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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관피아'의 악취가 진동하는 공직 사회의 인사 대수술을 위해 '삼성맨'이자 대선캠프 출신 인물인 이근면씨(62)를 발탁했다. 인사 혁신처는 '관피아' 척결 등을 통해 공직사회의 고질적인 문제를 타파한다는 목적으로 신설된 부처다.

박 대통령이 세월호 사건은 물론 군납 비리에서 폭발적으로 드러난 '관피아'의 근본적 해소와 공직 개혁의 핵심으로 신설한 인사혁신처의 초대 처장을 발탁하면서 박 대통령이 생각하는 공직사회 개혁의 윤곽이 무엇인지 어느 정도 드러났다.

민경욱 청와대 대변인은 이근면 씨의 선임 배경과 관련 "인사와 관련한 경험과 전문성이 뛰어날 뿐만 아니라 조직 관리 능력과 추진력을 겸비했다"며 "민간 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공직 인사 혁신을 이끌 적임자로 기대해 발탁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박 대통령의 발탁 이유가 담긴 설명으로 들린다.

민 대변인이 말한 '민간 기업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새로운 시각에서 공직인사 혁신을 이끌 적임자'라는 설명에는 대통령이 세계적 기업으로 성장한 삼성 그룹 경영에 대해 긍정적, 적극적으로 평가하고 있다는 것을 함축하고 있다.

당연한 말이지만, 대통령의 삼성에 대한 시각과 그에 따른 인사는 대통령 개인의 문제로 그치지 않는다. 그것은 자칫 정부와 국가 전체에 큰 영향을 미친다. 대통령의 인사는 투명, 합당해야 한다는 점이 강조되어 왔고, 지난 2년 동안 '불통인사, 인사 망사, 묻지마 인사'와 같은 비판이 그치지 않았다.

이번 인사가 지닌 문제로는 우선 그 시점이다. 박 대통령이 국가 개조의 한 부분으로 제시한 공무원 인사 혁신을 담당할 초대 인사혁신 처장에 삼성그룹 인사 팀장 출신을 발탁한 시점이 우연의 일치인지 삼성가의 어두운 부분이 집중 부각된 시기와 일치한다.  

즉 이재용 삼성 전자 부회장등 삼성가 세 남매가 삼성 SDS의 주식 상장으로 얻게 되는 천문학적인 시세 차익은 불법 행위의 부당 이득으로 국가가 환수해야 한다는 주장이 높아지고 있는 상황에서 '삼성 인사통'이 중용된 것이다. 삼성의 대표 선수 쯤 되는 이씨의 발탁은 '부당 이득 환수'를 위한 공직 사회의 움직임에 제동을 것는 효과가 있다는 것은 부인하기 어렵다. 시민사회의 감정에 역행하는 재벌가의 막대한 이윤 추구 행태에 대해 정부 여당이 향후 어떤 태도를 취할지 주목되지만 '환수'라는 강도 높은 방향으로 가기는 어려울 듯 하다.

신임 이 처장은 삼성 그룹의 인사통으로 알려져 있듯이 '무노조 삼성, 제왕적 총수 일인 지배체제의 세계 일류 기업 삼성'의 인사 기준과 그 방법론에 정통한 인물이다. 삼성그룹의 무노조 경영은 그룹 창업자 이병철 전 회장으로 부터 지금까지 철저하게 지켜져 온 철칙으로 삼성 그룹의 인사전략도 거기에 맞춰져 있다는 것은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삼성은 노동자들의 자율적 단결권을 인정하는 것이 헌법에 보장된 노동 기본권을 실천하는 것이지만, 이를 철저하게 짓밟는 방식으로 세계적인 시장 경쟁력 추구 방식을 고집했고, 크게 성공한 것도 사실이다. 삼성은 대한민국 최고의 엘리트들을 뽑아서 무노조 경영으로 총수 일가 지배 체제를 구축했다. 그런 과정에서 삼성의 인사 정책이 전체 삼성맨들을 한 방향으로 몰고 가는데 가장 강력한 역할을 담당한 것이다.

삼성은 무노조 상황이 노조의 필요성을 느끼지 못하는 노동자들의 자발적 선택이라고 주장해왔지만, 철저한 일상적 감시와 강도 높은 탄압 사실이 상당 정도 드러나 그 허구성이 증명된 바 있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2부는 지난 1월 삼성 에버랜드의 노동조합 간부에 대한 해고를 부당노동 행위로 판단하고,
'2012년 S그룹 노사전략' 문건의 작성자를 삼성그룹으로 인정하는 판결을 내린 바 있다.

'S그룹 노조대응전략' 문건에는 삼성이 무노조 경영을 유지하기 위해 △사전에 노조 설립 움직임을 확인하면 해당 불만세력을 회유 및 포섭하고 △노조 설립을 막지 못하면 신속하게 복수 노조를 설립해 교섭 대표 노조 지위를 확보, 신설 노조의 교섭권을 박탈하라고 적혀 있다.

또한 △세 확장을 막기 위해 노조설립을 추진했던 핵심 세력과 단순 세력을 분리 △내부 분열을 위해 노조활동을 문제 삼아 핵심 세력에 대한 징계 및 민형사상 손배소와 고소 △단순 세력에 대해서는 유인책과 경제적 불이익으로 위협하는 탈퇴 종용한다는 등의 내용을 담고 있다.

당시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 노동위원회는 논평을 통해 '삼성재벌이 그룹차원에서 노조와해전략을 짜고 시행해 왔던 것이 사실로 드러난 것"이라면서 "삼성그룹은 '무노조 방침'이라는 시대착오적인 노무 정책을 폐기하고 삼성노동자들의 노동3권을 온전히 보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삼성그룹에서 노동조합을 결성하려는 시도가 끊이지 않았지만, 매번 좌절됐는데 그 과정에서 이근면 신임 처장이 당시 어떤 식의 역할을 했는지는 앞으로 밝혀져야 할 부분이다. 삼성은 세계 일류 기업을 지향하는 경영 혁신을 공표해왔지만, 노동자의 노동 기본권 유린과 노동조합 결성 시도 및 노동 조합 활동 탄압에 대해서는 공개적으로 침묵해 왔다. 이는 삼성의 무노조 경영에 대한 집착과 총수 일가의 지배·경영권에 대한 집착의 반영으로 해석되고 있고, 전체 삼성 그룹은 이런 원칙에 의한 인사 전략이 지난 수십 년 간 강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청와대가 무노조 경영으로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재벌 그룹의 인사 팀장을 뽑아 공무원 인사 혁신의 중책을 맡도록 한 것은 현 정부가 공무원 노조, 전교조 등에 대해 보여준 태도와 무관한 것으로 밖에 보이지 않는다. 소통과 화합을 앞세웠던 집권 세력이 공무원 사회에 '노조가 없는 재벌 일가의 제왕적 지배 철학'을 주입하는 식의 인사 혁신을 하지 않을까 걱정된다.

덧붙이는 글 | 이 글은 미디어라이솔과 민중의소리에도 실렸습니다.



태그:#청와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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