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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시각장애인 복지관 주최로 지난 22일, 부산 해운대 동백섬에서 제12회 시각장애인 사랑의 마라톤 대회가 열렸다. 시각장애인들은 매주 토요일마다 동백섬에 모여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손을 잡고 동백섬을 걷고 뛰어 왔다. 이 대회는 그동안 걷고 뛰면서 체력을 단련하면서 정을 나누었던 한 해를 마무리하는 축제의 한마당으로 펼쳐졌다.

시각장애인 사랑의 마라톤대회는 지난 2002년부터 시작되었다. 매년 4월부터 11월까지 동백섬 시각장애우 마라톤교실에서 기초 체력을 다진 후 그 성과 측정의 한 방법으로 13년째 마라톤대회를 개최하고 있다. 시각장애인 사랑의 마라톤 대회는 자신의 체력에 따라 1㎞, 3㎞, 5㎞를 선택하여 도우미와 함께 동백섬을 걷고 달리게 된다. 이번 대회에 시각장애인 100여 명과 자원봉사자 200여 명이 참가하였다.

봉사자와 장애인 모두가 서로에게 도움이 되는 곳

시각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들고 있다
▲ 출발에 앞서 시각장애인들과 자원봉사자들이 모여 들고 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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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대회에 참가한 박경화(70) 할머니는 꾸준히 동백섬 시각장애우 마라톤 교실에 참가했다.

"집에 있는 것보다 이렇게 나와서 많은 사람들과 함께 걸을 때 진짜 사는 것 같다는 느낌이 든다. 그래서 토요일마다 동백섬에 나와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걷는다. 그동안 마라톤 대회에 빠짐없이 참가하였는데 계단에서 굴러 떨어지는 사고를 당하는 바람에 이번 대회는 참가에 의미를 둔다. 동백섬에서 매년 개최하는 사랑의 마라톤 대회가 너무 좋아 현재 몸이 조금 불편한데도 명지에서 아침 일찍 준비하여 여기에 왔다."

박경화 할머니는 함께한 도우미 이수현 학생(부산국제외고 2학년)을 꼭 껴안으며 "천사 같다"고 말한다.

또한 이순이(50)씨는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주는 복지관에 고마움을 말한다.

"토요일마다 동백섬에 나와 달리기를 한 지가 5년이 되는데 빠짐없이 참가하면서 성격도 전보다 밝아졌고, 무엇보다 밖에 나올 수 있어서 기분이 좋다. 내가 8살 때, 한 쪽 눈이 보이지 않는 동네 오빠를 눈이 이상하다고 늘 놀렸었는데 내가 이렇게 될 줄은 정말로 몰랐다. 사람일은 아무도 모른다. 그래서 지금은 비록 앞이 보이지 않지만 이렇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에 감사하고 있다. 그리고 같은 시각장애인들 간의 단결도 된다. 이런 자리를 마련하여 주는 복지관에 감사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해운대 동백섬에 나와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는 학생들은, 도움을 줬다기 보다는 오히려 도움을 받고 세상을 배워가고 있다고 했다.

함께 걸으니, 길이 보이더라

매주 토요일 달리기에 앞서 이광길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준비 운동을 하고 있다
▲ 준비 운동 매주 토요일 달리기에 앞서 이광길 선생님의 지도에 따라 준비 운동을 하고 있다
ⓒ 정호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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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박경화 할머니와 함께 걸었던 이수현 학생(부산국제외고 2학년)은 "봉사란 한 쪽이 일방적으로 주거나 받는 것이 아니라 서로가 서로에게 힘이 되어 주는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며 "그동안 학업 스트레스로 지쳐 있고, 경쟁에 찌들어 살던 나는 오늘 박경화 할머니께 오히려 힘과 희망을 얻었고 더불어 늘 감사하는 마음도 배우게 되었다"고 말했다.

이순이씨와 함께 걸었던 정지은 학생(부산국제외고 2학년)은 이씨에게 큰 위로를 받았다고 한다. 이 행사에 참가한 것이 처음이라 서툴 수도 있다고 양해를 구하자, "어느 사람이나 낯선 곳에 가면 처음에는 힘든 게 당연하다"라며 격려를 받았다고 한다.

매주 토요일마다 봉사에 참여하는 것이 학업 특히 학교 시험이 있을 때 부담되지 않느냐는 기자의 질문에 중학교 때부터 봉사활동에 참여하고 있는 박예은 학생(부산국제외고 1학년)은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달리기 교실에 나오신 어느 아저씨께서는 함께 동백섬을 걸으시며 지금이 가장 행복하고 좋은 때라고 하시고 모든 일에 긍정적으로 살아가라는 말씀을 해주셨다. 그 말씀은 사소한 것에 스트레스를 받던 마음을 긍정적으로 변화시키는 데 큰 영향을 주었고, 바쁜 고등학교 생활을 즐겁게 지내도록 해주었다. 또 다른 할머니께서는 예전에 건강하던 시절에 봉사활동을 많이 다녔다고 말씀하시고는 그 때 했던 착한 일들이 나중에 행복으로 돌아오는 것 같다는 이야기도 하셨다. 나에게 있어, 동백섬 시각장애우 달리기 교실은 배려와 나눔의 가치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좋은 활동이다."

부산국제외고의 봉사동아리 '국제나누리'를 9년 동안 지도하고 있는 이광길 선생님은 자원봉사활동의 의의를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다.

"나 혼자만을 위한 학업에만 매달리다 보면 경쟁과 이기심만을 기르기 쉽습니다. 그래서 주기적으로 지역사회의 시각장애인들과 함께 하면서 시각장애인의 불편을 도와 그들의 건강 증진에도 이바지하고, 나아가서는 더불어 사는 즐거움을 깨우치는 건강한 학창시절을 보낼 수 있습니다. 많은 국제나누리 학생들은 봉사는 남에게 베푸는 것이 아니라 나 자신이 느끼고 반성하고 배우는 것임을 스스로 깨우칩니다. 봉사가 항상 사회적 약자를 생각할 수 있는 올바른 인성을 기를 수 있는 배움의 장이 됨을 알 수 있습니다."

함께 걸으니 길이 보이고, 그 길이 우리가 걸어가야 할 길일 것이다.


태그:#시각장애인, #마라톤, #자원봉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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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들과 함께 배우고 가르치는 행복에서 물러나 시골 살이하면서 자연에서 느끼고 배우며 그리고 깨닫는 삶을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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