가
 북미를 여행 중에 만난 네덜란드의 자전거 모험여행가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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래브라도 횡단에 대해 몹시 불안해하고 있을 즈음, 제가 가고자하는 길을 자전거로 횡단해서 막 도착한 여자분을 만났습니다. 다시 길을 떠나려는 그녀를 앉히고 곰이 출몰하는 삼나무숲 외길을 며칠 동안이나 홀로 어떻게 관통해왔는지를 물었습니다.

그녀는 자전거 한 대만으로 세계의 대륙, 거친 오지들을 달리는 네덜란드에서 온 여전사였습니다. 저는 그런 사람이 다시는 없을 줄 알았습니다. 하지만 지난 11월 20일 밤, 모티프원에서 또 다른 여전사를 만났습니다.

8년째 홀로 자전거를 타는 두 아이의 엄마

그녀의 이름은 호미숙.

그는 8년째 홀로 자전거를 타고 있었습니다. 전국해안도로를 일주하고, 고성에서 임진각까지 한반도의 허리를 횡단했습니다. 4대강 및 낙동강 하구언에서 일산 국립암센터까지 국토내륙을 종주하는 등 한반도 전역으로 페달을 밟았습니다. 전국자전거여행지도를 만드는 일에도 함께했습니다. 전국의 도로가 그녀의 뇌리에 각인됐고 이제 그녀를 중심으로 수십 킬로미터 반경의 거리는 자전거 마실 코스가 되었습니다.

뜻하지 않는 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뒤, 거듭난 삶을 살고 있는 자전거 여행가, 호미숙
 뜻하지 않는 사고로 남편과 사별한 뒤, 거듭난 삶을 살고 있는 자전거 여행가, 호미숙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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앞으로 기회가 주어진다면 전국의 전통시장 자전거 투어를 하고 싶다고 합니다. 전통시장에 아직 날 것으로 남아있는 정을 탐색하기 위해서는 차가 아니라 몸을 써서 찾아가야할 것 같기 때문입니다.

참 한가한 부인이다, 싶습니다. 하지만 그녀는 두 아들을 둔 가장입니다. 19년 전 남편과 사별했습니다. 그녀가 땀이 범벅이 된 몸으로 자전거 안장 위에서 바람을 가르는 일은 몸부림이었습니다. 전반기의 삶을 산 송골매가 또 다른 삶을 위해 무거워진 털과 뭉툭해진 부리와 발톱을 스스로 뽑고 거듭나는 그 몸부림이었습니다.

그녀는 시를 좋아하고 글쓰기를 즐겼습니다. 한문학지에서 추천받아 수필로 등단한 에세이스트이기도합니다.

그녀는 가장 아름다운 시기에 결혼했습니다. 남편의 근무지를 따라 파주의 북쪽 작은 읍내에 자리 잡았습니다.

하루 종일 남편의 퇴근을 기다리며 보내는 일은 그녀의 생리에 맞지 않았습니다.

인근에 10여 평 공간을 얻어 구멍가게를 냈습니다. 동민들의 생필품뿐만 아니라 아이들 학용품과 주전부리까지 진열된 상품은 여느 가게와 다를 바가 없었습니다. 전혀 다른 것 하나는 그녀가 주인이라는 점입니다.

그 가게는 온 동네 아이들의 거점이 되었고 아이들 주머니의 모든 용돈은 그 가게 차지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가게의 창문을 전시장으로 활용했습니다. 일상에서 건진 감정들을 시로 표현해 그림과 함께 그 창문에 붙였습니다. 그 구멍가게 창문전시장이 그 동네의 문화공간이 되었습니다.

인근의 군인들이 일부러 찾아와 고민을 나누고는 했을 정도였습니다. 그렇게 구멍가게를 3년 정도 운영을 하던 중에 남편이 서울의 요직으로 영전되며 터전을 옮겼습니다.

호미숙씨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관계를 윤기 나게 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호미숙씨는 사람들 사이에서 그들의 관계를 윤기 나게 하는 특별한 재능이 있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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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에서 안정된 생활도 잠시, 사고로 남편을 잃었습니다. 어린 아들 둘과 덩그마니 도시에 남은 그녀에게 황망할 틈도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녀 앞의 실제를 현실로 받아들였습니다.

남편과 사별 극복 후... 외로울 틈이 없다

서울로 이사 와 10여 년을 다니던 화장품 회사에서 승진을 앞두고 회사를 그만두어야 할 일이 생겼습니다. 남편도 없이 그녀가 회사 일에 매달려 지내는 동안 두 아들에게 사랑을 쏟을 시간이 허락되지 않았습니다. 아빠를 여읜 후 사춘기 아들은 방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녀는 미련 없이 회사를 그만두었습니다. 고액연봉을 아들과 바꿀 수는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남편과 생전 하고자 했던 국궁을 홀로 배우며 6개월 만에 전국우승의 실력으로 국궁 사범이 됐습니다. 매일 과녁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면서 어떻게 남은 인생을 과녁에 명중시킬 수 있을지 궁리했습니다.

그녀 앞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체험하게 된다. 그녀가 모든 이의 무대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그녀 앞에서는 누구나 자신이 주인공인 삶을 체험하게 된다. 그녀가 모든 이의 무대를 자처하기 때문이다.
ⓒ 이안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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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호동에서 남산활터까지 자전거로 출퇴근 하면서 천부적인 글쓰기 재능을 발휘했습니다. 구멍가게 창문갤러리에서 이번에는 온라인으로 옮겼습니다. 그리고 사진 찍는 것도 아울러 배웠습니다.

온라인 커뮤니티는 그녀에게 완전히 새로운 또 다른 소우주였습니다. 수많은 새로운 온라인 친구들이 생겨났습니다. 온라인에서도 그녀의 밝은 성격과 넓은 귀, 따뜻한 가슴이 동력이 되어 포탈 블로그에서 빛을 발하게 시작했습니다.

이제는 PC와 스마트폰 다루는 스킬이 자전거 타는 것처럼 몸에 익었고 그녀의 눈과 귀 그리고 가슴을 거친 세상의 풍경들은 텍스트와 이미지로 블로그와 유튜브, 페이스북과 트위터, 위키트리같은 소셜온라인미디어를 통해 세상에 전파됩니다. 힘을 가진 일인매체가 된 것입니다.

그동안의 온라인 인맥들이 다시 오프라인으로 이어지고 그녀는 그 사이에서 우정을 기록하는 사관(史官)이 되었고 사람 사이의 기적을 증명하는 증언자가 되었습니다.

그녀는 현재 블로그 일일 방문자 5000명 이상의 블로거 조합인 '한국파워블로거협동조합'의 홍보이사입니다. 중앙정부나 지자체 및 회사의 홍보채널로 부름을 받고 있습니다.

그녀는 자전거로 전국을 마실 다니는 일과 그 감동을 페이스북 담벼락으로 전하는 일을 계속할 예정입니다.

오늘도 외로울 틈 없이 '이가 서 말인 대신 은이 서 말'인 삶을 즐기고 있습니다. 사람과 사람사이에서 그녀의 재능을 희사해 기적을 촉발하고 있습니다. 그녀의 큰 고민은 도대체 그녀의 수많은 친구들이 그녀에게 외로울 틈을 허락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덧붙이는 글 | 이 기사는 모티프원의 블로그(www.travelog.co.kr)에도 함께 실렸습니다. 오마이뉴스는 직접 작성한 글에 한해 중복 게재를 허용하고 있습니다.



태그:#호미숙, #자전거여행가, #최은경, #조이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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