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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긴 옷을 입고 다니는 것을 원하며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과 회당의 높은 자리와 잔치의 윗자리를 좋아하는 서기관들을 삼가라"(누가복음 20장 46절)

예수께서 하신 말이다. 그는 항상 겸손하게 섬기는 자로서 살았다. 당시 유대주의자들 대부분(제사장, 서기관, 율법사, 바리새인 등)은 종교를 이용한 부와 권력에 취해 있었다. 그들을 향하여 일관되게 예수께서 하신 말이 '낮아지라'는 거였다. 제자들에게는 그들을 본받지 말라고 하셨다. 자신은 세상을 섬기기 위해 왔으며 결국은 목숨조차도 내어줌으로 인류를 섬기는 모습을 보였다.

불교의 창시자 고타마 싯다르타(Gautama Siddhārtha, 석가모니) 역시 왕족의 태자로 고대 인도에서 태어났지만 왕좌를 버리고 사람들의 세상에 내려오는 낮아짐을 실천했다. 그 어떤 고등종교가 '낮아짐'을 말하지 않았으랴.

대힌민국 태동기 개신교는 곧 권력이었다

<대통령과 종교> 표지
 <대통령과 종교> 표지
ⓒ 인물과사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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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러나 대한민국의 종교는 어찌된 일인지 기득권자들의 대변자 역할을 하고 있다. 아니 좀 더 엄밀히 말하면, 기득권을 누리려고 온갖 추태를 벌이고 있다. 항상 권력 옆에는 종교가 있다. 특히 대통령 주변에는 종교가 그 한가운데를 차지하고 있다. 이 무슨 해괴한 일인가.

그 해괴함을 파헤친 책이 있다. 백중현의 <대통령과 종교>가 그것이다. 저자 백중현은 신학대학을 졸업하고 종교전문기자로 활동하며 '종교와 사회문제', '종교와 권력'에 관심을 갖고 글을 써 온 기자다. 이 책에서 대통령과 종교, 특히 개신교와 대통령의 관계를 집중적으로 다루고 있다.

책에는 불교나 가톨릭의 권력에 관한 내용이 없는 건 아니지만 개신교에 대한 기록이 많다. 나도 개신교 목사이니 가톨릭이나 불교를 다루기보다 개신교에 대해서만 글을 쓰려고 한다. 이미 대한민국의 개신교는 '개독교' 소리를 듣고 있다. 모든 교회와 목사가 다 그렇다는 얘긴 아니다. 그러나 싸잡아 그렇게 말하는 이들이 많다.

심지어는 구원파 유병언이 한참 언론에 보도될 때도 "개독교가 어쩌고저쩌고" 하는 이들이 많았다. 정통교회에서 이단이라고 아무리 발뺌을 해도 거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왜 이렇게까지 개신교의 신뢰성이 땅으로 내동댕이쳐졌을까. 개신교가 기득권자의 대변인이 되고 더 나아가 기득권자가 됨으로 '개독교화'하였기 때문이다.

대한민국의 탄생부터 개신교는 태생적으로 기득권화로 시작했다. 이승만 정권의 등장은 곧 개신교의 정권 창출이었다. 독실한 개신교인이며 개신교 장로였던 그는 노골적으로 기독교 국가를 만들겠다고 공언했다. 미국은 '기독교'와 '친미'라는 자신들의 입맛에 부합되는 인물로 이승만을 내세웠다.

"이승만은 한국을 개신교 국가처럼 운영했다. 그는 첫 국회인 제헌의회를 기도로 시작하고 대통령 취임식 석상에서도 자신의 종교성향을 자주 드러냈다. (중략) 이어 이승만은 제헌의회 의원이자 감리교 목사인 이윤영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당시 이 기도는 모든 의원이 기립한 가운데 진행되었다고 한다."(39쪽)

이승만 정부는 21개 부서장 가운데 9명이 개신교 신자였다. 국회도 입법의원 90명 중 21명이 신자였다. 이렇게 시작된 대한민국은 그 이후에도 김영삼, 이명박 장로 대통령을 배출했다. 그럴 때마다 '종교편향'이란 단어가 언론을 채웠다. 그러나 김영삼 정권은 군목제도에 불교와 가톨릭을 배분하는 등 개신교로서는 기득권을 많이 잃은 정권이었다.

보수 개신교, '반공'과 '친미'로 권력의 중심에 서다

박정희 대통령 때가 개신교는 가장 부흥한 시기다. 대부분의 대형교회들이 이때 등장했다. 당시 교회는 '반공'이나 '친미'가 교리라고 착각할 정도였다. 박정희 정권은 이런 개신교의 움직임을 십분 활용한 정권이었다. 보수 개신교의 반공 이데올로기와 친미성향은 박정희 정권의 취약성을 극복하는 데 적잖이 기여했다.

"정권의 기반이 취약했던 박정희는 정권 유지를 위해 반공 이데올로기에 의지해야 했고, 또 미국 등 국제사회의 지지도 필요했다. (중략) 당시 이를 지원할 수 있는 민간 세력은 개신교가 유일했다."(78~79쪽)

박정희의 요구와 개신교의 가교 역할이 맞아떨어졌다. 개신교 지도자들은 미국 선교사들과의 인맥을 동원하여 박정희를 도왔다. 박정희와 보수 개신교의 밀월관계는 점점 더 짙어졌다. 심지어는 1972년 긴급조치로 민주인사들이 투옥될 때도 구국기도회를 열어 박정희를 지원했다. 월남파병도 개신교가 '자유의 십자군' 운운하며 나서서 찬성했다.

이때 개신교의 대형집회들이 여의도광장에서 자주 열린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정권의 비호가 없이 불가능한 일이다. 새벽기도와 새마을운동은 그야말로 천생 궁합이었다. 조찬기도회도 이때 생겼다. 그러나 개신교는 반독재 운동과 목요기도회를 중심으로 정권에 정면으로 도전하기도 했다. 이렇게 권력을 두고 보수 기독교와 진보 기독교가 갈리기 시작한 것이 박정희 정권 때이다.

전두환 정권 때는 기독교방송에 대해 뉴스를 못하도록 하는 등 탄압이 가해졌다. 그러나 전두환을 위한 조찬기도회를 여는 등 보수 개신교는 여전히 정권의 시녀 노릇을 했다. 차라리 '10·27 법난'을 겪는 등 불교계는 수난을 당했다. 천주교는 이때 가장 대형집회를 많이 열었다.

개신교, '개독교'란 말을 듣다

2007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장로가 한기총을 방문하여 이용규 대표회장 등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2007년 당시 대통령 후보였던 이명박 장로가 한기총을 방문하여 이용규 대표회장 등과 환담을 나누고 있다.
ⓒ 한기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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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공'과 '친미'를 기반으로 한 군사정권은 5·18 민주화운동을 거치면서 더 이상 개신교의 지지를 유지하지 못했다. 노태우 정권에서도 개신교는 이렇다 할 권세를 누리지 못했다. 하지만 보수 개신교는 진보 개신교의 목소리가 커지자 위기를 느끼고 1989년 한국기독교총연합회(아래 한기총)를 결성한다.

한경직·강원룡·조향록·지원상 목사 등에 의해 주도된 한기총은 이후 정권과 밀착하며 기득권층의 대변자 노릇을 해왔다. 요즘 '대형교회'와 '세습목사', '교회재정의 투명성 재고', '종교인의 과세반대' 등의 문제는 대부분 이들의 이야기이거나 적어도 이들과 관련이 있는 내용들이다.

김대중·노무현 정권에게는 보수 개신교 특유의 신자유주의 이데올로기를 들이대고 종북이나 좌파라는 말로 반대했다. 김영삼 정권과 이명박 정권은 보수 개신교가 적극 개입해 밀어주는 모양새였다. 심지어는 강단에서 "장로를 대통령으로 보내야 나라가 산다"고 공공연히 말하기도 했다.

그러나 이들의 목소리가 커지면 커질수록 예수는 작아졌다. 이제는 교회에 예수가 없다는 말까지 돌고 있다. 더 이상 한국 개신교는 빛과 소금의 맛을 잃었다고들 한다. '기독교'라는 말 대신 '개독교'라는 말을 듣고 있다. 이명박 장로 대통령을 낸 개신교는 그때 가장 신뢰할 수 없는 종교로 전락하고 말았다.

"개신교는 이명박 당선의 일등공신 역할을 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크게 키웠지만, 이명박 집권기를 거치면서 여러 형태의 위기상황을 맞는다. 이미지와 신뢰도, 교세의 동반하락을 경험하게 된 것이다. (중략) 개신교는 '안하무인종교', '무례한 종교', 속 좁은 종교'라는 생각을 갖도록 했다."(265쪽)

때로는 권력의 비위를 맞추면서, 때로는 권력을 만들어내면서, 때로는 권력의 시녀 노릇을 하면서, 개신교는 추락해 왔다. 더 이상 권력의 곁에 가지 말아야 한다. 권력을 비판할지언정 권력을 비호하거나 두둔해서는 안 된다. 예수가 그랬듯 상좌를 버리지 않으면 '개독교'가 아니라 '쓰레기독교'가 될지 모른다.

<대통령과 종교>(백중현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 2014. 11 / 309쪽 / 1만5000원)

덧붙이는 글 | <대통령과 종교>(백중현 지음 / 인물과사상사 펴냄 / 2014. 11 / 309쪽 / 1만5000원) * 책을 읽으면 권력화 된 종교가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가 생각할 수 있을 것이다.



대통령과 종교 - 종교는 어떻게 권력이 되었는가?

백중현 지음, 인물과사상사(2014)


태그:#대통령과 종교, #백중현, #새책 서평, #종교권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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